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산 31
소금물을 마시는 건지 소독하는 건지 바닷물에
코를 담근 형상이다. 자연적 풍화 현상에 의해
코끼리 모양으로 깎인 주상절리인데 얼핏 보면
코끼리보다 더 코끼리처럼 생겼다
산은 고도 및 지역의 두 개념을 포함하여 정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중에서도 고도의 개념이 우선하여 높을수록 명산의 반열에 끼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한 인식이 강했었는데 여러 산을 다녀보고 그리 높지 않은 산을 탐방하면서 명산은 높이를 중점 삼아 가늠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각인되었다. 오늘 찾은 황금산과 팔봉산도 그런 생각이 들게 한 산이다.
충청남도 서북단에 위치하여 동쪽으로 가야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낮은 구릉성 산지가 남북으로 늘어선 서산시는 인근에 26개의 크고 작은 섬이 흩어져있으며 전 연안에 걸쳐 개펄이 간척되어 농지 및 공업단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 서산에 팔봉산이 있어 오늘 황금산을 트레킹하고 팔봉산까지 섭렵하기로 하였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 소재한 황금산黃金山은 항금산亢金山이라 불리다가 금이 발견되면서 황금산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굴금과 끝굴, 금을 캤던 두 개의 동굴이 남아있다
섬과 육지 사이의 얕은 바다에서 바람이나 파도 혹은 조류 등에 의해 모래나 자갈이 해안에서 바다 가운데로 부리처럼 길게 뻗어 나가 육지와 연결된 섬을 육계도陸繫島라 하는데 황금산은 원래 섬이었지만 독곶리와 바닷가에 모래가 쌓여 이루어진 사빈沙濱이 연결되면서 육계도가 되었다.
황금산 동쪽은 연안을 따라 흐르는 해류에 의해 해저의 모래나 자갈 등이 운반되면서 퇴적된 육계사주와 습지로 이루어져 있었고 서쪽은 해식애와 파식대가 발달하여 바위 절벽으로 형성되면서 서해와 접해있다.
표고도 낮고 코스도 길지 않은 황금산이지만 시원한 바다를 조망하고 코끼리바위 등 해안절벽을 즐길 수 있어 해안 등반코스로 주목을 받고 있다.
주상절리의 해안 트레킹
관광버스가 빼곡하게 세워진 주차장에서 상가와 식당 지대를 빠져나가면 너른 산행로 입구가 보이고 서산시 아라메길이라는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아라메는 바다를 뜻하는 고유어 아라와 산을 뜻하는 메를 합한 서산 트레킹 코스이다.
총 여섯 구간의 아라메길 3구간 시점에 해당하는 이 지점에서 황금산 정상까지 1.02km이니 부담 여부를 논할 거리도 아니라 하겠다. 곧바로 보이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나무계단을 버리고 왼쪽 능선으로 오른다. 나뭇가지마다 수많은 리본이 달려있다.
완만한 능선에 돌무더기가 수북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당이 보인다. 정상에 세워진 황금산사黃金山祠이다. 예로부터 황금산에는 산신령과 임경업 장군의 초상화를 모신 조그마한 당집이 있어 인근 주민들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 약초 캐는 사람들과 소풍객들이 풍년이나 풍어 또는 안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고 치성을 들여왔다. 안내판에 적힌 그 유래를 이어 옮겨본다.
