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산 18
멀리 작약산이 보이고 아래로 옥빛의 의상저수지가
전체 드러났다. 갓바위 없는 갓바위 재에서 잠시
날 선 바윗길을 통과하고 고도를 높이면 또 다른
전망장소가 나타난다. 조망만큼은 끝내주는 산이다.
충북 괴산군은 소백산맥의 영향으로 군 지역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진 데다 남부지역은 속리산 국립공원에 해당한다. 괴산군을 행정구역으로 하는 청화산靑華山은 속리산 능선에 이어 북으로 향하면서 암릉 구간이 시작되는 백두대간의 줄기로 괴산의 35 명산 중 한 곳이다. 백두대간 상의 속리산을 부지런히 걸어 눌재로 내려섰다가 다시 이어가면 청화산과 조항산이다.
“우복길지가 청화산에 있다. 청화산은 뒤에 내외의 선유동을 두고 앞에는 용유동에 임해 있어 앞뒷면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
주변 산세가 빼어나 택리지에 그렇게 저술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 청담 이중환은 이곳 우복동의 산세에 반해 ‘청화산인’으로 자처하며 1년 이상 기거했다고 한다.
화양동 계곡과 용유동 계곡을 거느린 겨울 청화산
오늘은 백두대간의 한 구간인 청화산과 조항산을 잇기 위해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인 늘재로 왔다. 친구 병소, 동익이와 함께 B 산악회 버스를 이용하였다.
늘재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을 연결하는 32번, 49번 국도가 지나는 해발고도 380m의 고개이다. 우리나라의 고개 중 진고개 혹은 진재가 긴 고개를 의미하는 데 반해 늘티, 늘고개, 늘재라 함은 고갯길이 가파르지 않고 평평하게 늘어진 고개라는 뜻이다.
이곳 늘재에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백두대간 돌비석이 세워있고 몇몇 등산객들이 그 앞에 모여서 백두대간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속세에 지친 나그네 길손들이여, 이곳 성황당에 마음 비우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대자유인이 되소서.”
내부가 비어있는 허름한 성황당에 이렇게 쓰인 벽보가 붙어있다. 슬쩍 성황당을 들여다보니 대자유인이 되려 비워낸 속마음들이 수북하다. 구름 되고 바람 되어 훨훨 자유로워진 그들을 부러워하며 성황당과 서낭당 유래비 사이의 산길로 들어선다. 이곳 들머리부터 청화산 정상까지 2.6km의 거리이다.
“우리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훨훨 날아보자.”
때 이른 춘풍으로 이미 나뭇가지에 걸렸던 눈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살살 날아. 겨울 흔적들이 깜짝깜짝 놀라잖아.”
첫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처음으로 속리산과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좀 더 고도를 높이면 상학봉 쪽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늦겨울 눈길에 바위와 어우러진 소나무들의 환영을 함께 온 우리 일행들이 독차지한다. 소나무 울창한 숲길에서 푹신한 솔잎을 밟으며 걷는다. 처음 와본 청화산은 숲이 우거진 계절보다 속살이 다 보이는 겨울이 제격일 듯싶기도 한데 소나무와 산죽 군락이 많아 눈이 오지 않으면 겨울철에도 푸름이 가득하다고 한다.
조금 더 올라가자 정국기원단이라고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정국靖國? 잘 사용하지 않는 용어인데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인 듯하다. 개인이 세운 돌비석에 민족중흥, 백의민족, 삼파수 등의 글귀가 새겨있다.
“이 자리에 이런 비석을 왜 세운 거지?”
동익이의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비석과 소나무가 있는 앞쪽으로 다가선다. 속리산이 가득 펼쳐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원하면 무어든 이뤄질 것 같기는 하다.”
괴산, 보령, 상주 지방도 하얗게 덮여 봄은 아직 가깝지 않았다고 일러준다. 관음봉, 상학봉과 묘봉도 대책 없이 찬바람을 맞으며 겨울 부스러기가 남은 몸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어 스산한 기분이 든다. 형제봉 너머 구병산 줄기까지 눈길을 머물렀다가 행보를 이어간다,
좁은 바위를 틈 비집고 올라서서 능선으로 이어가는데 여전히 속리산은 자리를 뜨지 않고 이웃 산의 산객들임에도 행여 넘어질세라 보살펴준다. 같이 출발했던 일행들은 많이 흩어졌다. 각각의 보폭과 산행 스타일이 다르므로 긴 길을 모두 모여 걷게 되지 않는다.
은적암 지붕을 내려다보고 청화 농원 쪽의 파란 지붕들에 눈길을 준다. 헬기장을 거쳐 갈색으로 비치던 청화산(해발 970m)에 이르러 바위에 세운 정상석 옆에 앉아 인증을 받는다. 일어나 화양동계곡과 용유동 계곡을 내려다보니 두 계곡이 하나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산정에 머물러 이곳저곳 바라보고만 있기에는 바람이 무척 차다.
“바로 움직이자. 멈추니 춥네.”
