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불륜현장을 잡아라!

콩트

by 장순영

최 기사는 모처럼 아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오만가지 상념에 빠져들었다.

예전의 고운 모습이 별로 안 보여. 디지털카메라에 잡힌 아내의 얼굴에 잔주름이 선명하게 나타나자 최 기사는 울컥 가슴이 미여 왔다.

운전하는 남편 뒷바라지하고 두 애들 교육시키느라 억척스럽게 살아오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일절 돈 쓰는 법이 없는 아내였다.


“저쪽 하늘 보면서 자세 좀 잡아봐.”

“이렇게요?

최 기사는 아내의 굵어진 허리를 감춰주려고 옆으로 세워놓고 셔터를 눌렀다.


“이번엔 턱을 고이고….”

“그만 찍어요, 갑자기 웬 사진을 찍는다고 법석이에요.”


그러면서도 아내는 턱을 괴고 동편 양떼구름에 시선을 던졌다. 맞아, 저거였어. 아내가 처녀일 때 바로 저 포즈에 반해서 끈질기게 쫓아다녔었지. 그땐 참 예뻤었는데.


“좋았어. 한 장만 더.”


이번엔 카메라 렌즈에 다른 사람의 아내가 잡힌다. 바람난 여편네. 그녀는 색이 진한 잠자리 안경을 끼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호텔을 나서더니 부리나케 차에 오른다.

짙게 선팅이 된 고급 승용차. 그 차의 운전석엔 그녀의 남편이 아닌 다른 사내가 앉아있다. 찰칵, 찰칵… 찰칵. 최 기사는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오늘 일 안 나갈 거예요?”


아내의 성화에 그제야 최 기사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카메라를 닫았다. 최 기사는 평소보다 느긋하게 아침까지 챙겨 먹고 집을 나섰다.


“운전하는 사람이 카메라는 왜 들고나가는 거예요?”

“너무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유일한 취미 생활마저 제대로 못 하고 살아왔잖아. 후후! 취미 생활 좀 다시 해보려고.”


아내의 물음에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곧바로 K 대학 앞으로 갔다.

운전을 직업으로 삼다 보면 종종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 피로가 가중될 때마다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을 느낀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개인택시 일을 해온 지 10년, 최 기사는 모처럼 만에 특별한 일을 맡게 됐다.

오늘이야말로 그런 매너리즘을 날려버릴 수 있는 날이다. 수입도 보통 운행할 때보다 훨씬 짭짤하다.


그저께 늦은 오후. 최 기사는 K 대학에서 막 나오는 교수 한 사람을 태우게 됐다.


“기사님은 가정이 편안한 편이세요?”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최 기사는 잠시 갸웃거리다가 “그저 그런 편이죠, 뭐.”라고 대답했다.

편안한 편이다. 밖에 나와 일하면서 가정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편안한 거라고 여겼다. 아내 덕이다.

안암동에서 서초동까지 가는 동안 그는 많은 얘기를 했다. 그의 얘기는 대부분이 신세 한탄 같은 것이어서 최 기사는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민망스럽기도 했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그는 박사학위를 딴 후 모교인 K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건강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편인데 딱 한 가지, 여자 복이 없다면서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오래 유학 생활을 하느라 여자를 모르고 지내다가 귀국해서 지금의 아내와 중매로 결혼한 지 3년이 지났는데 아직 애가 없다면서 고개를 흔들기까지 했다.


“조금 늦는 경우도 많죠. 저도 5년이나 지나서 첫애를 얻었는걸요.”


최 기사는 손님에게 위안의 말을 건네면서도 속으로는 별걸 다 걱정거리로 끌어안고 산다고 생각했다.


- 하긴, 이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먹고사는 문제 따위로 골머리를 썩이진 않을 테니까.


“단순히 애가 들어서지 않는 거라면 이렇게까지 신경 쓰겠습니까.”


황 교수는 창밖에 시선을 내던지고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는데, 얼핏 보니 세상 근심 다 끌어안은 표정이다.


“허허! 작은 일에 너무 민감하신 거 아닙니까?”


최 기사는 그렇게 말해놓고 슬쩍 황 교수의 눈치를 살폈다. 본의는 아니지만, 자신의 말에 약간은 비아냥거림 같은 게 섞여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쓸데없이 기사님께 푸념을 늘어놓았나 봅니다.”

