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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순영 Dec 23. 2021

섬진강에 뿌리내린 국민 관광지,
곡성 동악산

전라도의 산 28

고리봉이 섬진강을 지키는 당당한 형상이라면, 동악산은 

섬진강을 끌어안은 넉넉한 형상으로 솟아있다고 표현하였는데

금상첨화로 4대 강 정비 사업에도 끼지 않았으니 

섬진강은 복 받은 강임이 틀림없다. 


                    

“그럼 거시기 동악산도 가봤겠구먼요?”

“동악산이요?”

광주광역시에 출장을 왔다가 거래처 대표와 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곡성 동악산에 대해 듣게 되었다.

“아따, 거긴 안 갔구마니라. 꼭 가보쇼잉.”

지리산을 가깝게 조망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오전 일찍 일을 마치고 곡성으로 차를 몰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는 식이다. 트렁크에 언제든 산으로 향할 준비물이 있었으므로 가능한 일이다. 

전남 곡성군은 북쪽으로 전북 남원과 접하며 도계를 이루는 지방으로 전라남도에서도 고도가 높은 편에 속해 동악산, 통명산, 곤방산 등이 솟아있다. 맑고 깨끗한 섬진강과 보성강이 흘러 아름다운 자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오곡면의 섬진강 기차 마을과 섬진강 레일바이크가 유명하고 기차 마을에서는 매년 5월 곡성 세계 장미 축제가 개최된다.

곡성군 곡성읍에 소재한 동악산動樂山은 북으로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원의 고리봉과 마주 보고 있으며 청류동 계곡 또는 도림사 계곡으로 불리는 골짜기를 경계로 동악산과 형제봉 두 개의 산군으로 나뉜다.

골짜기 북쪽의 동악산은 섬진강 변에서 끊어지지만, 남쪽 형제봉은 남쪽으로 최악산을 거쳐 통명산까지 남동으로 뻗으며 길고 넓게 펼쳐진다. 타지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어도 호남에서는 국민 관광지로 지정될 만큼 사랑받는 산이다.


           

이 산에 천상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곡성에 들어섰는데 교통표지판은 동악산이 아닌 도림사로 표시되어 있다. 도림사 입구의 넓은 무료주차장에서 내리면 바로 도림사 계곡 하류인 물가 옆으로 많은 평상이 놓여있다. 바로 한 달 여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이 몰려 절정을 이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들어가 도로를 걸어 올라간다. 도로 옆은 거대한 암반 위로 옥류가 흘러내리는 계곡이 길게 이어진다. 아직도 가는 여름의 막바지 아쉬움을 달래려는 물놀이 탐방객들이 보인다.

천년 세월을 두고 끊임없이 흐르며 암반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데다 도림사 말고는 달리 가옥이나 상인들이 없어 여름철만 아니라면 수질이 흐려질 염려는 없어 보인다. 

도림사 일주문을 지나며 이해타산에 얽매였던 사흘간 속세에서의 까칠했던 일상을 털어내자고 되뇐다. 도림사 경내로 들어가 본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로 도인들이 숲처럼 모여들어 도림사라고 이름 지었다는데 무엇 때문에 도인들은 모였을까 하는 점도 궁금해졌다.


“응진전에 봉안되어있는 저 아라한 석상들 때문일까?” 


원효대사가 성출봉(지금의 형제봉) 밑에 길상암을 짓고 강도講道하며 지내던 어느 날 꿈에 성출봉에서 부처님과 16 나한의 모습을 대하게 된다. 잠에서 깬 즉시 성출봉으로 올라갔더니 한 척 남짓한 아라한阿羅漢 석상들이 솟아났다.


“나무아미타불, 대박이로다.”


원효는 열일곱 번이나 성출봉을 오르내리며 아라한 석상을 모셔놓자 천상의 음악이 온 산에 울려 퍼졌다. 그리하여 풍류 악樂자를 써서 산 이름을 동악산이라 지었단다. 지금 보는 응진전의 아라한상들이 이렇게 산 이름을 유래하게 한 당시의 아라한 석상들이라니 그걸 보려 도인들이 속속 모여들어 절 이름도 연유케 했는가 보다. 

