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중앙의 명산으로 거듭나기를, 금학산과 고대산

강원도의 산 21

by 장순영

이데올로기의 틀로 갈린 남도 북도 아닌 강원도의 산,

전방도 일선도 아닌 우리나라의 산,

카키색 얼룩무늬가 아닌 노랑과 초록의 원색 물결이 넘실대는

금학산, 고대산이기를 진정 기원해 마지않는다.



군사 보급시설 같은 탐방로에서 산악 훈련 같은 산행을



아침 일찍 후배 계원이와 만나 부지런히 움직여 철원으로 향한다. 멀리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산행인지라 서둘지 않으면 온종일 시간에 쫓기고 차편에 쫓겨야 한다. 한국전쟁 당시 백마고지 전투의 현장, 후삼국 태봉국의 도읍, 철원에 들어서면서 정삼각형 형태의 우람한 봉우리를 보게 되는데 오늘 첫 산행지 금학산金鶴山이다.

국궁장을 지나 금학 체육공원을 끼고 오르게 된다. 막상 동송읍에 내려 지척에서 바라본 금학산은 과연 저 산이 947m나 될까 의심이 들 정도로 낮아 보였는데 막상 산속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훨씬 가파르고 험하다.

송학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정할 때 이 산을 진산으로 하면 300년 국운을 유지할 거라는 도선국사의 예언을 듣지 않아 18년 만에 패망한 태봉국, 후 고구려의 일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결국, 고암산을 진산으로 정한 궁예의 고집으로 왕건이 득을 보게 되었다.

인근 명성산으로 패퇴하여 거기서 생을 마감한 궁예의 한 서린 울음과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웃음이 간간이 들리는 총성에 묻히고 만다.

북서의 곡창, 철원평야가 드넓게 펼쳐있다. 중턱에서 숨 고르고 내려다본 동송읍은 정갈하기 그지없는 마을이지만 왠지 이북마을 같은 기분이 든다. 게다가 가끔 우리가 군사정보 수집을 위해 북파 된 HID 요원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최전방 지대라서 그럴까. 훈련 상황이겠지만 아까부터 포탄 울리는 소리가 더욱 그런 느낌을 갖게 하나 보다. 포격 소리 들리니 산행이 아니라 현역 시절 산악 훈련을 받는 기분까지 든다.


“설마 지뢰는 없겠죠.”

“난들 아나. 앞에서 스틱으로 잘 짚어가면서 걸어.”


설마 포탄이 이리 떨어지진 않겠지. 종종 우려도 든다. 여전히 퍼부어대는 포 울림과 소총 소리가 꽤나 거슬린다. 온통 경제 불안이 화두가 된 세상에 저렇게 예산을 낭비해가며 군사훈련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몹시 서글퍼진다.

가파름에 비해 비교적 부드러운 산세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래도 많은 바위가 곳곳에 널려있다. 500m 고지의 매바위는 형상도 눈길을 잡아끌거니와 철원 동송읍과 철원평야, 휴전선 방향으로 시원하게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전망장소이기도 하다.

금학산,고대산-매바위.jpg 매바위에서 철원 곳곳을 내려다보는데도 포탄소리가 요란하다


매바위 외에도 용바위, 칠성바위, 탱크 바위들이 있는 등산로 오르막은 수도권의 다른 산들과 달리 내내 척박하다. 예산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군사지역이라 그런 건지 정비에 소홀하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봄 진달래와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아직 이른 봄 추운 지역이라 진달래는 볼 수 없다. 고개를 돌리면 백마고지와 그 뒤로 북한 땅과 산야가 층층이 이어진다.

가파르고 거칠어 꽃 대신 화약 냄새 풍겨도 정상은 끝내 달콤하게 다가오는 법, 해발 947m 정상 바로 옆 5m 정도 위로 군 대공초소가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뒤로 지장산과 환희봉이 보이고 아래로 동송읍 마을 전체가 한눈에 잡힌다. 전방 고지의 군부대 지척까지 그리고 더 높이까지 등산로를 개방했다는 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금학산 정상에서의 조망.오른편이 지장산.jpg 금학산 정상에서의 조망, 오른 쪽 봉우리가 지장산이다


세상이 달라지면서 민간에 개방된 산, 금학산. 학이 막 내려앉은 산세라 하여 그렇게 이름 지었단다. 정상이 초병근무를 서는 군사시설인지라 오래 머물 수도 없어서 바로 대소라치 쪽으로 향한다.

