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산 10
푸릇한 생동과 환희의 빛은 저만큼 멀리
눈길 던져도 튕기듯 반사되어 돌아온다.
그 되돌림 속에 화마로 인한 시름과 한숨이 사라지고
하루라도 빨리 미소와 긍정이 소담스럽게 담겼으면 좋겠다.
산은 그 자체로 재물이다
강원도 영월군과 횡성군의 경계점인 문재터널 위로 주차장이 있고 정자와 물레방아 등이 예쁘장하게 조성된 문재 쉼터가 있다. 해발 800m의 높은 고개인 이곳에서 1350m 고지인 백덕산 정상까지의 표고 차이는 550m에 불과하다. 그런데 도상거리 5.8km라면 상당히 긴 거리에 속한다.
해발 500m의 오색에서 1708m 높이의 설악산 대청봉까지 5km의 거리인데 갈 때마다 힘들었다. 거기와 비교하며 상당히 완만한 산이겠거니 하고 들어섰는데 진입로부터 심한 오르막이다.
진초록 청량 이온 듬뿍 발산하는 활엽수림 좁은 길 200m를 오르자 임도가 나온다. 50여 m 임도를 따라 걷다가 나무계단을 올라 다시 등산로로 접어든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마구 뒤섞여 빼곡한 숲길이다. 철탑을 지나면서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길어진다.
헬기장에서 가리왕산과 반갑게 눈인사를 나눈다. 등도 오른쪽 아래로 상안 저수지를 보게 되고 다시 시야를 가리는 수림으로 접어들었다가 사자산獅子山으로 꺾어지는 갈림길을 지난다. 사자산은 하나의 독립된 산이라기보다 백덕산의 한 봉우리라는 게 맞을성싶다. 큰 골이 있는 게 아니고 안부 정도의 짧은 내리막에서 바로 사자산 정상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백덕산을 사자산 혹은 사재산四財山이라고도 일컫는 연유를 백덕산 소개 안내판에 적힌 대로 옮겨본다.
예로부터 네 가지 재물, 즉 동봉(東蜂 : 동쪽의 석청), 서칠(西漆 : 서쪽의 옻나무), 그리고 남토(南土: 남쪽의 전단 토)와 북삼(北蔘 : 북쪽의 산삼)이 각각 있다고 해서 사재산이라고도 불렀다.
“산에서 그런 것들을 과연 재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얼마 전 인제와 고성, 강릉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화재, 오늘 여기 오면서 그 화마의 상처들을 곳곳에서 보았고 그 트라우마가 허망하고도 우울하게 삐져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산은 그 자체로 재물이야.”
한 그루의 나무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성냥을 만들 수 있지만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태우는 건 단 한 개의 성냥개비로도 충분하다. 자연과 전혀 교감을 하지 못하는 생태맹生態盲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에 대해 무감각하여서 불붙은 성냥개비에도 둔감할 수 있고, 자연에서는 그저 관광 수입이나 개발이익을 챙기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어떤 이유로든 그 자연 가치가 훼손될 때 재물은 파괴되는 거야.”
아무튼, 사재산은 4km 길이의 능선에 함께 있는 사자산과 합쳐 백덕산이라 부르기도 하며 불가에서는 남서쪽 기슭에 있는 법흥사가 신라불교 구문선산九門禪山의 하나인 사자산파의 본산이라고 보기 때문에 사자산이라고 부른다.
사자산을 오른쪽으로 두고 백덕산 정상 3.4km라고 표시된 이정표대로 왼쪽 능선을 걷다가 전망 좋은 작은 바위에 올라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한 곳인 법흥사가 있는 계곡을 내려다본다.
아래쪽 마루금을 양옆으로 가르고 자리 잡은 법흥계곡은 물이끼 하나 없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속에 우거진 초록 숲이 담겨있었다. 3년 전 여름, 가족들과 캠핑을 즐겼던 곳을 내려다보니 감회가 새롭다.
다시 독특한 봉우리의 배거리산과 삼태산 뒤 첩첩 산마루 너머 길게 횡으로 누운 소백산 주능선에 눈길을 머물다가 백덕산 정상이 2km 남았음을 표시한 이정목이 세워진 곳에 당도하니 여기가 당재이다.
산에서는 종종 계절을 잊거나 착각하곤 한다. 한창 단풍 물오르는가 싶은데 평평 눈이 쏟아지던 설악산에서, 산수유축제 중에 눈발 날리는 양평 추읍산에서,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았는데 붉게 홍매화와 동백을 보게 되는 섬진강 변 쫓비산에서 그랬다. 여기 백덕산에 와서도 역시 마찬가지 느낌을 받는다. 써늘했던 오지 외떨어진 산에 초록 짙어가는 걸 보니 이 산 계절 바뀜을 자축하는 느낌이다.
