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령원과 보광사, 그리고
영조와 숙빈 최 씨(3-1)

그곳에 서니 그들의 쓸쓸한 영혼이(3)

by 장순영

소령원昭寧園은 수백 년이 족히 되었을 침엽수들의 수림 속에 있었다. 황룡黃龍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누런 잔디 위로 커다란 봉분이 보였다. 콧속으로 스미는 청신한 침엽수의 향이 청록색을 띤 것처럼 느껴졌다. 5월, 그곳의 신록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무색하게 하리만치 계절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소령원,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있는 묘소. 조선 19대 왕 숙종肅宗의 후궁이며 영조英祖의 생모인 숙빈 최 씨淑嬪 崔氏의 묘소이다.



하급 나인, 무수리에서 정 1품 빈嬪에 오른 숙빈 최 씨


숙빈 최 씨는 1670년(현종 11년) 11월에 최효원의 딸로 태어나 7살에 궁에 들어가게 된다. 궁에서 왕족의 사생활에 종사하는 여관女官을 총칭해 나인이라 하는데 숙빈 최 씨는 그중에서도 궁중의 청소를 도맡고 궁녀의 세숫물을 떠 나르는 계집종 무수리였다.

7, 8세 어린 나이에 입궁하여 상궁에까지 오르기까지 보통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야 하는데 유례없이 특별한 경우가 있었으니 바로 승은承恩을 입는 경우이다. 지존의 총애, 왕의 눈에 든다는 것은 별을 따는 것 이상의 벼락출세요, 당대의 최대 축복이다.

승은을 입은 나인은 일약 위계를 무너뜨리고 상궁으로 격상하며 이에 더해 왕의 후손을 낳으면 왕의 총애에 따라 종 2품 숙의淑儀에서 종 1품 귀인貴人까지 상승하기도 한다. 금상첨화로 왕자가 세자에 책봉되면 내명부內命婦 최고인 정 1품의 빈嬪까지 오른다.

숙종의 승은을 입고 아들 영조를 낳은 숙빈 최 씨가 궁녀의 말단직인 무수리에서 내명부 최고의 빈으로 그 신분이 수직 상승하였고, 아들이 조선 역대 왕 중 최장 52년간이나 재위한 기록을 남겼으니 어찌 보면 조선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일생을 보낸 여인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영조의 효심에 의해 묘에서 원으로 승격, 친필로 비문을 쓰다


조선시대 왕족의 묘소 중 왕세자와 왕세자 비, 왕의 가까운 일가의 묘소가 원園이다. 원은 왕릉보다 규모가 작고 간소한 편이다.

숙빈 최 씨는 1694년(숙종 20년) 24세에 훗날의 영조를 낳았고 1718년 3월, 49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파주 광탄면 영장리에 장사 지낸 바, 이곳을 소령 묘昭寧墓라 칭했다. 그 후 1753년(영조 29년) 6월, 효심 지극한 아들 영조에 의해 소령 묘를 소령원으로 승격시키게 된다. 고령산 안쪽 내령이 뻗어나가는 자리에 위치한 소령원은 비공개 유적인 탓일까. 마치 속세와 단절된 또 다른 공간이란 느낌을 준다.

소령원에 들어서면 사초지 앞에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閣이 있으며, 묘역 진입로에 신도비각神都碑閣이 보인다. 정자각 동쪽 비의 전면에는 ‘조선국 화경 숙빈 소령원朝鮮國和敬淑嬪昭寧園’이라는 비명이 있고, 묘소의 동쪽 비명은 ‘숙빈 해주 최 씨 소령원淑嬪海州崔氏昭寧園’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그 묘비명은 1744년 그녀의 아들 영조가 친히 쓴 것이다.

재위 기간 중 영조가 소령원을 찾은 기록이 곳곳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그의 효심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영조 36년(1760)에는 ‘소령원에 충재蟲災가 있어 사초가 모두 말라 영조가 친히 사초를 고쳐 입혔는데 직접 융복戎服(철릭과 주립으로 된 옛 군복의 일종)을 갖춰 입고 원소에 나아가 봉심奉審하고 대신과 예조·호조·공조판서로 하여금 일을 감독케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영조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은 소령원 곳곳에도 남아 있다.

소령원 정자각 우측 산자락에 여막지廬幕址가 남아 있다. 영조가 어머니를 장사 지내고 여막을 짓게 하여 신하로 하여금 시묘를 하도록 했던 곳이다. 또한 원소 앞에 세운 비碑의 비문을 직접 써 그 정성을 다했으며 소령원에 대한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쓴 사실들 또한 여러 기록에서 확인된다.

이 밖에도 1740년(영조 16년)에 영조는 어머니 숙빈 최 씨를 위해 인근의 보광사普光寺를 소령원의 기복사祈福寺로 삼았다. 신라 진성왕 8년인 894년에 도선 대사에 의해 창건된 보광사는 1215년(고려 고종 2년)에 원진국사가 중창을 했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폐허화된 것을 1622년(광해군 14년)에 중건했으며 그 후로도 계속 당대의 명승들에 의해 재건, 중수가 이루어진 명찰 중 한 곳이다.

지금도 보광사 대웅보전 뒤에는 어실각御室閣이 남아있어 숙빈 최 씨의 명복을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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