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흐름에 굴절되지 않고
두문동으로 흘러들다

금대봉, 대덕산 - 멸망한 고려의 두문동 72현을 더듬는다

by 장순영

강원도 태백과 정선 경계에 있는 해발 1268m의 높고도 큰 고개, 재작년 겨울 함백산을 오르면서 들머리로 삼았던 두문동재를 다시 오게 되었다. 두문동재에 오면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세상이 바뀌고 시대환경이 바뀌면 새로운 기회로 여겨 입신영달을 꾀하는 이가 있고 그 환경이 맞지 않아 떠나는 이도 있다.

서기 918년, 송악(지금의 개성)의 대호족 출신 왕건이 자신의 군주였던 태봉(후 고구려)의 궁예를 제거하고 건국한 고려는 공양왕 때인 서기 1392년, 그 400여 년의 시대를 접게 된다. 조선 왕조가 들어선 것이다. 새 나라, 새로운 왕실에 맞춰 옷을 갈아입은 신하들이 새로운 시대를 찬양하며 공신의 자리에 등극한다. 반면 이미 저버린 태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시대의 그늘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신하들도 있다.

격랑이 요동치던 시대, 고려의 신하들은 서로의 사상에 따라 극단의 길로 갈라섰다.


“결단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사군이충의 신념을 목숨처럼 받들었던 고려 충신들은 조선 왕조의 유혹에 회유되지 않았다. 그들은 평민복으로 갈아입고 삿갓을 쓰고 도읍 개성을 등졌다.


"비록 해는 졌어도, 다시 떠오르진 않더라도, 차라리 초계에 묻혀 죽음을 맞이할지라도 그들과는 같은 곳에서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없다."


그렇게 물결처럼 흘러들어 간 곳이 두문동杜門洞이다. 문을 닫고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산다는 의미, 이렇게 해서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당시 두문동에 들어간 고려 유신들에 대해서는 영조실록, 두문록, 두문동 72 현록 등 많은 문헌에 기록으로 나타나 있다.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이는 400여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문헌마다 일치하지는 않는다. 두문동으로 들어간 당대의 내로라하는 학자들, 우현보, 조의생, 이숭인, 원천석 등 '두문동 72현'에 대한 행적도 야사에 떠도는 일화 외에 정사에는 그 기록이 거의 없다.



세상과 연을 끊고 천상의 화원으로

이른 아침인데도 햇살이 창창하다. 탐방지원센터에서 예약 확인을 하고 탐방 허가증을 받아 초록 숲길로 들어선다. 오늘 산행 구간은 서식지 훼손이 가중되기 쉬운 곳이라 자연 자원 및 생태계를 보호하고자 탐방 예약제를 운용하고 있다. 조금 귀찮기는 해도 가는 길이 천상의 화원인지라 충분히 공감한다.

태백 12경 중 한 곳인 금대화해金臺花海에 발을 내딛자 푸근한 안정감이 생긴다. 완만한 오솔 숲길을 느긋이 걷는데 걸음을 멈춰 자꾸 허리를 낮추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새 며느리밥풀이라고도 하는 동자꽃 두 송이가 마치 쌍둥이처럼 아기 웃는 모습으로 어리광을 부린다.

동자꽃의 수수함이 기분을 아늑하게 해 준다
선자령 금마타리.jpg 금마타리가 정겹게 다가왔다


보라색 꽃잎에 바짝 카메라를 들이대고 접사 했다가 다시 허리를 굽히게 된다. 나리꽃, 말나리, 노루오줌의 연이은 재롱을 받아주느라 바쁘다. 다양하고 희귀한 식물들도 지천에 널렸지만, 이 지역은 희귀 동물들까지 살아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환경부가 주관하여 1993년부터 2년간 자연자원조사를 했는데 우리나라 고유 특산식물 15종과 16종의 희귀 식물이 자생하는 걸 알아냈고 참매, 검독수리 등의 천연기념물을 발견하였으며 그동안 몰랐던 희귀 곤충 13종도 기록에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귀하니 소중하고 소중하니 조심스럽다. 이슬 묻어 촉촉한 들꽃들도 조심스럽긴 매한가지지만 상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싱그럽기 그지없는 숲 갈림길에서 금대봉으로 향한다. 이 길 아래에서 화전민들이 불을 놓고 이곳에서 맞불을 놓아 진화함으로써 밭을 일구었는데 그래서 금대봉 오르는 이 길을 불을 바라본다는 의미의 불바래기 능선으로 부르기도 한다.

백두대간 마루금인 이 길의 급경사 구간을 거쳐 대간의 길목이자 불바래기 능선의 정점인 금대봉 정상(해발 1418.1m)에 닿는다. 행정구역상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에 위치하는 태백산 국립공원 구역이다. 2016년 태백산이 국내 스물두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곧 가게 될 대덕산, 검룡소 일대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편입되었다.

은대봉에서 중함백과 함백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마루가 마냥 푸릇하다. 재작년 겨울 온통 하얗게 덮인 백설을 헤쳐나가며 태백산까지 산행했던 때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이곳의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고 엄청 춥다. 그들은 폭설과 혹한의 겨울을 어떻게 보냈을까. 다시 두문동으로 들어온 고려 유신들을 떠올리게 된다.




