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진산, 도심의 숲
우암산, 망산, 상당산

충청도의 산 25

by 장순영

살갗 타들어 갈 만큼 뜨거운 뙤약볕 쪼이며

오래도록, 모처럼 아주 오래도록 당신 곁에 엎드려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싶다. 유월은

그렇게 슬퍼해도 괜찮을 만큼 하늘빛 서러우니까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다. 뙤약볕 강하게 내리쪼이는 한여름이면 가끔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르곤 한다. 아침 일찍 음성의 선산에 들렀다가 청주로 왔다. 어렸을 적 청주 외삼촌 댁에 왔다가 어머니와 우암산에 갔던 기억이 났다.


“한번 가볼까.”


그렇게 청주의 진산珍山으로 알려진 우암산으로 차를 몬다. 검색해보니 망산과 상당산이 같이 이어져 있다. 진산이란 크게 국가부터 작게는 한 마을에 이르기까지 산에 대한 신앙의 두터움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부터 국가의 대소사와 관련하여 자주 제사를 지냈는데, 백제나 신라에서는 국가의 진산으로 삼산三山 또는 오악五嶽을 지명하여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해왔었다.

진산은 대개 그 지역의 북쪽에 자리 잡아 함부로 침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와 신성의 장소로서, 서로 다른 이질적 문화를 조화시켜주는 역할도 하였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 명암동, 내덕동, 수동 등에 걸쳐있는 우암산牛巖山은 와우산臥牛山이라는 별칭처럼 소가 누운 형상을 하고 있다. 산자락에 들어서서도 내딛는 곳이 소의 어느 부분인지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인위적으로 자연을 거스르니 재해로 이어지도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 하노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동의 수암골 벽화마을에서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우암산 우회도로에 자리 잡은 삼일 공원에 들르게 된다. 3.1 운동 독립선언에 참여한 의암 손병희, 우당 권동진, 청암 권병덕, 동오 신흥식, 은재 신석구 선생 등 충청북도 출신 민족대표 다섯 명의 동상이 공원 안에 세워져 있다.

1919년 3월 2일, 청주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어 여러 차례 시위를 시도하였으나 계속 저지당하다가 3월 19일 괴산장터에서의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4월 19일 제천, 송학까지 번져나갔다고 한다.

청주에서는 3월 10일 청주농업학교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4월 6일까지 청주 전역으로 펼쳐졌는데 다른 지역에서의 만세운동과 달리 봉화 시위를 주도하였다. 조선 때의 봉화에 착안하여 태성리 산마루에서 봉화를 피워 이후 여러 지역으로 봉화가 동시에 타오르게 한 것이다.

안부에 올라 청주랜드로 빠지는 갈림길에서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향한다. 다시 청주향교에서 올라오는 삼거리를 지나 광덕사 사거리도 지난다. 도심의 공원으로 조성된 산이라 올라오는 길이 많은 편이다.

낙엽송을 비롯해 다양한 수종이 고루 우거진 도심의 숲 속 공원이다. 자연학습 관찰로라고 팻말이 붙은 길에서 송신탑이 세워진 생활체육 광장으로 올라서자 많은 운동기구와 체력단련 시설이 마련되어있다. 무척 더운 날이라 운동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우암산 오르는 바윗길이 아기자기하고 온유한 편이다


고씨 샘터 갈림길을 지나 조금 후 정상석이 놓여있는 우암산(해발 348.4m)에 이른다. 여기까지 올라왔던 기억은 있는데 낯설다. 우암산에는 장군의 혈에 대한 설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 선조 때 토정 이지함이 우암산의 지세를 살피다가 황소 기질처럼 강인한 기운이 솟는 명당 혈을 발견한다. 우암산이 전체적으로 소가 앉은 형상이라 배 부분에 해당하는 혈을 확인하였다. 이지함은 이곳이 장군에게 적합한 곳이니 범하지 말라는 푯말을 세우고 떠났다.

