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대에서의 공중부양,
남설악 흘림골과 주전골

강원도의 산 3

by 장순영

친구라 여겼던 그들 모두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남설악 큰 뜨락에 혼자라는 사실이 갑자기 고독해진다.

숱한 실체가 이리저리 존재하거늘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다는 건 어둠보다 큰 고독이다.



남설악 흘림골은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언제나 안개가 끼고 흐린 것 같다고 하여 지어진 명칭이다.

아침 일찍 토왕성폭포와 대면하고 울산바위에 올랐다가 남설악 오색으로 왔다. 오색에서 한계령 휴게소를 향해 한계령 도로를 걷는다.

오색령이라 부르던 양양군 사람들이 설악산을 넘어 인제나 서울로 갈 때 이용되던 험한 산길은 1971년 44번 국도로 개통되면서 옥녀탕, 대승폭포, 장수대, 소승폭포, 십이폭포, 오색온천, 선녀탕 등 설악산 명승지를 줄줄이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짧지 않은 오르막 도로. 한계령 휴게소 내리막에 있는 흘림골은 오후가 되면서 잔재처럼 남은 안개마저 싹 걷히는 중이다.



고름처럼 뭉친 고독 잘게 으깨러 온 곳이 산이잖은가


흘림 5교를 지나 흘림골 분소를 들머리로 정해 곧바로 남설악의 품에 안긴다. 두어 주 후면 이곳은 절정의 만산홍엽을 즐기려는 인파로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 것이다. 그래서 때 이른 가을 정취에 홀로 빠져보고자 온 거였는데 의외로 유난히 한적하다.

눈을 돌려 오른쪽, 설악산 서북 능선의 한계령을 올려다보면 그곳으로도 가고 싶어 진다. 설악은 그렇다. 울산바위에서 다소 엉뚱하게 흘림골로 온 것처럼 한계령에 닿으면 서북릉의 귀때기청봉을 가고 싶고 그 반대편 끝청을 지나 대청봉까지 오르고도 싶어 진다. 어디로 가든 거기가 설악이라면 발길이 향하게 된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여신폭포 지나 양희은의 ‘한계령’을 흥얼거리며 등선대로 향한다. 내 가족 내 형제와 살고자 혹은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삶의 언저리, 그 허망함에 직면하여 눈물이나 미련이 무어 의미가 될 거며 어떤 위로가 될까. 그래서 산은 우지 마라 하고, 그래서 잊어버리라 한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무거운 등짐 지고 가파른 한계령에 올라서서 발아래 깔린 첩첩 골골 내려다보니 그저 쓸쓸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어깨, 현실의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지친 삶마저 훌훌 내려놓은 채 나머지 삶을 바람처럼 자유로이 보내라 한다.

양귀자 씨의 소설 ‘한계령’은 글 속에 삽입된 노래 한계령의 가사처럼 고된 삶의 여정 뒤에 남은 여백의 삶이 결코 허망한 상실감으로 마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절실함이 여실히 묻어난다.

고되지만 힘겹게 버티고 살아온 삶, 아픔으로 점철된 삶에 위안이 될 일이 있다면 그게 무얼까. 과연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 그래서 한계령은 한이 서린 듯 슬프다. 그 노랫말은 멜로디에 얹혀 더욱 숙연하게 한다.


“우리한테도 눈길 좀 주고 가시게나.”


대청봉과 그 남쪽의 점봉산을 잇는 설악산 주 능선의 안부이자 영동과 영서지방의 분수령을 이루는 해발 950m 고지의 한계령에서 눈을 돌려 고도를 높여가는데 여럿이 목소리 맞춰 불러 세운다.

오밀조밀 혹은 아무렇게나 늘어선 칠형제봉이다. 그 너머로 서북 능선 마루금이 뚜렷하다. 칠형제봉이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 그들과 마주했지만, 그들은 언제 불렀느냐는 듯 이리저리 삐딱하게 고개를 돌려버린다.

저들을 향하고 있지만, 눈길이 한계령에 가 있음을 그들 형제가 알아차리고 말았다. 비단 칠형제봉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바위와 나무들이 아우성 거릴 법도 한데 고요하기가 을씨년스러울 정도다. 불던 바람마저 멈춘 산자락에 다시 정적이 인다.