태조 이성계는 두문동에 은거한 유생들이 건국 조선에 힘이 되어주길 원했다. 과거시험을 치러서라도 몸을 숨긴 학자들이 새 왕조체제에 들어왔으면 했으나 단 한 사람의 유생조차 응시하지 않았다. 조선의 신하 되기를 거부한다는 의미의 부조현不朝峴이라는 말이 이때 생겨났다. 그 후 조선시대 내내 향시와 같은 초급시험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과거시험도 열리지 않았다.

두문동에 들어가 두문불출한 72명의 충신 대부분은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여생을 보내게 된다. 그들 가운데는 아예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첩첩 두메산골로 숨어든 이들도 있었다.


"난 백이숙제처럼 살다가 가리라."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교분을 맺으며 학문을 높였던 전오륜이 여기서 가까운 정선에 은거한 때도 이 무렵이다. 이성계를 중심으로 정도전, 이방원, 조준, 남은 등이 왕위 찬탈을 꾀할 즈음 고려의 끝을 예견한 전오륜은 두문불출하며 망복지신罔僕之臣으로 절의를 지키리라 다짐한다.

정선 서운산으로 들어가 은거 생활을 한 전오륜은 고사리로 연명한 백이숙제伯夷叔齊를 흠모해 호를 채미헌採薇軒이라고 지었다.


"나라를 잃은 죄인이 어찌 태양을 보겠는가."


나무로 엮은 움막에 살면서 곧은 절의를 마음에 새겼고 밖에 나갈 때는 패랭이를 눌러쓰고 다니면서 해를 가렸다.

그가 오롯이 절의를 지키며 머문 골짜기가 백이산과 서운산 아래의 거칠현동居七賢洞이다. 이곳에 전오륜과 함께 은거했다는 김충한, 고천우, 이수생, 신안, 변귀수, 김위의 이름이 새겨진 칠현비七賢碑가 있다, 두문동에서 더 깊숙한 산골로 피해온 일곱 명의 고려 유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정상에서 오른쪽 매봉산으로 가다가 고려 칠현이 머문 방향으로 눈길을 주었다가 왼편 고목나무 샘 쪽으로 내려선다. 마타리, 둥근이질풀, 참취 등 널널하게 핀 야생초들의 환대를 받으며 금대봉 탐방안내소를 지날 때까지도 바람 한 점 없이 청초한 푸름과 간밤 이슬을 말리는 햇살만 반짝일 뿐이다. 탐방객도 뜸해 걷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아 좋다.


"아아, 세상에 이런 광경이 있다니."


웅장한 산세를 배경 삼아 초록에 섞이고 바람에 동화되어 흔들거리는 붉은 꼬리의 물결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한동안 범꼬리 군락에서 걸음을 멈췄다가 고목 아래의 샘으로 내려설 때까지 자꾸 고개를 돌리게 된다. 이 샘에서 솟은 물이 땅속으로 스미었다가 저 아래의 검룡소에서 다시 솟으니 진정한 한강의 발원지는 여기 고목나무 샘이라 할 수 있겠다.

고목나무 샘을 거쳐 빼곡하게 군락을 이룬 전나무 숲에 들어서자 낮음과 높음이 그럴듯하게 아우러져 신비의 화음을 자아낸다. 흙에서 멀어지지 않으려는 들꽃을 보다가 하늘 높이 뻗은 전나무 숲을 지나면서 역시 서로 달라도 얼마든지 조화롭고 융화될 수 있다는 걸 되새기게 된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면 이념의 대립으로까지 치닫는 인간 세계의 일면을 끄집어내려 했던 거였을까. 두문동 현인들의 곧은 절개를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단지 자연처럼 어우러지지 못하는 인간 세계에 대한 아쉬움이 슬그머니 고이는 것이었다. 꽃을 대하면서 칼을 언급하는 건 분위기에 맞지 않으므로 이쯤에서 얼버무리고 만다. 쪼개지듯 이분법적 이념으로 상반되었던 거칠현동은 세월이 흐르면서 정선아리랑의 발상지가 된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수천 구절의 정선아리랑 노랫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가사가 첫 구절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이다. 고려 수도 개성의 만수산에 나라의 위기를 의미하는 검은 구름이 몰려든다고 노래했으니 정선아리랑이 바로 절의의 상징인 거칠현동을 묘사한 가락임을 알 수 있다. 그렇듯 세월을 넘어 거칠현동은 정선아리랑이 태동한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마도 시간에 구애되지 않았을 일곱 선비들은 자신들의 심정을 한시로 지어 같이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정선아리랑은 1971년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다.




다시 참나무 숲을 지나 동자꽃을 또 보게 되고 노란 달맞이꽃, 별 모양의 봉오리를 열어젖혀 분홍빛 수줍음 머금은 멍석딸기 등 다양한 들꽃들을 보며 분주령에 도착했다.

