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추락사,
이제는 진상을 명확히 규명해야

산에서 역사를 읽다_46

by 장순영

이야기가 있는 산 1

산에서 역사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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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1. 승자는 신화를 만들되 패자는 우울한 야사를 지어낼 뿐 / 7

2. 당대 최고의 선비, 멜로드라마의 주연으로 데뷔 / 18

3. “죽음은 견딜 수 없으나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 31

4. “나의 죽음을 적이 모르게 하라. 싸움이 시급하다.” / 43

5. 신라의 천년 고도, 서라벌의 선명한 발자취 / 54

6. 남부군 빨치산의 상흔이 서린 백두대간 호남정맥 / 69

7. “대왕께서도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 80

8. 내 평생 탐욕을 지녔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다 / 90

9. 내 아내 평강을 위해, 그리고 내 나라 고구려를 위해 / 99

10. 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의 처절한 상흔을 딛고 / 108

11. 대원군과 녹두장군의 밀월, 그 결과는? / 117

12. 길고도 험난한 피난길이지만 와신상담, 이를 악물고 / 125

13. 그들이 도둑이 된 건 그들 죄가 아니다 / 136

14. 한강 유역을 빼앗기며 주도권을 고구려에 내어주다 / 145

15. 상아덤에서 칠불봉에 이르러 탄생한 신화적 역사 / 154

16. 주초위왕 사건과 기묘사화로 끝내 뜻이 좌절되고 / 171

17. 지네와 뱀의 싸움으로 파로호에 수장된 희생양들 / 180

18. 수덕사에 도드라지는 신여성들의 강렬한 삶과 애환 / 192

19. 귀양살이의 불행을 고귀한 학식으로 승화시키다 / 205

20. 성공한 쿠데타라 해서 혁명으로 미화될 수는 없다 / 217

21. 부러질지언정 휘어져서 굽힐 수는 없다 / 233

22. 귀주대첩, 거란을 물리친 고려 영웅 / 243

23. “배갯머리에서 나랏일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습니다.” / 253

24. 시대 흐름에 굴절되지 않고 두문동으로 흘러들다 / 267

25. 남이장군의 요절과 그 죽음의 잔인성에 분노가 인다 / 279

26.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여인의 삶과 이념의 괴리 / 289

27. 그 시대의 다크 히어로, 이 시대의 진정한 레전드 / 301

28. 일개 범부가 취할 수 없는 극단의 판단과 행동 / 311

29. 제2의 한국전쟁, 북한의 침략이 코앞까지 다가왔었다 / 320

30. 산은 산 물은 물, 여긴 속세를 벗어난 신비경의 세상 / 330

31. 두 명의 천자를 낳을 수 있는 천혜의 묏자리 / 342

32. 역사를 거슬러서라도 세조의 왕위 찬탈을 막고 싶다 / 353

33. 근현대사를 소담스레 담은 익산의 숨결 / 362

34. 형언키 어려운 감명, 불뚝 선 자존감 한산대첩의 재연 / 373

35. 역사와 설화 그리고 현실이 신비롭게 버무려져 / 383

36. 충절인가, 애착인가! 살고자 시류에 편승할 수는 없어 / 392

37, 오청취당, 그녀의 혼은 결코 기구하지 않기를 / 401

38. 역사의 위인들, 이 산에서 거듭나다 / 412

39. 궁예성터에서 고려 건국에 이르는 흥망사를 읽다 / 424

40. 내 비록 귀양살이를 할지언정 아닌 건 아니다 / 433

41. 도학굴과 오형 돌탑을 보며 숙연해지다 / 446

42. 은인자중, 학문에만 몰두한 서인의 거두를 평하다 / 456

43. 김일성 왕조의 내리 세습을 이 산에서 예견하고 / 466

44. 의상대사 못지않은 내공, 홀로 돌탑을 쌓다 / 475

45. 1968년 1월 21일, 무장 공비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 / 483

