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뜨거움을 식혀준
설악산 공룡의 한기

설악산 공룡능선 탐방 3

by 장순영




꽤 더운 날씨지만 무척 쾌청한 편이다.

한계령 휴게소 서북능선 들머리에서 일곱 친구의 길고도 높은 설악 등정이 시작된다. 날 선 암릉, 우람한 근육질의 설악 몸체가 바로 드러난다.


한계령 삼거리까지의 서북능선 오름길도 오색 못지않게 가파르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멋진 풍광 덕분에 감탄과 웃음을 머금고 산행할 수 있어 좋다.


어느새 중청이 보인다.


점봉산이 지척에 우뚝 솟아있고


구불구불 한계령 도로가 발아래로 이어진다.


어느 계절에 와도 설악산은 비경 그 자체가 감동을 일으키지만 그들과 함께라서 더더욱 멋지다.


남쪽을 둘러보거나 서쪽으로 눈길 돌려도 온통 산뿐이다.


오르내리길 거듭하여 끝청에 모두 모이니 옥색치마처럼 펼쳐진 하늘과 솜사탕 같은 구름이 환하게 반겨준다.


오늘 우리가 하룻밤 묵을 소청대피소가 보인다.


힘들다는 건 그만큼 정상이 가깝다는 증거라더군.

역시 맞는 말인가 보다. 창훈이 뒤로 중청이 보이고 그 뒤로 대청이 보인다.

거긴 벅찬 환희가 깃들어있는 곳

커다란 성취감과 만족을 주는 곳


중청을 지나고 대청봉이 코앞이다. 두 달만에 다시 보게 된다. 울산바위, 천불동, 공룡능선, 속초항...


당겨 잡은 울산바위가 막 샤워를 마친 것처럼 정갈하게 보인다.


중청에서 대청까지 600m, 중청대피소에 무거운 배낭을 풀고 설악의 정상, 대청으로 내처 걸음을 옮긴다.

여긴 눈만 돌리면 언제나처럼 가슴이 뛸 정도로 섹시한 모습들 뿐이다.

깎아지른 암릉들도 그렇고

화채능선 너머로 펼쳐진 동해도 그러하다.


푸근하고 아늑하다. 때마침 불어주는 바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신선하다.


하늘이 엷게 물감 발라 붓질한 캠퍼스 같다. 친구들과 땀 흘리며 오른 정상이라 여긴 희열이 가득 배어 있다.


내일 우리가 타야 할 공룡의 등줄기에 날이 잔뜩 서있다.


새벽 세시, 소청 대피소에서 기상하여 희운각으로 와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발 전에 나란히 앉았다.

새벽 설악에서 갓 시집온 새색시의 모습을 본다. 어제와는 또 다른 길, 공룡의 등에서 엎어지거나 넘어지면 더욱 고된 길이 될 것이다.


공룡능선은 다행히도 바람이 불어주고 시계가 뚜렷하여 한여름 산행의 버거움을 덜어준다. 신선봉에 오르니 날아갈 듯 몰아치는 바람이 제법 매섭다. 외설악과 동해안도 바로 발아래인 것처럼 가깝다.


범봉과 그 오른쪽 멀리로 울산바위

범선의 돛대처럼 우뚝 솟은 모습이라 범봉이라고 불린단다. 천화대 20여 개의 봉우리 중 주봉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쥐라기 공원을 보는 듯하다.

봉우리들과 나무와 하늘과 구름의 어우러짐이 천상의 무릉도원이라 부를만하다.


1275m

고행을 함께 하고 그걸 함께 극복한다는 건 무한한 동지애를 느끼게 하고 살가운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한다.

산이 좋은 많은 점 중의 하나가 그런 가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함께 하는 이들을 배려하고 챙겨주려는 맘이 절로 동하게 된다.


거대한 바위를 꺾어 돌면 색다른 비경이 펼쳐지므로 바로 거기, 그 자리에 시선을 합치게 된다. 공룡은 그 등에 우리 모두를 함께 태웠지 않았는가.

둘도 하나요, 나 자신이 우리 모두의 존재임을 새기게 하는 곳, 거기가 바로 산이고 산 중의 산, 설악에서도 바로 공룡능선이다.


