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산 2
설악산의 기상변화는 단풍이 채 지기도 전에,
아니 절정일 때에도 백설이 덮는 것처럼
때때로 갑작스럽고 재빠르기도 하지만
대개 은밀하고 유순하게 진행된다.
설악산국립공원 외설악에 있는 토왕성폭포는 독주폭포, 대승폭포와 함께 설악산 3대 폭포로 명승 제96호이다. 3단 연폭의 폭포수는 상단 150m, 중단 80m, 하단 90m로 총길이 320m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장폭으로 신광폭포라고도 한다.
1970년 설악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이후 출입을 제한하고 겨울철 단 이틀 국제 클라이밍 대회 때만 개방해왔었다. 그러다가 2015년 전망대를 개설해 1km 가까이에서 토왕성폭포를 볼 수 있게 하였다.
900계단 올라 토왕성에 더 가까이
설악동 탐방지원센터에서 전망대까지 2.8km. 소공원에서 육담폭포에 이를 때까지 초가을 비 흩뿌리며 산안개 자욱하게 뒤따르는가 싶더니 이내 앞서가며 동해의 비릿함까지 풍긴다.
설악산 운무는 바다와 산을 잇는 가교이다. 또한 뭍과 바다를 하나로 버무려 지평선 혹은 수평선의 경계를 깡그리 지워버린다. 그런 안개가 너울너울 춤추며 출렁다리 아래까지 청량한 미풍을 동반하니 싱그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토왕성폭포의 폭포수는 칠성봉(해발 1077m) 북쪽 계곡에서 발원한 물이 토왕골을 이루어 비룡폭포와 육담폭포가 합류하고 속초시 상수원인 쌍천으로 흘러 동해로 유입된다. 이제는 만지면 무척 차가울 것만 같은 맑고 푸른 담과 소를 눈에 담으며 올라가게 된다.
침식작용에 따른 여섯 개의 포트홀 porthole로 형성된 육담폭포를 눈여겨보고 폭포 위 출렁다리를 지나 16m 높이의 비룡폭포를 마주 본다. 여기서 410m 거리의 전망대까지는 고도차가 심한 경사 구간이다.
데크 계단에서 나무숲 사이로 비룡폭포를 보노라면 과연 용이 살만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폭포수 속의 용에게 처녀를 바쳐 하늘로 올려 보냄으로써 가뭄을 면했단다. 폭포 밑에서 청승맞게 혼자 살다가 어여쁜 처녀까지 데리고 승천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비룡폭포에서 숨 몰아쉬며 900개의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이르자 표현 그대로 선녀가 흰 비단을 바위 위에 널어놓은 듯 아름답다.
해발고도 790m의 토왕성폭포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재작년 겨울 빙벽등반대회 때 개방일에 맞춰 왔다가 허탕을 쳤었다. 기온이 올라 등반대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비룡폭포에서 아쉬움만 가득 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천상의 비원祕苑이란 표현이 조금도 무색하지 않은 곳, 신광神光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걸 보면 토왕성폭포는 신이 허락한 이에게만 그 길이 열리는가 보다. 여러 바위 봉우리들 사이로 살짝 상체 일부만 드러낸 토왕폭을 보며 상사병만 더더욱 도진 채 돌아서고 말았었다. 계절을 달리해 보아도 참으로 우아하고 신비롭기는 마찬가지다.
석가봉, 문주봉, 보현봉, 문필봉, 노적봉 등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 봉우리들이 첨예하게 급경사를 이루면서 폭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언젠가 토왕성폭포로 올라 칠성봉을 찍고 화채능선 따라 대청봉까지 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소공원으로 복귀한다. 입구의 반달곰이 빗물에 축축하게 젖어있다. 오늘 하루, 외설악 탐방 예정에 맞춰 바로 울산바위로 향한다.
울산바위여! 금강산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설악산은 크게 네 구역으로 구분된다. 먼저 마등령에서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공룡능선을 경계로 서쪽의 인제군 방면에서 한계령까지의 내륙 쪽을 내설악이라고 하며, 공룡능선에서 동해안 방향을 외설악이라고 한다. 한계령에서 오색 방향이 남설악이고, 마등령에서 황철봉으로 이어져 미시령과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구역을 북설악으로 구분한다.