46. 의문의 추락사, 이제는 진상을 명확히 규명해야 / 494

47. 백담사에 깔린 비참한 역사의 발자취 / 506




-46화 -

포탄 피해 오른 각흘산에서 억새 허리 휜 명성산으로

<각흘산 – 반독재투쟁에 앞장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38선을 많이 넘어선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숨은 듯 솟은 각흘산角屹山은 소의 뿔을 닮은 각흘봉이 있어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청정계곡을 품은 여름철 최고의 산행지라는 카피 문구를 접했고 빼어난 계곡, 부드러운 능선, 웅장한 바위가 삼위일체를 이룬 초여름 산이라기에 S 산악회 일정에 맞춰 각흘산을 찾았다. 한북정맥의 여러 산을 다니며 인근에 각흘산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올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이번에 그 들머리인 자등현으로 오게 되었다.

자등령紫登嶺이라고도 부르는 자등현은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과 강원도 철원군 서면의 경계선에 있는 고개로 동쪽으로 광덕산, 서쪽으로 각흘산이 마주하고 47번 국도가 이 고개 남북으로 포천과 철원을 잇고 있다.

산 일대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인근에 포 사격장이 있어 포 훈련을 쉴 것 같은 주말에 명성산까지 이어 내려가고자 일정을 잡은 것이다.

반독재투쟁의 아이콘 장준하 선생을 떠올리게 될 줄이야.


“장준하 선생에 대해 아시나요? 오늘 그분이 의문의 추락사를 하여 아직도 진실규명이 되지 않고 있는 약사령을 지나게 됩니다.”

산악 대장의 안내 멘트를 들으며 귀가 번쩍 뜨였다.

“아! 여기가 바로 그 산이었구나.”

일제강점기에 광복군 항일 독립운동을 했고 월간 사상계를 창간하여 지식인 의식개혁 운동에 앞장섰으며 박정희 유신 체제하에서 반독재 및 민주화운동을 이끈 장준하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바로 등산을 갔다가 실족사한다. 아니 그렇게 규정지었다. 여기 약사봉이라는 곳에서다.

장준하 선생은 1961년 월간 사상계 6월호를 통해 5·16 군사정권에 일침을 가한다.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한 후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고 스스로 약속한 이른바 혁명 공약을 군인답게 실천하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박정희 쿠데타 세력은 민정 이양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이후 18년간이나 군사 독재를 이어갔다.

특히 1972년 사실상 총통제인 유신을 선포하며 민주주의는 실종되고 만다. 장준하 선생은 이 시기에 무려 37번 체포되고 9번 구금되었다. 스스로 약속한 민정 이양을 파기한 박정희 쿠데타 세력에 장준하 선생은 분노했고 반유신 투쟁에 치열하게 투쟁한 것이다.

산악회 버스에서 내리자 자등현에도 광덕산 들머리인 광덕고개처럼 반달곰 두 마리가 반겨준다. 여기서도 주차장 맞은편의 박달봉 능선을 타고 광덕산으로 오를 수 있다. 즉 한북정맥이 광덕산에서 분기해 이곳 자등현을 통해 명성산을 지나는 명성 지맥으로 국내 최북단의 지맥이 이곳이다.

각흘산 진입로에 꽤 많은 리본이 걸려있다. 산은 존재함으로써 명성과 관계없이 사람들이 찾기 마련인가 보다. 군사 지역답게 경고 팻말이 어깨를 움츠리게 한다. 용화동 포병사격 표적 지역이며 경보용 적색 깃발이 게양되었을 때는 사격 중이란다. 노란색 바탕에 적색 문구의 경고 표지판이 설치된 지역은 포탄 낙하지역이라고 하니 색맹인 등산객들은 결코 혼자 와서는 안 될 산이라는 얘기다.

화약 냄새 대신 초록 상큼한 숲길과 바윗길을 고루 지나 고도를 높여가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시야가 열린다. 급한 경사가 있긴 하지만 짧게 끊어져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이 굽이굽이 곡선을 이룬다.