“아, 아닙니다.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괘념치 마십시오.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보니까 제가 그만 경솔했던 거 같네요.”


황 교수가 그렇게 말하니까 최 기사는 괜히 미안스러워졌다. 그래서 묻지 않아도 될 말을 물었다.


“혹시 사모님께서도 교수님이신가요?”

“미용실을 운영합니다.”

“미용실이요?”


대학교수와 미용실 사장. 최 기사는 영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는 말을 잇지는 않았다.

“저랑 열세 살 차이가 납니다. 너무 젊어선지….”


황 교수는 자신의 아내가 너무 젊어서 여러모로 인식 차이가 크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최 기사는 그의 아내가 대략 20대 중반쯤일 거라고 짐작했다.


“거기다가….”


말을 끊은 황 교수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좁힌다. 그다지 멀지 않은 목적지의 손님에게 듣기에는 좀 거북한 대화가 이어지는 것 같아 최 기사는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남자가 있는 것 같아요.”

“…….”


혹시나 했지만 역시 추측했던 대로 외도로 귀결된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겁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운전하시면 많은 걸 깨우친다고 들었죠. 일리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한 수 가르쳐 주시죠.”


황 교수가 멋쩍게 웃었고, 최 기사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겸연쩍어했다.

그런 일이 나한테 일어났다면? 최 기사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연놈을 붙잡아 사지를 절단하거나 간통죄로 집어넣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의 일이니까 대수롭지 않게 듣고는 있지만, 자신이 당사자라면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최 기사의 평소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답변할 수는 없었다. 역시 다른 사람의 문제다.


“허허, 글쎄요.”


최 기사가 대충 넘기려는데 그는 “전, 다 참아도 그것만은 못 참습니다.”라며 눈에 힘을 주고 결연하게 단정하는 것이었다. 나도, 그래요. 사내가 인내할 수 없는 몇 가지 중에서도 그건 특히 참을 수 없는 경우지요.

황 교수의 표정으로 봐서 이미 결단이 선 것처럼 보였으므로 최 기사는 그저 입을 늘어뜨릴 뿐이었다.

동호대교를 건너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운전하면서 침묵이 이처럼 껄끄러운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라디오를 틀을 수도 없다. 동호대교를 건널 즈음 황 교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드리면 기사님한테 큰 결례인 줄 알지만.”


그러나 결례 여부를 따지며 말을 가릴 것 같지 않은 태세다. 최 기사는 정중하게 말을 받았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기사님! 저를 좀 도와준다고 생각하시고 하루만 시간을 내주실 수 없을까요?”

“네?”

“물론 충분히 사례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심부름센터에 의뢰할 생각도 해봤습니다만,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소지가 있더라고요.”


최 기사는 대략 감을 잡기는 했는데 그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저한테 기사님의 하루를 파십시오.”

“하하하!”


황 교수의 표현이 재미있어 웃음을 만들었는데 그도 따라 웃었다.

황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차를 하루 대절하겠다는 것이었다. 차를 전세하는데 그치지 않고 부탁, 아니 요구대로 이행해달라는 것이다.

미행 혹은 추적, 바람난 아내의 뒷조사. 흔히 있는 그런 일을 제안하며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수는 섭섭하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황 교수는 경제학과 교수답게 무척 합리적인 편이었고 계산도 빨랐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하루의 대가도 가감 없이 받아들일 만큼 명쾌했다.


“선금 이십만 원입니다.”


그는 서초동 자신의 집까지 나온 요금 외에 선뜻 현금 20만 원을 내주며 이틀 후의 일정을 설명했다.

황 교수는 이틀 후, 자기 아내가 분명히 누군가를 만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남자다.


“조금 전, 제가 가리킨 미용실 있잖습니까. 거기가 아내 사업장입니다.”


최 기사는 황 교수를 내려준 후 사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대로변의 ‘H 헤어숍’ 앞으로 다시 지나가며 슬쩍 내부를 살펴보았다.

얼핏 보아도 여느 미용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화려했다. 많은 사람이 있어서 그중 누가 황 교수의 부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최 기사는 황 교수에게서 들은 그의 아내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정리했다.


‘검은색 제네시스’


최 기사는 메모를 펼쳐 제네시스의 차량번호를 외웠다.


