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공룡능선 탐방 2
장맛비 동반한 습한 안개에
초록 산중마다 축축이 젖는데
찌는 폭염 때문이었을까
눅눅하게 갈앉은 속 마땅찮아
아침 일찍이 찾은 설악산 한계령
저어기 설악루 올라서서 내리 발 디뎌
공룡 등줄기 마구 밟노라면
운해라도 짙게 깔려 목화 구름 탄 양
낡아 빛바랜 화폭에 밝은 채색 할 수 있으려나
동서울터미널에서 8시 30분 버스를 타고 오색령(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을 땐 10시 50분 경이다.
기상예보가 들어맞나 보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오미자차 한 잔을 마시고 곧바로 계단을 오른다.
며칠 동안 무언가에 콱 막힌 듯한 느낌...
사방이 환하게 트였는데도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는 기분...
그럴 때면 난 무모해진다. 유난스레 생리하는 여자가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처럼.
바로 두 주전, 친구들과 다녀온 공룡능선. 뿌연 연무에 가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곳.
재회는 빠를수록 좋은 게 맞는 말일 게다. 하늘이 베푼 은혜 중 하나가 다시 만남 아니겠는가.
가보자, 또 떠나자.
날씨나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그 산이 거기에 있으므로.
거기에 다시 가서 콱 막힌 가슴을 뚫고 싶단 생각만이 내 머리를 지배한다.
산 좋아하는 친구 H가 그렇게 언급했다. 산 하나를 오르면 금맥 하나를 발견하는 거와 같다고.
역시 자연은 위대하다.
아무도 없는 홀로 산행, 먼길, 험한 암반 길이지만 한결 맘이 가벼워진다.
초록물 들여가며 뒤엉킨 사고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끝청.
금맥 대신 늙은 고사목이 반기는 산길이지만 역시 산은 자유의 터전이다.
중청 너머로 대청은 블라인드에 가려져 있다.
중청 대피소도 한적하다. 여기서 허기진 배를 채운다.
블라인드를 걷어올리니 대청은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모습으로 곧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있다.
한여름 장맛비에 대자연이 젖어드니 큰 사랑이다.
자욱한 안개 뚫고 홀로 대청봉과 조우하니 감당키 벅찬 사랑이다.
가도 가도 길 있어 아무 데건 발 내딛으라 하니 풍요한 행복이다.
아무도 없어 한산한 길이나 살갑고 그리운 이 누구라도 있으니 엄청난 행복이다.
나뭇가지 방울방울 맺힌 빗물 햇빛에 녹아지거나
서둘러 떨어져도 땀 식혀주니 감미로운 희열이다.
그런 사랑 그런 행복 그런 희열
마냥 느낄 수 있으니 이 산 곳곳마다 신선의 텃밭이다.
대청에서 단전 깊숙이 맑은 숨 들이마시니 설악의 뾰죽능선들이 마치 내 집 앞마당처럼 느껴진다.
외설악으로 향하며 왜 가슴이 탁했던가를 깨닫게 된다.
바라는 맘이 깊이 고이면 서운해지는 법이라 하지 않았던가.
모서리진 저 바윗길 모퉁이에 속 비집고 들어온 집착 덩어리 훌훌 떨쳐내자.
다 내려놓았다 싶었던 욕구의 꼬랑지가 손이 닿지 않아 더 가려운 등짝처럼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잖은가.
빗물 떨어지기 시작하는 희운각에서 하룻밤 유숙하며 필요와 욕심의 경계를 철저히 구분 짓기로 한다.
얼음물 같은 계곡에서 땀 씻고 옷 갈아입으니 만사가 편안하다.
이른 새벽, 번개와 천둥이 요란스럽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져 처마 밖으로 나서기를 망설이게 한다.
처음부터 무모한 여정이지 않았던가. 무얼 더 망설이랴. 가자, 공룡의 등으로.
산을 휘덮는 안개가 제 무게를 못 이기고 등성이에 걸친 운해로 머물기를 바라며 걸음을 재촉한다.
무얼 내던져도 찰나에 사라질 듯한 무너미고개에 살아 꿈틀거리던 욕구를 힘껏 패대기친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공룡능선에 들어서고 말았다.
하늘이시여! 당신은 정녕 제 편이고 저는 당신의 후손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하소서.
안전을 기원하지만 습한 암벽이 나를 더욱 작아지게 만든다.
결국 하늘도 기도를 들어주고, 공룡도 손을 들고 만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무모하게 대들면 힘깨나 쓰는 쌈꾼도 피하고 마는 법.
오르락내리락 반복하기를 거듭하니 빗줄기가 약해지기 시작한다.
공룡의 등줄기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길을 열어준다.
날 갤 때까지 안개 자욱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시절 있지 않았던가.
봄 올 때까지 겨울에 깔렸던 낙엽처럼 죽음 같은 고요를 내 삶인 양 인내했던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억수장마처럼 쏟아낸 오열로 가슴 깨끗하게 비워내고 밤하늘 우러른 적 있지 않았던가.
