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의 진산과 충주호의
주산을 찾아, 계명산과 남산

충청도의 산 28

by 장순영

청풍과 단양의 죄수들이 사형집행을 받기 위해

충주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이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이 고개만 넘으면 다시는 살아 돌아갈 수 없어

마지막 고개로 칭해진 것이다



충청북도 북동부에 있는 충주시는 충북내륙의 교통 요충지로 충주댐 건설과 함께 수산관광의 중심지이자 담배와 사과의 주산지로서 농업에 이어 풍부한 지하자원을 갖춘 공업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충주댐, 충주호, 탄금대, 능암온천과 수안보온천 등의 관광지가 있으며 충주호에는 월액에서 청풍, 구 단양과 신 단양으로 이어지는 54km의 뱃길이 생겨 일대의 수상 관광자원이 개발됨으로써 충주 관광권이 형성되어있다. 뱃길에는 1일 왕복 8회 여객선이 운항하고 있다.

충주시 안림동, 용탄동과 종민동에 걸쳐있는 계명산은 삼국시대에 심항산으로 불리다가 계족산으로 바뀌었다.


“충주의 진산이 닭의 발가락 형상을 하고 있어 충주에 부자가 나지 않는다.”


닭은 모이를 흩뜨려 먹어 분산의 이미지가 강하다. 충주 고을의 재산이 밖으로 새 나가 충주에 부자가 나지 않는다는 양택 풍수설에 따라 1958년에 충주지역 인사들의 의견과 충주시의회를 거쳐 닭의 울음이 여명을 알린다는 뜻을 가진 계명산鷄鳴山으로 개칭하였다. 즉 계명산은 충주시의 희망을 담은 현대판 지명 유래담을 지니고 있다.



도심과 강과 산이 꽉 차게 어우러진 겨울 풍광

계명산 하산길에 전망대에서 오른쪽 영봉과 그 뒤로 흐릿하게 금수산을 보게 된다.jpg 남한강 오른 편으로 월악산 영봉이 흐릿하게 잡힌다


아침부터 눈발이 날리고 기온도 제법 쌀쌀하다. 계명산만 산행하려면 마즈막재에서 오를 수도 있으나 남산까지 가려고 충주 금릉초등학교를 들머리로 택해 학교 뒤쪽으로 올라가기로 하였다.

충주 풍경 길 안내판이 있는 산책로를 따라 비교적 정비가 잘된 등산로로 접어들어 체육시설을 지나고 연수정이라는 정자에 다다른다. 정자 지붕도 하얗게 눈이 덮여있다. 뒷산이라 부르는 작은 봉우리를 지나 막 만들어진 눈꽃 터널을 걷는 기분이 무척 상큼하다. 음용 수질 기준에 적합하다는 약수는 아직 얼지 않았다.

예전 활공장 터에 오르자 충주시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올라왔던 능선이 길게 자락을 깔고 있다. 왼편으로 탄금대에서 남한강이 물길을 잇고 있어 도심과 강과 산이 꽉 차게 어우러진 겨울 풍광을 자아낸다. 용탄동 농공단지와 그 뒤로 멀찍이 장미산, 을궁산, 보련산 등 고만고만한 충청도의 산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유순하게 이어지던 길이 가파른 고도를 일으키기 시작해 걸음을 멈춰 아이젠을 착용한다. 더욱 굵어지는 눈송이가 쉽사리 멎지 않을 태세다. 나무마다 눈꽃 일색이다.

하얀 설국을 홀로 누비며 두 개의 정상석(해발 774m) 앞에 섰다. 정상의 헬기장을 두루 돌며 다양한 물길의 충주호를 볼 수 있고, 지척의 남산과 함께 이곳 계명산이 충주 분지를 감싸고 있음을 알게 한다.

충주호 건너 왼편으로 뾰족하게 각진 사우왕산과 충주호 가운데 등곡산도 물 위에서 잠든 듯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다녀온 적이 있는 천등산을 알아볼 수 있겠고 그 부근으로 지등산과 인등산도 보인다. 호수 건너로는 월악산의 숱한 봉우리들이 하얗게 중첩해 있다.

백제 때 이 계명산의 마고성에 왕족이 성주로 있었는데 그의 딸이 이 산기슭에서 지네에 물려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지네와 상극이 닭이라는 말을 듣고 산에 닭을 방목하자 지네가 사라졌다. 다시 지네가 들끓지 않도록 계속 닭을 풀어놓아 곳곳마다 닭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하여 계족산이라고 불렸다.

여기서 계명산과 남산 사이의 고개인 마즈막재로 향한다. 2.6km의 거리 표시가 되어있다. 발아래 충주호가 있어 지루함이 없는 계명산이다. 어깨를 나란히 한 남산과 충주 시내를 내려다보며 계명산 자연휴양림에서 올라오는 길과 접하는 전망대에 이른다.

호수 수면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서 얼어붙은 듯 고요한 호반의 물길을 바라보다가 꽤 긴 계단을 내려선다.

67. 나무 세 그루가 서로 엉키고 들러붙었다.jpg 나무 세 그루가 서로 엉키고 들러붙었다


“용인된 삼각관계?”


다소 가파른 내리막 인근에 세 그루의 나무가 합쳐진 연리목을 보면서 사람보다 훨씬 호방한 게 나무라는 걸 의식하게 된다. 더 내려서서 고갯마루 직전에 세워진 대몽항쟁 전승기념탑에 다가섰다.

몽고에 대한 고려의 항쟁은 1231년부터 삼별초 군의 패망에 이르는 40여 년간 전개되었다. 1225년 고려와 국교를 단절한 몽고는 1254년까지 8차에 걸쳐 한반도 전역을 짓밟았다. 이 시기 고려 백성의 생활은 참담하게 피폐해졌고, 고려왕조는 지배체제까지 무너지는 시련기를 맞게 된다.

