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의 산 16
관악산의 6봉처럼, 설악산의 공룡능선처럼
넘으면 바로 다음 험봉이 이어진다.
그런데도 겹겹이 중첩된 산마루금과 바위와 소나무의
명품 어우러짐을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는다.
대관령을 중심으로 그 동쪽을 영동이라 일컫듯 새재를 중심으로 그 남쪽 지방을 영남嶺南이라 일컫는다.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조령산은 나는 새도 쉬어 넘는다는 험준한 새재鳥嶺를 품에 안은 백두대간 상의 산으로 신라 초기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을 막는 국경선이자 고구려와 물물교환 등 상업 교류가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또 후백제의 견훤이 고려 왕건과 조령산을 사이에 두고 자웅을 겨룬 바 있다. 서울의 진산 자리를 놓고 북한산과 경합하다가 내려와 버렸다는 설이 있을 만큼 빼어난 산이다.
그러한 조령산을 오르고자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 상의 큰 고개이며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인 해발고도 548m의 이화령梨花嶺을 산행기점으로 잡았다. 거기 친구 남영이와 호근이가 동행해주었다.
새들이 쉬어갈 만큼 높고 험준한 산세
이화령터널 옆의 이화정에서 백화산을 올려다본다. 두 해 전 겨울, 여기서 조령산의 반대편 남쪽으로 황악산을 거쳐 백화산을 올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참으로 춥고 눈이 많았던 그 겨울의 두 산이 무척 반갑게 느껴진다. 힘들었던 추억, 특히 산에서의 고행은 오래도록 각인된다.
들머리 이화정에서 내려다보는 문경 읍내로 초여름이 짙푸르게 퍼져간다. 키 큰 침엽수와 활엽수가 고루 섞여 하늘을 찌를 듯 쏟아있다. 비교적 평탄한 숲길이지만 날이 더워 작은 오르막에도 숨이 가쁘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그런가 보다. 초반 걸음이 꽤 무겁고 버겁다. 나무 사이로 간간이 불어주는 바람이 고맙기까지 하다.
“여기서 잠깐 쉬자.”
푸른 산의 싱그러운 정기를 한껏 흡입하며 오르다가 조령 샘에서 목을 축인다.
“온통 초록색이군.”
“초록을 충분히 즐기고 보내줘야 울긋불긋 곱게 단풍이 물들 거야.”
“다시 하얀 설원이 펼쳐지면서 우리는 늙어가겠지.”
“늙는 걸 두려워하면 더 빨리 늙어.”
“더 늙기 전에 올라가자.”
다시 녹음을 헤쳐 나가자 계단 양옆으로도 수림이 우거져 그늘을 만들어준다. 헬기장에서 멈춰 충북에서 가장 높은 백화산(해발 1063m)을 바라보고 희양산 뒤로도 속리산 지붕을 뿌옇게나마 확인한다.
헬기장을 벗어나면 바로 조령산 정상(해발 1017m)이다. 이화령에서 3km가 채 못 미치는 정상까지 무난하게 올랐지만, 과연 새들이 쉬어갈 만큼 높고 험준한 산세이긴 하다.
“지현옥이 누군지 알아?”
“여자축구선수?”
“그건 지소연.”
“LPGA 골프선수인가?”
여기서 지현옥이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될 줄이야.
‘산 말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산 전부를 가질 수 있었던 자유로운 영혼’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지현옥의 산악 일기를 정리한 책 ‘안나푸르나의 꿈’ 머리글에 적힌 문구다.
199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이끌고 정상에 올랐으며, 1998년 가셔브룸 2봉(8035m)을 무산소로 단독 등정해 한국에 8000m급 여성 단독 등반 시대를 연 산악인이다. 1999년 안나푸르나(해발 8091m)를 등정하고 하산 길에 실종되었다가 그 후 사망 처리되었다.
‘들꽃처럼 산들산들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영원한 자연의 품으로 떠난 지현옥 선배를 기리며……’
조령산 정상석 옆 돌무더기에 세운 추모비가 그녀의 히말라야 족적에 비해 다소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몰라봐서 미안합니다.”
