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인자중, 학문에만 몰두한
서인의 거두를 평하다

운장산, 구봉산 - 송익필의 호와 자로 이름을 지은 산

by 장순영

전북 진안에는 주천면, 정천면, 안천면 등 주자학朱子學과 관련된 인물들의 지명이 유독 많다.

조선 중기 주자학의 선구자인 우암 송시열의 스승이 김장생이며 그의 스승이 송익필이다. 송익필의 호가 구봉이고 자가 운장이라 송익필로 말미암아 운장산과 구봉산의 이름이 지어졌다. 그가 이 두 산에 머무름으로써 산의 명칭이 정해졌으니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고 산으로 들어가야 할 듯싶다.



"제가 눈을 뜨면 전하께서 놀라게 됩니다."


서얼 출신 유학자인 송익필은 가문의 정통성 문제에 대한 시비에 시달려야 했고 아버지 송사련이 안당 일족과 사림 인사들을 역모로 몬 것에 대하여 세간의 비난을 받자 관직을 단념하고 고향에서 학문연구와 후학 양성에 일생을 바친다. 당대의 문인 이율곡과 얽힌 에피소드가 들을만하다.


'천도책에 대해 힌트 좀 주십시오."


한 번은 율곡 이이가 과거장에 들어서자 응시자들이 시제였던 천도책天道策에 대해 물었다.


“고명하신 송 운장이 잘 아실터이니 그분에게 나아가 묻도록 하라.”


그러자 응시자들이 과거장에서 대거 빠져나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송익필은 율곡 이이, 송강 정철과 절친한 벗이었는데 율곡은 다가오는 국가의 환란을 짐작하고 선조에게 송익필을 끊임없이 천거하였다.


“송익필에게 병조판서를 맡기면 왜놈들은 공격할 마음조차 갖지 못할 것입니다.”


율곡에 대해 신임이 두터웠던 선조는 마침내 그를 만나보기에 이르렀고, 우여곡절 끝에 송익필과 대면하게 된 선조는 그의 학식과 경륜에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런데 선조가 보니 송익필은 눈을 감고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까닭을 물었다.


“경은 왜 눈을 뜨지 않소?”

“제가 눈을 뜨면 전하께서 놀라실 것 같아 염려되어 이리하옵니다.”

“그럴 리 있겠소? 어서 눈을 뜨시오.”


이에 할 수 없이 눈을 뜨자 선조는 그만 그의 눈빛에 놀라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눈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신하를 조정에 둘 수는 없다 하여 송익필의 중용은 무산되고 말았다.



신분의 굴곡에도 서인의 거두로 우뚝 선 운장 송익필


운장산 서봉으로 오르는 들머리 피암목재는 하얗게 덮였던 눈이 산객들에 의해 단단하게 다져졌다. 눈길을 밟아 활목재까지 오르고 또다시 조릿대 무성한 등산로를 따라 금남정맥 연석산과의 갈림길까지 올랐을 땐 턱까지 숨이 차오른다. 구봉산까지의 거리와 시간을 의식해서인지 보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좀처럼 줄이지 못하고 걸어온 것이다.

52. 서봉은 진안고원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멋진 전망장소다.jpg 서봉은 진안고원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멋진 전망 장소다
대둔산에서의 산그리메 조망, 노을이 물들기 시작한다 (2).jpg 칠성대에 올라 바라보는 산그리메


서봉인 칠성대(해발 1120m)에 올라서야 호흡을 안정시키자 진안고원을 실감하게 된다. 호남의 알프스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곧 닿게 될 운장대도 지붕만 살짝 드러냈다. 눈앞의 연석산부터 멀리 지리산까지 골마다 운해가 고여 멋진 산그리메를 연출하는 장관에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이렇듯 멋지면 바라보게 되고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왕조차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는 그는 도대체 어떤 눈빛을 지녔을까. 운장 송익필을 다시 떠올리며 그의 몽타주를 상상해본다.

예학 禮學에 밝았으며 당대 사림의 대가로 손꼽을 만큼 정치적 감각까지 탁월했던 송익필은 서인세력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한다. 자신의 학문과 재능에 대해 자부심이 강했으며 벼슬길에 나서지 않은 사림의 처사로 고매하게 행세하였다. 그의 학맥은 김장생의 아들 김집을 거쳐 조선 숙종 때 노론의 영수 송시열까지 이어진다.