그 뒤 진천의 한 풍수가 이곳에 이르러 푯말을 뽑아버리고 조상의 묘를 이전하려 하자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황소울음소리가 나고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더니 가묘는 검은 바위로 변했고 풍수의 눈도 멀어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그 화석 묘化石墓로 추정되는 바위가 보현사 뒤편에 두 군데 뚜렷하게 남아있는데 어느 것이 전설과 관련된 화석 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인위적으로 자연을 거스르면 재해로 이어진다는 진리를 깨우쳐주는 설화겠지만 개인의 안위만을 위한 욕심에 일침을 가하는 것처럼도 들린다.

가장 쉽게 살 수 있는 길이 가장 잘 사는 길이라면 그건 모순이지 않겠는가. 결과만을 염두에 두고 수단에 구애받지 않는 자가 행복한 삶의 앞 서열을 차지하고 있다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겠는가. 풍수는 욕심에 급급해 자신의 지식을 지혜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결국 명당을 보는 시력마저 잃고 말았다.

우암산 정상에서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된 능선 분기봉 직전의 체육 쉼터 갈림길로 올라선다. 와우산성이라고도 불리는 우암산성과 당산 토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청주시 기념 유적 제16호인 우암산성은 산기슭을 따라 토루土壘로 축조되어 있으며 배후에 상당산성이 있다. 나성羅城 구조로서 내성과 외성이 하나로 연결된 성곽이다.

외성의 동쪽 성벽은 당산 토성까지 연결되다가 끊어졌고, 외성의 서쪽 성벽은 지금의 3·1 공원 지점에서 단절되어있다. 대규모의 포곡식 산성包谷式 山城으로서 큰 성벽을 가지고 있었으나 평지 부분의 성벽이 유실되어 원형을 알 수 없다.

잔존하는 성벽의 길이와 유실된 부분을 연장해보면 대략 7~8㎞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토기 조각, 통일신라 시대의 기와 조각 및 도기 조각과 고려 시대의 기와 조각 등 발견된 유물을 통해 우암산성이 백제, 신라, 고려 시대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62. 상당산성 성곽 길을 걷는데 심한 갈증이 생긴다.jpg 상당산성 성곽 길을 걷는데 심한 갈증이 생긴다


능선 분기봉을 넘어 침목 계단을 내려서서 소나무 숲 길을 따라가면 야생동물의 이동통로이면서 쉼터인 우암산 생태 터널 상단부에 이른다. 계속해서 정비가 잘된 주 능선을 따라 산책하듯 진행하여 육각 정자를 지나 망산(해발 348.4m)으로 올라선다.

전국에 같은 이름의 망산이라는 지명은 대개 망을 보던 지역이거나 혹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옥토끼가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는 옥토 망월玉兔望月 형상의 산으로 해석되는 것으로 볼 때, 이 산의 지명도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을 거로 추정된다. 여기서 약수터로 내려섰다가 상당산성에 도착하게 된다.

사적 제212호인 상당산성은 둘레 4.2km, 높이 3~4m, 내부 면적 72만㎡가 넘는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최초의 축성 연대는 정확하게 추정할 수 없으나 현재 동문(진동문), 서문(미호문), 남문(공남문)의 3개 대문과 동암문, 남암문의 2개 암문이 있다.

긴 길이 아니었음에도 아까부터 자꾸만 갈증이 인다. 목을 축이고 목책계단을 올라 상당산성의 넓은 성곽에 이르자 청주시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때 이 지역이 백제와 고구려의 국경지대였으며 한남금북정맥의 자락임을 알리는 팻말을 읽게 된다.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황봉에서 갈라져 충청북도 북부를 동서로 가르며 안성의 칠장산까지 이어지고 서북쪽으로 김포 수산까지의 한남정맥과 서남쪽으로 태안반도 안흥까지의 금북정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말한다.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이기도 한 청주는 그런 물리적 측면을 떠나 어려서부터 특별하게 인식되어온 도시이다. 오늘 굳이 청주에 들러 산 셋을 탐방하는 건 그래서인 면이 강하다. 어머니한테 찾아왔다가 여기서 어머니를 가까이 느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벌컥벌컥 들이켠 물로 다소 시원해진 입안에 또 다른 갈증이 고인다. 구불구불 이어진 성곽에서 어머니의 주름진 삶을 보았기 때문이다.