“제 판단이 맞는다면 내일모레, 그자가 아내를 태우러 올 겁니다.”


그자. 얼핏 보았지만, 아내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남자라고 했다. 황 교수는 얼마 전 그자의 제네시스를 쫓아가다가 신호위반에 걸려 딱지 떼인 걸 상기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누군가를 추적하는 일은 새롭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를 일으킨다. 몸을 수축시키는 긴장감에 한 가지에만 전념할 수 있는 몰입도. 최 기사는 현역 시절 수색대에서 근무할 때를 상기하며 한껏 흥미를 만끽하기로 맘먹었다.

서초동의 ‘H 헤어숍’으로 차를 몰며 최 기사는 콧노래를 불렀다.

조수석의 가죽 가방 두 개에 눈을 던졌다가 빙그레 웃었다. 젊었을 때의 취미 생활을 이럴 때 써먹을 줄이야. 가방 하나에는 16밀리 캠코더가 들어있다. 그리고 카메라와 망원렌즈를 준비했다.

수도 없이 사진을 찍었어도 피사체를 통해 돈을 벌려고 한 적이 없었고, 더더욱 돈이 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충분한 대가를 받고 카메라를 조준할 기회가 생겼다. 금상첨화로 짜릿한 스릴까지 곁들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루 수고비로 오십만 원을 드리면 될까요? 만일 동영상이나 사진 같은 걸 확보할 수 있다면 최하 백만 원을 맞춰드리겠습니다.”


황 교수는 이혼을 원했다. 확실한 증거를 포착해서 아내가 군말 없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끔 하려 했다. 깔끔하게 현재의 생활을 정리하고 새 출발을 하려 한다.

좋아. 내가 도와주지. 잘못된 결혼이라면 길게 가지 않는 게 나아. 최 기사는 그렇게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시키며 오늘을 실컷 즐기기로 했다. 최 기사는 미용실에서 적당히 떨어져 차를 정차시켜놓고 황 교수가 일러준 인상착의의 여자를 머릿속에 그렸다.

168㎝, 짧게 커트한 생머리에 쌍꺼풀이 선명한 눈. 아침에 전화를 걸어온 황 교수는 그녀가 오늘 연한 청색 재킷에 비교적 짧은 스커트 차림으로 나갔다고 했다. 다시 황 교수의 말이 들린다.


“기사님! 눈치채지 않게 잘해주세요. 아마 미용실 부근 어딘가에서 놈은 검은색 제네시스를 몰고 와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실수 없이 미행해서 불륜의 현장을 고발해달라는 다짐. 최 기사는 목을 한 번 비틀고 선글라스를 꼈다.

역시 황 교수의 예측대로다. 그가 일러준 모습 그대로의 여자가 미용실에서 나온 건 최 기사가 기다리기 시작한 지 30분쯤 지나서였다.

‘H 헤어숍’에서 나온 여자는 멀리서 봐도 미인임을 알 수 있었다. 잘 빠진 몸매에 걸음걸이마저 패션모델이 워킹하는 듯 경쾌했고 전체적으로 야한 분위기를 풍긴다.

꽃마을 쪽 이면도로로 들어서면서 그녀는 두어 번 두리번거리더니 걸음을 빨리했다. 죄지은 자의 속성. 죄를 지으면 편안하지 못하고 여유로울 수 없는 법. 최 기사는 천천히 차를 몰며 그녀를 비웃었다.

최 기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난 하루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나는 놈은 과연 어떤 놈팡이일까. 두 사람은 만나서 과연 어디로 갈까.

그때 맞은편에서 제네시스 한 대가 천천히 멈춰 서더니 황 교수의 아내가 조수석으로 올라탄다.

최 기사는 그 차와 마주 보고 지나치며 두 사람을 흘깃 보았다. 짙게 선팅이 되어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두 남녀가 반갑다는 듯이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 너희들의 웃음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으리.


최 기사는 다음 골목길에서 차를 돌리며 조소를 흘렸다. 큰길에서 그들의 승용차를 석 대쯤 앞에 두고 따라갔다. 앞차를 쫓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두 사람이 탄 제네시스는 양재동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받아 한산한 세곡동 길을 지나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평일인지라 산성 안은 차나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한 음식점 아래, 물가 좌판에 자리 잡는 걸 확인하고 최 기사는 잠시 후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펴보았다. 마침 물가가 내려다보이는 방이 있었다.