정상에 다가가면서 포탄 낙하지점이 근방에 있다는 팻말이 종종 눈에 띈다. 포격 훈련장에 산행을 허용하면서 군인들의 수고로움이 늘어났을 것이다.

곧이어 가게 될 명성산이 삼각봉을 내밀어 각흘산과 나란히 섰다. 산 아래로 용화저수지와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포탄을 뚫고 심란하게 도착한 정상(해발 838m)에서는 일말의 우려가 말끔히 가신다. 빗발치는 포격을 피해 안전한 평화구역으로 들어선 기분이 드는 건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조망권에 창창하게 트인 시계 덕분이다.

드문드문 적송이 있는 바위 지대 정상에서 사방팔방 눈길을 던진다. 경기 북부와 철원 및 화천 일대의 산들이 장쾌하게 이어져 푸름을 뿜어내고 있다. 왼쪽으로 낯익은 광덕산부터 백운산과 국망봉이 한북정맥을 굽이치게 한다. 또 오른쪽으 철원평야 위로 지장봉이 금학산으로 선을 이었다. 산이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등산객의 발길이 지속해서 이어진다. 사면으로 뻗은 능선을 내려서면서도 시선을 멀리 둘 수 있어 좋다. 산불이 옮겨붙는 것을 제어하기 위한 방화선으로 갈라진 능선이 마치 큰 구렁이의 꿈틀거림처럼 길게 이어진다.

57. 각흘산에서 명성산으로 길게 능선이 뻗어있다.jpg 능선의 등산로가 선명하게 명성산으로 이어진다


돌아보면 지나온 길들이 각인될만한 자국을 남기며 걸어온 것처럼 도드라졌다. 길게 굽이치며 꺾어지는 능선의 풍광은 질곡된 인생살이의 한 단면처럼 느껴져 한동안 아스라한 여운으로 남을 것만 같다.

그분의 추락사 의문을 거듭 더듬게 된다

각흘산 능선을 뒤로하고 명성산으로 향한다. 정상 일대의 밧줄 늘어뜨린 바위 구간을 내려서면 아늑한 능선이 이어진다. 적당한 완급의 능선을 오르내리다가 약사령으로 내려섰다. 약사령은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를 주소지로 하는데 각흘산과 명성산을 가르는 분기점이다. 여기에 이르니 어찌 아니 그러할까. 그분의 모습이 생생하고 그분의 많은 어록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는 힘이 제일이요, 힘이 곧 정의요, 힘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불행하고 부조리한 생각에 빠졌다. 관민을 막론하고 권력 만능, 권력 숭배 사고에 빠졌다. 힘은 정의를 가져야 하고 정의는 힘을 가져야 할 터인데 정의에 힘을 줄 수 없으므로 힘이 정의라고 떼를 쓰게 되었다.”

폭염이 전국을 휘덮은 한여름이었다. 36℃를 오르내릴 정도로 무더워 내키지 않았으나 장준하는 가까운 지인들의 등산 제의를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동행하게 된다. 늘 동행하던 그의 비서는 산악회 버스 자리가 꽉 찼다는 말을 듣고 동행하지 못했다.

그렇게 평소 산행을 함께했던 호림산악회 회원들과 이곳 약사령 계곡 입구에 도착하였다. 30여 분 계곡을 따라 올라가던 일행은 정오 무렵, 점심을 먹기 위해 등산로 진입 지점인 계곡 상류에 자리를 잡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장준하 선생님은 혼자 정상 쪽으로 올라갔어요.”

일부 목격자들이 그렇게 증언하였다. 이것이 함께 간 일행들이 그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선생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 두 시간 동안 장준하 선생과 함께 있었다고 주장하는 김용환 씨는 곧장 선생의 뒤를 따라갔다고 한다.

“12시 25분경이었어요. 일행들이 있던 지점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서 경계 근무 중이던 군인 두 명과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던 장준하 선생을 만났어요,”

군인들과 헤어진 뒤 김용환은 선생과 함께 산을 타기 시작해 약사봉 정상에 올라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산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이 빨리 내려가자면서 길도 없는 가파른 벼랑길을 고집하는 거였어요.”

