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거칠고 모났던 파주 감악산

<국내 5대 악산, 경기 5대 악산> 감악산

by 장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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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개성의 중간지점에 있는 경기도 북서부의 파주시는 북쪽으로 임진강이 연천군을 끼고 흘러 한강과 만나는 한강 하류 지역으로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임진각과 판문점이 이곳에 있다.

감악산 가는 길, 설마리에 영국군 전적비가 있다. 6.25 한국전쟁 때 UN군으로 참전했던 영국군이 2개 대대의 병력으로 중공군 3개 사단을 거의 전멸시킨 설마리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1970년 후반에 미군이 일부 철수하고 기지촌이 쇠퇴하면서 대규모 신도시가 건설되었고, 남북화해의 분위기를 타며 인구가 증가하고 더불어 땅값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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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5 악의 하나로 산세가 험하고 폭포, 계곡, 암벽 등이 발달하였으며 파주시에서 가장 높은 감악산紺岳山은 양주시 남면, 연천군 전곡읍에 걸쳐 있는데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비춰 감색 바위산이라는 의미로 그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1667C63D4E5F6F1113 장마 직후라 거친 산이 더욱 거칠어졌다

인근 주민들은 감악산을 신령스러운 산으로 인식해 왔는데 태조실록에 의하면 조선 시대 궁중에서 봄과 가을에 국가의 안정과 평안을 위하여 별기은別祈恩이라는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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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까지도 이곳에서 참숯을 구워 내다 팔았다고 한다. 감악산에는 숯가마 터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있다. 조금 더 올라 화전민이 주거했던 묵은 밭에 이른다. 이 높은 곳에서 밭을 일구고 숯을 구우면서 살았으니 얼마나 생활력이 강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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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의 흔적이 남은 감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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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AE8434E5F70B210 거친 너덜길이 계속 이어진다


인적이라곤 전혀 없이 한적하고 모질도록 거칠기만 하다. 온통 바위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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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336494E60258007 임꺽정봉 정상석에 맞춰 인증사진을 찍는 게 뻘쭘하다


통천문이라고 일컫는 석문을 지나 장군봉(해발 640m)에 올랐다가 봉암사 갈림길이 있는 안부 부도 골재를 통과하고 신선바위라고도 하는 병풍바위 밑에서 오른편으로 돌아 바위를 올라서면서 임꺽정봉(해발 676.3m)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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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4E494E6026E008 올라와서 보니 여긴 깊고 깊은 오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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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밑에서 올려다보는 임꺽정봉은 매처럼 생겨 매봉 혹은 응봉이라고도 부른다. 이곳 아래에는 너무 어두워 깊이와 넓이를 가늠키 어려운 굴이 있다. 설인귀 굴 또는 임꺽정 굴이라 부르기도 하며 일설에는 고려 말 충신 남을진이 고려 멸망 후 은거한 남선굴이라고도 전해진다. 남을진이 신선처럼 살던 굴을 줄여 칭한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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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은 경기도 양주 태생으로 지척인 이곳까지 활동지를 넓혔을 거로 추측할 수 있겠지만 평양성을 함락하고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설인귀는 왜 등장하는 것일까.

설인귀가 고구려를 칠 때 이 굴을 중심으로 진을 쳤다는 전설도 전해지거니와, 조선 세종실록 지리지 및 신 증 동국여지승람에는 지금의 파주시인 양주 적성현에 위치한 감악산의 산신을 설인귀라고 지목한다. 신라 사람들이 설인귀를 위해 사당을 세웠으며 이후 감악산의 산신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196628504E60287D14 정상의 군 초소

이들 세 사람의 공동명의로 된 굴에서 어름 골재를 지나 감악산 정상(해발 675m)에 오르자 헬기장과 군 초소가 있는 개활지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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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울타리 옆 돌무더기 위에 정상 표지석과 그 위로 오래되어 허름한 비석이 있다. 향토유적 8호로 지정된 이 감악산 비는 새긴 글이 모두 닳아버린 몰자비沒字碑이다. 비스듬하게 서 있어 빗돌대왕비라고도 불리며 일설에는 설인귀의 공적을 기리는 사적비라고도 하고 광개토대왕의 비라는 말도 있다. 근년에는 신라가 한강 변을 차지한 후 세운 제5의 진흥왕 순수비라는 설도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으니 역사학자들의 관심 대상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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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으로 시야가 열려 청명한 날에는 임진강 너머로 개성의 송악산이 보이고, 동두천의 소요산은 물론 동북쪽으로 철원의 금학산과 고대산이 보인다고 한다. 오늘은 가까운 양주의 불곡산도 흐릿하고 북한산과 도봉산도 어렴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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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을 끼고 있는 이 일대는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여서 전쟁의 상흔이 깊이 배어 있다.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의 지배권을 다투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각축장이었고 1010년 고려 현종 때는 거란군이 임진강 장단까지 침입하였는데 감악산 신사에 펄럭이는 깃발이 마치 많은 군마가 늘어선 것처럼 보여 더는 남침하지 못하고 물러갔다고 한다. 또 한국전쟁 때는 고량포 싸움의 격전지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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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바로 아래의 팔각정 전망대를 지나 내려가서 암릉과 노송이 잘 어우러진 까치봉(해발 560m)에 이른다. 이곳에서의 경관도 날만 좋으면 무척 수려한 곳이다. 북쪽으로 적성면 일대와 임진강이 보이고 멀리 북녘땅까지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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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83F4F4E604E7932 하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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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 여름

곳 / 범륜사 입구 - 운계 폭포 - 범륜사 - 숲 가마터 - 만남의 숲 - 장군봉 - 임꺽정봉 - 감악산 정상 - 까치봉 - 선고개 - 객현리 산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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