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산 15
산에서는 산 이야기뿐이다.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르는 장관 후보도 거론되지 않고,
미투me too의 대상이 되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유명인에게 실망하는 일도 없다.
충북 영동군과 경북 김천시에 접한 백두대간 상에 위치한 황악산黃岳山은 학이 많아 황학산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삼도봉, 대덕산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연봉을 이룬다.
아침 7시경에 서울에서 출발한 산악회 버스는 10시경 괘방령 장원급제 길에 도착했다. 북쪽의 괘방령과 남쪽 우두령을 통해 영동군과 김천시를 잇는 906번 지방도로 위로 황악산이 솟아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괘방령을 많이 이용했다. 추풍령은 추풍秋風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과거에 낙방한 것을 연상시키는 반면 괘방령은 방榜을 붙여 과거에 합격하였음을 알린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풍령은 공무를 수행하는 관로官路였으므로 죄지은 게 없는 나그네들도 관리들이 들끓는 역로를 피해 한가한 샛길을 찾게 마련인지라 이래저래 괘방령은 추풍령보다 한결 사람들이 몰렸던 고개이다.
“괘방령 옛길의 의미를 되살려 이야기가 있는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겠습니다.”
김천시는 조선 시대에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괘방령에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장원급제 길을 2021년 말까지 조성한다고 밝혔다. 장원급제 기원 쉼터, 장원급제 광장, 주막촌 등을 지어 괘방령 옛길의 의미를 되살리고 합격 기원탑, 기원나무, 장원급제 포토존, 금의환향 길 등을 만들어 대입 수능시험 등을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가 행운과 힐링의 공간으로 이용하도록 한다니 지역발전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무수한 노력을 여기서도 보게 된다.
산에서는 산 이야기뿐이다
고도 293m의 괘방령 들머리 옆으로 돌탑이 쌓여있고 이곳이 충북 영동군임을 표시하였다. 여기부터 완만한 등로를 오르게 되는데 통행이 잦지 않아 곳곳 거미줄과 접촉하며 걷게 된다. 주로 백두대간 종주 코스로 활용하는 길이다.
길 찾을 수고로움은 없다. 등산로도 선명하고 리본도 많이 달려있다. 백두대간 등산로라고 적힌 첫 이정표에 여시골산과 황악산이 한 방향임을 가리킨다. 통나무 계단이 이어지다가 여시골산을 오르기 전에 잠깐 경사가 급해진다.
출발 후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여시골산(해발 620m)에 닿았다. 눈에 담을 만한 것은 별로 없다. 여기서 조금 내려가면 팻말에 귀여운 여우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여우굴이 있음을 표시한 팻말이다.
여시골산의 대표적인 여우굴로 예로부터 여우가 많이 출몰하여 여시 골짜기라 불렸으며 그로 인해 여시골산이라 부른다고 적혀있다. 울타리에 밧줄을 쳐놓은 바위굴은 꽤 깊어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종갓집 여우 식구들이 모두 모여 살아도 될 만큼 깊고 큰 동굴처럼 느껴진다.
여우굴을 살피다가 허리를 펴니 우리나라 산에도 많은 여우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토양의 우량한 생태계에서 여우뿐 아니라 다양한 동식물들이 자유롭게 생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호랑이나 늑대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그리 가파르지 않은 육산 등산로를 오르다 보니 함께 온 우리 일행만 없었다면 이곳에서 움직이는 건 바람뿐일 것이었다. 여시골산에서 또 30분가량 지나 정상석 하나를 보게 되는데 운수봉(해발 740m)에 다다른 것이다. 괘방령에서 3.1km를 지나온 거리이다. 올라온 이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려 벤치를 여럿 만들어놓았다.
운수봉에서 내려가면 금세 직지사로 빠지는 하산로가 있다. 이곳 삼거리 안부에서 일행 중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일부가 직지사 쪽으로 빠지고 남은 인원들은 처음 정한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움직인다.
걷기 편한 흙길이 계속된다. 암봉이나 절벽이 없고 비교적 평평하며 수림이 울창하다. 간간이 나무들 틈으로 김천시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황악산과 거리가 좁혀지면서 조금씩 고도가 높아진다.