이제 1275m 봉을 향해 가파르게 깎아지른 절벽길을 오르게 된다.


힘이 부칠 때쯤 되었지만 다들 힘든 내색 하지 않고 묵묵히 암벽길을 오른다.


오른다는 건 분명한 의미로움이다. 땀으로 얻어낸 결실이기에...

풍성한 수확을 얻은 농부의 심정, 힘들게 올라서 숨을 고르고 단전 깊이 새 바람을 흡입하면 바로 그러한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게다.


그토록 많이 올라왔음에도 부족한가 보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암벽을 올라 하늘을 접해야만 직성이 풀리려나보다.


1275m 봉을 내려서면서 공룡능선의 마지막 고봉인 나한봉이 보인다. 1276m로 1275m 봉보다 1m가 더 높다.

계속되는 바윗길, 흙길이라곤 전혀 없다.


말 등처럼 생긴 마등령 오른쪽 뾰족 삼각봉이 세존봉


다리에 힘이 빠져 내리막이 더욱 조심스러울 즈음이다.

꽤 많이 온 것 같은데도 대청과 중청이 바로 지척에 있다.


막바지 공룡능선의 오르막길

기온도 더욱 높아지고 몸도 무겁다. 그래도 서로를 끌어주고 당겨주며 남은 힘을 뽑아낸다.


우리 온길 뒤돌아보니 봉우리마다 우리 발자국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안개가 덮고 운해가 가려도 그 자취는 오로라처럼 찬란한 추억으로 늘 광채를 발할 것이 틀림없다. 구름이 깔리고 비가 쏟아질지라도 말이다.


"저어기 우리들 발자국 보이지?"


최 대장이 곳곳을 가리키며 설악의 명소들을 되짚어준다.


이제 설악골을 중심으로 외설악의 전경이 드넓게 펼쳐지고 세존봉이 코앞에 우뚝 솟아있으며 속초 해안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산객이여! 그대 혹여 시간 촉박하여 서둘러 내려가실 거라면 설악엔 오르지 마시라.

설악에서는 조급할 수가 없다. 바쁘다 하여 서두를 수가 없다. 절세 가경, 가는 곳마다 걸음을 붙들기 때문이다. 젊은 리즈 테일러처럼, 한창 시절 부룩 쉴즈의 육감미 넘치는 아름다운 몸매를 보고 어찌 그냥 칠 수 있는가 말이다.


정중앙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화채봉

이제 공룡의 등줄기에서 말등으로 갈아탈 때가 가까워온다. 왼쪽으로 칠성봉과 권금성이 보이고 화채봉 오른쪽으로는 만경대. 만경대 오른쪽으로 능선을 더 따라가면 대청봉이다.


마등령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다시 오르면 저항령을 지나 황철봉을 거치게 되고 다시 미시령까지 이어진다.

우리가 지나온 공룡능선을 휘이 둘러보고 우린 금강굴 쪽으로 내려간다.


설악이여! 그대들 멋진 봉우리들이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음이다. 설악의 곳곳에 숲과 바위와 계곡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다시 모여 또 올 수 있으리라.


금강굴, 비선대로의 하산길에 장군봉에 클라이머들이 암벽과 한 몸으로 밀착해있다.

올라가는 것도 의미로움이요, 내려가는 것 또한 의미일지니...


부디 멈춰 고여있지만 마시라.


생명처럼, 심장의 박동처럼 움직이고 또 움직이시라.


하산 완료, 설악동 소공원 상징, 곰 조각상까지 다 내려왔다. 무사히, 안전하게 산행을 마친 것 같다. 모두 건강해 보인다.




때 / 여름

곳 / 한계령 휴게소 - 한계령 삼거리 - 서북능선 - 끝청 - 중청 - 대청봉 - 중청대피소 - 소청대피소 - 희운각 대피소 - 무너미고개 - 공룡능선 - 신선봉 - 1275봉 - 나한봉 - 마등령 - 금강굴 - 비선대 - 와선대 - 신흥사 - 소공원 주차장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마주친 설악산 공룡, 이번엔 당당하게 맞상대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