울창한 활엽수림과 어우러져 우람한 근육을 드러내는 소나무의 활기 넘치는 기세를 보자 그 기운이 내면 깊이 한 움큼 부어지는 기분이다. 저 아래 관음사 풍경 소리 청아하게 들리는 듯하여 나그네 잔칫집 찾아 풍성히 차린 주안상 받은 기분이 든다.
가보았던 산을 되짚는 건 옛사랑을 추억하듯 감미롭다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산죽 군락을 지나 정상과 관음사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인 작은 당재에 닿는다. 그리고 양지바른 숲길을 걸어 먹골과 당치로 갈라지는 백덕산 삼거리에 도달한다. 납작한 바위들이 있고 앉을 수 있게끔 통나무를 여럿 설치해놓은 쉼터이다.
정상까지 500m를 다녀와 여기서 먹골로 내려가게 되는데 따사로운 햇살이 잠시 머물러 숨 고르라고 일러준다. 볕 보드라운 산정 바로 아래, 짙은 미소 머금은 솜털 구름 다가와 땀 젖은 산객을 다감하게 끌어안는다. 보이는 것마다 푸릇한 생동, 환희의 빛이다.
5만 원권 100장씩 스무 묶음, 1억 원이다. 뜬금없이 1억 원 돈다발을 언급하고 말았는데 가장 먼저 연상될 사과 상자 뇌물 얘기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아까 언급한 강원도 산불의 이재민 성금으로 1억 원을 쇼핑백에 담아 익명 기부했다는 보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는 경기도 광주 광명초등학교에 다니는 3학년 4반 김예진입니다. 원래는 저금통을 채워 부자가 되고 싶었는데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싶어 기부했어요.”
예진이는 17만 3790원이 담긴 귀하디 귀한 초록색 돼지저금통을 삐뚤빼뚤한 글씨의 편지와 함께 구호금으로 보냈다. 이런 이들이 있기에 푸릇한 생동과 환희의 빛은 저만큼 멀리 눈길 던져도 튕기듯 반사되어 돌아온다. 그 되돌림 속에 화마로 인한 시름과 한숨이 사라지고 하루라도 빨리 미소와 긍정이 소담스럽게 담겼으면 좋겠다. 그런 이들을 떠올리며 걷는 걸음이 한결 가볍다.
정상을 오르면서 기둥 줄기가 기이하게 굽었다가 다시 뻗치고, 가지를 틀었다가 위로 솟은 나무들을 보게 된다. 이들 나무가 백덕산 정상부의 명물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크고 작은 바윗돌이 박힌 정상부에 아담한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데 역시 사방이 확 트여있어 가슴까지 뻥 뚫려 시원하고 상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수정산, 삼방산 등 앞쪽으로 비교적 가까운 산자락 너머 겹겹 산그리메를 이루는 강원, 영서의 산군들이 이 산 정상에 서 있는 이를 잡아당긴다. 더 높은 곳에서 되짚는 산들, 특히 가보았던 산들을 헤아리는 건 지루하거나 권태롭지 않다. 마치 옛사랑을 추억하는 것처럼 감미롭다.
멀리 북동 방면의 가리왕산 왼편으로는 계방산을 포함한 오대산 일대인 듯하다. 동남쪽 시계방향으로 두위봉, 태백산, 소백 주능선, 월악산을 지나 치악산 비로봉을 짚어보고 그 뒤로 흐릿하게 경기 북부의 고봉들, 명지산과 화악산까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실컷 구경하고 삼거리로 내려와 하산을 서두른다. 먹골 갈림길을 지나고 낙엽송 우거진 숲길을 또 지나 임도에서 우측 오솔길로 빠진다. 급수 탱크, 서낭당인 듯한 목조 시설, 목재로 잘 지은 별장을 지나 운교리 마을에 도착하여 백덕산을 올려다본다. 아무리 세월 지나도 이 산이 변함없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게 된다.
“오늘 그대 품에서 보낸 시간을 오래도록 추억으로 간직하며 내 발자취의 한 장으로 남겨놓겠습니다. 언제까지고 오는 이들 반겨줄 수 있게끔 아날로그 벽지의 산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사시사철 잘 계시기 바랍니다.”
때 / 봄
곳 / 문재 - 925봉 - 사자산 갈림길 - 당재 - 작은 당재 - 먹골 갈림길 - 백덕산 - 먹골 갈림길 - 운교리 마을 - 먹골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