내리막길 부지런히 걸었는데 곳곳이 참호, 군수품 보급시설에 그 길목도 군부대 위병소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어쩌겠나. 스스로 사단장이 되어 부대 사열 취한다고 생각해야지. 최전방 고지를 시찰하는 사단장의 시선으로 바라보자 안 보일 게 보인다.

폐타이어와 돌무더기로 구축한 진지, 그것도 적의 포탄에 절대 무방비일 것 같은 그런 산길을 지나면서 포탄이 날아올세라 자꾸만 허리가 굽어진다. 어차피 민간에 개방한 산이지 않은가. 기왕이면 화약 냄새가 아닌 풀냄새 풍기는 게 옳지 않겠는가. 최소한의 배려, 군 작전이나 경계근무에 폐해가 가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탄력적이고도 선진화된 군사문화가 아니겠는가. 당장 있으나 마나 한 진지를 모두 헐어버리고 깔끔한 등산로로 재정비하도록 지시를 내려야겠다.


“부관! 여기 대대장 불러.”


그렇게 지시하고 담터계곡 정상인 대소라치까지 왔다. 담터계곡은 포천과 철원의 경계이며 7km가량 고대산까지 이어지는 깊은 골이다. 사냥한 산짐승의 뼈로 담을 쌓았다고 해서 지어진 명칭이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추운 북쪽 지역이라서 금세 한기를 느껴 바로 일어서게 된다.


“가자, 계원아. 여기서 쉬려니 군대에서 10분간 휴식 취하는 느낌이 든다.”

“그땐 담배라도 피우지만.”


금학산과 고대산 중간지점쯤 되는 보개봉은 마치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최근접 지역 GP에 들어선 기분이 들게 한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하고 박격포 쏴대는 소리만 요란하다. 갑자기 이리도 못 가고 저리도 갈 수 없이 진퇴양난에 빠진 느낌이다.

포병훈련 시기에 맞춰 와서 더 그럴까. 뿌연 안개 너머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태어나 허다한 고뇌 이고 지고 이만큼까지 살아왔는데 생명 다하기 전에 저 땅의 산야를 접할 수 있다면 살아온 가치를 어느 만큼은 만끽할 것도 같은데. 그러려면 이번엔 누굴 불러야 하나.


“정은이랑 전화 연결할까요?”

“놔둬, 바쁠 텐데.”


편안한 육산 오르막을 20여 분 걸으니 시야가 트인 보개봉 정상(해발 877m), 거기서 먼 숲길이나 산그리메 대신 또 다른 군사시설을 보게 된다. 다행히 내내 들리던 포탄 소리는 그친 듯하다.



이 고지 저 능선에 화약 냄새 대신 꽃향기 풍기기를


지나온 금학산의 자태가 어엿하다. 다시 둘러보면 북녘의 철원평야와 수도 없이 펼쳐진 산야, 지장봉, 북대산, 향로봉 그리고 한탄강 기슭의 종자산들이 시야에 잡히는데 그중에서도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인 백마고지에서 눈길이 머문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철원평야의 요충지 395m 고지에서 벌인 백마고지 전투는 세계전쟁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치열하였다. 국군 제9사단은 당시 열흘간 중공 제38군의 공격을 받아 12차례의 쟁탈전을 반복하여 7회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수행한 끝에 백마고지를 확보하였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제38군은 총 9개 연대 중 7개 연대를 투입하였는데, 그중 1만여 명이 전사 혹은 다치거나 포로가 된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국군 제9사단도 총 35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보고되었다.

숨 막힐 정도로 치열했을 전투를 연상하다가 고개를 돌린다. 뭉게구름 아래로 캬라멜고개가 있는 광덕산부터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과 제2봉 명지산이 좌우로 펼쳐졌다.