동해에 인접한 외설악, 설악산 북동 방면의 명물 울산바위, 발밑에서 올려다보니 과연 그 덩치가 주는 위압감은 속을 울렁이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30여 암봉이 어깨동무를 한 것처럼 오밀조밀 모여 그 길이가 2.8km에 달한다. 역시 금강산 일만 이천 봉에 섞이기엔 너무 크고 무거울 것만 같더라.
‘한국의 발견(뿌리 깊은 나무, 1983.)’ 강원도 속초시 편에는 울산바위와 속초의 지명에 대한 유래가 적혀 있는데, 그 묘사가 미소를 짓게 한다.
조물주가 금강산을 빚으려고 전국의 내로라하는 바위를 금강산으로 모이도록 했다. 경상도 울산에 있던 큰 바위도 그 즉시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으나 워낙 덩치가 크고 걸음이 느리다 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은 모두 다듬어진 후였다.
금강산에 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울산으로 되돌아가지도 못한 채 지금 이 자리에 주저앉고 만 것이다. 그 둘레가 4km에 이르고 30여 개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데다 바위 바로 밑에서 꼭대기까지 200여 m에 달한다니 그 몸집으로 여기까지 온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경이로운 눈빛으로 울산바위를 올려다보는데 화강암 표피가 아직도 땀을 흘리는 것처럼 피로에 지친 기색이다.
“울산바위여! 너무나 큰 몸집이라 금강산 일만 이천 봉에 끼지 못하고 설악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게 우리한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구나.”
신흥사의 부속암자인 계조암繼祖庵에는 오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울산바위 아래 자연 석굴의 사원으로 원효, 의상대사를 비롯한 많은 고승들이 수도해왔다. 경내에 있는 석간수와 흔들바위, 석굴 뒤쪽에 백여 명이 함께 앉아 식사할 수 있다는 식당암 반석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흔들바위를 밀어 떨어뜨렸다.”
계조암 앞의 큼직한 흔들바위는 힘주어 밀면 흔들리지만, 절대 떨어지지는 않았었다.
“결국, 떨어지고 말았군.”
“외국인들이 힘이 세긴 센가 보네. 그렇게 밀어도 안 떨어졌었는데.”
이런 말들이 퍼졌는데 사실은 만우절에 퍼진 헛소문이었다. 가짜 뉴스는 예나 지금이나 퍼뜨린 사람에게 엔도르핀으로 작용하나 보다. 여전히 그 자리에 건재한 흔들바위를 쓰다듬고 계조암을 지나면서 떠올리는 울산바위의 후속 설화는 해학적이고 자못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울산바위는 울산의 것인데 신흥사가 차지했으니 그 대가로 세를 내시요.”
설악산 유람에 나선 울산고를 원님이 울산바위를 내세워 방문객들한테 관람료를 받아 치부하는 신흥사에 배알이 꼬여 내용증명을 발송한 것이다. 신흥사에서는 변변하게 이의를 제기하지도 못하고 울산에 세를 바쳤다.
“이젠 세를 줄 수 없으니 울산바위를 도로 가져가세요.”
한참의 시간이 지나 신흥사의 동자승이 바위의 원주인에게 이렇게 통보했다.
“바위를 새끼로 꼬아 묶어주면 가져가겠다.
울산 원님의 응수에 동자승은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에 자라는 풀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매었지만, 원님은 이 바위를 가져가지도 못하고 다시는 세를 내라 떼쓸 수도 없게 되었다.
그 후 청초호와 영랑호의 풀草로 묶은束 곳이라 하여 인근 마을을 속초로 명명했다 하니 옛 조상들의 해학과 묘사력은 그야말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허름한 철 계단을 새로 보수하기 전, 습한 안개에 물기까지 진득한 울산바위를 조심조심 올랐을 때가 생각난다. 총 808개라는 철 계단은 난간을 잡고 오르면서도 아찔했다. 어지간한 산 하나의 규모이자 동양에서 가장 몸집이 큰 바위산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12년에 보다 안전한 우회 탐방로를 만들었고 그 이듬해에 그 당시의 낡은 계단을 철거하였다. 그때 거대한 바위 살집을 더듬다가 돌아섰을 때나 지금 보수된 등산로를 오르다가 눈길 머물 때나 곳곳 설악산이 얼마나 위대한 장소인지 탄성을 자아내게 된다.