멀리 유난히 솟구친 금오산에 눈길을 두며 더위를 식히고 갈증을 해소한다. 아래로 직지사가 보인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는 절 이름에서처럼 손가락이 창건 유래의 주요 테마이다.
신라 때 아도화상이 멀리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곳에 절을 지으라고 해서 직지사 터를 잡았다는 설이 있고, 고려 시대에 능여대사가 이 절을 세울 때 자尺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량하여지었다는 설이 있다.
어찌 되었든 신라불교의 발상지라고도 할 수 있는 직지사가 손가락 힘이 크게 작용하여 세워진 절인 건 분명한 것 같다. 직지사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천룡대로부터 시작되는 능여계곡은 봄에는 산 목련과 진달래가 무성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계곡을 붉게 물들인다. 사명대사가 즐겨 찾았다는 사명폭포도 멀지 않다.
직지사와 그 주변 풍광에서 눈을 거두고 다시 걸음을 높여 걷는다. 심한 굴곡은 아니지만 오르내림에 땀을 흘리면서 황악산 정상(해발 1111m)에 닿았다. 널찍한 터에 세워진 정상석과 삼각점, 그리고 돌탑에 백두대간 해설판 등이 왠지 산만하게 배열된 것처럼 보인다. 민주지산, 수도산과 가야산을 볼 수 있고 동쪽으로 금오산에 시선을 박고는 일행 열댓 명이 모여 점심을 먹는다.
“지리산 칠선계곡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어요.”
“설악산 대청봉에서 얼마나 비를 맞았는지 초여름인데 얼어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산에서는 산 이야기뿐이다.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르는 장관 후보도 거론되지 않고, 미투me too의 대상이 되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유명인에게 실망하는 일도 없으며, 전 남편을 살해한 파렴치한 여편네를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촛불시위와 태극기 시위로 서로를 갈라 세우다가 느닷없이 덩샤오핑의 백묘 흑묘론으로 모두를 싸잡아 탓하는 이들이 없어 좋다.
그렇게 다녀온 산을 칭송하고 추억하며, 과일도 먹고 차도 한잔 마시고 나서 가야 할 바람재 쪽에 눈길을 담갔다가 그쪽으로 행로를 잡는다. 형제봉(해발 1010m)을 지나고 신선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내리막길로 방향을 튼다.
황악산 정상에서 2.3km를 걸어와 너른 초원지대 바람재(해발 810m)에 닿았다가 여기서 700m 떨어진 바람재 정상까지 이르렀다. 울타리를 넘어 확인해보니 바람재 정상에는 이동통신의 수신을 위한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 정상이라고 표기는 했지만 오르는 곳이라기보다는 그저 지나가는 곳이다.
울타리 앞의 이정목이 가리키는 대로 진행하여 여정봉(해발 1030m)에 도착한다. 여기도 벤치가 있어 편하게 앉아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바로 행보를 잇는다.
백두대간 상의 고만고만하고 비슷한 능선을 따라 삼성산 정상(해발 986m)을 거쳐 가게 되는데 여기도 길만 보고 걷다 보면 모르고 지나칠 듯하다. 몇 번 같이 산행했던 윤 대장이 오늘은 유난히 열성적으로 인도해주어 감사함을 느끼는 중이다.
삼성산에서 우두령 가는 길도 특별히 난해하지는 않다. 평지에 그늘로 이어져 일행 모두 밝은 표정이다. 경사진 내리막 끝에 도로까지 내려서자 흰색의 우람한 소 한 마리가 거기 서 있다.
이 고개로 이어지는 능선의 생김새가 소머리와 유사하여 이름 지어진 우두령牛頭嶺(해발 720m)이고 상징물로 큼직하게 소 석상을 세워놓았다. 대간은 여기서 석교산, 밀목령을 지나 삼도봉으로 이어진다.
백두대간의 한 구간인 우두령에 도착하여 대기하고 있던 산악회 버스에 오르면 한나절 동반했던 이들은 오랜 동지이자 산우가 된다.
때 / 여름
곳 / 괘방령 - 여시골산 - 운수봉 – 직지사 삼거리 - 황악산 - 형재봉 - 바람재 - 여정봉 - 삼성산 - 우두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