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수사도북 5산 종주(5-5)
국녕사가 내려다 보인다.
힘이 부처서인가 보다. 용암문이 예전보다 훨씬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대동문에서 오이 하나를 깨물고 곧장 걸음을 재촉한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흐릿해지니 평지에서나마 속도를 내야 할듯싶다.
다리가 떨리고 서있기조차 힘들어 조금만 내리막길이어도 게걸음이 되고 만다.
거리 감각마저 상실 직전이다. 용비늘처럼 길게 늘어진 성곽을 봐도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보이는 사람들마다 나처럼 힘들어 보인다.
가장 가까운 데로 내려가고 싶다. 졸리다. 아무 데나 쓰러져 눈 좀 붙이고 싶다.
숱하게 문을 지나도 밥 한 그릇, 커피 한잔 주는 집 없네. 북한산 인심이 이랬던가? 하긴 단골인데도 북한산에서 뭐 하나 얻어먹은 기억이 없군.
걷는지 기는지 모르지만 흐릿한 정신 스틱에 의지하다 보니 승가봉에 다다른다.
거기서 여유롭게 식사하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더라.
누군가 위를 보고 살면 한도 끝도 없이 불행하다더라. 밑을 생각하며 다리에 힘을 주자.
북한산만도 8할은 족히 걸었다고 봐야겠지? 이젠 철조망 통과하듯 누워선들 못 갈쏜가.
아아~ 이젠 도시가 그립다. 산이 아닌 속세가 더 좋아지려 한다.
맞아. 과유불급이었어. 내 능력에 맞으려면 아무리 못 잡아도 1년쯤은 더 산을 다닌 후에 했어야 했어.
노을 첩첩이 쌓이기 전에 난 내려가려네. 해 짧아진 늦가을 어둠 몰려와 내 몸 휘감으면 난 울적해질 것만 같으이.
족두리봉에서 잠시 무박 2일의 5산 종주에 대해 스스로 정리해본다.
오만에 대한 반성과 주제를 모르고 날뛰었다는 소크라테스의 불호령에 정신 가다듬고 마지막 하산길을 더욱 조심하게 된다.
내리막길이 1단 기어에 브레이크까지 밟은 대각선 갈지자 걸음이 된다.
잘 계시게! 어제오늘 다섯 산 수많은 봉우리들 중의 마지막 봉우리여!
속세로 향하는 길이 오늘처럼 반갑긴 처음이다.
날머리 불광동 쪽이 시야에 꽉 차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울컥 차오른다.
거기가 그대,
북한산이 아니었으면
저는 분명 슬그머니
걸음을 멈추었을 것입니다.
설악보다도, 지리산보다도 훨씬 더
그대를 사랑했기에
전,
죽을힘을 다 뽑아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렇다고 하더군요.
못할 게 가히 없는 거라고.
살아 진정한 친구 하나가 있다면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게 살아있는
우정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대와의 사랑을 지키려다
전,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단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사랑하다 다 못하고 죽으면 그건
정녕 완벽한 사랑이 아니란 생각에
전,
흐려지는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대와의 사랑,
그대와의 우정 지켜낸 지금
저는
복받치는 희열
끓는 그리움으로
마냥 뜨거워진 심신을 식히지 못한답니다.
곳 / 백운대 - 위문 - 만경대 - 용암문 - 대동문 - 보국문 - 대성문 - 대남문 - 문수봉 - 비봉능선 - 승가봉 - 사모바위 - 비봉 - 향로봉 - 족두리봉 - 불광 매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