최 기사는 그 방으로 들어가 닭죽 한 그릇을 시켰다. 일어서서 창문으로 다가서니 20여 미터 아래로 두 사람이 보인다. 그들을 지켜보기엔 최적의 장소다. 음식점엔 손님들이 전혀 없어 별달리 제한을 받을 것 같지 않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음식을 차려놓고 종업원이 나간 즉시 최 기사는 캠코더를 꺼냈고, 카메라에 망원렌즈도 부착했다. 둘은 종업원에게 뭔가를 주문하는 것 같았다.

최 기사는 창문 옆에 기대서서 그들의 모습을 캠코더에 담았다. 백숙이 그들이 마주한 상에 차려졌고 붉은빛의 복분자주로 건배를 한다.

잘 보였고, 잘 잡혔다. 줌인 zoomin 상태에서 뷰파인더에 잡힌 여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선정적이고 예뻤다. 남자 또한 젊고 잘 생겼다.


- 욕심도 많군.


잘난 두 사내를 다 소유하려는 여자의 욕심에 일침을 가하고 싶었다. 엄연히 남편이 존재하는 걸 알고도 유부녀와 놀아나는 사내자식의 몰염치에 침을 뱉어주고 싶었다.


-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놈이야말로 히틀러만큼이나 나쁜 놈 아닌가.


최 기사는 피사체에 맞춰 캠코더를 창틀에 고정해 놓았다. 일단 식사를 마쳐도 무방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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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서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광주 쪽으로 내려갔다. 200여 미터 간격을 두고 두 사람을 따라가면서 최 기사는 카메라 가방을 툭툭, 건드렸다.


- 이 정도만 돼도 충분하지만.


두 사람을 주시하다 보니 이제까지의 흥미로움에 앞서 불끈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일을 떠나 악의 무리를 완전히 소탕하고픈 정의감이 꿈틀거리는 거였다.

어쨌든 최 기사는 황 교수와 계약한 대로 하루를 충실하게 이행하기로 했다.

불륜 커플답게 두 사람은 음식보다 서로의 입술을 탐했고, 몇 잔의 술이 들어가면서 남자는 여자의 드러난 허벅지를 더듬어댔다. 두 연놈의 거친 호흡이 지척까지 들리는 듯했다.


- 아마 모텔 같은 데로 가겠지.


불같은 욕정을 풀려면 그래야 할 거야. 최 기사의 눈이 가늘게 접혔다.


- 흐흐, 아니나 다를까.


광주 외곽도로로 들어선 제네시스는 제일 먼저 보이는 러브호텔로 향했다. 그리 들어가는 장면을 생생하게 캠코더에 담았다.

그들이 호텔로 들어간 즉시 최 기사는 얼른 차에서 내려 길 건너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4층짜리 호텔이 한눈에 보이는 가로수에 기대 잡지를 펼쳐 들었다.


- 그래, 내 생각대로야. 1층에 방을 얻었단 말이지.


열두 개의 창문 중 1층 세 번째 창문의 커튼이 젖혀졌고 청색 재킷의 단발머리가 모습을 보였다.

호텔이나 여관에 들어가면 먼저 커튼을 젖히거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건 대다수 방문자의 습관일 터였다. 최 기사는 자신의 연애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차에 올랐다.

이제 저들이 나올 때까지는 할 일이 없다. 최 기사는 호텔 뒤편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웠다. 그냥 차 안에 있기도 무료해서 천천히 호텔 주변을 걸었다.

그럴 때 황 교수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전화에 찍힌 번호로 보아 학교 연구실인 것 같다.


“지금 상황이 좀….”


궁금해하는 황 교수에게 최 기사는 선뜻 벌어진 상황대로 언급하기가 어려웠다. 비록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미행을 의뢰했겠지만, 당사자에겐 몹쓸 아픔일 게 뻔하다.

그러나 얼버무리는 최 기사의 말투에서 감을 잡았는지 황 교수는 “벌써 호텔 같은 데 들어간 건 아니겠죠?”라며 목소리를 낮춰 묻는 것이다.


“벌써… 그런 상탭니다.”


최 기사는 거짓말로 둘러댈 수도 없었고, 굳이 감출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들어 사실대로 대답했다.


