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산 19
알게 모르게 산으로부터 모성을 느끼게 된다. 멀리서 바라보건
그 품에서건 바라보는 이, 안긴 이를 아늑하게 감싸준다.
산이 좋아 들어섰건, 무언가를 피해 산에 왔건
그 안에서는 생각까지 맑게 한다
이번에도 괴산으로 향한다. 충북 괴산군은 단일 군 단위의 지역으로는 유독 명산이 많은 곳이다. 화양구곡을 끼고 속리산과 월악산에 근접한 데다 괴산 35 명산이라는 브랜드를 지녀 자주 찾게 된다.
이번에는 연어봉을 올라 신선봉과 마패봉을 거쳐 조령산 자연휴양림으로 내려와 휴양림에서 야영 중인 일행들과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괴산군 연풍면에 국민 생활 증진을 목적으로 조성되어 피크닉장, 산책로, 간이 운동시설 등을 갖추고 수옥정 관광지, 조령 3 관문, 조령산 자연휴양림 등이 인접한 연풍 레포츠공원을 오늘 산행의 출발지로 정했다. 조령산 자연휴양림 내에 야영지를 잡고 한 친구가 내비게이션에 찍힌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168의 주소에 내려준다.
“다녀올게.”
“못 말리겠군. 조심해서 다녀와.”
수안보를 들러 휴양림으로 다섯 명이 야영을 왔다가 혼자 산행을 하고 내려오겠다니 표정들이 밝지는 않다. 그래도 어쩌랴. 낮은 곳에 앉아 즐기기보다는 높이 올라 고행하는 것이 더 끌리는걸. 더더욱 기암 즐비한 암릉 산행에 조경수 버금가는 멋진 소나무들이 많다는 걸 알고는 등산화 끈을 조여 매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 용궁의 수장, 연어봉에서 할미봉으로 건너뛰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 경계에 있는 조령산은 다녀왔지만, 그 자락으로 이어진 연어봉, 할미봉, 신선봉과 마패봉 등은 오늘 처음 오르게 된다.
뾰족봉과 할미봉을 전면에 올려다보고 레포츠공원 옆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면 서너 가구가 모여 사는 민가가 있다. 맨 끝 집 밭 옆에 연어봉으로 향하는 표지판을 세워놓았다.
잡목 숲 아래 덩그러니 놓여있는 복돼지 닮은 바위의 측면이 검게 그을어있는데 마을에서 치성을 드리는 바위처럼 보인다. 바짝 메마른 개울을 건너면서 제대로 산행을 시작하게 된다.
흔들바위처럼 암벽 난간에 얹혀있는 바위도 보게 되고 물고기 형상의 바위들도 보며 걷다가 소조령에서 이어지는 산줄기와 합류하는 능선 삼거리에 이른다. 신선 지맥이 합류되는 곳이다. 듣던 대로 멋진 소나무가 곡선미를 뽐내고 있다.
바위에서 잠시 쉬며 오른쪽으로 연어봉과 그 뒤로 신선봉을 바라본다. 초여름의 진초록과 어우러진 암릉은 발광하는 햇빛에 더더욱 조화롭기 마련이다. 바위 구간에 설치된 밧줄을 잡고 오르자 수안보 온천지대가 보인다. 조망은 막힘없어 다소 힘들어도 가슴이 후련하다.
고래바위를 보고 더 올랐는데 고래보다 더 큰 연어가 아가미를 벌리고 있다. 바위 봉우리인 연어봉(해발 611m)이다. 주변의 명품 소나무들이 봉우리를 둘러싸 연어는 마치 하늘 용궁의 수장처럼 떠받친 모습이다. 기암절벽의 절대적 풍광은 소나무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미완의 풍치로 남았을 것이다.
연어봉에서 방아다리 바위로 이어지는 능선을 내다보고 바로 길을 이어간다. 상당히 가파른 바위지대를 내려섰다가 다시 바위를 타고 올라선다. 곳곳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고 분재처럼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유독 많은 구간이다.
할머니처럼 주름 가득한 바위가 있어 그렇게 부른다는 할미봉(해발 775m)에 이르렀다. 지도상 방아다리 바위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표시되었는데 표시된 것만이 등산로가 아니었다. 빠른 샛길로 할미봉에 닿은 것이다. 고사리 주차장과 수옥정 관광지가 내려다보이고 오른쪽으로 눈을 높이면 조령산 자락이 멀지 않다. 디딜방아의 발 디딤대처럼 끝이 갈라진 바위에 방아다리 바위라고 표식을 걸어놓았다.
전면에 우뚝 솟은 930m 고지의 삼각 봉우리에 더욱 가깝게 다가섰다. 봉우리 자락 아래로 깎아지른 바위 절벽은 병풍바위라고 부른다. 신선봉은 그 뒤에 있어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방아다리 바위에서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사면이 경사여서 소나무들이 비스듬히 기울어져서 자란다.
직벽 바위 구간에 설치된 밧줄을 붙들고 오르기도 한다. 더욱 고도를 높이니 눈 아래로 방아다리 바위에서 연어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멋지다. 깃대봉에서 뻗어 나간 조령산 마루금도 길게 이어지다가 흐릿해진다.