금세라도 찢겨 날아갈 듯 태극기 펄럭이는 정상에서 두루 돌아보는 서북 능선과 화채능선, 마등령 너머 황철봉과 운무에 가린 백두대간의 북단 신선봉과 향로봉까지 더듬다가 저 아래 동해로 눈길 돌리다 보면 보는 이에게 설악산은 이미 푸근한 요람이다.
가을 재촉하는 빗물 다시 구름 되어
종으로 횡으로 첩첩 가라앉는데
아차 싶어 놓칠세라 곳곳 설악 둘러보니
온기 가득한 운해에 단풍 들 때 요원해도
무릉도원인 양 착각 들게 하는 곳,
오로지 산 뿐일세.
발밑에서 꾸물거리던 안개가 어느새 머리 위 구름 되어 흐르더니 올라온 길도, 내려갈 길도 시야를 가리면서 금세 빗방울이 떨어진다. 올 때마다 설악은 늘 그랬던 것 같다. 다 보여주거나 아니면 충분히 가리거나.
설악에서라면 다 볼 수 없어 안달이 나지 않는다. 눈감아 바람 가르는 소리에 귀만 기울여도 그 어질한 아름다움이 눈앞에서 형상을 뚜렷이 한다.
비록 안개가 가렸다 하여 그 속 나신의 매끄러운 곡선미를 느끼지 못할쏜가. 고운 건 안개 속이건 어둠 속이건 매양 고운 법. 한참이 지나 다시 와도 설악산의 빼어난 자태는 기억의 우물에 그대로 생생히 떠오르고 말더라.
외설악 변방에 자리한 울산바위, 푸르거나 화창하지 못한 날씨에도 탄성을 자아내게 하니 과연 설악에 대한 칭송은 아무리 과한 들 과장되거나 호들갑스럽지 않다. 그래서 설악산에 오면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함께 좋아하고 함께 웃는 곳이라 공감하는 이, 함께 오고 싶은 곳이거늘 공감하는 이, 함께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악산의 기상변화는 단풍이 채 지기도 전에, 아니 절정일 때에도 백설이 덮는 것처럼 때때로 갑작스럽고 재빠르기도 하지만 대개 은밀하고 유순하게 진행된다. 등산과 하산, 오름과 내려섬은 절대 같은 것임을 자각시키려 함일까. 울산바위에서 내려올 즈음엔 올라갈 때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흩뿌리던 비마저도 그쳤다.
비가 멎자 대청봉 아래 설악동에서, 천불동에서 구름처럼 안개가 솟아오른다. 마등령을 휘감은 운무는 층층이, 겹겹이, 횡으로 굽이굽이 늘어선 등성이를 타고 올라 그예 황철봉마저 가리고 만다.
긴 오르막의 바윗길, 미로의 난간마다 튼튼하게 설치한 철 계단이 없었으면 그저 울산바위의 육중함을 목 꺾어 올려보는 게 고작이었겠지. 내려와 생각하니 사람의 토목기술이 자연훼손에 대단하게 일조했음에도 그러하지 않았다면 설악 조망의 상쾌함을 어떻게 맛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행위와 행위 후의 변덕 또한 따지고 보면 절대 다르지 않음을 자각하게 된다.
어쨌거나 울산바위를 내려와서도 설악산은 멀리 올려다보는 능선마다 구름 안개 가득 채워 그러잖아도 귀티 풀풀 풍기는 설악의 봉우리들을 하늘 높이 추켜세우고 있다. 능선 곳곳, 등성이 사이사이마다 마치 뜨끈한 온천처럼 느껴진다.
저어기 주전골 청정 옥수에 설 물든 단풍잎 띄워놓고 여름, 봄, 겨울……, 시계 역방향으로 하염없이 회전하다 그리워 멈춰지면 풍덩, 그 시간 그곳에 몸 던져 온천욕 하듯 한없이 머물고픈 마음인지라 이곳을 쉬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다시 남설악으로 발길 돌리고 만다.
때 / 초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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