“죽일 년….”


막상 황 교수의 입에서 욕이 새 나오자 최 기사는 괜히 자신이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황 교수와 통화를 마친 최 기사는 더욱 적극적으로 호텔 주변을 살폈다.

황 교수는 가능하면 더 구체적인 불륜 증거를 원했다. 호텔 출입 사진이나 키스 정도의 사진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분을 가누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치를 떨고 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 일단 수치스럽겠지.


마누라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괴감에 빠질법한데 다른 사내와 몸을 섞는다는 사실을 어찌 받아들이겠는가.

최 기사는 같은 사내 입장에서 동정심이 일었다.


“지금까지 하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고하셨습니다만 기왕 나서신 김에 조금만 더 수고해 주십시오. 제가 백만 원 더 얹어드리겠습니다.”


황 교수가 그렇게 말했지만, 최 기사는 돈 욕심에서가 아니라 그가 바라는 대로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러브호텔 뒤편은 공사가 중단된 건설현장이다. 상가 등을 지으려고 곳곳에 건물 골조가 올라가고 일부는 바닥공사까지 했으나 대개가 뼈대만 세워져 있었다.

최 기사는 짓다 만 건물 옆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두 사람이 들어간 방을 쏘아봤다. 두 사람이 머무는 방에서 역한 정액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최 기사는 코를 비틀었다.

순간, 최 기사는 눈을 비비고 호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얻은 방의 창문 커튼이 완전히 가려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최 기사는 자신이 마치 어느 영화에선가 본 스나이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대신 카메라를 들었을 뿐이지, 영락없는 저격수의 모습, 저격수의 자세였다.

최 기사는 호텔과 비스듬히 세워진 철골 건물 2층에서 망원렌즈가 부착된 카메라를 들고 그들이 들어간 1층 방에 앵글을 맞췄다.


- 변태 같으니….


벌건 대낮에 1층의 러브호텔에서 커튼을 반쯤이나 열어놓고 그 짓을 한다는 건 몰상식하다기보다 변태성욕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 기사는 얼핏 드러난 연놈들의 벗은 몸을 보고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갔을 때와 달리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정확히 창틈 사이로 카메라를 조준하고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를 기다렸다. 두 연놈의 옷 벗은 모습이라도 찍혀준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퓰리처상 감이다.

잠깐,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났다. 최 기사는 자신의 심장에서 울리는 박동이 너무 크다는 생각을 했다.

남녀가 동시에 일어나는 게 보였다. 찰칵. 두 남녀의 상체가, 벗은 속살이 보이는가 싶었는데 그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진한 입맞춤을 한다. 찰칵, 찰칵. 아주 긴 키스가 이어진다. 찰칵, 찰칵, 찰칵.


- 그래, 좋았어. 좀 더, 좀 더 자극적으로 해봐.


최 기사는 마치 영화감독처럼 그들의 키스 장면 연기를 지도했다. 안타깝다. 침대가 보이지 않아 베드신을 찍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짝 밀착한 남녀가 창가로 다가서더니 더욱 격렬하게 연기에 몰입하는 게 아닌가. 아마도 다시 흥분한 사내가 여자를 벽으로 밀어붙인 듯 보인다.

찰칵, 찰칵. 참으로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최 기사는 이번엔 캠코더를 꺼내 최대한 줌인했다. 아주 선명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둘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가며 서로를 애무했다. 얼굴 모습까지 확연하게 담을 수 있었으므로, 불륜의 증거로서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최 기사가 오늘 두 사람을 따라다니며 찍은 사진과 촬영한 동영상을 다시 확인한 건 광주경찰서에서였다.

변태 장면의 두 사람을 아주 가까이에서 마주 대한 것도 광주경찰서 형사팀에서였다.

새파랗게 젊은 두 남녀에게 멱살을 잡히고 차마 들어줄 수 없는 욕을 먹었어도 최 기사는 뭐라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처연하게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남녀가 욕실에 들어갔을 거로 생각하고 촬영 장비를 챙겨 건설현장을 나서려는데 어디선가 두 명의 사내가 불쑥 나타나 양팔을 꺾는 것이었다.