친구라 여겼던 그들 모두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남설악 큰 뜨락에 혼자라는 사실이 갑자기 고독해진다. 숱한 실체가 이리저리 존재하거늘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다는 건 어둠보다 큰 고독이다.

내려다보이는 구불구불 계단길이 가도 가도 그 자리 벗어나지 못하는 판박이 고된 삶처럼 인식되는가 싶더니 부처님 손바닥을 헤매다 지치는 처량한 인생역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독해서 왔지 않은가. 고름처럼 뭉친 고독 잘게 으깨러 온 곳이 산이잖은가. 올라가 보세, 더 올라가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 설악 걷다 보면 거기서 잊어버리기도 하고, 거기서 털어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image95.png 바로 아래에서 등선대를 올려다보니 오르기가 망설여진다


아니나 다를까. 만물상의 중심이자 최고봉 등선대 꼭대기(해발 1054m)에 오르니 고독이란 기분이 야릇하게 변한다. 온 사방 밑으로 펼쳐진 요철의 기암괴석들을 내려 보노라면 신선이 아니더라도 공중 부양하듯 하늘로 치솟을 것만 같다.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이 전혀 차지 않다. 칠 형제들도 만면에 웃음 띠고 어깨 들썩이는 것만 같다.

구불구불 굴곡진 길 오르는 수고로움, 내려오며 풀어지고 송송 맺힌 땀방울일랑 내려서서 씻어내니 오름과 내림이 함께 산행인 것처럼 인생사 새옹지마 아니겠나. 눈 오면 눈 밟고 비 내리면 물 밟으며 이고 지고 바람에 실려 둥둥, 훨훨 떠가는 게 삶 아니겠나. 한계령의 멜로디, 그윽한 저음이 끊이지 않고 귓전을 맴돈다.

내설악과 남설악을 구분 짓는 약 20km의 험준한 경계 능선인 서북주능은 우리나라 최장의 능선길이다. 십이선녀탕, 안산, 귀때기청봉, 끝청, 중청,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서북주능에 묵연히 눈길 던지다가 긴 계단 길로 내려선다.

점봉산, 한계령을 경계로 설악산과 마주한 점봉산은 설악산국립공원에 속하면서 남설악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설악산의 더부살이 일가가 아닌 엄연한 독립 가문이다.

그 속함의 여부가 무어 중요하겠느냐마는 굳이 설악산과 분리해서 점봉산을 존중하고 싶은 건 설악산과 달리 호사스럽지 않아 자연생태의 훼손이 거의 없고 설악산을 마주 볼 수 있다는 점이 또 그러하다.

단목령, 점봉산, 망대암산을 거쳐 한계령을 지나는 백두대간 종주의 주릉은 아직도 많은 등산로를 통제하는 데다 특히 곰배령은 사전 허가를 얻어야 입산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보존에 신경을 쓰고 있다. 범접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욱 점봉산의 내공에 매료되는 것 같다.

등선대에서 주전골 가는 길도 넋을 잃을 만큼 연이은 비경이다. 아침나절 희뿌옇게 덮었을 안개와 흩뿌린 가랑비, 소소하게 일던 바람이 버무려져 골짝마다 신선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그 기운이 가히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아니 그러한가, 나 언제 고독했던가 싶으니 산은 쥐락펴락 허름한 범부 하나쯤은 쉬이 변덕쟁이로 만들어 버린다. 신선이 되기 위해 여기서 몸을 깨끗이 씻고 하늘로 올랐다 하여 등선登仙폭포라 칭했다지. 30m 낙차의 등선폭포는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는 곳에서 발원된다고 하는데 비 온 후에는 마치 하늘을 오르는 신선의 백발이 휘날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적혀 있다.


“어르신! 요즘 수염 다듬는 걸 잊으셨나 봅니다. 명불허전이라고들 합니다만.”


