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전후하여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by 장순영

"난, 이 놈이 좋더라." 내 친구, S



신기하다.


늘 편안하게 친구들을 대하고 배려심도 많아서 넉넉한 풍모의 이미지가 트레이드 마크인 내 친구, S.

그런데 정치가 화두에 오르면 -그 스스로 정치를 소재 삼기도 하면서- 바로 얼굴이 붉어지며 목청을 돋운다. 조금 과장하면 지킬박사가 하이드로 변하는 모습이다.

선거철, 그것도 국회의원이나 광역시의원 보궐선거 같은 게 아니라 대통령 선거철이니 특수를 만난 듯하다.


대단하다.


가까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일수록 어떤 사안에 대해 본인이 소수의견일 때 직접 화두로 삼지 않거나 꺼리는 게 보편적 처세다. 그런데 이 친구는 매번 그걸 탁상에 올려 공론화한다. 동조하는 쪽수가 딸리니까 당연히 밀린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다.


"논쟁을 일삼는 사람보다 논쟁을 피하는 사람을 경계하라, "


얼마 전에 그런 문구를 카톡으로 받았지만 지금도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말에 속 깊은 내용이 있다면 더더욱 모르겠다.

굉장히 가까운 친구지만, 지금 함께 하는 자리에 자기 자신의 견해에 동조하는 정치성향을 지닌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서슴없이 화두에 올리는 S를 그 문구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친구의 그런 성향이 그의 다른 장점에 더해 호감을 갖게 한다. 논쟁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S의 전투력(?)이 그냥저냥 맘에 와닿는 것이다.

그는 똥을 보고 피한 적이 없었다.

내 기억에 딱 한 번, 그가 똥을 치우지 못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똥인지 된장인지 관심도 없었다- 바로 반성하면서 시정했고, 그 후론 똥과의 정면대결에서 정의를 택했었다.

그래서, 그는 고려 말 최영 장군 같은 이미지로 나한테 각인되어 있다. 최영처럼 무대포적인 단점이 없지 않지만, 최영처럼 무대포적이라 그를 무지 좋아한다.



너무나 확고한 자기 주관은 소신을 넘어 아집?


오늘도 정치, 아니 대통령 선거 얘기가 '참이슬' 소주에 삼겹살 안주처럼 따라붙었다.


"내가 딱 1분만 얘기할게, 잘 들어봐."


S는 자기 의사를 밀어붙인다.

늘 느끼지만 소신인지 막무가내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순간이다. 방송에서 나오는 정치발언과 다른 게 하나도 없다.

S는 가까운 친구들 -투표 성향은 완전 반대인 친구들- 을 앞에 두고도 자기가 선호하는 당의 대변인이 다수 국민들에게 그러하듯 호감을 끌어내지 못한다. 소리는 나오되 귀에 담는 친구들이 없으니 이걸로 술자리는 반쯤 개판이 된다.

그렇다는 걸 S도 잘 알고 N 또한 이런 사태로 여러 번 S와 부딪쳤었다. 자기 소신을 굽히면서까지 지기 싫어하는 N 역시 듣고만 있지 않는다. 그러면 괜히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마주 앉아 상을 찡그리며 S의 말이 멈추길 기다리는 N의 뻔한 반응도 막장드라마의 흐름처럼 흥미롭다.

S의 목소리 톤은 바리톤에서 테너로 높아지며 5분을 넘어선다. 아직 덜 먹은 찌개에 침이 튀어 들었던 숟가락을 놓게 된다. 어찌나 소리를 높이는지 3분쯤 지나면서 목이 쉰다.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이 듣고 있지만 누구 하나 귀 기울이는 자세는 아니다.


"저거, 말하는 게 10분이 넘겠는데."


반론을 제기하려는 N의 표정이 다부지다. 논쟁을 꺼리는 B도 여차하면 끼어들 태세다. D는 아예 체념 상태다. 그게 무어든 집착하듯 꽂힌 그들의 열정이 한편 부러우면서도 내겐 다소 무덤덤한 소재의 스토리 진행을, 그러나 덤덤하게 관찰한다.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가 크고 빨라서 말을 끊고 끼어들지 못하다가 S가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 N이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막바로 대응한다.


"말이야, 막걸리야?"

칼과 방패의 대결이 아니라 칼과 칼의 대결로 치닫고 만다.

딱 들어맞는 말도 지나치게 강조하면 반발력이 생기는 법인데 자기 논리를 상대에게 주입시키려 하면 과연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에게는 어떤 결과가 도출될까.

상대가 하는 말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귀머거리한테 소리를 지르는 건 소음에 불과하지 않을까.

경험에 의하면 지금 하는 말, 그 강한 자기주장은 딱 그 자리에 있을 때만 자기만족에 그치고 말더라. 누구나처럼 S도 그렇다면 허무와 자책이 따라붙는 후유증으로 이어질 게 자명하다. 숱하게 느끼면서도 -더 오래 살더라도- 고치기 어려운 처세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더 어렵더라. 아닌 얘기를 하는 상대에게는."


고려 말, 정몽주가 호감을 지닌 이성계와 갈라짐으로써 후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는 걸 더디게 한 건 서로의 이상을 일치시키지 못했기 때문 아니던가. 역사를 읽는 후세의 입장에서 판단할 때는 합치하지 못할 이견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의 대선이, 거기 나선 후보자들이 고려 말의 정치 수준조차 따라잡지 못하고, 가까운 친구들 간에도 삼겹살 탈 때까지 정치를 거론하며 언쟁을 일삼게 하는 거란 생각이 든다.

모름지기 정치란 그 나라 국민이 의식하지 못 할때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한다. 절대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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