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그곳에 서니 그들의 영혼이 5
7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강원도 고성의 대표적 관광지 화진포는 동해와 연접해 둘레 6킬로미터 드넓은 호수에 주변엔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포구에는 기암괴석이 신비의 극치를 조성, 얕고 청아한 수심에 곱디고운 모래로 덮인 백사장은 그야말로 명사십리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김일성이 별장으로 사용하다가 인민군 장교들의 휴양소로 사용했다는 가옥은 지금 안보공원의 팻말을 붙여놓고 있는데.
가을과 겨울이면 철새들이 줄을 잇는 곳, 호수 주위의 풍광이 좋아 늘 수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순백의 모래밭, 그 별장에서 최고 권력자의 모습과 쓸쓸한 영혼을 보다
여기에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던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념박물관으로서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또 그 아래로 이기붕 전 부통령의 별장이 있으니 당대 권력자들의 쉼터가 이곳에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진포가 얼마나 아름답고 고즈넉한 곳인지를 짐작케 한다.
언덕 위 아름드리 소나무 숲에 쌓여있는 김일성 별장에서는 확 트인 동해가 내려다보인다. 역시 소나무 숲이 우거진 이기붕 별장에 멋들어지게 뻗은 적송은 바라보기만 해도 우쭐한 느낌을 줄만큼 크고 높다.
1920년 외국인 선교사들이 지어 외국인 휴양소로 사용되다가 독재의 대명사 자유당 시절, 제 2인자였던 이기붕 일가의 별장으로 사용하다가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시인이며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는 화진포를 찾게 되면 풍류에 젖게 된다고들 한다. 호반을 감싸는 호젓한 기운이 유유자적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와 절로 시심詩心을 자극하기 때문이리라.
호수주변을 병풍처럼 에워싼 청정 솔숲에 노란 금계국이 군락을 이루고, 호반도로에는 붉은 해당화가 곱게 피어올라 한껏 운치를 더하는데 어찌 시심이 동하지 않으랴.
‘가을동화’라는 드라마 촬영지라고 했던가. 영화 속 그림 같은 이곳을 깊게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스모그처럼 탁한 안개가 끼는 걸 보게 된다.
남과 북으로 나라를 양분한 실세들의 모습이 보이고 이기붕의 아내, 박 마리아와 아들 이강석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탕, 탕! 몇 발의 총성이 들리면서 그들의 별장은 혼미한 역사 속으로 스며들며 을씨년스러움을 더한다.
자유당이란 터전에서 더욱 다져지는 그들의 인연
1945년 독립운동가 이승만의 비서, 1949년 서울특별시장, 1951년 국방부장관, 1954년 제3대 민의원에 당선, 민의원 의장을 거쳐 1960년 부통령에 당선된 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는 소나무처럼 승승장구 권력의 정점까지 올라선 사람. 그가 만송 이기붕이다.
1951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이범석과 함께 자유당을 창당, 2년 후 이범석의 족청계族靑系를 축출하고 당 중앙위원회 의장에 취임하면서 실권을 장악한다. 민의원 의장이 된 후,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위하여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 철폐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발의, 부결된 사안을 사사오입四捨五入이라는 기상천외한 산술계산법으로 번복시켜 가결로 강행처리한다.
1959년 6월 29일. 자유당은 정·부통령지명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에 이승만, 부통령후보에 이기붕을 지명함으로써 본격적인 선거대비태세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분석해보니 정권 유지에 승산이 없음을 알고, 관권을 동원한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획책하는 악수를 둔다.
내무부장관 최인규의 지휘 아래 1년여에 걸쳐 치밀하게 부정선거를 준비하더니 전국 경찰의 주요 간부 대다수를 맹목적 충성 인물로 교체하였고 이정재를 필두로 한 정치깡패 등을 동원해 야당의 선거운동을 방해했다.
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편을 중상모략하거나 그 내부를 교란시키기 위한 흑색선전의 의미, 매터도matador란 용어를 우리나라 선거판에 등장시킨 일등 정권이 자유당이었다.
1960년 1월 29일,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떠나자 자유당 정권은 5월 중에 실시하기로 되어 있던 정·부통령선거를 앞당겨 3월 15일에 실시한다고 공고한다.
그 해 2월 15일 조병옥이 급서함으로써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자, 선거의 관심은 대통령 유고시 승계권을 갖는 부통령 선거에 모아졌고,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정부·여당의 야당에 대한 선거운동 방해사건이 연일 거듭된다.
유령 유권자의 조작과 기권 강요 및 기권자의 대리투표, 내통식 기표소의 설치, 투표함 바꿔치기, 개표시의 혼표와 환표, 득표수 조작 발표 등 가공할 정도의 부정이 감행되었는데 바야흐로 우리 현대사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은 3·15 부정선거가 발발한 것이다.
모자람만 못한 넘침의 말로, 그 비참함
3·15 부정선거 결과 이승만·이기붕 후보가 각각 88.7%와 79%의 득표로 정·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대다수 국민들은 선거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야당인 민주당의 선거무효 주장에 호응하여 전국적으로 부정선거 규탄데모가 벌어지더니 결국 4·19로 이어진다.
4·19혁명으로 그예 부통령을 사임하고 피신해있던 이기붕 일가는 당시 육군 장교였던 아들에 의해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최후를 맞고 만다.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 마리아에 의해 이승만과 양자의 연을 맺은 그들의 장남 이강석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고 허리춤에 찬 권총을 빼든다.
화무십일홍이라지 않던가. 아버지, 어머니, 동생 그리고 제 자신…. 전 가족이 자살하는 불행한 말로로 그들의 가문은 열흘을 붉다가 지는 꽃이 되고 말았다. 이 어찌 한 가문의 불행에 그치고 마는 일이던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헌법을 제정한 지 겨우 열 두 해, 우리 민족의 앞날에 얼마나 많은 시련이 거듭될 것인지를 예고하는 어두운 총성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첫 대통령의 하야. 이승만 대통령의 재집권을 시도하다가 결국 이승만 정권마저 붕괴되고 하야하더니 급기야 노회한 대통령은 파란 눈의 영부인 프란체스카와 함께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자유당 정권은 독재정치 및 정경유착 등 집권 내내 말단 정치의 표본을 보였다. 불법 개헌과 선거 부정 등으로 국민의 위장된 동의를 억지로 끌어낸 하급 정권을 씻어내지 못했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던 것일까. 그 후로도 우리나라 정치는 고만고만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단 한 차례도 존경받는 대통령을 두지 못하는 서글픈 역사를 이어간다.
울창한 해송 사이로 보이는 바닷가에 수많은 피서객들이 한껏 여름을 즐기고 있다. 화진포를 벗어나 그 일대를 다시 돌아보는데 필자는 그들의 별장에 자꾸 시선이 머문다.
때때로 절대 권력자들의 그럴싸한 별장이기보다는 죽은 자들의 혼이 암울하게 서린 가옥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너무도 가까이에서 지냈던 이들의 흔적이 훗날에까지 지척에 머물러있다는 사실이 조금도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아 되레 씁쓰레한 기분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