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의 실종

콩트

by 장순영

“비도 오는데 태우시죠.”

“그래도 괜찮을까요?”


박 기사는 양해를 구하고 오른쪽 인도로 차를 바짝 붙였다.

요란스럽게 손을 흔들던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의 아가씨가 “T 아파트요.”라고 목적지를 말했고, 박 기사는 얼른 타라고 손짓을 했다.

생머리 아가씨는 생긋 웃으며 붙임성 있게 인사를 하고 뒷좌석에 앉았다. 얼추 20대 중반쯤 보이는 아가씨가 툭툭 빗물을 털어낸다.

아까부터 추적추적 흩뿌리던 봄비가 그치지도, 더 내리지도 않으면서 거리를 질척하게 만들고 있다. 날이 어두워지자 꽃샘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합승 손님을 태우고 300여 미터쯤 더 갔을까. 또 한 명의 사내가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치켜들었다.

여기서 타는 사람들은 지금 탄 두 사람의 승객처럼 대다수가 T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박 기사는 또다시 합승을 시킬 수는 없었다. 슬쩍 두 사람의 눈치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려 했다.


“기사님! 저 사람도 같이 태우고 가시죠.”

“괜찮겠습니까?”


박 기사는 조수석의 남자 손님이 고마웠다. 30대 중반 가량의 정장 차림 손님이 합승을 권하자 박 기사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다. 뒷자리의 여자 손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태우겠습니다. 이거, 비가 많이 오겠는데요.”


약간 미안하기도 해서 박 기사는 날씨를 언급하며 차를 세웠다.


“고맙습니다. T 아파트 가는 거죠?”


역시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스포츠머리의 사내도 넥타이를 맨 콤비 차림이었다. 이곳은 유동인구 대다수가 서울로 출퇴근하는 샐러리맨들이다. 사내가 뒷좌석에 오르자 여자는 더 안쪽으로 옮겨 앉았다.

T 아파트는 전철역에서 기본요금 거리에 있는 중소형 아파트 단지다. 박 기사는 비 오는 날이 고맙다. 이런 식으로 무난하게 합승을 할 수 있는 게 오늘처럼 궂은날이 아니면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젠장! 택시 잡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원.”


스포츠머리의 사내는 택시를 잡느라 한참을 기다렸는지 푸념을 늘어놓았다. 룸미러로 보았더니 흐트러진 모습이 약간 취기가 있어 보인다.


“아가씬 몇 동 사슈?”


뒤늦게 합승한 사내가 옆에 앉은 아가씨에게 말을 건다. 정중하지 않은 물음이라고 여겼는지 여자가 슬쩍 고개를 돌릴 뿐 아무 대답이 없다.


“제기랄, 사람 말이 말 같지 않다는 거지?”

“…….”


사내의 거친 말투에 차내가 조용해졌다.


“서울로 출근하시나?”


이번엔 완전히 반말 투다. 아가씨는 아예 고개를 돌리고 이마에 주름까지 만들어 보였다.


“척 보니까 근무지가 강남 쪽인데? 요즘 테헤란로 쪽에 물 좋다던데…. 그쪽인가?”


강남의 룸살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쯤 되면 수작이 아니라 주접이고 추태다.

박 기사는 빨리 내려주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옆자리의 남자 손님도 꽤 불쾌한지 표정이 굳어있다.




“도대체 왜 이래요?”


참다못한 생머리 아가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뭘, 뭘 어쨌다고 지랄이야?”

“뭐라고요? 지랄이요?”

“그래, 지금 그게 지랄이지 뭐야.”


생머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 젠장, 이 길은 사람도 별로 안 다니는데 웬 신호등이 이렇게 많은 거야.


횡단보도 정지선에서 박 기사는 끓어오르는 열을 가누려 애썼지만, 핸들을 잡은 손에 땀이 차는 걸 의식했다.


- 저런 싸가지 없는 놈들은 법만 없으면 죽여 버려야 하는 건데….