산신령은 산하를 지켜주시는 신으로, 임 장군은 철저한 친명 배청으로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러 떠날 때 한 번은 태안을 거쳐 갔기에 이곳과 연관이 있다. 또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생수를 구하거나 가시나무로 조기 떼를 잡아 군사들의 기갈을 면하게 하는 등 초능력을 지녔던 애국적인 명장이었지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기에 사후에 영웅 신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황금 바다와 멀지 않은 연평 바다 사이를 오가는 조기 떼를 놓치지 않으려고, 임 장군을 모신 연평도의 충렬사에 대립하여 이곳에 모셨던 것으로서 왜정 때부터 퇴락하기 시작하여 거의 형태도 없었던 것을 1996년에 삼성종합 주식회사의 일부 도움을 받아 서산시에서 복원하여 황금산이라 이름 짓고 매년 봄철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황금산사 뒤편에 돌탑 무더기가 있는데 황금산의 높이를 적어놓은 정상석(해발 156m)이다. 내려다보이는 바다에 대해서도 황금산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전설 속 황룡이 연평도 근해로 간 조기 떼를 몰고 와 고기가 많이 잡혀 황금 바다라 불린다고 적혀있다.
여기서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데 황금을 캐는 광부가 된 기분이다. 사거리에서 약 1km 떨어진 끝골까지 쭉 이어간다. 쉼터에서 바로 눈 밑으로 대산 석유화학공단이 나타난다.
현대오일뱅크, 호남석유화학, KCC 등 대기업이 상주하여 국가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곳이겠지만 생태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주거나 근로자나 인근 주민들이 산업 폐해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서해도 환경적 피해가 없기를 기대하며 능선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낮은 언덕을 올라 헬기장에서 먼바다에 시선을 담갔다가 갈림길까지 간다. 오른쪽 끝골로 내려가다 보니 해안절벽이다. 밑의 해안은 거대한 절벽과 암초로 인해 해안 이동이 불가하다는 걸 알고 다시 올라섰다.
물때가 맞지 않았다. 황금산은 밀물과 썰물 때에 따라 트레킹이 달라질 수 있는 곳이다. 갈림길에서 왼편 산행로를 따라 내리막을 걸어 해안에 이른다. 경사 급한 바위지대에서 해안을 따라 이동하였다가 황금산의 명소인 코끼리바위 쪽으로 방향을 튼다. 다시 등로를 따라 올랐다가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이다.
소금물을 마시는 건지 소독하는 건지 바닷물에 코를 담근 형상이다. 자연적 풍화 현상에 의해 코끼리 모양으로 깎인 주상절리인데 얼핏 보면 코끼리보다 더 코끼리처럼 생겼다. 해안 가득 수북하고도 잔잔하게 깔린 몽돌을 밟으며 절벽으로 다가선다. 밑에서 올려다보니 위험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바위마다 밟을 곳이 많고 밧줄이 튼튼하다. 절벽에 올라서 보는 코끼리는 여전히 바다에 코를 들이밀고 짠 바닷물을 들이켜고 있다.
길지 않은 시간에 아담한 숲길과 몽돌 자갈길, 해안절벽 등반의 묘미를 모두 만끽하게 해 준 황금산에서의 트레킹을 마치고 팔봉산으로 이동한다.
온갖 생선이 산으로 올라와 바위가 된 팔봉산
서산 팔봉면에는 여덟 봉우리가 줄지어 아홉 개의 마을을 품에 안은 팔봉산八峰山이 있다. 서산 9경에 속하며 서산 아라메길 4구간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홍천의 팔봉산이 브랜드 가치가 높아 지역 이름을 붙여 서산 팔봉산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서산시 팔봉면 양길리 주차장에 이르자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들이 이 지역 특산물인 버섯과 각종 나물을 정성껏 손질하고 있다. 원점회귀를 하면 몇 가지 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나무 숲 길이 열리기 전에 오청취당吳淸翠堂의 시비詩碑 앞에 서게 된다. 스스로 탄식한다는 의미의 ‘자탄自嘆’을 문희순 교수가 번역한 글이 새겨져 있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
정숙함엔 합당치 않으나
시는 울적한 회포 논할 수 있고
술은 능히 맺힌 근심 풀어낸다네.