송익필은 할머니 감정甘丁이 안 씨 가문의 노비이자 첩이었기에 당시 미천한 서자의 신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송사련이 안처겸을 역모로 고발하면서 공신에 책봉되고 당상관에 올라 송익필과 그의 형제들은 유복한 환경에서 생활했다.

선조 19년인 1586년, 동인들의 충동으로 안 씨 집안에서 송사를 일으켜 안처겸의 역모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송익필과 그 형제들을 포함한 할머니 감정의 후손들이 안 씨 집의 노비로 환속되자 그들은 신분을 숨기고 도피하였다.

당파싸움이 급급하던 시절엔 특히 반전이 거듭되는 게 역사의 단면이다. 1589년 기축옥사로 정여립을 비롯한 동인들이 제거되자 그의 형제들도 신분이 회복되었다. 그 때문에 기축옥사의 막후 조종 인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뒤에 동인들을 비난하는 과격한 상소에 관련된 혐의로 희천으로 유배되었다.

1593년 사면을 받아 풀려났으나 일정한 거처 없이 벗과 문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불우하게 생을 마감한다.




구름에 가려진 시간이 길어 운장산雲長山이라 칭했다더니 오늘도 그 시간대에 속해 온통 안개구름으로 덮여있다. 키 큰 산죽밭을 헤쳐 걷고 구름을 뚫고 걸어 운장대(해발 1126m)에 도착해서야 막 건너온 칠성대의 겨울 나신을 대하게 된다. 동봉도 몸체를 드러내고 마중 나온 모습이다.

산 아래도 안개가 걷히는 중이다. 몇 해 전 여름에 운장산을 산행하고 저 아래 계곡에서 피서의 진수를 맛보았었다. 암벽과 숲에 둘러싸인 주자천 계곡은 차고 맑은 물이 12km를 흐른다. 특히 계곡 입구인 운일암 반일암은 뜨거운 여름에도 한기가 서릴 정도의 심산유곡이라 겨울에는 하루에 두 시간 정도만 햇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기암 절경을 이루는 계곡 깊숙이까지 들어가 거울처럼 맑은 옥수를 즐겼던 때를 회상하며 송익필 선생이 지은 한 수 시 '산길을 가다'를 감상한다.


산을 가다 쉬는 것을 잊고 앉았다 걷기를 잊어 山行忘坐坐忘行(산행망좌좌망행)

소나무 그늘 아래 말을 세우고 물소리를 듣네 歇馬松陰聽水聲(헐마송음청수성)

내 뒤에 온 몇 사람이 나를 앞서 갔는가 後我幾人先我去후(아기인선아거)

각자 그칠 곳에 돌아가니 또 어찌 다투는가 各歸其止又何爭(각귀기지우하쟁)


확인되지 않은 야사에는 송익필 선생이 이순신 장군에게 병법을 지도하여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는 말도 떠돌고 자신이 기거하는 집으로 명나라의 이여송을 불러들여 조선에서 헛된 짓 하지 말고 물러가라며 호통을 쳤다는 일화도 끄집어내고는 있으나 역시 근거가 약한 일화일 뿐이다.

그에 대한 흐릿한 인식을 거둬내고 점점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지리산과 덕유산까지 찬찬히 훑어보다가 동봉인 삼장봉(해발 1133m)으로 넘어간다. 구름을 벗어난 햇빛이 아직도 남은 골의 안개까지 들춰내면서 진안고원의 산줄기들은 찬란한 은빛으로 반사된다.


“북한의 개마고원도 이만큼 멋질까.”


뜬금없는 생각을 하며 한참을 걸어 각우목재 임도로 내려섰다가 걸음을 빨리해 곰직이산에 닿는다.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리본이 없었거나 누군가 표지판에 낙서처럼 써놓지 않았다면 곰직이산인지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여기서 마이산의 두 개의 말귀,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을 눈에 담고 다시 임도로 내려가 복두봉(해발 1018m)으로 올라간다. 운장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임도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고 2.7km 거리의 구봉산 정상과 그 너머 용담호까지 시야에 잡힌다.



설경과 운해, 단풍이 일품인 아홉 봉우리


첩첩 산줄기 끝으로 길게 늘어선 지리산의 신체를 더듬으며 흠뻑 추억에 젖어든다. 왼편의 중봉과 천왕봉에서 반야봉과 노고단까지 이어지다가 길게 서북 능선까지 애무하며 지리산에 대한 연정에 달라짐이 없음을 확인한다.

