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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순영 Dec 21. 2021

선홍빛 상사화 물결의 출렁임,
선운산

전라도의 산 14

젊은 시절의 어느 날, 상사화 붉은 물결에 

절로 탄성이 새어 나온 건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창연한 오후 햇살 받아 토할 듯 더욱 붉은색이 

사랑의 빛깔과 너무나 닮았던 것 같다. 


                   

도솔계곡의 맑은 물,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3000여 수에 이른다는 동백나무숲,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화신, 상사화. 무엇보다 천애 적벽과 여러 천연 굴이 있어 수시로 들르고 싶은 곳이 여기 선운산이다. 동백 숲 주변에는 다른 나무가 자라지 않아 순수 동백림에 가깝다.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는 선운산은 전라북도 도립공원 혹은 1984년에 지정된 국민 관광지라는 명찰과 관계없이 귀에 따갑도록 호남의 내금강이라는 수식어를 쓴다. 그 수식어에 어긋나지 않기에 거부감이 일지 않는다.

선운산이 있는 전북 고창에는 도내에 분포하고 있는 330여 기의 지석묘 중 100여 기가 군내 해리면, 부안면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 보존지구로 지정한 바 있다. 

고창은 장어와 복분자를 떠올리게 하는 고장이다. 여기에 작설차를 넣어 고창의 3대 명물이라 칭한다. 자연산 장어는 사라진 지 오래고 모두 양식이지만 6개월여 양식 장어를 고창갯벌에서 키워 고창갯벌 풍천장어라는 브랜드로 특허를 냈다. 해안가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염도 높기로 유명한 동호해수욕장, 구시포 해수욕장과 사포리 해수욕장 등은 부근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는 천연의 피서지이다.  

   


한 번의 인연으로도 늘 변함없는 맺음처럼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의 선운산禪雲山이니 와서 불도의 언저리나마 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강학講學과 수선修禪의 도량을 표방한 선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 수많은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555년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린 날 미륵 삼존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꾼 다음 감동하여 세웠다는 설과 그보다 2년 뒤에 백제의 고승 검단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당시 이 지역은 백제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왕이 사찰을 건축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여긴다.

검단선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연못이었는데 검단선사가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이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 세운 절이 바로 선운사이다. 검단선사는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닦아 선禪의 경지를 얻는다고 하여 절 이름을 선운사라 지었다고 한다.

또한, 이 지역에는 도적이 많았는데 검단선사가 불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검단선사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절에 소금을 바치면서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마을 이름도 검단리라 하였다.

창건설화와는 별도로 조선 후기 사료들에는 진흥왕이 창건하고 검단선사가 중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창건설화에 걸맞게 절 주위에는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검단선사에게 쫓긴 이무기가 바위를 뚫고 나갔다는 용문굴이 있다.

대웅보전, 석탑과 만세루를 건성으로 들러보고 선운사를 나와 지금부터 유람할 봉우리들을 올려다본다. 썩 맑은 날씨는 아니지만, 봉우리마다 어서 오라 손짓한다. 산은 날씨나 계절에 의해 채도 혹은 명도가 다소 달라지긴 해도 늘 한결같은 모습 그대로이다. 운무에 가려서도, 백설에 덮여서도 산은 그 존재나 그에 대한 확신을 의심케 하지 않는다. 

사람 사는 일, 사람들과 부대끼는 삶에 저처럼 한결같을 수가 있긴 할까. 진정한 사랑과 우정이라면 가끔 색감이 달라지긴 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 변했다면 그건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이 아닐까.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다시 찾은 선운산도 찾은 이를 어색하게 만들지 않는다. 한 번의 인연으로 늘 변함없는 맺음을 지속하는 산 특유의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젊은 시절의 어느 날, 상사화 붉은 물결에 절로 탄성이 새어 나온 건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창연한 오후 햇살 받아 토할 듯 더욱 붉은색이 사랑의 빛깔과 너무나 닮았던 것 같다. 연녹색 이파리는 봄이 다 가도록 피지 않는 꽃을 열망하다 말라 죽고 그런 후에야 꽃대 헤집고 핀 붉은 화신, 이룰 수 없는 사랑이 꽃말인지라 상사화相思花는 더 애절하고 그리움만 남긴 사랑의 그림자와 그 색감이 흡사했었나 보다. 이곳 고창 선운사는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와 함께 3대 상사화 군락지로 꼽히는 곳이다. 

선운사 담장을 끼고 주봉인 수리봉으로 향한다. 석상암 갈림길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고요한 가을을 만끽한다. 색 고운 단풍, 바람과 낙엽이 죄다 옛 벗처럼 다감하게 느껴진다. 

뽀얗게 운무 가라앉아 아련한 추억 되새기게 하는 이런 산길, 어느새 저버린 낙엽 거침없이 밟으면서 진득한 고독까지 떨쳐낼 수 있는 산길, 내리막 해거름 붉다가 검어지면 다시 곱씹을 애수일지언정 부서지는 햇살 마구 밟으며 걷는 이 길이 마냥 좋기만 하다. 

아픔이 있기에 치유가 있고, 고통으로 말미암아 극복의 결과물이 있지 않겠는가. 설움 반 자조 반에 이 산 올랐다가 무어 하나 지워내지 못하고 내딛는 무거운 걸음이 거쳐야 할 아픔인 것 같아 그저 좋아지는 것이다. 산이기에 그런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한다.