세상일 들릴 땐 몰래 귀를 막고
속된 것 볼 때면 머리를 긁적이지
고아한 취미는 오직 한가로이 자적함일 뿐
이 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두 자녀를 차례로 잃고 남편도 벼슬을 하지 못하여 가슴앓이하는 고뇌, 시와 술로 달라던 그녀의 심사를 그대로 드러냈다. 조선 후기 허난설헌과 함께 여러 편의 시를 남겼던 서산의 여류문인 오청취당의 기구한 운명과 그녀의 한풀이 같았던 처세를 떠올리니 마주 앉아 가득 잔을 채워주고 싶어 진다.
주차장으로부터 300m를 걸어와 6.5km 떨어진 구도항과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팔봉산 쪽으로 직행한다. 소박한 소망을 읊조리며 쌓아 올렸을 돌탑을 지나고 거북 약수터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게 된다.
능선에 이르러 운암사지 갈림길에서 좌측 1봉으로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주 등산로인 2봉으로 가야 한다. 1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바위들이 즐비하다. 처음으로 보게 되는 바위가 특이하게 누워있다. 등로 옆 물 마른 개울에 1봉을 향하여 누워있는 바위는 팔봉산을 향해 소원을 빌던 치성 바위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또 다른 바위들을 여럿 딛고 오르자 봉우리 암릉 틈에 예쁘장하게 1봉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만들어놓았다. 암릉 막바지에는 좁은 바위틈새를 비집고 1봉(해발 210m)에 올라서서 건너편의 듬직한 바위봉우리 2봉과 3봉을 볼 수 있다.
1봉은 벼슬에 오른 대감의 감투에 빗대 감투봉이라는 이름을 지녔고 또 노적을 쌓아 올린 모양이라 노적봉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봉우리에 소원을 빌면 부귀영화를 얻는다고 전해진다.
부귀영화에 대한 욕구를 버린 지 오래되어 소원 비는 걸 생략한다. 2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아찔하게 보이는데 많은 산객들이 안정되게 오르고 있다. 태안 방향의 서해도 하늘과 맞닿아 있다.
갈림길로 다시 내려갔다가 울퉁불퉁한 암릉을 거슬러 오른다. 철제 계단은 가파르고 좁아 교차 통행에 불편스러움이 없지 않다. 계단을 오르면 지나왔던 1봉이 가깝게 조망되는 전망 지대가 나타난다. 바다와 농촌이 어우러진 팔봉산 최고의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짙게 드리운 녹음이 거추장스러운 듯 불쑥 튀어나온 바위 봉우리가 초록 가운을 걸치고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린 모습이다. 1봉의 바위들도 그러하지만 2봉에도 동물의 형상을 한 바위들이 눈에 띈다. 2봉 초입에 눈물을 글썽이는 거북이 형상의 바위를 보며 오르게 된다.
홍천의 팔봉산보다 더 가파르고 긴 계단을 오르다가 우럭바위 앞에서 멈춰 섰다. 용왕이 보낸 우럭이 팔봉산 경치에 반해 돌아가지 않고 바위가 되었단다. 곳곳을 둘러보노라면 우럭뿐 아니라 상어나 고래가 왔어도 머물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높이나 크기로 평가할 수 없는 게 산
바다와 마을과 농토가 잘 어우러져 소박한 정경이 한눈에 잡힌다. 바다가 있는 산은 정겹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친근하다. 계곡이나 강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산은 주변을 두루 포용하고 고루 아우르기 때문이다. 사람까지도 산에서는 순수하고 아름다우니 말이다.
역시 높이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게 산이다. 크기로 순위를 매기면 착오가 생기는 게 산이다. 나름대로 멋진 장점을 보유하여 찾는 이들을 감동하게 한다.
이번엔 코끼리가 올라왔다가 내려가지 않고 있다. 황금산 코끼리에 비하면 새끼처럼 작지만, 코끼리임엔 틀림없다. 2봉 정상(해발 270m)에도 깜찍한 정상석을 만들어놓았다.