복두봉에서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내려왔는데 구봉산 정상 1km를 남긴 오르막부터는 꽤 가파르고 날이 바짝 섰다. 모자를 벗은 산객들의 머리에서 김이 오른다. 여기도 지리산처럼 정상이 천왕봉(해발 1002m)이며 구봉산의 9봉에 해당한다. 지금 보고 느끼듯 설경과 운해, 단풍을 꼽는 구봉산은 아홉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방향이 틀어졌으나 용담댐 너머로도 웅장하기 이를 데 없는 지리산과 덕유산을 아우를 수 있고 만덕산, 명덕봉, 대둔산을 선명하게 내다볼 수 있다.

내려다보는 1봉과 8봉이 오밀조밀한데 9봉을 뺀 여덟 봉우리의 고도차가 별로 없지만 오르내림의 경사가 심한 편이다. 그사이에 얹힌 듯 보이는 출렁다리가 아찔하게 느껴진다. 여기에서는 용담호 담수가 선명하다. 반가운 초면이지만 오래 지체할 수 없어 천왕봉과 악수를 하고는 바로 내려선다.

53. 8봉에서 지나온 7봉 쪽을 바라보며 숨을 돌린다.jpg 8봉에서 지나온 7봉 쪽을 바라보며 숨을 돌린다


널찍한 공터에 산죽이 풍성한 돈내미재 갈림길을 지나 8봉으로 향한다. 하산로에서 비켜나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 8봉(해발 780m)을 찾아 올라서 천왕봉에 손을 흔든다. 다시 갈 방향을 살피는데 송익필 선생의 형형한 눈빛을 본 것처럼 정신이 바짝 들고 만다. 절벽과 절벽의 이음, 온통 암벽으로 형성된 봉우리들이 하얀 적설과 함께 긴장의 끈을 붙들게 하는 것이다. 조심조심 커다란 노송이 눈에 띄는 7봉(해발 739.8m)에 닿았다.

천 길 단애 몸 비틀어 기대서서

얼어붙은 솔향 대신 눈가루 흩날리며

세월에 몸 맡기니 짙은 운해 걷히면서

황토색 속살 의젓하게 드러난다


암봉 옆으로 설치된 계단에서 암벽에 밀착한 소나무들을 보며 6봉(해발 732m)을 지난다. 5봉에서 돌아보면 구봉산 아래로 이어진 8봉부터 6봉까지의 하얀 산세가 섬세하고도 무척 아름답다. 5봉에서 4봉으로는 아까 위에서 보았던 구름다리를 건너야 한다.

구봉산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붉은색의 산악형 보도 현수교가 해발 740m 고지에 있어 사방 조망이 가려지지 않는다. 길이 100m, 폭 1.2m 규모로 150명까지 교차 통행이 가능하다.

4봉(해발 752m)으로 건너 2층 전망대 누각인 구름정에서 안개 걷힌 산야를 둘러보고 3봉(해발 728m)으로 넘어간다, 돌무더기 쌓인 2봉(해발 720m)을 찍고 튼실하고 멋진 소나무가 있는 1봉 정상까지 떨어지듯 내려섰다가 오르기를 반복하게 된다. 1봉에서 주차장이 내려다보이자 절로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바쁘게 몰아쳐 걸어온 두 산이다.

잠깐 되돌아가 1봉과 2봉 사이의 하산로로 내려서며 다시 인식되는 송익필 선생을 나름대로 정리해본다.

자신의 조상에 대한 사죄의 마음으로 평생을 유랑하며 살았던 김삿갓을 견주게 된다.

송익필의 그가 갖춘 지식만큼 올곧은 사고를 지녔다면 보다 적극적이고 정의롭게 대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고인다. 그는 집안 어른의 무고로 인해 피해를 본 안 씨 일가에 대해 사죄의 심정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안 씨 일가와 세간의 비난을 피해 도피한 삶의 단면이 도드라지니 그의 직관이나 사상이 자꾸 퇴색되는 것이다.

다시 올려다보는 구름다리가 멋지기도 하거니와 무언가 색다른 의미를 시사한다. 암릉과 암릉을 연결하는 이음이 세상의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로 잇는 것처럼.

54. 날머리에서 올려다보는 구봉산일대가 아스라하다.jpg 내려와서 올려다보는 구봉산 일대가 아스라하다



때 / 겨울

곳 / 피암목재 - 활목재 - 칠성대(서봉) - 운장대 - 삼장봉(동봉) - 각우목재 - 복두봉 - 구봉산 천왕봉 - 8봉 - 1봉 – 양명 마을 - 구봉산 제2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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