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로(EUR)에 1,000원?
감사합니다

콩트

by 장순영

“손님! 유럽에 나가시나 봅니다.”

“아, 네! 독일하고 프랑스에 볼일이 있어서요. 그런데 유럽에 가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개인택시를 모는 김 기사는 손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자 괜히 우쭐해졌다.


“한두 해 장사하나요. 척하면 삼천리죠, 하하하!”


김 기사는 옆자리의 중년 신사가 지갑에 두 장의 유로화를 집어넣는 걸 얼핏 보았었다.

국제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타서 달러나 엔화가 아닌 유로화를 지녔다면 십중팔구, 아니 열이면 열 모두 유럽행이 아닌가.


“비즈니스로 가시는군요.”


이번엔 아예 단정하듯 말했다.


“허허! 귀신같으십니다. 첨 탈 때부터 노련해 보이시긴 했습니다만.”


신사는 자신의 얼굴에 무슨 힌트라도 있지는 않은가 하는 듯 양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그쪽에 몇 군데 바이어가 있거든요. 수출계약차 가는 길입니다.”

“그럼 무역회사 사장님?”

“하하하! 이번에도 제대로 맞추셨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족집게 기사님!”


김 기사는 신사의 흥겨운 대응에 기분 좋게 올림픽대로를 달렸다. 여의도에서 양화대교 인근까지 잠시 서행하던 차는 점점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김 기사는 시계를 보았다. 약간 시간이 빠듯해서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이 정도 소통이라면 여유롭지는 않더라도 탑승시간에 맞추는 데 문제가 없을 듯했다.


“제가 게으름을 피우다가 늦었는데 기사님께 재촉해서 무척 죄송스럽습니다.”


신사는 후한 웃음만큼이나 경우가 밝고 예의도 깍듯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손님! 최선을 다해서 손님을 모시는 게 저희 일이지요.”

“직원이 차를 가지고 오는 중에 접촉사고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갑자기 택시 타게 됐지 뭡니까.”

“아, 네!”

“충분히 요금을 쳐 드리겠습니다.”

“하하! 고마운 말씀입니다.”


송파구 문정동에서 탄 손님이 인천 국제공항까지 간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고마운데 추가 팁까지 준다니 김 기사는 더욱 흡족해졌다. 거기서도 서울 손님을 태우고 나오는 데는 문제가 없다.

어제 하루를 쉬면서도 다 낫지 않은 감기 기운 때문에 하루 더 쉬었으면 하는 마음을 꾹 누르고 나왔는데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오늘 하루는 일이 순탄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기사님! 가다가 은행이 있으면 잠깐 세워주시겠어요?”


공항에 거의 도착할 무렵 신사는 지갑을 열더니 허둥대며 몸을 일으켰다.


“원화 환전 좀 해야겠네요.”

“…….”

“원화 쓸 일이 없을 거로 생각해서 남겨두지를 않았더니만….”

“저쪽으로 돌면 은행이 있기는 한데,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으려는지 모르겠네요.”


김 기사는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신사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그렇군요. 아무래도 은행까지 갔다가는 위험하겠는데….” 라며 눈을 감고는 무슨 생각을 하는 듯했다.


“저, 기사님! 이렇게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그가 눈을 뜨고 지갑에서 유로화 두 장을 꺼내며 정색을 했다.


“200 유롭니다. 어제 12만 원씩에 환전한 건데 10만 원씩으로 환율 계산해서 요금을 받으시면….”


11만 2천 원의 요금이 나왔다. 100유로만 받아도 남는 장사다. 김 기사는 망설였다. 아무래도 100유로만 받는다고 하는 게 옳은 일이다. 그런데 자꾸 한쪽에서 200유로를 받고 8만 8천 원을 거슬러 주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김 기사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정의와 양심을 따르기로 했다.


“그럼, 손님! 100유로만 주십시오.”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불편합니다. 제가 서둘러서 최대한 시간을 맞춰주셨는데 그럴 순 없습니다.”


신사는 두 장의 지폐를 김 기사에게 쥐여주었다.


“허, 참!”


김 기사는 한 번 더 사양했으나 더 이상 신사의 배려를 꺾지 못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은행에 가셔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끼치고 말았네요. 8만 원만 받겠습니다.”


신사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조심해서 운전하십시오.”라며 인사를 했고 김 기사는 “꼭 계약 체결하시기 바랍니다.”라며 진심 어린 덕담을 건넸다.




“안타깝지만 어쩌겠습니까. 잊어버리셔야죠.”


박 경장이 위로하듯 달랬지만 김 기사는 결코 위안이 되지 않았다. 위조지폐 소지 경위를 진술하고 경찰서를 나선 김 기사는 한참이 지나서도 허탈감이 가시지 않았다. 분하기도 했지만 수치스러웠다.

운행이 없는 오늘, 엊그제 받은 200유로를 원화로 환전하려고 은행에 들렀다가 얼굴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무역회사 사장에게 받은 두 장의 100유로짜리 지폐는 실제 유로화와 비교해보니 눈에 띄게 구분될 정도로 그 디자인이나 색상까지도 차이가 있었다.

푹 고개를 꺾고 집에 들어와 누웠는데 아내라는 여자가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그러게, 유럽 한 번 가자니까. 가보지도 못하고 아는 척만 하더니. 쯧쯧!”


툴툴, 빈정거리는 아내까지 꼴 보기 싫어 김 기사는 밖으로 나와 포장마차에서 쓴 소주를 들이켰다.


“망할 놈! 만나기만 해 봐라. 내 그냥 잘근잘근 씹어버릴 테니까.”


다시 한 잔을 단번에 들이켠 김 기사는 연하게 익힌 오징어 데침을 마치 막대기 씹듯 씹어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연이 되려면 아주 우연히 만들어진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