유람하듯 느긋하게 걸어서도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마이재 이정표를 보게 된다. 여기서 700m를 더 걸어 수리봉(해발 336m)에 닿으면 서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개이빨산이라고도 불리는 견치산이 있다. 막 거쳐 온 주차장 일대와 선운사 그리고 외떨어진 석상암만 내려다보이지 않는다면 이곳도 온통 첩첩산중이다. 만일 그렇다면 초절정의 만산홍엽이 너무 아까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참당암 쪽으로 가면서 산 아래 소담하게 담겨 산중 호수처럼 보이는 저수지가 도솔제다. 그 뒤로 탕건바위가 주변 산세들에 비해 유독 튀어 보인다. 바위 두 개가 포개진 모양을 한 포갠바위를 지나 시야 트인 바위에서 낙조대와 천마봉이 기다리는 걸 보고 걸음을 빨리하지만 참당암으로 내려서면서 자연 자생인 듯한 꽃무릇들이 멈춰 세운다. 보고 또 보아도 환상적이고 특이한 모습이다. 

참당암에서 소리재까지 1km, 조망은 막혔지만 역시 완만한 오르막 숲길이다. 소리재 지나 낙조대로 가면서 보는 천마봉 주변의 기암들이 마치 알록달록 거대한 몸집의 포유류가 얼굴만 삐죽 내밀어 기웃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용문굴 갈림길에서 100m 거리의 용문굴을 보고 가자. 선운산은 내려갔다가 회귀해서 올라가는 게 그다지 힘을 뽑지 않으므로 편안하게 시간만 조절하면 된다. 


          

산은 사랑을 주고 또 사랑을 기억하게 한다  

   

인기 드라마였던 대장금의 촬영지 용문굴 안에 잔돌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는데 장금 어머니 돌무덤이라는 팻말을 세워놓았다. 거대한 바윗덩이를 큼직한 돌덩이로 받친 듯한 용문굴에서 낙조대로 향한다. 긴 계단을 올라 낙조대에 이를 즈음 뿌옇던 운무가 걷힌다. 

배맨바위는 먼발치서 바라만 보고 지나친다


낙조대 바위 위로 펼쳐진 가을 하늘이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깝다. 조금만 더 맑았으면 저기 칠산 해안과 변산반도를 한눈에 담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채 걷히지 않은 연무 탓에 서해바다의 선이 선명하지 않다. 배멘바위와 거길 오르는 철 계단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거로 만족하고 천마봉으로 향한다. 


“멋진 풍광의 수묵화에 암자를 그려 넣는 게 괜한 구색이 아니었구나.”


발밑으로 내려다보이는 기암 군락이 오색단풍과 어우러져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댔는데 그 중심에 도솔암이 있다. 불교에 심취한 진흥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선운사에 들어가 스스로 법운자法雲子라 칭하고 중으로서 일생을 마쳤다는데 도솔암은 왕비를 위해, 중애암은 공주를 위해 건립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도 286m의 천마봉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빼어난 조망 장소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낙조대는 말할 것도 없고 사자바위 능선과 투구바위 등 주변 경관이 오밀조밀 수려하다. 내려가면서 올려다본 천마봉은 장대한 기골의 너끈한 풍채를 지닌 모습이다. 높이나 크기, 부피와 무게 등 수치로 가늠하는 세상사 잣대를 조롱하는 품새다.

도솔암 마애불이 꼿꼿하게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다


그런데도 속세 가까이 내려서니 제일 먼저 수치를 끄집어내게 된다. 선운산 날머리 도솔암으로 내려와 마주 대하여 걸음 멈추게 하는 몇몇이 있으니 결국 크기를 재고 높이를 셈하고 마는 것이다. 

하나는 보물 1200호인 도솔암 마애불이다. 고려 때 조각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최대의 마애불상으로 지상 3.3m 높이에서 책상다리하고 앉은 높이가 15.6m라니 과연 고개 꼿꼿이 들어 눈까지 추어올리게 된다. 다른 하나는 내륙에서 제일 큰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과 수령 600년의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이다. 

도솔암으로 내려와 늠름한 장사송을 바라보며 눈인사 나누고 선운산 유람선에서 하선한다. 어질한 뱃길에 금세 멀미라도 할 듯 창창한 오후 햇살이 흔들거리는 물살처럼 몽롱하다. 산은 사랑을 주고 또 사랑을 기억하게 한다. 오늘 선홍의 상사화 물결을 따라 선운산행을 마치고 내려오자 어렴풋이 새겨지는 게 하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기도가 왜 간절한지,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축복을 왜 솟대처럼 높이 세워 염원하는지. 

    

못 미더운 세월

어쭙잖은 작별 잊으려 떨구려

암팡진 바윗길 힘차게 올랐지만

남은 계절 휘저을 기세로 몰려드는

운무에 푹 덮이니 아쉬움 그지없고나

만남도, 헤어짐도

추억도, 기약도 뒤돌아보니 그저

산안개 같고

오락가락

신기루 같기만 하고나 

                   

때 / 가을

곳 / 선운산 관리사무소 - 선운사 - 석상암 - 마이재 - 수리봉 - 참당암 - 소리재 - 용문굴 - 낙조대 - 천마봉 - 도솔암 - 원점회귀 





https://www.youtube.com/watch?v=sTIlhko__mI&t=7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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