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산 33
작성산과 금수산이 보이고 월악산의 우아한 카리스마가
눈길을 잡아끈다. 소백산은 구름 커튼 뒤로 아스라하고
서쪽으로 석기 암봉과 감악산이 차분히 이어져 있어
미답지의 초행길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다
충청북도와 강원도 내륙을 연결하는 교통요지로 중앙선과 태백선이 통과하는 충북 제천시의 모산동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이자 충청북도 기념물 제11호인 의림지가 있다.
이른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한 산악회 버스는 의림지에서 잠시 정차했다. 제천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 시대 3대 수리시설 중 하나였다.
오늘 산행의 첫 목적지로 잡은 용두산에서 발원한 용두천이 고여 의림지를 이룬 것이라 한다. 예로부터 농업용수로 이용했으며 지금도 제천시 북부 청전동 일대의 농경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삼한 시대에 축조되어 숱한 세월 개수와 보수를 거치곤 하였는데 1972년 큰 장마로 둑이 무너지자 1973년에 다시 복구하였다.
현재의 의림지는 호반 둘레가 약 2㎞, 호수면적은 15만㎡를 넘고 수심은 8∼13m로 수리 관계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경승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충청도 지방에 호서湖西라는 별칭을 쓰는 건 바로 의림지의 서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산란하는 해빙기에만 볼 수 있는 공어(빙어)가 의림지의 특산물로 꼽힌다.
월악산을 보고 또 치악산을 보며 걷다
의림지를 둘러보고 지근거리에 있는 용두산으로 향한다. 제천시 모산동과 송학면의 경계를 이루는 용두산은 제천시 북단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의림지를 품고 있는 제천의 진산이다.
들머리인 청소년수련원에서 출발하여 용담사를 향해 포장도로를 걷다가 숲길로 들어서며 산행이 시작된다. 곧이어 양옆으로 늘어선 노송들을 사열하며 흙길을 걷는다.
가파름과 완만함이 적당한 흙길과 숲길을 이어 걷다가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환하게 하늘이 열리고 주변 공간이 시원하게 트인다. 데크계단을 올라 헬기장을 겸한 용두산 정상(해발 873m)에 이르자 산 아래로 햇살 움켜쥔 의림지가 거울처럼 반짝인다. 그 주위로 논밭과 가옥들이 제천시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작성산과 금수산이 보이고 월악산의 우아한 카리스마가 눈길을 잡아끈다. 소백산은 구름 커튼 뒤로 아스라하고 서쪽으로 석기 암봉과 감악산이 차분히 이어져 있어 미답지의 초행길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다.
용두산 정상에서 감악산까지 10km이다. 제법 긴 거리다. 무수한 봄꽃들이 모두 지고 철쭉마저 자취를 감춘 풀숲을 지나 흙길에 먼지를 일으키며 걷다가 공간이 트이면서 제천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 길도 소나무가 무성하다.
또 걸어 세명대학교, 제2의림지와 의림지를 내려다보고 2010년 아시아 산악자전거대회 때 설치했다는 모노레일을 옆에 두고 지나가게 된다. 기린초와 노루오줌 꽃이 보이는가 싶더니 분홍 꽃을 피운 줄딸기도 눈에 띄고 참나리도 더위에 지친 양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양지바른 곳에는 노랑제비꽃이 예쁘게 피어있다.
오도재를 거쳐 경사면을 치고 올라 감악산과 용두산이 갈리는 피재점(해발 784m)에 이르렀다가 다시 석기 암봉의 암벽을 타고 기어오른다. 첫 번째 암벽을 오르자 고사목이 서 있고, 바위 직벽이 막아서서 더 진행을 못 하고 다시 내려와 우회로를 따라 석기 암봉으로 향했다.
감악산과 석기 암봉의 갈림길에서 석기 암봉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석기 암봉(해발 906m)은 충청북도 제천과 강원도 원주의 경계점에 있다. 석기 암산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감악산에 속하는 봉우리로 보는 것이 옳겠다. 여기서 나무숲 사이로 감악산 정상 일대의 암봉을 보고 지나온 용두산에서의 구불구불한 능선을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긴다.
