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명산 > 초여름 수락산
도솔봉 넘고 철모바위 지나 주봉 오르는 고갯길
운무雲霧 가득하다 하늘이 바다 되어 물결 일고
연초록 녹음 우거져 솔향 가득하니
수락산 바윗길 홀로 걸어도
마냥 호젓하네.
꽃이 물들어 덩달아 청량하게 물들고 싶었던 신록新綠이 엊그제 지나니 수락산에도 더욱 기세 높여 짙푸름 발산하는 녹음으로 곳곳마다 두터운 색감 두드러진다.
새들과 꽃봉오리의 재잘거림이 잦아들어 묵직한 고요가 담담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지만 푸름을 뚫고 솟은 암봉은 봄여름 할 것 없이 그 표정이 여전하다.
어둠이라야 별이 더욱 반짝이는 것처럼, 구름을 그려넣어 달빛의 오묘함을 묘사하는 것처럼 수락산 수림들은 바위산 일부 근육만을 보기 좋게 드러냈다. 딱 고만큼만 보여주어 뭇사내들 속 태우는 미인의 교태를 마주하는듯 하다.
어떻게 비유되었든 초여름 녹음은 육중한 바위를 들어올리고 저들은 가슴 아래로 낮춤으로써 계절의 절정을 연출해내니 철 바뀜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뚝뚝 떨어져 그늘마저 초록으로 물들인 정오 무렵 산오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써늘했던 바위산에 초록이 더욱 짙어가는 걸 보니 이 산 계절 바뀜을 자축하는 느낌일세.
육중한 암릉 우람한 근육 드러내는 소나무 활기찬 기세를 보니 그 기운이 내 속에 한 움큼 부어지는 기분일세.
저 아래 흥국사 풍경소리 청아하게 들리는 듯 하니 나그네 잔칫집 찾아 풍성히 차린 술상 받은 기분일세.
볕 보드라운 산정 바로 아래, 짙은 미소 머금고 구름바다 다가와 땀 젖은이들 다감하게 끌어안는다. 보이는 것마다 푸릇한 생동, 환희의 빛이다.
아주 멀리 눈길 던져도 튕기듯 반사되어 돌아온다. 그 되돌림 속에 시름과 한숨이 사라지고 미소와 긍정이 소담스럽게 담겨졌음 좋겠다.
엄청난 부피구름도 손에 잡힐듯 가벼우니 높이 멀리 내다보며 고된 한숨들이 생기 넘치는 웃음들로 바뀌기를 소망한다.
여유 찾아 이 산 올려다보며 욕심 내려놓으면 어느 순간 절로 현답賢答을 깨달을 터인데...
필요 만큼만의 소유에 만족스러워하면 텅 빈 육신처럼 가벼워지고 덩달아 마음까지 편안해질 터인데.
청초한 푸름, 연둣빛 화사함, 연한 파스텔톤의 하늘, 목화솜 같은 구름까지 초여름 수락의 정기가 온통 무지갯빛 희망으로 우리네 삶에 다가서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수락산은 브랜드가 빵빵한 바위들의 전시장이다.
수락산 올라와 도봉산 바라보면 비록 지친 몸 끌고라도 거기까지 가고 싶어진다.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등 도봉산의 암봉들이 하늘 찌를 것처럼 장대하게 솟아올랐다면 철모바위, 배낭바위, 하강바위 등 수락산 바위들은 오밀조밀 조경을 위해 옮겨놓은 소품들처럼 여겨진다.
수려함과 웅장함으로 헤아리려면 수락산은 촌색시 같아서 강퍅하기 그지없다. 허나 수락산 바위들이 그렇다는 건 도봉산과 다르다는 것일 뿐, 그 다름은 상호 동등한 가치의 특색에 불과한 것일 뿐, 우열을 헤아리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불암산 그리고 여기 주봉 거쳐 자운봉까지 길게 드리운 구름을 보라. 초록숲과 융단구름 사이에서 그 산들은 여전히 멋지지 않은가. 하나로 이어진 저들의 끈에 묵연히 시선 담그노라면 다시 희망 부푼 포만감에 절로 미소 지어진다.
산까마귀 창창한 울음 솟아오른 하강바위
석양 비껴든 놀 서녘인 양 아득하고
안개구름 걷힌 숲길 외려 짙은 유월 녹음
사진기 꺼내들어 한 번 더 줌인하면 사방 너른 암벽들 금세라도 품에 안은 양 의기양양 어깨 펼쳐지니 그 산들도 나도, 결국은 하나 아니겠는가.
스테디셀러 '시크릿'은 그렇게 언급했다.
우주와 대자연은 성취를 위한 강렬한 실현욕구에 동화된다고. 난 그 말을 철썩 같이 믿는다.
그 말을 믿으면서부터 산에 오면 대자연의 정기를 받으며 자아실현의 고요한 기도를 하는 게 습관처럼 되었다.
"다 내려놓아 육신은 더욱 가벼워지고 마음은 더욱 넉넉해지게 해주소서."
쫓고 쫓기만 하니 죄다 멀어집디다.
종일토록 흐르는 연무에 젖은 하산 길 저녁이
내게는 몹시도 무거웠더이다.
그러길 반복하며 오르고 내리길 수십 차례
결국 앞을 쫓지만 뒤를 털어내지 못한 미련의 산물
해법은 오로지 기다림이었더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니 조금 늦었지만 그 기다림 속에...
내가 있습디다.
水落殘照 수락잔조 - 수락산의 남은 노을
一點二點落霞外 일점이점낙하외 한점 두점 떨어지는 노을 저멀리
三个四个孤鶩歸 삼개사개고목귀 서너 마리 외로운 따오기 돌아온다.
峰高剩見半山影 봉고잉견반산영 봉우리 높아 산허리의 그림자 덤으로 본다.
水落欲露靑苔磯 수락욕로청태기 물 줄어드니 청태 낀 물 드러나고
去雁低回不能度 거안저회불능도 가는 기러기 낮게 맴돌며 건너지 못하는데
寒鴉欲樓還驚飛 한아욕루환경비 겨울 까마귀 깃들려다 도로 놀라 난다.
天涯極目意何限 천애극목의하한 하늘은 한없이 넓은데 뜻도 끝이 있나
斂紅倒景搖晴暉 염홍도경요청비 붉은 빛 머금은 그림자 밝은 빛에 흔들린다.
- 매월당 김시습 -
때 / 초여름
곳 / 수락산역 - 벽운교 - 깔딱고개 - 독수리바위 - 철모바위 - 수락산 정상 - 깔딱고개길 - 곰바위 - 덕성여대 생활관 - 수락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