“당신을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지금 최 기사의 귓전엔 그중 한 사람의 형사가 말한 소리가 이명처럼 윙윙거렸다. 아마 그게 미란다 법칙이란 건가 보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그 형사의 이어지는 말은 현행범을 체포할 때 체포된 피의자한테 권리를 알려주는 바로 그 말이었다. 아아, 영화에서나 봤던 일이 나한테 벌어지고 말았다.

처음에 최 기사는 자신이 행한 일이 그다지 잘못된 일이 아닌 것처럼 당당했다가 된통 면박을 당하고 오히려 담당 형사한테 미운털이 박히고 말았다.

이런 게 초상권 침해와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며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중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붙잡혀 와서야 처음으로 알았다.

다시 사실대로 의뢰받아 한 일임을 털어놓으며 죗값을 줄여보려 했으나 더더욱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일을 시킨 장본인, 황 교수는 어디로 간 거지. 그는 도대체 누구지. K 대학 경제학과에는 황 씨 성을 가진 교수는 있지도 않았고, 최 기사의 휴대전화기에 찍힌 전화번호는 공중전화에서 건 것으로 확인되었다.

최 기사는 무언가에 홀린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지금 이 상황이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 사람, 정말 질이 나쁜 사람이네.”


형사가 책상을 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렇다니까요. 아주 못돼 먹은 변태라니까요.”


변태한테서 변태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최 기사는 꿀꺽, 고인 침을 삼켜야만 했다.


“누구 신세 망칠 일 있어요?”


이번에는 황 교수의 부인, 아니 여성 피해자가 어이없다는 듯 다그쳤다. 최 기사는 여자가 황 교수라는 사람의 부인이며, 서초동에 있는 미용실의 주인이라고 했다가 정신병자 취급까지 받고 말았다.

경찰서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여자는 겨우 스물세 살의 미혼이며, 서초동의 ‘H 헤어숍’은 몇 번 머리를 하러 다녔을 뿐이라고 했다. 당연히 그 미용실의 실제 주인은 따로 있었다.


“당신, 스토커 맞지?”


사내가 자기 애인을 쫓아다니는 스토커로 몰아붙였다.


“우린 올가을에 결혼하기로 했단 말입니다.”


두 남녀가 치를 떨다가 형사를 보며 항변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선량한 택시기사들이 욕먹는 거야, 알아들어?”


형사가 진술서 작성을 마치고 책상에서 일어서며 내뱉듯 말했다. 피해자 조서를 꾸미는 동안 최 기사는 수갑을 찬 채 혼돈과 흑암 속에서 헤매야 했다.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마구잡이로 찍어대면 어떡해.”

“한심하긴 하지만 안타깝구먼. 쯧쯧,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저런 놈들이 기세 등등하게 판치며 사는 거야. 에이, 더러워서 형사 짓도 못 해 먹겠어.”

“이런 꼴 보고도 그냥 넘기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법이 너무 허술해.”


법망은 허술하다 못해 뻥 뚫렸고, 정의는 실종됐으며, 잔꾀와 이기주의만이 살아 판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면서 대머리 형사는 길게 한탄했다.

광주경찰서 형사들은 턱수염이 꺼칠하게 자라 눈동자에 초점을 잃은 최 기사한테 다그침인지 위로인지 모를 말들을 한 마디씩 던졌다.

최 기사는 그다음 날 오전, 합의서에 지장을 찍고 다시 각서 한 장을 더 쓰고서야 사태를 무마시킬 수 있었다.

연락을 받은 최 기사의 아내가 두 남녀의 정신적 피해보상금 조로 1,000만 원의 위자료를 들고 온 후였다.

민형사상의 고소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확인서를 받고 두 명의 피해자를 내보낸 담당 오 형사는 책상에 진술서를 팽개쳤다. 그리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휴! 저것들, 그냥 내버려 두면 또 이런 사람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오 형사가 손가락으로 최 기사를 가리키며 흥분했으나 최 기사만 멀뚱멀뚱한 눈으로 오 형사를 올려다볼 뿐, 누구 하나 오 형사의 말을 받지 않았다.

변태에, 또라이에, 스토커가 되었다가 정상인으로 돌아올 때까지 최 기사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제정신을 차렸을 때 그에게 또 다른 변화 하나가 있었으니. 최 기사가 아내에게 큰소리로 다짐한다.


“내가 다시 카메라를 만지면 변태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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