경내를 나와 계곡 길로 들어선다. 이 계곡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열서넛 구비의 반석 계곡이 있는데 맨 꼭대기의 1 반석부터 9 반석까지 명칭이 있고 그 길이가 1km에 이른다고 한다. 짧은 철교를 몇 차례 건너고 다시 계곡을 오르다 보면 커다란 마당바위에 난해한 한자로 파서 새긴 글을 보게 된다. 보면서 잘 쓴 글씨라는 건 알아도 읽기도 어렵거니와 뜻을 해석하기에는 불가한 내용이다.

수석의 풍경이 3남에서 으뜸이라는 이 계곡에는 조선 시대 이래 근세에 이르기까지 시인 묵객들이 다녀간 흔적이 새겨져 있다는 글귀를 도림사 안내문에서 읽었는데 당시에는 붓과 벼루 대신 망치와 끌을 가지고 다니면서 바위에 자취를 남기는 게 추세였었나 보다.

맑은 물줄기가 흐르는 널찍하고 편편한 반석이 큰 것은 폭이 2~30m에 길이가 100m에 이른다. 이처럼 널찍한 반석은 맑은 물을 흘려보내며 반질반질하게 닦여졌다.

차분히 흐르는 맑은 물길을 거슬러 오르다가 계곡을 빠져나와서도 무난한 등산로가 산책길처럼 이어진다. 길상골 갈림길에서 우측의 배넘어재로 향한다. 정상을 2.3km 남겨둔 배넘어재 갈림길부터 고도가 높아진다. 

한 시간 가량 올라와서야 활엽수림이 걷혀 조망이 트인다. 부쩍 높아진 하늘에 초록이 권태롭다는 양 점차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산야를 바라보노라니 그토록 더웠던 여름이 언제였던가 싶다. 

동악산으로 오르는 방향에서 200m 우측으로 신선바위를 가리키는 곳으로 가보고자 한다. 큰 바위들이 흘러내린 애추 지대를 지나 넓고 평평한 바위에 올라서면 곡성의 아담한 마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게 될 형제봉과 멀리 호남의 부드러운 산세들을 두루 둘러보고 지리산으로 눈길을 돌렸지만 깔끔하게 갠 날씨가 아니라 지리산 조망은 어렴풋하기만 하다. 

소소히 감미로운 미풍까지 불어오자 과연 신선이 지낼만한 바위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신선이나 사람이나 전망 좋은 바위를 보면 머물고 싶어 진다. 잠시 머물다 다시 내려와 동악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올라서며 내려다본 신선바위는 앉아 수도하기에 좋은 장소처럼도 느껴지고, 누워 오수를 즐기기에는 더욱 적합해 보인다.

도림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 거대한 암벽에 설치된 데크 계단에 올라서서 동악산에 당도한다. 올라와서 내려다보니 상당히 가파른 계단이다.

동악산 정상인 시루봉은 꽤 가파른 편이다


전혀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산행이라 더욱 반가운 정상석이다. 커다란 바위들 위에 돌탑을 쌓아놓고 그 앞에 정상석(해발 735m)이 놓여있다. 바위에 걸터앉아 아무 곳에나 시선을 던져놓는데 어디선가 풍악이 울리는 것 같다.


“하늘에서 울리는 음률에 맞춰 춤을 추다 보니 지금의 산세를 지니게 되었고, 옛날 곡성 마을에서 장원급제자가 나오면 동악산에서 노래가 울려 퍼졌다.”


마을 주민들은 이런 얘기를 자랑스럽게 전한다고 한다. 시루봉이라고도 부르는 동악산 정상에서 마주 보는 남원의 고리봉이 같은 산세인 것처럼 멀지 않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는데 여기 동악산과 고리봉 사이의 섬진강 7km 구간을 솔곡이라고 부른단다. 예로부터 이 두 산 사이의 섬진강을 강이라기보다는 소나무 수림 울창한 골짜기로 여겨왔고 이 두 산을 하나로 여긴 모양이다. 

누군가 고리봉이 섬진강을 지킬 듯 당당한 형상이라면, 동악산은 섬진강을 끌어안은 넉넉한 형상으로 솟아있다고 표현하였는데 금상첨화로 4대 강 정비 사업에도 끼지 않았으니 섬진강은 복 받은 강임이 틀림없다. 