2봉에서 3봉으로 가는 암릉도 아기자기하다. 너덜 바위길을 지나면 용굴이 있다. 여기에 팔봉산을 수호하는 용이 있었다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위로 구멍이 있다. 용이 빠져나간 구멍인지는 모르겠지만 홍천 팔봉산의 해산 굴처럼 몸 따로 배낭 따로 빠져나가야 할 정도로 비좁다. 밖으로 빠져나와 가파르게 솟은 계단을 올라가기로 한다.
조선 광해군 때 한여현이 충청도 서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한 호산록湖山錄에 따르면 은산 이문이라는 강도가 부하 100여 명을 거느리고 이 봉우리 안으로 들어와 점거하고 굴을 만든 다음 평민을 갈취하고 살해했다고 한다. 군사들을 풀어 도적이 숨어있는 곳을 찾아 포위하자 도적들이 굶주려 죽기도 하고 굴속에서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봉우리 뒤쪽 층암절벽은 수비하지 못하는 속수무책의 지형이었으므로 남은 도적들이 밤에 굴속에서 나와 도망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굴이 이곳의 용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기록에서 보듯 팔봉산은 비록 높지 않아도 전투를 치르며 대치할 만큼 험준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어깨봉 혹은 견치봉. 힘센 용사의 어깨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팔봉산 정상인 3봉(해발 361.5m)에 이른다. 정상답게 조망도 시원하게 트였고 주변 봉우리들이 양쪽으로 비켜서서 자세를 낮춘 형태다.
정상의 네모반듯한 자연석을 상석으로 사용하여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천제 터가 있는 팔봉산은 신령스러운 산으로 서산에 널리 알려져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는 군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참여한다. 또한, 이렇게 기우제를 지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가 왔다고 한다.
서쪽으로 팔봉면 일대와 태안의 이원반도가 바다를 향해 길게 이어지며 태안해안 국립공원을 지목하게 한다. 북쪽으로는 서산과 태안 사이의 가로림만 일대가 한눈에 잡힌다. 리아스식 해안과 갯벌 풍경 위로 떠 있는 고파도와 웅도가 한가롭다. 멀리 오전에 다녀온 황금산까지 가늠할 수 있다.
4봉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도 초록을 건너 전면으로 잔잔한 바다를 눈에 담게 된다. 3봉을 지나면서는 더욱 수월하게 걸을 수 있다. 4봉(해발 330m)과 5봉(해발 290m), 그리고 6봉(해발 300m)을 편안하게 지나치고 7봉 오르막에 설치된 밧줄을 잡고 올라 지나온 봉우리들을 쭉 돌아보고는 삼각점이 있는 8봉(해발 319m)에 닿아 푸른 공간에 넋을 풀어놓는다.
팔봉산은 봉이 아홉 개인데 제일 작은 봉을 제외하고 팔봉산이라 하여 매년 12월 말이면 그 작은 봉우리가 자기를 넣지 않아 울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8봉에서 잠시 쉬었다가 일어나 좁고 외지면서도 소담한 어송리 임도로 내려선다. 양길리 주차장으로 회귀하는 임도는 양옆으로 푸른 활엽수가 덮어 영화나 드라마에 곧잘 나올만한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한나절도 걸리지 않아 서산의 명소 황금산과 팔봉산을 탐방하고 나서 가슴 뿌듯하고 넉넉해지는 건 야트막하지만 많은 걸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해안 도시 서산은 산으로도 더욱 많은 이들을 다녀가게 할 것으로 보인다.
바다와 산이, 사람과 자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조화로움의 극치를 이루는 앙상블, 그곳이 산임을 새삼 깨닫게 해 준 산행이었다.
때 / 여름
곳 / 대산읍 황금산 주차장 - 탐방로 입구 - 황금산 - 몽돌해변 - 코끼리바위 - 원점회귀 - 팔봉면 양길리 주차장 - 운암사지 갈림길 - 1봉 ~ 8봉 - 어송리 임도 - 원점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