탐방 시작점인 두문동재에서 4.5km 지점이다. 탐방 내내 수목원을 걷는 기분이다. 고도 1200m가 넘는 산악 지대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길은 부드럽고 산세도 아늑하다.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기울기 완만한 초지에 이르자 파란 하늘이 활짝 열렸다.

대덕산 초원지대까지 올라오자 금대봉이 마주 보인다


야생화의 천국 대덕산 정상부에 올랐을 땐 역시 천상의 화원이란 표현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하늘에 인접한 넓은 풀밭은 사방 조망이 조금도 막힘이 없다.

말 그대로 지천에 야생화가 넘실대고 잠자리 떼가 낮게 날면서 야생화들과 쉴 새 없이 속삭인다. 말나리에 앉은 꼬리 제비나비가 제 꼬리를 높였다 낮추기를 반복하며 다른 들꽃을 흉보는 듯하다.

희고 고운 융단에 누워 목화솜 같은 구름의 가느다란 흐름을 보고 있노라면 스스로 천상의 제왕처럼도 느껴질 것 같고, 보이는 것 외의 다른 모든 것은 망각하게 될 것만 같다. 해발고도 1307.1m를 표기한 자연석이 그래도 여기가 낮지 않은 고산임을 주장하는데 여긴 세상에서 멀찍이 물러나 하늘로 진입하는 접점 지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KBS 송신소와 바로 옆에 함백산 정상부의 마루금이 뚜렷하고 백운산 능선이 안락하게 펼쳐져 있다. 다시 몸을 틀면 두위봉, 민둥산과 비단봉의 초록 몸통들이 뭉게구름과 어우러져 생생한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미나리아재비, 애기솔나물, 개망초 등의 야생화를 감상하고 꽃 향기 풀풀 풍기는 화원을 빠져나온다. 그랬어도 여전히 곱게 피어 늘어선 야생화 길을 따라 하산하게 된다.

삼거리에서 느긋이 검룡소儉龍沼 방면으로 걸어 수림 우거진 길을 따라 세심 탐방안내소에 이르러 출입증을 반납하고 검룡소로 향한다.

한강의 발원지로 1억 5천만 년 전 백악기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의 소沼로서 고목나무 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에서 솟아나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이곳에서 다시 솟아난다고 적혀있다.

오랜 세월을 거쳐 흐른 물줄기 때문에 깊이 1∼1.5m, 넓이 1∼2m의 암반이 구불구불하게 파여 있고 소의 이름은 물이 솟아 나오는 굴속에 검룡이 살고 있어 붙여졌다고 한다.

추정키 어려운 깊은 굴에서 하루 2000여 톤의 지하수가 용출되고 수온은 사계절 섭씨 9도 정도이며 암반 주변의 푸르게 돋은 물이끼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금대봉을 시작으로 정선, 영월, 충주, 양평, 김포 등 평야와 산을 쭉쭉 가로질러 서울을 비롯한 5개 시·도를 지나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였다가 다시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를 지나 서해로 흘러가는 총연장 514.4km 장강의 원천이다. 1987년 국립지리원이 한강의 최장 발원지로 공식 인정한 바 있다.

검룡소를 보면 세상사 모든 근원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란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근원은 종지에 담을 만한 작은 물방울이라지 않던가.

아주 작고 볼품없는 사사로움에서도 광대한 결과가 얻어질 수 있다는 걸 인식하자 요즈음 흔히 쓰는 금수저, 은수저의 비유가 떠오른다. 세상살이, 동수저로 태어나서도 얼마든지 동등한 경쟁력 속에서 우뚝 설 기회가 생기기를 소망해본다. 삽질 몇 번이면 메워질 수도 있는 한강의 발원지를 다시 한번 내려다보고 천상의 화원을 빠져나온다.


다시 뒤돌아보면

아득했던 그 산, 그 들꽃들

금대화해 이르러

거친 호흡, 굵은 땀방울

없어져도 그만일

짧은 흔적이겠지만

나는 가슴 깊은 곳에

줍고 쓸어 담아

고이 여미고

가지런히 포개놓게 된다.

눈에 가득 드리운 진초록 나뭇잎들

마음 가득 채운 무수한 야생화들

내려와 다시 그 산 올려다보면

흔적마다 온통 그리움이다.

저만치 가다 또 한 번 온길 되돌아보면

달빛 흐릿한 어둠마저

감동으로 울림 되어

가슴속 쿵쿵거림은

금세라도 눈물 되어

내 두 뺨 적실 것만 같다.

KakaoTalk_20220117_132124822_12 (2).jpg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검룡소 주차장인 안창죽에 닿자 하얀 꽃 전호가 하늘거리더니 어디선가 정선아리랑의 운율이 들려온다. 시대 흐름에 굴절되지 않은 도도하고도 진정한 절개가 노랫말에 올올이 맺혀 있다. 6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두문동, 거칠현동의 자취로 인해 정선아리랑은 더욱 구성지게 가슴에 와닿아 산행을 마치고도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때 / 여름

곳 / 두문동재 - 금대봉 - 분주령 - 대덕산 - 삼거리 - 세심 탐방안내센터 - 검룡소 - 검룡소 주차장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의 처절한 상흔을 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