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7웅 중 먼저 강대국으로 우뚝 선 나라는 진나라였다. 나머지 여섯 나라가 서로 힘을 모아 진나라를 견제하려고 합종의 반열에 서고자 했으나 그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아 합종과 연횡을 반복하게 된다. 이처럼 끝까지 우호관계를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제후국들이 서로를 넘보며 합종연횡이 판을 치던 시절, 진晉나라 헌공은 괵虢나라를 공격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그러려면 우虞나라를 지나야 했다. 진헌공은 사신을 보내 길을 통과하게 해달라고 우나라 왕에게 요청했다.
“우리 왕께서 귀한 보물을 보내셨습니다. 우나라에는 조금도 피해를 끼치지 않을 테니 괵나라를 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십시오.”
진나라에서 보낸 진귀한 보물에 얼이 빠진 우나라 왕이 머뭇거리자 신하 중 궁지기宮之奇가 단호하게 일렀다.
“괵나라는 우리 우나라의 보호벽입니다.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합니다. 광대뼈와 잇몸은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입니다. 괵나라와 우나라가 바로 그런 관계입니다. 절대 진나라의 청을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우왕은 끝내 진나라에게 길을 내주고 말았다.
“이제 우나라는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니다.”
닥쳐올 화를 예견한 궁지기는 가족들을 거느리고 우나라를 떠났다.
진나라 군의 지휘 장수인 이극은 괵나라를 멸망시키고 돌아오면서 약속을 어기고 우나라에 군대를 그대로 주둔시켰다. 우나라에서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궁지기의 예상대로 진나라는 우나라까지 공격해 멸망시키고 말았다. 진나라 군은 우왕과 대부 정백을 생포하여 진헌공 딸의 노비로 삼게 했다. 겨우 보물에 현혹되어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우왕은 진나라 외곽에 유배당한 뒤 생을 마감했으니 죽기 직전까지 궁지기의 충언을 떠올리며 후회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좌전左傳 ‘희공僖公 5년’에 기록된 이 일화에 궁지기가 말한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 유래했다. 서로 가까운 관계에 있는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여기서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망시킨다는 가도멸괵假途滅虢이란 말도 비롯되었는데 군사전략의 의도를 숨기기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 36계의 하나이다.
현대 사회에도 이처럼 이와 입술의 관계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대기업과 하청업체, 프랜차이즈 사업의 본사와 가맹점, 기업체의 노사관계는 결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다. 먹지 않으면 먹히는 관계는 더더욱 아니다. 바로 순망치한의 관계에 있음을 늘 의식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들 관계의 하나가 무너진다면 나머지 하나는 과연 온전히 버틸 수 있을 것인지를 헤아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