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대 요순시대부터 한漢나라 무제武帝까지 약 3000여 년 역사를 기록한 ‘사기’의 원제목은 ‘태사공서太史公書’이다. 기존의 연대별 기록이 아닌 역사상 처음으로 인물 중심의 사건을 기록한 기전체紀傳體를 채택했다는 게 큰 특징이다.
사마담司馬談은 태사령의 직책으로 사관으로 재직하면서 유학의 법통과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중국 고대부터 당시 한무제 때까지의 수많은 사료를 수집했다. 하지만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되자 아들 사마천司馬遷에게 사기史記의 완성을 간곡히 부탁하는 유언을 남겼다.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저술에 착수했다.
구우일모가 유래된 고사는 사기의 저자 사마천의 죽음과 깊은 연관이 있다.
한나라 무제 때의 용장 이릉은 5천 명의 군사로 수만 명의 흉노족과 싸워 연전연승을 거듭했다. 흉노족의 우두머리 선우는 11만 명까지 군사를 늘려 이릉이 이끄는 한나라군을 공격했으나 도무지 이기지 못하고 군사를 물리고 말았다.
“지금 이릉의 군대는 화살도 거의 떨어졌고 식량도 바닥났습니다. 구원병도 오지 않을 테니 한 번 더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흉노로 도망친 한나라 군사가 군사기밀을 선우에게 털어놓았다. 이에 흉노족은 재차 공격을 시도하여 이릉의 군대를 겹겹이 포위했다. 식량이 떨어지고 퇴로마저 차단된 이릉의 군대는 대패하였다.
포로로 잡힌 이릉은 복수를 다짐하며 훗날을 노리고 있었는데 흉노의 우두머리 선우는 이릉의 용맹성을 높이 사 사위로 삼고는 후하게 대우했다.
“이릉이 배신을 하다니.”
소식을 듣고 울화가 치민 한무제는 이릉의 가족을 몰살시키려 했다. 모든 이들이 쭈뼛거리며 무제의 눈치를 살피는데 사관인 사마천이 나서서 이릉을 변호했다.
“이릉은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용맹하게 흉노족과 싸운 훌륭한 장수입니다. 무기와 식량이 떨어지고 구원병도 도착하지 않은 데다 군사들 가운데 배신자가 생겨 마지막 싸움에서 패한 것입니다. 이릉은 흉노족에 붙어 부귀를 누릴 인물이 아닙니다. 기회를 엿보아 한나라에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무제는 이릉을 감싸고 나선 사마천까지 반역자로 취급했다.
“저놈을 당장 옥에 가두어라!”
없는 사실을 꾸며 황제를 모독했다는 무상죄誣上罪로 투옥된사마천은 47세가 되던 이때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사마천은 세 가지 형벌 중 하나를 택할 수 있었다. 사형을 당해 죽거나 50만 냥을 물고 풀려나거나 아니면 생식기를 제거하는 궁형腐刑에 처해지는 거였다. 사마천은 궁형을 택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였다.
궁형의 벌을 받은 사마천은 이후 친구 임소경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모두 잊으려 했네만 나 하나 죽는 건 소 아홉 마리에서 빠진 털 하나에 불과하니 그 누군들 거들떠보기라도 하겠는가. 이런 치욕을 견디며 아직 살아 있는 이유는 꼭 마쳐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라네. 아버지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역사서 사기를 완성하고픈 미련이 남아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고 있다네.’
사마천이 쓴 이 편지에서 구우일모九牛一毛가 비롯되었다. 아홉 마리 소에서 빠진 한 올의 털처럼 사마천은 자기 목숨이 그처럼 보잘것없는 것으로 비유했던 것이다.
사마천은 치욕을 참아내며 영혼이 담긴 글을 써내려 갔다. 무제는 사마천의 충성심과 비범한 재능을 인정하여 중서령에 임명했다.
기원전 96년 사마천이 55세 되던 해, 저술에 착수한 지 18년 만에 위로 황제黃帝부터 시작하여 당시까지의 역사를 총망라하여 12개의 본기本紀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 등 총 130권, 52만 6,500자의 대기록인 태사공서, 즉 사기가 완성된다. 사기는 매끄러운 필체의 역사서로서 역사의식을 고취시킬 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소중한 가치를 지녀 지금 시대까지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요즘은 수없이 많은 것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로도 구우일모라는 숙어를 쓴다. 창해일속滄海一粟이 같은 뜻으로 쓰이며, 이와 상대적인 말로 닭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 즉 평범한 여럿 가운데서 눈에 띄게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군계일학群鷄一鶴을 들 수 있겠다.
살아가면서 구우일모의 비범치 않음이 좋다거나 혹은 그렇지 못하다거나 하는 평가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세상사가 너무 복잡 다난하게 얽혀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도 있듯이 평범하다는 건 장점이 많은 속성일 수 있다. 다양한 재능을 지녔더라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는 은둔성 평범이라면 더욱 좋을지도 모르겠다. 때가 되었을 때 진면목을 드러내는 낭중지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