음력 유월 초, 당신의 생신이 바로 이즈음이라 미지근해진 물로는 쉬이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



유월은 그렇게 슬퍼해도 괜찮을 만큼 하늘빛 서러우니까


음성 소학교를 일 등으로 졸업하며 꿈의 도회지 청주로의 유학에 부푼 소녀에게 펜 대신 주걱이 쥐어졌다. 이모 집으로 가출해 펑펑 울다 돌아온 소녀는 등 뒤로 하얀 옷깃 늘어뜨린 교복이 아닌 행주치마를 걸쳐야 했다.

자고로 여자란 집안일 잘하다가 시집가면……

충북 음성 땅 대지주인 외할아버지는 외동 장녀인 어머니를 봉건적 여자의 틀에 가두고 만다.

훗날 삼남 일녀 앉혀놓고 막걸리 한잔 취기에 얼굴 붉어지셔서 절대 추억으로 남지 않았을 당신 소녀적 시절의 단 한 번 회고, 원망을 담고 살기가 버거우셨던 걸까. 어머니의 당신 친정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머니를 바라보며 코흘리개 둘째 아들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주 오래도록 어머니가 측은했다.

골수 봉건 주의자, 꼴통 노인네…….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할아버지를 얼마나 원망했던가. 음력 유월 생이신 어머니의 여름, 팔십 평생 어머니의 세월은 그 후로도 그다지 행복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여름은 녹음 우거지고 하늘 창창해도 어딘가 슬픈 빛이 고여 있다.

넌 사내애답지 않게 손이 고와 펜대 잡고 살 거야.

그윽하지만 허망한 눈빛으로 이 땅 내려다보실 어머니와 눈 마주치기 두려워 엉뚱한 곳으로 고개 돌리게 된다. 어머니의 소녀 시절처럼 삶과 씨름하는 모습을 감추고픈 오늘, 공허하고도 비애스런 느낌이 가슴 깊이 스며드는 건 아마도 유월에 들어서서 일 게다.

이달, 어머니가 태어나신 유월엔 당신 무덤 앞에 막걸리 가득 부어놓고 살갗 타들어 갈 만큼 뜨거운 뙤약볕 쪼이며 오래도록, 모처럼 아주 오래도록 당신 곁에 엎드려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싶다. 유월은 그렇게 슬퍼해도 괜찮을 만큼 하늘빛 서러우니까.


성곽에서 내려와 개축이 잘된 산성의 서문을 지나다가 눈자위 축축해지는 걸 의식하여 마주 오는 이들의 시선을 피해 비켜서서 걷는다.

휴양림 갈림길에서 성곽 옆의 능선을 따라 올라 상당산(해발 491.4m)으로 올라섰는데 상당산성 제모습 찾기의 일환으로 발굴조사 작업이 진행되는 북포 루터라는 곳이다. 여기서 성곽과 숲길을 번갈아 걸어 동암문을 지나고 소나무 숲 길을 따라 동문에 이른다.

동문과 남문 사이 큼직한 정자의 명칭이 보화정輔和亭이다. 산성의 동장대였던 이곳은 모든 주민이 화합하여 지킨다는 의미라고 한다. 보화정을 지나 마을로 내려섰다가 청주의 진산을 올려다보았는데 어머니가 연하게 미소를 머금고 계신다.



때 / 여름

곳 / 삼일 공원 - 고씨 샘터 갈림길 - 우암산 - 우암산성 - 생태통로 - 망산 - 상당산성 - 상당산 - 보화정 – 저수지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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