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산중에서 호랑이를 만나 잡아먹힐 위기에 처했다. 여우가 꾀를 내어 당당하게 호랑이한테 말했다.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하늘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천신이 나를 이 산의 우두머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내 뒤를 따라와 봐라. 나를 보고 두려워하지 않는 짐승이 있는가 보아라.”
호랑이는 여우가 하는 짓을 지켜보다가 잡아먹어도 되겠다 싶어서 여우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너구리나 살쾡이는 물론이고 늑대나 덩치가 큰 멧돼지도 여우를 보고는 겁에 질려 내빼는 것이었다. 여우 말이 허풍이 아니라고 여긴 호랑이도 슬금슬금 여우한테서 벗어나더니 도망쳤다.
강일의 말에 선왕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귀를 기울였다.
“짐승들이 달아난 건 여우 뒤에서 따라오는 호랑이 때문이었습니다. 전하께서는 드넓은 국토를 보유하고 다른 나라가 넘보지 못하는 막강한 군사력을 지녔습니다. 그걸 책임진 초나라 재상을 북방의 제국들이 두려워하는 건 전하를 두려워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마치 짐승들이 호랑이를 두려워하듯 말입니다.”
은근히 시기심이 동했던 재상 소해율을 여우로 비유하자 선왕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가 유래했다. 여우가 호랑이 위엄을 빌린다는 한자 풀이로 남의 힘을 빌려 거만하게 굴거나 위세를 떨치는 행동을 빗댄 고사 숙어다.
궁궐의 내시가 임금의 후광을 업고 권세를 휘두르는데 임금이 두고만 보면 그 권위는 내시의 것이 된다. 환관 조고가 왕인 호해를 등에 업고 결국 반란을 일으켜 왕권 찬탈까지 취한 사례를 들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