남영이가 고개를 숙이고 슬쩍 추모비를 쓰다듬는다. 그녀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페미니스트feminist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정상을 내려선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 신선암봉 쪽으로 걷다가 훌륭한 조망 장소가 나와 다시 멈춰 선다. 삼각형 바위 봉우리 깃대봉 뒤로 가야 할 주흘산이 구름 아래로 아득하다. 여기서 보는 주흘산의 산세는 부드럽고 밋밋하게 보이지만 문경 쪽에서 올려다보는 산세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야성미 넘치는 주흘산 마루금은 북한산 정상부를 연상하게 했었다. 주흘산 뒤로는 월악산 가로 마루금이 영봉을 중심으로 선명하다. 사방 탁 트인 공간을 산악 전시장처럼 메운 수많은 봉우리가 가슴을 후련하게 하지만 긴 길을 제약된 시간에 도착해야 하므로 마냥 감상에 빠져들 수는 없다.
마당바위 삼거리, 작년에 후배 계원이와 조령산에 왔다가 마당바위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엄청 가파르고 대책 없는 너덜지대에서 결국 계원이가 발목을 접질렸다. 2 관문으로 내려갔다가 오르기로 했던 주흘산을 다음으로 미뤘고 1년여 시간이 지나서 오늘 다시 오게 된 거였다.
오늘은 마당바위 하산로를 흘깃 쳐다만 보고 900m 떨어진 신선암봉으로 향한다. 길게 늘어진 밧줄을 붙들고 신선암봉神仙巖峰(해발 937m)에 오른다. 호근이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숨을 몰아쉬자 남영이가 물병을 건넨다.
“무척 빡빡한 산행이야.”
“여기 문경새재 도립공원 내의 집단시설지구는 극기 훈련장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더라.”
“힘든 게 당연하군.”
들머리부터 도상거리는 길지 않아도 험준하여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체력적으로 에너지 소모량이 많은 조령산이다. 신선암봉에서 보는 주변 봉우리들은 무척 가파르고 근육질마저 선명하여 위압감이 든다.
가파른 바위 구간에 설치된 밧줄을 붙들고 신선암봉을 내려서서 햇볕 쨍쨍 내리쬐기는 하지만 훤히 시계가 트인 하늘길을 걷는다. 백두대간인지라 리본들도 꽤 많이 달려있다. 양옆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험하긴 해도 시원한 조망이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여기서 928m 봉으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관악산의 6봉처럼, 설악산의 공룡능선처럼 넘으면 바로 다음 험봉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겹겹이 중첩된 산마루금과 바위와 소나무의 명품 어우러짐을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는다.
높고도 험준한 산세의 주흘산
주흘산主屹山은 고려 공민왕이 피난하여 임금님이 머문 산이란 뜻으로 칭해졌다. 문경의 진산이자 문경새재의 주산이다.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문경새재에는 임진왜란을 겪은 후 세 개의 관문(사적 제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는데 주흘관主屹關(조령 제1관문), 조곡관鳥谷關(조령 제2관문), 조령관鳥嶺關(조령 제3관문)이 그것이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넘어가는 통로들이고 주변이 박달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지.”
“이 지역특산물이 도토리묵이랑 산나물이라던데.”
“막걸리는 아니고?”
“하하하! 한잔 생각이 나기도 하겠지만 그건 산행을 마친 다음에.”
문경읍에서 서북쪽으로 깊은 협곡에 있는 주흘관에서 3km 거리에 조곡관이 있고 이곳에서 3.5km 떨어져 조령관이 있다. 3 관문인 조령관은 새재 정상에 자리 잡아 북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중창하였는데 고려 초부터 조령이라 불리며 중요한 교통로의 역할을 하였다.
부봉 너머로 주흘산 능선이 많이 가까워졌다. 꾸구리바위 삼거리 이정표에 제3 관문까지 3.4km이며 그중 1.2km가 암릉 구간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928m 봉을 지나 2 관문과 3 관문 갈림길에 다다라서야 접었던 스틱을 다시 편다.
삼거리에서 10여 분 거리의 깃대봉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쉽다. 깃대봉 너머 조령산의 스카이라인이 저만치 밀려났으니 꽤 부지런히 걸어온 셈이다. 긴 깃대봉 석비(해발 835m) 앞에서 다녀갔음을 인증받고 되돌아와 문경새재 3 관문으로 내려선다. 조령 약수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잠시 그늘에 앉아 숨을 고른다.
“이렇게 강행군할 줄은 몰랐어.”
“오늘 행군 마치면 올여름은 감기 안 걸리고 잘 넘길 거야.”