배넘어재 능선이 큰 굴곡 없이 평온하게 이어지고 곧 만나게 될 대장봉과 형제봉, 그리고 형제봉에서 뻗어 내린 공룡능선이 그리 멀지 않다.

거래처 대표가 알려준 대로 정상에서 계단을 따라 더 올라가자 사실상 동악산의 최고봉에 닿게 된다. 삼각점만 놓여있는데 정상보다 고도가 20m 더 높다고 한다. 여기서 시루봉을 건너보니 저렇게 가파른 계단을 어떻게 올라섰나 싶다. 깎아지른 암벽도 의외로 날카롭고 험준하다.



원효가 열일곱 번 오른 성출봉에서 그의 자취를 찾다  

   

형제봉으로 가는 길은 약간의 굴곡이 있지만 무난한 능선이다. 기암도 많고 사방으로 트여 지루하지 않다. 동악산 산행의 중심지대라고 하는 배넘어재에 다다른다. 도림사에서 직접 올라오면 3.2km, 정상에서는 3.1km에 이르며 형제봉까지는 2.4km로 표시되어 있다. 여기부터는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싱그럽고 편안한 능선을 걸어 서봉이라고도 하는 대장봉(해발 751m)에 이른다. 

거듭 눈길을 주어도 곡성읍내 너머로는 연무가 뿌옇게 끼어 지리산은 여전히 흐릿하기만 하다. 섬진강 너머로 하늘을 가를 듯 산줄기를 길게 뻗은 지리산 주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곡성의 지리산 보망대로 꼽히는 동악산이지만 그것도 날씨가 맑을 때의 얘기다. 

여기서도 온 길을 돌아보고 형제봉과 공룡능선을 바라보다가 바로 형제봉으로 향한다. 넓은 헬기장을 거쳐 도착한 형제봉(해발 755m)은 동봉과 성출봉까지 합쳐 세 개의 이름을 지녔다. 형제봉의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원효가 실어갔다는 아라한 석상들은 과연 이곳의 어디에서 솟았던 걸까. 원효의 꿈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아라한 석상의 사실 여부가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다. 도림사에 보존된 아라한 상들이 여기 형제봉까지 열일곱 번을 오르내리며 실어 나른 거라면 원효대사는 대단한 산악인이라는 사실까지 증명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원효대사가 다녀간 산은 다 좋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 있는 산이나, 동두천의 소요산처럼 원효대사가 입산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산은 모두가 명산이다. 모르긴 몰라도 원효대사의 산에 대한 안목은 탁월했던 것 같다. 


“아무튼, 불가사의하면서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이야.”


결국, 석상들이 솟은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제2 형제봉으로 걸음을 옮긴다. 형제봉에서 400m 떨어진 제2 형제봉도 동봉(해발 727.5m)으로 표기되어 있다. 너른 곡창지대를 내려다보고 또 암벽으로 이루어진 공룡능선을 우측으로 두고 멈춰 서서 감상한다. 부채꼴 모양의 암릉 군이 있어 부채바위 능선이라고도 부르는데 볼수록 구미가 당기는 풍광이다.


“다음에 꼭 다시 오겠네. 그때 보세.”


설악산의 공룡에 비견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우락부락 다부진 암릉을 보니 꼭 한 번 다시 와서 오늘 못 간 루트까지 포함해 여유로운 산행을 하고 싶어 진다.

부채바위 뒤로 공룡능선이 보인다
부채바위와의 만남은 다음을 기약한다


가을이 다가오는 게 확연하다. 서녘에 노을이 물들라치면 가을은 긴 여름을 제치려 제 기운을 모두 동원한다.

서울로 돌아오면서도 3박 4일간의 출장 여정 중 산줄기 곳곳에 기암을 쏟아놓고 괴봉을 솟게 하여 나무랄 데 없는 산세를 보여준 동악산행을 복기하게 된다. 

운전 중에도 투명한 계류와 암반으로 이루어진 골짜기와 육산과 골산의 산수 미를 겸비한 동악산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때 / 늦여름

곳 / 도림사 주차장 - 도림사 – 청류동 계곡 - 신선바위 - 동악산 - 배넘어재 - 대장봉 - 형제봉 – 제2 형제봉 - 청류동 계곡 - 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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