충주에서는 백정, 천민, 노비들이 주체가 되어 몽고의 1차 침략 때부터 약 27년간 아홉 차례의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어 충주를 대몽항쟁의 최대 승전지로 만들었다. 삼국시대이래 그 어느 지역보다 시련이 많았던 충주였음을 고려하면 충주 민의 자생적 지역 보위 의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이들 지역민의 절실하고도 승화된 애국심의 발로가 승전의 요인이었을 것이다. 고려 시대 충주에서 거둔 대몽항쟁의 전승을 기념하고 그 호국정신을 잇고자 2003년에 대몽항쟁 전승기념탑을 여기 안림동 마즈막재에 세운 것이다.



마즈막재에서 남산으로


계명산에서의 날머리이자 남산 오르는 들머리 마즈막재에 닿을 즈음 눈발이 가늘어졌다.


“이제 마즈막이구먼유. 먼저 가서 자리 잡아 놓을께유.”


청풍과 단양의 죄수들이 사형집행을 받기 위해 충주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이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이 고개만 넘으면 다시는 살아 돌아갈 수 없어 마지막 고개라는 의미로 칭해진 것이다. 남산 아래 마즈막재 부근에 사형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 주차장에서 충주호 주변을 걷는 종댕이길이 시작되는데 인근 상종, 하종 마을의 옛 이름을 딴 이 길은 계명산 아래 충주호반의 호젓한 풍광을 즐기면서 걸을 수 있는 호수산책로이다.

충주忠州의 한자어는 우리나라 중심中心 고을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 충주호는 종댕이길을 해안처럼 둘러싸고 있어 ‘중해中海’, 즉 내륙의 바다로 불리기도 한다. 충주호에서 피어오르는 아침 안개와 노을을 끼고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하여 걷기 열풍에 일조하고 있다.

마즈막재 주차장 오른쪽에 데크 계단이 있다. 남산의 진입로이다. 왼쪽으로 밭고랑을 끼고 경사면을 타고 오르면서 남산에 들어선다. 전국에 남산이라는 명칭의 산이 수없이 많은데 남산은 앞산이라는 의미를 지닌 정겨운 이름으로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금봉산錦鳳山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의 남산은 충주시 직동과 살미면에 걸쳐 계명산과 함께 충주호를 끼고 솟아있다. 국가수호를 위한 6·25 한국전쟁 참전과 월남전에 참전한 충주시 거주 무공수훈자들의 전공을 기리고자 세운 무공수훈자 전적비가 이곳에 있다.

68. 충주호가 환히 내려다보인다.jpg 충주호가 환히 내려다보인다


남산의 오름길은 능선을 따라 넓은 임도를 네 번이나 횡단하게 된다. 임도 옆으로 설치된 데크 전망소에서는 충주 시내와 충주호를 내려다볼 수 있다. 정상부 임도를 건너 계단을 오르면 잘 축조된 성벽이 나타난다. 충주산성이라고도 불리는 남산성인데 삼한시대 마고 선녀가 축성했다는 전설이 있어 마고성麻姑城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동쪽으로 두 개의 작은 계곡 8부 능선을 에워싼 석축산성이다.

금단산 수정봉에 은거하고 있던 늙은 신선 마고할미가 하늘의 법도를 어기고 함부로 살생하자 대로한 옥황상제가 하천산 노둑봉으로 쫓아냈다. 500년이 지난 후 마고할미가 잘못을 뉘우치고 금단산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빌자 옥황상제는 금봉산에 들어가 성채를 쌓고 처소로 삼도록 하되 성은 반드시 북두칠성을 따라 7일 동안 쌓게 하였다.

명을 받은 마고할미가 이 산에 와보니 경관이 수려하고 전망이 좋아 흡족하게 생각하고 7일 만에 성을 완성했다. 그러나 옥황상제가 사는 서쪽을 향해 수구가 뚫려 있는 것을 보고 괘씸하게 여긴 옥황상제는 마고할미를 성주가 아닌 성지기로 삼았다. 수구문은 서쪽으로 내지 않는 것이 축성의 일반적 법칙이다. 산성중 유일하게 서쪽으로 수구문이 난 성이 이곳 마고성이다.

지나온 계명산이 이곳 남산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충주 시내와 남한강 탄금호 너머 보련산, 국망산과 원통산이 마루금을 잇고 있다.

남산 정상(해발 636m)에도 발자국 하나 없이 하얀 겨울이 헐거운 나목들을 덮고 있다. 남산 정상에서 300여 m 떨어진 송림 지대에서 호수에 떠 있는 종댕이길이 가늘게 선을 긋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충주호 너머로 멀리 월악산 영봉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앞으로 월악산 수리봉 능선이 길게 펼쳐졌다. 왼편으로 흐릿하게나마 금수산까지 보이니 반가움이 더하다. 송림 조망처에서 되돌아 나와 성곽 위에서 발치봉 능선 뒤로 수안보 스키장 슬로프를 눈에 담고 괴산 일대의 산들과 충주시 달천지역 들녘을 눈여겨보며 하산하게 된다. 암팡진 깔딱 고개를 지나 길게 뻗은 목책계단을 내려서고 돌탑과 체육시설을 지나 전원주택들이 있는 날머리에 닿는다.

계명산이 충주시민들을 더 큰 부자로 만들어주고 남산의 마고할미 심술이 멈추기를 바라면서 충주를 떠난다.


때 / 겨울

곳 / 금릉초등학교 - 계명산 - 대몽항쟁 전승탑 - 마즈막재 - 남산 - 깔딱 고개 - 전원주택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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