다시 마패봉 오르는 급경사와 암릉 지대를 거쳐 마패봉(해발 920m)에 올랐다가 틈 없이 부봉 쪽으로 향한다. 동암문 삼거리까지는 이제까지와 달리 편안한 흙산이었다가 부봉 오르는 구간은 바윗길로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산행 예정에 없던 부봉은 6봉까지 있는데 오늘은 1봉(해발 916m)에서 월악산 방향을 둘러보는 거로 만족하고 예정된 코스로 향한다.
부봉 1봉에서 험로를 내려와 주흘산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오후 햇볕이 무척 따갑다. 호근이 말처럼 강행군이다. 하늘재로 가는 백두대간 길을 좌측으로 두고 곧바로 진행하여 주를 영봉(해발 1106m)에 이른다.
“여기가 오늘 오르는 봉우리 중에서 제일 높은 데야.”
문경새재(조령)는 추풍령, 죽령과 함께 영남의 낙동강 유역과 한강 유역을 잇는 가장 중요한 경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영남의 선비들이 죽령으로 가면 죽죽 낙방하고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데 문경새재를 넘으면 말 그대로 경사를 전해 듣고聞慶 새처럼 비상한다는 속설 때문에 많이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이 험한 곳을 힘들게 지나갔는데 시험 잘 봐서 급제해야 마땅하지.”
“우리도 다녀갔으니 합격할 거야.”
“우린 무슨 시험을 봐야 하냐.”
“주여!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다가 숲길을 타고 내려와 주흘산(해발 1030m)에 이른다. 주흘산의 최고봉은 영봉이지만 문경읍 사람들은 여기를 진산으로 여긴다. 1030m 고지인 이곳에서는 문경읍이 잘 보이지만, 영봉에서는 산이 가로막아 문경읍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진산은 자기 마을을 내려다보고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에 이 봉우리를 문경읍의 진산으로 삼아 주흘산이라 부르고 있다.
다시 여기서 주봉으로 향한다. 계단을 거슬러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 내려와야 한다. 주흘산 주봉(해발 1075m)도 마패봉이나 영봉처럼 자연 석바위에 정상 표기를 해놓았다.
멀리 소백산을 바라보고 아래로 문경시를 내려다본다. 주봉을 중심으로 여섯 방향으로 등산로가 나 있는데 막 지나온 주를 영봉과 부봉을 지나 동화원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멋스럽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견 온 명나라 장군 이여송은 문경새재의 지형을 보고 이곳을 지키지 못한 신립 장군을 비웃었는데 신립이 충주 탄금대가 아닌 여기서 집결하여 매복했다면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를 제대로 방어했을 거로 평한 바 있었다.
내리막은 대궐 샘까지 계속되는 계단이다. 내려가면서 뒤를 올려다보니 이곳이라면 육군사관학교를 갓 졸업해 임관한 소대장이라도 사수할 수 있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높은 고도의 험준한 산악지형이기 때문이다. 대궐 샘에서 갈증도 식히고 흘러내리는 땀도 씻어낸다.
포장도로가 나오고 이어 혜국사가 보인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 때인 창건 당시 법흥사였는데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민왕이 이곳으로 피난하였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이 절의 승려들이 크게 활약하여 나라에서 은혜를 입었다 하여 절 이름을 혜국사로 바꾸었다.
사찰 아래로 흐르는 협곡과 여궁폭포를 지나 문경새재 제1 관문에 도착한다. 여기서도 1km를 더 내려가 주차장에 이르러서야 숨을 몰아쉬며 길고도 험한 산행을 마친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씁쓰레하더니 목으로 넘기고 나서야 입안에 감칠맛이 돈다. 바로 완주의 달콤함이다.
“후유, 설악산 공룡능선 때만큼 힘들었어.”
“수고들 많았어. 도토리묵이랑 산채나물 해서 막걸리 한잔하자.”
“오케이!”
때 / 초여름
곳 / 이화령 - 조령산 - 마당바위 삼거리 - 신선암봉 - 깃대봉 - 제3 관문 - 마패봉 – 부봉 1봉 – 주흘산 영봉 – 주흘산 주봉 - 대궐터 - 혜국사 - 여궁폭포 - 제1 관문 - 주차장
https://www.youtube.com/watch?v=w4VeRt5vEY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