여기서 두루 산의 이어짐을 보노라니 금강산 그늘이 관동 팔십 리라는 속담이 뇌리를 스친다. 산은 산으로 이어져 멀리 세상과 연결되며 넓게 퍼져간다. 산이 깊으니 골도 깊어 산에 들어오면 그 품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알게 모르게 산으로부터 모성을 느끼게 된다. 멀리서 바라보건 그 품에서건 바라보는 이, 안긴 이를 아늑하게 감싸준다. 산이 좋아 들어섰건, 무언가를 피해 산에 왔건 그 안에서는 생각까지 맑게 한다. 그래서 산은 선善의 공간이자 회개와 용서가 이루어지는 평화의 장소이다.
이렇게 산을 떠받들어 칭송하지만 직접 몸소 느끼게 되면 그 칭송이 절대 과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종일 그 산의 품에 안겼다가 떠날 즈음이면 흐릿하나마 파란 선의 실루엣이 따라붙는 걸 경험하게 된다. 그 실체는 방금까지 머물렀던 산이며 거기서 파생된 그리움이란 걸 느끼게 된다.
조령鳥嶺, 문경새재는 과거부터 영남사람들이 서울로 넘어가는 주요 관문이다. 동쪽으로 조령천을 따라 세 개의 관문, 조령 제1, 2, 3 관문이 있다. 박달나무가 많아 박달재라고도 불렸고 박달나무로 만든 이곳의 홍두깨가 전국으로 팔렸다고 한다.
신선봉, 마패봉을 찍고 문경새재 과거 길로
930m 봉에 힘들게 올라섰는데도 신선봉이 아직 저만치 높이 솟아있다. 흐르는 땀만큼 물을 마시게 된다. 남은 물이 귀하게 여겨져 물이 바닥나기 전에 산행을 마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파른 암릉은 굴곡까지 심해 오르내리기가 만만치 않다. 더위 때문에 체력소모가 빨리 온다는 걸 몸이 먼저 느낀다. 호흡을 가다듬고 안부를 지나 신선봉(해발 967m)에 도착하니 옅으나마 산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괴산군 연풍면과 충주시 상모면이 여기 신선봉을 경계로 분기된다.
내장산의 신선봉, 소백산의 신선봉이 그러하듯 여기도 이름에 걸맞게 신선이 노니는 장소처럼 풍광이 뛰어나다. 신선봉 정상 석 너머의 암반에 올라서서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풍광에 한동안 넋을 놓고 만다. 괴산의 명산들과 준봉들을 건너뛰고 월악산 영봉까지 넘보게 되어 감개가 무량하다.
“다신 보기 어렵겠지?”
마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뒤돌아본 신선봉이 손을 흔들며 씁쓸한 질문을 던진다.
“…….”
아직도 가보지 못한 산이 많아 또 오겠노라고 섣불리 대답할 수 없어 고개만 숙인다.
“대신 오래 기억에 담아두지요.”
많은 산을 가보았기에 많은 작별을 하였고 또 많은 이별을 해보았다. 위로받아야 할 쪽은 떠나는 이가 아니라 남겨지는 쪽이라는 걸 안다. 다녀가면 거기엔 길만 남게 된다. 길만 남겨두고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대 신선봉도 파란 그리움으로 따라붙겠지.”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작별을 하고 다시 만나지 못할 이별을 하게 될지. 그러나 더 숱하게 그런 경험을 하고 싶어 진다. 아직도 다녀가지 못한 길, 못 가본 산이 너무나 많으므로. 능선 위의 926m 봉에 이르러 주흘산과 부봉을 바라보고 그 우측의 풍채 좋은 조령산을 눈에 담으며 두 산의 연계 산행을 염두에 둔다.
배걸이바위를 지나 줄을 잡고 내려섰다가 오르기를 반복해 신선 지맥 분기점인 마패봉(해발 920m)에 닿았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세 관문 위의 봉우리에 마패를 걸어놓고 쉬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지도상에는 대개 마역봉으로 표기되고 있다.
백두대간 상의 마패봉은 신선봉에서 건너와 아래로 조령 3 관문을 거쳐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 속리산까지 길게 이어진다. 이들 마루금을 눈여겨보다가 마패봉을 내려선다.
조령 3 관문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의 산성 흔적을 보고 걸음을 빨리하여 제3 관문인 조령관을 통과한다. 여기서 제1 관문까지의 산책로도 트레킹 코스로 그럴듯하게 조성해놓았다. 문경새재 과거길이라고도 하는데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선정되었다.
오늘 네 봉우리를 잇는 산세는 험준한 편이지만 산행에 무리를 줄 정도는 아니다. 또 잘 알려진 곳은 아니어도 무척 수려한 풍광을 지닌 명산이라고 치켜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미리 산을 평가하고 그 산에 가지 않게 되면 참으로 좋은 산을 놓쳐버리고 만다. 산을 다니면서 지니게 된 지론 중 하나이자 습성이다.
문경새재 3 관문 아래 수림 우거진 자연휴양림은 통나무집, 야영장, 캠프파이어장 등을 두루 갖춘 천혜의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휴식공간이다. 여기서 일행들과 만나 하룻밤을 야영하니 산행의 피로는 더욱 가중되고 다음 날 상경하는 길은 몹시 고단해지고 말았다.
“신선도 속세에 어우러지면 더는 신선이 아니야.”
때 / 초여름
곳 / 연풍 레포츠공원 - 고래바위 - 연어봉 - 방아다리 바위 - 신선봉 - 926m 봉 - 마패봉 - 산성터 - 조령 3 관문 – 조령산 자연휴양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