고도차가 크지 않아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고대산 능선도 편하게 걸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고대산 정상과 삼각봉, 대광봉이 나란히 늘어선 모습을 보고 걷게 된다. 방어진지라기엔 허술하게 쌓아진 돌무덤을 따라 오르게 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궁예 성이라고도 일컫던 보개산성의 유적이란다. 궁예가 왕건을 피해 와신상담 이를 갈면서 은거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설이 담긴 길을 따라 오른 고대산 정상 일대에도 군 막사가 자리하고 있다. 관점을 살짝 달리하면 산정에 군사시설이건, 통신시설이건 혹은 아파트가 세워졌다 한들 불만 거리가 아니란 생각도 든다. 산은 세상을 기준으로 위아래로 구분한 하늘과 땅을 반반씩 모두 공유한 곳이거늘 그 꼭대기에 인위적인 무엇이 있다 한들 그 호사스러움에 생채기 입겠는가.

헬기장 옆으로 해발 832m의 자연석에 고대산 정상 높이를 표기해 놓았다. 군사분계선 내의 백마고지와 그 너머 북녘 산야를 바라보다가 삼각봉으로 건너뛴다. 불과 5분여 거리의 봉우리다.

내처 대광봉까지 찍고 하산로로 접어든다. 휜 소나무 둥지에 칼바위 능선이란 팻말이 걸려있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암반지대가 이어진다.

말 등에 많은 바위 짐을 실은 말등바위를 지나 해거름이 깔릴 무렵에야 고대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였다. 뒤돌아 내려온 길 올려다보면서 쉽게 가라앉지 않는 아쉬움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세월 길게 흐르지 않았을 즈음, 인간의 이기利己를 위해 덧씌운 인위적 틀이 모두 사라진 모습, 자연에 가장 가까이 되돌려진 분위기를 이 산에서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데올로기의 틀로 갈린 남도 북도 아닌 강원도의 산, 전방도 일선도 아닌 우리나라의 산, 카키색 얼룩무늬가 아닌 노랑과 초록의 원색 물결이 넘실대는 금학산, 고대산이기를 진정 기원해 마지않는다.

해 저무는 고대산 하산길이 스산하다


핏빛 토혈하며 해 저무는 최북단 마을

서둘러 떠나지 마오 손짓하듯

저 산등성이 석양 녘 긴 그림자

여운처럼 드리우는데

가야 할 낸들

희끗하게 머리 빠진 갈대에라도

지는 노을 붙들어 매고 싶지 않겠소.

예서 보낸 한나절

이곳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길 길 있다면

지금 저 주홍빛,

먹빛으로 바뀌기 전에

숨찬 목 부여잡고라도

내처 뛰고 또 뛸 수 있을 텐데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


금학, 보개, 고대, 삼각, 대광봉. 곳곳 봉우리, 군데군데 벙커와 군사기지를 거쳐 내려오자 문득 맥아더 장군의 말이 떠오른다.


“수고했어, 부관.”

“충성! 수고하셨습니다. 사단장님!”


그제야 여전히 최전방 군사경계선 순찰을 막 마친 사단장 같은 착각에서 벗어난다. 고대산 날머리 북단 마을 신탄리가 정치사상과 관계없이 이북 최남단의 마을처럼 여겨진다. 경원선 열차는 플랫폼을 건너가면 동두천이나 의정부가 아니라 묘향산이건 장백산이건 쉬이 갈 것처럼도 여겨진다.

휴전선 인근 마을 동송에 아우성 같은 포성 대신 사람 발길 흥건한 장터가 서고 금학, 고대산에는 군사시설들이 모두 철거되어 우리나라 최북단의 산이 아니라 한반도 중앙에 자리 잡은 명산이기를 거듭 기원해본다.



때 / 초봄

곳 / 철원 동송터미널 - 금학정 - 매바위 - 금학산 - 담터계곡 - 보개산 - 문바위 - 고대산 - 삼각봉 - 대광봉 - 칼바위 - 고대산 매표소 - 신탄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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