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동, 따블이요!!

콩트

by 장순영

자정이 막 지났는데도 종로거리는 꽤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사람들 걸음걸이를 더디게 한다.

한 주일에 닷새를 일하는 게 전국적으로, 그리고 대부분 직종에 정착한 탓인지 예전보다 주로 목요일 밤에 늦도록 술 마시는 게 일과처럼 굳어가는 듯하다.

박 기사의 택시가 좌회전을 받자마자 젊은 사내 두 사람이 비틀거리며 손을 흔든다. 박 기사는 못 본 척 그들을 지나쳤다. 오늘만큼은 차에 토하는 꼴을 봐줄 수 없다. 지난주에 애먹은 걸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뒤틀린다.

유난히 비위가 약한 박 기사는 좀 더 가다가 동대문 종합상가에 이르러 얼른 차를 세웠다.

앗싸! 따블이란다.

비교적 깔끔한 중년 사내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요즘엔 따블 손님 태우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지만 반가운 시그널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뒷좌석으로 오르면서 두 배의 요금을 확인시킨다.


“마천동, 따블이요.”


제법 먼 길이다. 박 기사의 목소리에 흥겨움이 묻어난다.


“마천동 어디로 모실까요.”

“사거리에 내려주세요.”


중년 승객은 사거리에 내려달라고 하고선 바로 눈을 감았다. 박 기사는 장충동을 지나 동호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로 진입했다. 오는 동안에도 전혀 막힘이 없었고, 올림픽대로에 들어서서도 차량은 씽씽 제 속도를 다 냈다.

할증요금이 쉴 새 없이 올라간다. 요금미터기가 순발력 있게 숫자를 갈아치우는 건 늘 보기 좋다.

뒷자리의 손님은 고개까지 젖히고 코를 곤다. 편안히 주무십쇼. 마천동 사거리에서 깨워드리겠습니다.

박 기사는 올림픽대교 남단 램프를 빠져나가 둔촌동으로 접어들면서 좀 더 세게 가속페달을 밟았다. 로터리에 진입할 때마다 신호등이 딱딱 녹색불로 바뀌어준다.

자주 생기는 일은 아니지만 이런 날이 있다. 이런 날은 마치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처럼 상쾌하다.


“손님! 다 왔습니다.”


박 기사는 마천동 사거리에 차를 세웠다. 중년 사내가 부스스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어! 여기가… 어디죠?”

“마천동입니다. 다음번 사거리까지 모실까요?”

“마천동이요? 아니 왜 여기까지 왔어요?”

“…….”


남자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다그치자 박 기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뭐가 잘못 틀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 봐요. 우리 집은 마장동이란 말이오.”


마…, 마장동? 그럼 마천동은?


“손님! 마천동 사거리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언제…. 나, 참! 난 이 동네에 발도 한 번 들여놓은 적이 없어요. 우리 집이 태양아파트란 말이요.”


박 기사는 어이가 없었다. 분명히 마천동이라고 들었고 마천동 따블이란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건만.


“이것 보쇼! 빨리 되돌아가요. 아니? 요금 좀 보게나. 불과 5천 원 남짓한 거리를…. 허, 이거 미치겠군.”

“손님! 그럼 요금은…”

“여보쇼. 난 오천 원쯤 줄 걸 생각하고 따블이라고 했던 거란 말이요. 얼른 가요. 내 잘못이 아니잖소.”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지껄이지 말라는 양, 사내는 길을 재촉했다.


“아! 빨리 출발하라니까요.”


이 사람은 5천 원 이상 더 줄 수 없다는 태세였다. 그럼 따블은 고사하고라도 다시 돌아가면 2만 원 이상 되레 손해를 보게 된다.

박 기사는 가는 동안 울화병이 도져 앞차를 박는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손님, 분명히 마천동이라고….”

“이 양반이 정말!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말이야. 당신, 안 되겠군.”


사내는 창밖을 두리번거리더니 차를 경찰서 지구대로 대라고 윽박지르는 것이었다. 참, 엿 같은 경우가 생기고 말았다.

박 기사는 마장동 가자는 걸 자신이 잘못 알아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만일 그렇더라도 다시 이 손님을 마장동까지 태우고 갈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가면서 껄끄럽고 탁한 실내공기를 견딜 자신이 없는 거였다.

“손님! 이렇게 하시죠. 제가 요금을 안 받을 테니 다른 차로 가십쇼.”

“뭐요?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순 제멋대로구먼.”

“…….”

“이 시간에 시간 뺏긴 것도 억울한데 돈까지 손해 보라는 거요?”

“그럼 어떡하란 겁니까?”

“어떡하긴? 우리 집까지 데려다줘야지. 그게 당연한 거 아냐?”


아예 대놓고 반말이다. 박 기사는 끓어오르는 분을 가눌 수 없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늦은 밤에 이런 사람과 승강이를 벌이다간 더 손해 나는 일만 생긴다.

에라, 잘 먹고 잘살아라.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박 기사는 요금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만 원입니다. 여기서 택시 타고 가세요. 그게 손님한테도 편할 겁니다.”

“당신 말이야, 운전해서 먹고살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어.”


사내가 그렇게 내뱉으며 신경질적으로 뒷문을 닫았다. 박 기사는 재수 옴 붙었다는 듯 침을 퉤, 뱉고 그 길을 빠져나왔다. 모퉁이에서 우회전을 받을 때까지 백미러도 보지 않았다.




탔던 차가 내빼듯 모퉁이를 돌자 중년 사내는 부리나케 건널목을 건넜다. 그리고는 천천히 마천2동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우욱,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운전이든, 뭐든 똑바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든 거야.”라고 중얼거리더니 만면에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휴대전화기를 꺼내 단축다이얼을 눌렀다.


“다 왔어. 지금 집 앞이야. 목욕물 좀 받아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군의 실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