그리고 장준하 선생이 소나무를 붙잡고 내려오던 중 나무가 휘어지면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다음날 경찰은 장준하 씨가 실족해 추락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검시뿐만 아니라 여러 정황상 실족사로 하기에는 의문점이 많았다.

추락 사고 지점은 산이 너무 험해 젊은 등산가들도 마음대로 오르내리지 못하는 경사 75, 높이 12m의 가파른 절벽인데 평소 안전을 중시하던 장준하 선생 혼자 아무런 장비 없이 내려오려 한 점, 사고 현장인 벼랑 위에 오를 때는 멀리 등산 코스를 돌아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등산 코스도 아닌 벼랑으로 내려오려 한 점 등이다.

장준하 선생의 추락사 후에 사인을 검토한 의정부의 한 병원에서는 선생의 직접적 사망 원인은 오른쪽 귀 뒤쪽에 있는 급소가 예리한 흉기에 찔린 듯한 후두부 함몰 때문이라는 소견을 발표하였다. 추락사인데도 전신에 골절상 하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해 8월 18일, 선생의 시신이 상봉동 자택으로 옮겨진 후 함석헌, 김준엽, 문익환, 문동환, 계훈제, 백기완 등 민주화운동 동지들의 요구로 시신에 대한 정밀 검안을 실시하였다. 이는 검찰 등 수사 기관의 개입 없이 유가족의 요청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세 사람의 의사가 참가했다.

여기서 양팔 겨드랑이에 피멍이 발견된 사실이 밝혀진다.

“이건 추락하면서 생긴 흔적이 아니에요. 두 사람이 양팔을 꽉 끼고 강제로 끌고 갈 때나 생길 수 있는 상처로 보입니다.”

또 하나는 허리 부분에 주삿바늘 자국이 있었다는 점이다. 몸에는 아무런 외상이 없었다. 의사들은 추락사일 수 없다는 소견을 냈으나 당시 유신 헌법에서 내세운 긴급 조치 9호가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는 시점이라 곧이곧대로 발표할 수가 없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장준하의 사인에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으나 경찰은 단순 실족사로 서둘러 이 사건을 종결하고 이 사건에 의문점을 제기한 기자를 긴급 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유언비어를 유포하거나 사실을 날조해 왜곡된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196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막사이사이상을 받기도 했던 그를 잠시 더듬어보다가 안타까움을 누르고 명성산으로 향한다.

후 고구려를 세워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승승장구 세력을 확장했다가 왕건에게 패해 명성산에 은거한 궁예가 왕건과의 최후 격전에서 대패하여 온산이 떠나가도록 울었다 하여 울음산으로 불리다가 같은 의미의 명성산鳴聲山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산에서 내려와 다시 산을 시작하니 그만큼 고도가 급해진다. 능선에 이르러 호흡을 가다듬고 목도 축인다. 좀 더 지나 무더위가 가시면 이 능선의 억새들이 꼿꼿하게 허리를 펴 제 빛깔을 뽐낼 것이다.

58. 철 이른 억새지만 곧 여물어 은빛으로 일렁일 것이다.jpg 아직은 철이른 억새가 곧 여물어 은빛 물결로 출렁일 거라고 속삭인다


용화저수지와 약사령으로 내려서는 삼거리에 이르면서 다시 추락사의 의문에 더욱 짙은 의혹이 생긴다.

그 후로도 조만후 국회의원이 장준하 추락 사건에 의문을 제기하여 경기도 경찰청에서 재수사했으나 다시 추락사로 결론지어졌다. 그런데 이곳 약사령 인근에 사는 임 씨가 카메라로 장준하의 시신을 촬영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는 시신의 형체가 높은 곳에서 추락한 사람으로 보기 어려웠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걸음이 무거워지는 듯하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틀어 300m를 더 가 명성산 정상에 이르렀다. 산안 고개 갈림길을 지나 명성산 정상(해발 923m)에 도착하니 반갑고도 감회가 새롭다. 세 번째의 만남이다. 가을 명성산의 억새 탐방과 겨울 눈꽃 산행에 이어 신록의 명성산을 접하게 되자 더더욱 친근감이 든다.