택시 운전 3년 동안 주접 덩어리들을 숱하게 보아왔지만, 저놈은 유별스럽다. 꼬락서니를 보니 회사원 같은데 저렇게나 막돼먹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역시 술이 사람을 망치는 케이스라고 단정하면서 박 기사는 연신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렸다. 카메라만 설치되지 않았다면 진작 신호를 무시했을 거였다.


“이거 치우지 못해요?”


생머리가 눈을 부라리며 엄포를 놓았으나 스포츠머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허벅지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이것 봐요. 너무 지나친 거 아닙니까?”


박 기사가 더는 참지 못하고 나서려는데 조수석의 남자 승객이 먼저 등을 돌려 스포츠머리에 일침을 가했다.

“당신, 이 여자 남편이야?”

“뭐요? 이 사람이 정말….”

“네 마누라 아니면 신경 꺼.”

“뭐,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앞 좌석 사내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뒷좌석 스포츠머리의 오른손이 앞 좌석 사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쓸데없이 나서면 맞는 거야.”


스포츠머리는 사람을 치고도 여전히 이죽거렸다.


“손님, 그만하시죠. 다 한 동네 분들일 텐데….”


들어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박 기사는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짜샤! 넌, 운전이나 해.”


쿵! 박 기사는 눈앞이 노래졌다. 짜샤? 새파랗게 젊은 새끼가 아무리 안하무인이기로서니 이런 우라질 경우는 처음이다.

박 기사가 주먹을 움켜쥐자 옆자리의 사내가 참으라는 뜻으로 박 기사의 손을 어루만지더니 “기사님! 저 앞에 좀 세워주시죠?”라며 비교적 한적한 공터를 가리켰다.


“저런 새끼는 내가 버릇을 고쳐놓겠습니다.”


정장 사내가 울분 가득한 얼굴로 양손의 관절을 꺾었다. 생머리 아가씨도 처음 차에 탈 때와는 전혀 다르게 울상을 짓고 있었는데 정의의 사도가 은근히 공공의 적을 쳐부수기를 바라는 눈빛이었다.


“당신 말이야. 지금까지 한 짓은 참아줄 테니까 여기서 조용히 내려.”


박 기사가 속을 가다듬고 억지로 말을 만들어냈다.


“꼴값들을 떨어요.”


끼이이익. 박 기사의 택시가 급하게 세워졌다. 주변은 간간이 가로등만 희끗희끗할 뿐 차량의 통행도 그다지 잦지 않았다. 1, 2분 거리를 남겨놓고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말았다.

뭐, 꼴값을 떤다고? 숨을 몰아쉬며 차에서 내린 박 기사보다 조수석의 사내가 먼저 뒷좌석의 주접 덩어리를 끌어내렸다.


“어이구, 이 자식이 사람 좀 때려봤나 보네. 자! 어디 쳐보시지.”


스포츠머리는 아예 얼굴을 들이밀며 칠 테면 치라는 투였고, 주먹을 말아 쥔 정장 사내는 넥타이까지 풀고 내렸음에도 주먹을 올려붙이지 못했다.

박 기사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다. 실컷 변죽을 울려놓고 법이라는 허울을 등받이 삼는 놈. 한 대 얻어터지고 그대로 뻗어서 편하게 병원 생활하겠다는 놈.

회색 정장의 주먹이 그대로 펴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정작 그는 “어이구…. 이걸 그냥.” 하며 무너지려는 억장을 간신히 가눌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주춤거렸다.

박 기사가 나섰다. 너 같은 놈한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박 기사는 억센 팔 힘으로 스포츠머리의 멱살을 감아쥐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어어! 이 새끼들이 진짜 사람 치네.”


변변찮은 체구의 스포츠머리가 두어 번 좌우로 흔들리다가 박 기사의 얼굴을 후려쳤다. 얼떨결에 따귀를 맞은 박 기사는 그예 이성을 잃고 말았다.


“이런 젠장….”