오늘 등선폭포는 오랫동안 흰 수염을 다듬지 않아 턱밑이 너저분한 노인네의 모습처럼 보인다. 곧 단풍 손님들이 몰려들 텐데 한바탕 소나기라도 뿌려 신선의 안면을 씻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일만 개의 불상 늘어선 주전골 유람


주전골 암벽들은 온통 붉게 치장하고 있다


용소龍沼란 용이 승천하다 임신한 여인에게 목격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떨어져 소를 이루었다는 설에서 유래된다. 흔히 용소라 일컫는 폭포의 물줄기는 석룡산, 도마치령, 신로령과 국망봉 등 해발 1000m 안팎의 험산을 타고 흘러내린 도마천의 근원이다.

이들 용소폭포와 달리 주전골의 용소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니라 바위들 사이로 흘러 떨어진 물이 암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고인다. 오늘도 여전히 맑고 푸르지만, 수량이 더 많아지면 그야말로 명경지수를 이룬다.

용소폭포에서 오색약수터까지를 주전골이라 부르는데 용소폭포 입구의 시루떡 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설화는 옛날 이 계곡에서 도둑들이 승려로 가장해 위조 엽전을 만들었다는 게 그 유래라고도 전해진다.

조각하고 다듬어 빚은 듯한 바위들, 여름엔 너무나 투명하여 햇빛조차 꺾어버리는 계류, 가을이면 현란하기 그지없어 눈을 좁혀야 할 단풍들. 이런 곳이 주전골인데 돈, 도둑, 위조 등의 허접스러운 용어들로 유래를 꾸민 들 이곳의 품위가 격하되겠는가.

오밀조밀 밀착하여 전체를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주전골이야말로 이해타산과 부귀영화에 집착하여 이합집산, 합종연횡 등 배신을 타당하게 명분 삼는 정치인들에게 정치윤리의 교육장으로 추천하고픈 생각이 든다.

유착癒着, 어떠한 관계 또는 사물이 아주 밀접하게 결합하는 것. 그러나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할 피부나 막 등이 염증으로 말미암아 들러붙는 일’이라고 사전은 또 다른 정의를 내리고 있다.

물욕과 탐닉의 결합, 서로가 다른 욕심을 품고 고름에 의해 끈적끈적하게 들러붙는 몹쓸 정치판의 행태와 주전골의 풍치는 너무나 대조적인지라 사족까지 덧붙이는 오지랖을 보이고 말았다.

계곡에 들어서면 불상 1만 개가 늘어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만불동 계곡이라고도 칭하는 주전골이다. 예로부터 불교에서는 잡귀가 미치지 못하는 강한 것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겼다. 십이폭포, 용소폭포 등 주전골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하여 금강문이라 부르는데, 아마도 여기부터 잡귀의 출몰이 없다고 여겼었나 보다.

금강산에는 이러한 금강문이 다섯 개가 있다고 한다. 그 아름다움의 척도가 이곳의 다섯 배나 된다. 기실 금강문이 있건 없건 금강산에야 어찌 잡귀가 접근하랴. 붉은 궁서체로 마구 휘갈긴 ‘위대한 수령 동지 만세’ 니 ‘주체사상’이니 하는 바위 부적이 무서워 잡귀인들 얼씬거리기나 하겠는가 말이다.

image97.png 형형색색 가을 모습이 완연한 남설악이다


주전골 입구 오색천 아래 너럭바위의 암반 세 군데 구멍에서 철분 함량이 많은 알칼리성 약수가 솟는데 거기 옹기종기 모여선 몇몇 관광객들이 찔끔찔끔 고이는 물을 뜨는 게 보인다. 이곳 오색약수터에서 남설악 유람이 마무리된다.

산행을 마치고 나니 동선을 넓혀가며 바쁘게 움직인 설악산에서의 한나절이 예쁘게 포장된 꾸러미처럼 느껴진다.

꾸러미 안에는 초가을 새콤한 젤리와 다양한 맛의 초콜릿이 고루 들어있고 설악 특유의 향을 지닌 에스프레소까지 담겨있다. 그 꾸러미에서 하나씩 둘씩 꺼내먹다 보면 어느새 다시 설악산 큰 자락 어딘가에서 추억을 담고 있게 된다.



때 / 초가을

곳 / 흘림골 탐방안내소 - 여심폭포 - 등선대 - 등선폭포 - 주전폭포 - 십이폭포 - 금강문 - 선녀탕 - 성국사 - 오색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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