갈 길을 서두르자 강원도 철원에서 경기도 포천으로 넘어서게 된다. 두 구간의 경계점을 지나 삼각봉(해발 906m) 해태상과 재회의 반가움을 나눈다.

5. 삼각봉 뒤로 명성산 정상과 궁예봉이 보인다.jpg 삼각봉 뒤로 명성산 정상과 궁에봉이 보인다


“그동안 명성산에 산불이 나진 않았죠?”

주로 궁궐에 세운 해태상을 2008년 이곳에 세워놓은 건 산불 예방을 염원하는 차원에서다.

“내가 누군가. 산불을 물리치는 신이 아닌가 말일세.”

포천을 바라보는 해태상이 눈길도 주지 않고 대답한다. 명성산과 궁예봉을 묵연히 바라보다가 삼각봉을 지나자 초여름 햇빛 머금은 산정호수가 내려다보인다. 능선을 길게 걸어와 팔각정 아래 ‘1년 후에 받는 편지’라고 적힌 빨간 우체통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천년수千年水. 나라 잃은 궁예의 한을 달래주려는 양 눈물처럼 샘솟았다는 궁예 약수는 극심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다는데 굳이 ‘음용 금지’라고 적어놓지 않아도 먹을 리 없는 불결한 물이 한에 못 이긴 궁예의 피눈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궁예와 장준하, 시대가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한 사람은 반드시 진실을 규명해 역사에 의혹을 남겨두지 않았으면 한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대한 진실규명 조사에 다시 또 나섰다. 국가 차원에서 장준하 의문사 사건에 대한 조사는 1·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1기 진실화해위에 이어 네 번째 시도다.

최근 박지원 국정원장이 1960~1980년대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의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 서한을 보내며 진실화해위에 자료를 충실히 제공하겠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이번엔 진실규명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2기 진실화해위는 장 선생 사망의 타살 여부와 중앙정보부의 사망사건 개입 의혹, 국정원과 기무사의 관련 존안 자료 입수에 중점을 두고 조사할 예정이라니 한 번 더 기대해보기로 한다.

해가 구름을 비켜났을 때 은물결 넘실대던 억새밭에서 그 가을의 풍광을 기억하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힘에 겨워 가느다란 허리가 휘고 색도 누렇게 바랐지만, 곧 보란 듯 일어설 억새군락을 둘러보다가 억새 바람길의 긴 데크를 내려간다.

궁예의 울음이 폭포 되어 내린다는 등룡폭포에서 잠시 패자의 설움을 새겨보다가 아래 비선폭포를 지나고 식당 지대 골목길을 내려서서 산정호수에 이른다.

인공 조성한 관개용 저수지이지만 언제 들러도 늘 정겹고 푸근하여 대할 때마다 미소 짓게 하는 산정호수 푸른 물빛을 바라보는 것으로 산행을 마친다.

4. 산정호수에서 옛 추억을 더듬다가 명성산으로 향한다.jpg 산정호수는 고요하게 가라앉은 물살이 떠난 이를 다시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녔다


철쭉 꽃잎 모두 떨어졌으나 이 산,

녹음 짙어 더욱 푸르기만 하네.

골짜기 짙게 드리운 초록 향기,

소쩍새 울음소리

더없이 청아하기만 하네.

초여름 신록 딛고 오른 산정에서

땀에 젖고 계곡물에 젖었다가

다시 푸름에 젖는다네.



때 / 초여름

곳 / 자등현 - 각흘산 - 약사령 - 명성산 - 삼각봉 - 팔각정 - 억새군락 - 등룡폭포 - 비선폭포 – 산정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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