건너편의 백악산과 늘재에서 밤티재를 잇는 대간을 둘러보고는 조항산과 시루봉 갈림길에서 조항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독특한 형상의 시루봉 정상이 자꾸 눈길을 잡아끈다.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 상의 조항산鳥項山은 등산로가 다듬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거칠고 인적이 드물다.
왼쪽 밑으로 보이는 의상저수지는 달빛 머금은 풍광이 아름답다는 곳이다. 고개를 드니 대야산에서 조항산, 희양산, 둔덕산 등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 일대의 명산들이 횡으로 펼쳐졌다. 산죽 길을 따라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고 북사면 쪽인지라 아직 수북한 눈이 그대로 쌓여있다.
북풍한설 모진 비바람에
깊은 생채기 쌓인 채 얼어붙었어도
어둠보다 무섭고,
추위보다 감당키 힘든 건 휑한 외로움이라
삭풍에 날리다 떨어지는 한 톨 꽃씨
슬며시 지르밟아 위안 삼는다네
하얗게 창백했다가 노랗게 빛 발하는
인동초로 거듭나야겠기에
조항산에서 용송의 전설을 찾아 내려서다
청화산이 저만치 멀어졌다. 청화산에서 조항산 가는 길로 조금씩 고도를 낮춰가자 속리산 주릉이 아스라하고 대야산의 중대봉과 상대봉이 가까워진다. 여전히 경북 상주까지 산들이 첩첩 이어지는 중이다.
963m 봉에서 고도를 낮춰 883m 봉 바윗길을 지나면서 길이 미끄러워 걸음이 더뎌진다. 가까워진 조항산에서 찬찬히 내리 뻗은 산자락 아래로 몇 가구의 마을이 보인다. 급하게 경사진 비탈 내리막을 조심스럽게 내려서서 801m 봉 절벽 조망터에 이르렀다.
희양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소백산의 긴 능선도 만나게 된다. 멀리 작약산이 시선에 잡히고 아래로 옥빛의 의상저수지가 모두 드러났다. 갓바위 없는 갓바위재(해발 769m)에서 잠시 날 선 바윗길을 통과하고 고도를 높이니 또 다른 전망장소가 나타난다.
“험하긴 해도 조망은 끝내주는 산이네.”
“이중환이 반할 만한 산이야.”
“속리산의 전신을 볼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일세.”
조항산鳥項山 정상(해발 951m)에 이르자 하늘에 올라선 기분이다. 가까이 조항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암릉과 그 우측으로 시루봉과 연엽산이 따라붙었다. 그 아래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인 상농 마을이 정겹게 눈에 들어온다.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에 접해있는 조항산도 괴산에서 선정한 35 명산에 해당한다.
북쪽으로는 대야산과 둔덕산 줄기 너머로 군자산 장성봉과 희양산이 우뚝하고 그 너머로 월악산과 주흘산 등 서로 명함을 주고받은 산들과 인사를 나눈다.
의상저수지 쪽으로 하산로를 잡고 부지런히 내려오니 임도가 나타난다. 내려와서 본 의상저수지는 생각보다 넓고 꽤 깊어 보인다. 둥근 보름달이 잠기는 심야의 물빛을 상상하면서 2km는 족히 넘을 저수지 둘레길을 돌아 옥양교에 이르렀다.
여기 옥양교에서 저수지 물길 건넛마을과 들길을 따라 조금 걸어 소나무 군락지까지 왔다. 높이 14m, 둘레 5m에 수령 600년 정도로 추정하는 왕소나무를 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 왕소나무는 2012년 여름 태풍 볼라벤에 의해 쓰러져 고사한 채 누워있었다. 용송이라고도 불리는 이 소나무와 용을 의인화한 전설에 귀를 쫑긋하게 된다.
이 소나무 옆의 계곡에 사는 이무기가 이 용송을 좋아하여 수백 년간 서로 교감하며 지내오고 있었다. 세월 흘러 이무기가 점차 용으로 변해가면서 소나무도 줄기와 가지가 용처럼 변하고 껍질은 용의 비늘을 닮아 붉은빛을 발해 마을 주민들은 용송이라 부르고 신목으로 모셔왔다.
이제 용으로 변한 이무기가 승천할 때가 되어 하늘로 타고 오를 등룡풍을 기다리던 중 2012년 8월에 천둥과 폭풍우를 동반한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지축을 울리는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나와 보니 신비한 기운이 숲을 감싸고 하얀 등룡 운이 하늘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때, 용과 함께 살면서 용의 정기를 나누던 용송은 용이 승천하는 충격으로 쓰러져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으로 홀로 2년을 시름겨워하다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민들이 용송을 잘 보존하고 용이 쓰러진 날이면 나무의 영혼을 위로하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무기와 소나무의 사랑이라.”
“견우와 직녀의 멜로보다 더 드라마틱하군.”
고사한 왕소나무 옆에는 마을에서 후계목으로 지정한 소나무가 튼실하게 자라는 중이고 또 다른 여러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때 / 늦겨울
곳 / 늘재 - 청화산 - 갓바위 고개 - 전망봉 - 조항산 - 의상저수지 - 옥양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