석기 암봉 삼거리에서 감악산 정상까지 3.6km를 더 가야 한다. 한동안 거의 완급이 없는 숲길을 걷다가 마른 억새 무성한 공터에 닿았는데 문바위 갈림길 헬기장의 억새군락이다. 낙엽송이 하늘을 찌를 듯하고 듬성듬성 노린재가 피어있다.
피재점에서 여기까지는 부드러운 능선이었다가 재사골재 사거리를 통과하면서 바위가 많아졌다. 짧은 암릉 구간을 지나 길고 높게 세워진 데크계단을 올라선 후 가파른 밧줄 구간도 통과하면서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보기 좋게끔 공간이 트였다.
이정표부터 200m를 남겨둔 정상까지의 오름이 무척 가파르다, 층층이 쌓은 것처럼 보이는 시루떡 바위에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동쪽 멀리 가리왕산과 백덕산이 우뚝 솟아있다. 눈꽃 만발한 하얀 겨울에 그 산들을 올랐었다. 그걸 기억하는지 가리왕산이 활짝 웃어주고 백덕산이 손을 흔들어준다.
몇 개의 기암과 두 번의 밧줄 구간을 지나 확연하게 하늘이 열리는 사이에 감악산 정상인 일출봉(해발 945m)에 이르렀다. 감악산紺岳山은 충북 제천시 봉양읍과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어, 두 시에서 각각 정상석을 세워놓았는데 여긴 감악산의 최고봉이자 제천 정상석이 있는 일출봉이다.
원주 정상석이 있는 월출봉과 감악 2봉, 1봉이 가까이에 나란히 이어져 있다. 인근 주민들은 일출봉을 동자 바위라 하고 월출봉을 선녀바위로 칭해 부르기도 한단다.
사방을 둘러보니 가늘게 뻗어 나간 중앙고속도로 건너로 구학산과 백운산을 가늠할 수 있고 석기암과 용두산이 물결처럼 굽이친다. 내려다보이는 감악산자락은 민간신앙, 천주교, 불교가 한데 모인 곳이기도 한데 남쪽의 배론 성지는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생활하던 곳을 성지 화한 곳이다. 의상조사가 창건했다는 신라 고찰 백련사도 이곳에 있다.
충청북도에서 강원도까지 잠깐 사이에 이어진다. 원주의 감악산 정상인 월출봉(해발 930m)으로 넘어왔다. 여기서도 사방이 트여 북쪽으로 치악산 주 능선이 한눈에 잡히고 반대편으로 비스듬히 소백산을 비롯해 충청북도와 강원도의 산마루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다.
월출봉 선녀바위에 홀로 서서도 유유한 멋을 드러낸 소나무 한그루에 눈길을 던지고 있는데 속속 등산객들이 올라온다.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암벽지대인 2봉(해발 925m)을 거쳐 1봉을 지나 가파른 암릉이 이어진다. 내려가다가 돌들이 많은 능선을 지나게 되는데 감악산성 터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감악 능선이라는 능선 하산로는 꽤나 가파른 편이다. 직벽 밧줄 구간도 있어 힘이 부치는 하산로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천삼산 뒤로 주론산과 구학산이 흐릿하게 이어지는 걸 보며 하산이 이어진다. 두 번이나 안면을 튼 응봉산이 멀리서도 반갑게 손짓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곧 내려서게 될 황둔 마을을 보고 고도를 낮춰간다.
미나리냉이와 감자난초가 소담스레 피어 고개를 끌어당긴다. 수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청량한 소리로 물을 흘러내리고 있는 협곡을 지나 황둔리 창촌교에서 짧지 않은 산행을 종료한다.
때 / 늦봄
곳 / 청소년수련원 - 용두산 - 피재점 - 석기 암봉 - 문바위 갈림길 - 재사골재 - 감악산 일출봉 - 월출봉 - 황둔리 창촌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