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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수 Dec 07. 2021

재능있는 사람에게 충고하는 법_기불욕현현(其不欲見賢)

공자를 향한 노자의 충고

최근 충고를 하거나 충고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충고는 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여지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거의 하지 않는다. 사실, 충고란 충고하는 사람, 충고를 듣는 사람, 그리고 주변 상황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다. 아무나 쉽게 하는 것이 아니다. <공자세가>를 읽다보니 충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주나라 왕실 도서관장을 했을 정도로 시대의 현자였던 노자 젊고 유능한 공자에게 한 말이다.


 말 잘하고 재능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잘 끄집어내기 때문에 위태롭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된 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합니다.


사실 공자는 부모를 일찍 여의였지만 어려서부터 행실이 공손하고 예를 잘 알아 명성이 높았다. 그래서 이미 20세 즈음에 노나라 대부들의 자식들에게는 스승이 되어 예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 인연으로 제자와 함께 그는 예를 배우기 위해 주나라를 갔던 것이고 이때 노자를 만났다 한다. 작고 힘없는 노나라 공자의 명성을 노자도 들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이름이 난 공자에게 노자는 ‘위태로움’을 말한다. 그리고 ‘노련한 장사꾼일수록 좋은 물건은 숨기는 법’이라며 빗대어 말하며, 공자에게 '너무 드러내려 애쓰지 말라'고 충고한 것이다. 하지만 노자 만난 것에 대해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공자는 말한다. ‘나는 새와 물고기에 대해서는 안다고 할 수 있는데, 용은 어떻게 하늘로 올라가는지 알 수 없다. 노자는 그런 존재이시다’라고 말이다. 공자는 노자의 충고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을지가 궁금하다.

  

그렇게 공자가 주나라 외유를 하고 노나라에 돌아오니 공자에게 배우려는 제자들은 더욱 늘어났다. 그 후 공자 나이 35세에 작고 힘이 약한 노나라는 내부적으로 삼환 대부들의 권력다툼이 더욱 심해졌고 이를 피해 노나라 제후 소공은 노나라를 떠나 도망쳤고, 이때 부패하고 무질서한 노나라와 여러 대부들과 가신을 비판하던 공자도 노나라를 떠나야 했다. 그 때 제나라로 갔고, 제나라 제후 경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그 유명한 말을 한다.


 君君, 臣臣, 夫夫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한다.

공자의 이 말은, 당시 무너진 주 왕실과 제후들의 관계, 제후와 대부들 간의 약육강식 관계를 제대로 꼬집은 말이다. 이에 제나라 안영을 비롯한 여러 대부들은 자신들의 입장과 상충되는 공자를 용인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제나라에 머무는 공자를 공격했고, 공자는 ‘위태로워지자’ 노나라로 별수없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공자 나이 ‘불혹’의 42세, 노나라 소공은 결국 나라 밖에서 죽고, 노나라 정공이 왕에 올랐지만, 삼환자 대부들은 계속 제후를 무시하고, 가신들도 또한 대부를 상대로 싸우자 공자는 결국 벼슬살이에서 물러나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묵묵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한다. 그러다가 공자 나이 ‘지천명’ 50에 기회가 찾아온다. 노나라 정공은 공자를 중도라는 지역의 재상으로 삼아 다스리게 하였는데 잘 다스려지자 공자는 대사구, 지금의 법무장관급에 해당하는 관리로 임명된다. 이 때 노나라가 공자의 정치로 유명해지자 옆의 강국 제나라는 불안해했다. 그래서 노나라에 회맹을 제안하게 됐고, 그 협곡회맹에서 공자는 제대로 예를 보이며 제나라의 무례한 외교결례를 꼬집어, 제나라로부터 보상을 받아내는 외교실리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이 일로 공자는 더욱 명성을 얻게 되었지만, 동시에 공자는 '위태로워'진다. 왜냐하면 권위가 높아진 공자는 제자 자로를 계씨 가신으로 보내 노나라 공실의 질서를 바로 잡는 일을 실제로 추진한다. 그리고 56세에 드디어 노나라 상국의 일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이 때 공자는  얼굴에 기뻐하는 기색이 확연했다 할 정도로 기뻐했다. 상국에 준하는 높은 관직에 올라 자기의 정치적 이상을 펼쳐 엉망진창인 노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아무튼 공자는 나라를 어지럽힌 대부를 과감하게 주살하고, 정사를 바르게 하자 노나라가 점차 편안해지자, 더욱 불안해진 제나라는 여색을 미끼로 노나라 애공을 꼬셨고, 결국 노나라의 제후는 무너졌고, 공자는 신하로서 설 자리가 없게 되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또 노나라를 떠나야 했다.  


그렇게 공자는 위나라를 거쳐, 조나라, 송나라, 정나라, 진나라, 초나라 등 여러 제후국들을 14년간 제자들과 떠돌아다니며 유세한다. 하지만 부국강병을 위해 싸우는 제후국들에게 주 왕실에 대한 예를 다하고 인의와 근본을 주장하는 공자의 이상적인 말은 비판만 받았다. 결국 공자는 대부들의 견제와 공격만 받고, 마치 ‘상갓집 개’의 모습으로 보일 정도로 비참하고 궁핍해졌다. 그러다 70세가 다 되어 겨우 노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노나라에서도 역시나 공자에게는 벼슬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그를 대신해서 공자의 아끼는 제자들인 안회나 자로가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자 공자는 하늘이 자신을 버리는 듯한 심한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현실정치에 참여하려는 생각을 접고, 대신 '위편삼절'하여 <주역>을 쓰고,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술'하는 역사서 <춘추>를 쓰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그제야 '從心'을 편히 말하며 73세에 죽음을 맞이한다.


즉, 공자는 몇번 그가 그토록 원하던 현실정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공자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상을 정치적으로 펼치려는 시도들을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공자는 아이러니하고, 불행하게도 여러 대부들이나 또 다른 제후국들로부터 심한 '견제와 공격'을 받았고, '위태로워'졌으며,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되엇다.  


젊은 날에, 재능있고 말 잘하는 공자를 향해 '위태로움을 걱정하며, 신하로서 드러내지 말것'을 '충고'했던 노자의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놀랍다. 그런 노자의 뜻을 담고 있는 듯한 <도덕경> 한 구절이다. 


시이성인 기불욕현현
(是而聖人 其不欲見賢)

성인은 자신의 현명함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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