발버둥 치며 애태워야 할 것이 사사로운 욕구일 수는 없지 아니한가.
우러러 부끄럼 없는 신념이 부족했음을 왜 여태 깨닫지 못했던가.
봉우리 네댓 지나 숨 돌릴 틈 없이 또 나타난 암봉
풍상에 찢기고 눈비에 뒤틀린 볼품없는 고사목
아직도 갈길 머니 걸음마다 조심하라 다소곳이 일러주네
날카롭지만 호방하게 펼쳐진 첩첩 겹겹의 봉우리들이 삐죽 모나기까지 했던 지난 한 주의 삶을 부끄럽게 만든다. 용의 어금니와 흡사하여 용아장성이라 명명한 바위능선의 모습이 세상의 모진 세태들을 떠올리게 한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행이 있으면 불행도 있는 법.
어느 순간 평화에 금이 가고 위급이 행복으로 바뀔 수 있다는 면에서 산을 삶과 비견하곤 한다.
변화가 있고 반복이 있으니 생의 소중한 가치를 망각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꽤나 미끄러운 바윗길이지만 간간이 싱그러운 햇빛과 하늘을 찌를 듯한 암봉들의 자태가 펄펄 기운 넘치는 충만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안개와 비에 젖어 외설악 공룡의 등에 올라탔다. 혼자만의 여유로움, 나만의 특권이다.
그 특권을 한껏 누리는 중이다.
톱날처럼, 혹은 송곳처럼 파란 천을 뚫는 설악의 암봉들을 보노라면 설악은 역시 남성적인 면이 강하다.
쭉쭉 뻗어 하늘 향해 악수를 청하는 기개에 감탄치 않을 수 없다.
하늘을 떠받치는 기암절벽들은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장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닫혔다가는 열리고, 열렸다가는 다시 닫히는 모습에서 혹해서 변덕 심한 가벼운 이의 모습이 아니라
자유자재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명장의 전투력을 연상하게 한다.
다시 생각해도 오길 잘했다. 설악은 오늘, 보여줄 수 있는 자신의 모습들을 죄다 보여주고 있다.
가파르지만 넓디 너른 능선, 낙차 심한 절벽을 타고 오르는 반투명 안개
안개 걷히니 뚜렷이 나타나는 눈부신 암반
오르고 오르되 감상의 시야와 감동의 폭을 더욱 넓히게 된다.
산 아래 구름처럼 안개가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층층이, 겹겹이, 횡으로 굽이굽이 늘어선 등성이마다 구름 안개가 철철 넘쳐흐르는데 어찌 탄성이 흐르지 않을 쏜 가.
뿌연 안개 벗겨지며 드러난 금빛 암봉 우람한 근육 초록 치장에 드러내며 예 오느라 애썼다 푸른 미소 짓는다
지나고 나면 죄다 일장춘몽
그런 게 사는 일 아니던가
붉은 도포 화려하게 입었다가
흰 상복 걸치는 게
인간사 아니던가
만났을 때 손 잡아주고
함께 할 때 웃음 지며
끌어안고 쓸어주는 게
정의로움 아니겠는가
긴장했었나 보다. 마등령에 닿으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다시 안개비가 내린다. 몸이 노곤하긴 하지만 금강굴도 들러보기로 한다.
한 뿌리 두 줄기의 금강소나무가 수고했노라고 위안해주는 것 같다.
파르르 눈썹 떨려 더욱 시린 낮달에
이슬처럼 그리움 맺혀 나 얼른 돌아선다
다시 안개 젖어 빗물 되면 내리막 산길은
짙은 어둠에 빠르게 휘덮일 것 같아
다시 찾은 비선대 불어난 맑은 물에 온몸을 담그고 싶지만...
수량 불어난 외설악 계곡엔 폭염도 녹고 안개도 녹아 흐른다.
산에 계곡이 있고, 그리로 물이 흐른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오르려 떠나려 할 때 물 굽이쳐 배웅하는 곳, 떠나 땀에 젖노라면 막바로 그리워질 처소...
내가 추운 걸까. 좌정한 채 그대로 비를 맞은 청동불상이 한기를 느끼는 듯 보인다.
긴 산행을 마치니 하나의 해답을 얻는다.
속세에서 머리에 담고 가슴에 지녀 무겁기만 했던 건 결국 현실과 동떨어진 걱정 부스러기요, 스트레스 조각에 불과했었음의 깨우침.
아아! 그래서 산과 금맥을 동일시했던 거였나 보다.
때 / 여름
곳 / 한계령 휴게소 - 한계령 삼거리 - 끝청봉 - 중청봉 - 대청봉 - 중청대피소 - 소청봉 - 희운각 대피소 - 무너미고개 - 공룡능선 - 1275봉 - 나한봉 - 마등령 - 금강굴 전망대 - 비선대 - 신흥사 - 소공원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