박 기사의 솥뚜껑 주먹이 스포츠머리의 안면에 작렬했고 스포츠머리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일어나, 이 자식아! 지금까지 뱉은 말 다시 씨부렁거려 봐.”


박 기사가 다시 일으켜 세우자 스포츠머리는 박 기사의 허리를 부여안고 안간힘을 썼다.

스포츠머리의 코에서 터진 피가 박 기사의 상의에 문질러졌고, 스포츠머리의 얼굴도 피범벅이 되었다. 팔꿈치로 등짝 한 대를 더 가격 당하면서 스포츠머리는 완전히 뻗어버렸다. 더 일으켜 세워 분을 풀 수도 없었다.

빗줄기가 조금 더 굵어졌다. 그리고 불과 5분도 안 돼서 경찰 순찰차가 도착했다.

뒷좌석에 앉아서 조마조마해하던 생머리 아가씨가 연락했을 거로 생각하고 택시를 보았으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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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신이 이 사람 친 거 맞잖아요? 맞아요, 틀려요? 그것만 대답해요.”


박 기사는 미칠 것만 같았다. 맞지만 맞는다고 말할 수도 없고, 틀린다고 부인할 수도 없었다. 앞자리에 앉았던 정장 사내를 바라보았지만, 그도 안타깝다는 표정만 짓고 있다.


“한 번 더 묻겠습니다. 저분한테도 맞았나요?”


조수석에 앉았던 회색 정장 사내를 가리키며 형사가 묻자 스포츠머리는 얼굴을 감싸 쥐고 정장 사내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여기 이 기사분한테 맞았습니까?”

“네!”


스포츠머리는 양처럼 온순하게 바뀌어있었다. 언제 추태를 부렸고, 시비를 걸었는지 보지 않았던 사람은 사실을 믿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진작부터 카멜레온처럼 몸 색깔을 변형시켰다.


“아, 그게 글쎄…, 이 사람이 뒷자리 여자 손님한테….”

“조용히 해요. 지금 합승한 걸 잘했다고 내세우는 거요?”


큭,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그 여자는 어디로 사라진 거야? 저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그녀가 증인이라도 되어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불리하게 전개되진 않겠건만….


“이 분이 기사한테 맞는 걸 보셨습니까?”


형사가 회색 정장한테 물었고, 그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네!”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황은 서로 싸운 것도 아니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모양새로 변해버렸다. 그것도 사건이 발단된 경위나 이유 따위는 사안 밖이었다.

졸지에 별별 추태를 다 부리고 먼저 손찌검까지 했던 자는 피해자가 되었고, 박 기사는 빼도 박도 못하는 가해자가 되고 말았다.


“절대 합의 못 합니다. 제 얼굴 좀 보세요. 이런 얼굴로 어떻게 출근하겠어요.”


스포츠머리는 진단서를 제출했고, 아예 병원에 누워버렸다. 달리 길이 있지 않았다.

그자가 요구하는 800만 원을 보상하지 않고는 사건을 수습할 방안이 없었다. 박 기사는 집주인에게 사정해서 전세금 일부를 월세로 돌려야 했다.


“내 얼굴 어때?”

“처음부터 상처는 없었잖아. 더 좋아졌는데?”

“병원에서 며칠 쉬더니 살까지 붙고 기름기까지 자르르 흐르는데요. 호호!”


여자가 사내의 볼을 잡아당기며 웃었다.

스포츠머리가 생머리 여자한테 키스하고는 “자, 건배하자구.”라며 잔을 들자 넥타이를 맨 사내와 짧은 스커트 차림의 여자가 잔을 부딪친다. 스포츠머리가 잔을 내려놓으면서 덧붙인다.


“이번엔 주먹 좀 쓸만한 놈을 골라봐. 지난번 그 기사는 덩치만 컸지. 통 매운맛이 없더라니까. 합승 코스도 새로 개발하고 말이야.”


다시 넥타이를 맨 사내, 박 기사 택시의 조수석에 앉았던 사내에게 핀잔을 준다.


“그리고 넌 말이야. 연기력 좀 더 키워.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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