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조시대 때 제齊나라의 3대 황제와 4대 황제를 시해하고 제위를 찬탈하여 5대 황제가 된 명제明帝는 즉위한 다음에도 고제의 직계 자손들은 물론 반대파에 선 이들을 가차 없이 죽였다. 피의 숙청이 계속 이어지자 고조 이후의 옛 신하들은 불안에 떨었다.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다. 이러다간 나도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런 와중에 개국 공신인 회계 태수 왕경칙은 1만여 군사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도읍인 건강(지금의 남경)으로 진군하는 중에 농민들이 가세하여 10여 만 병력으로 늘어나면서 점점 도읍과 가까이 점령지를 넓혀갔다.
불안해진 명제는 대부 장괴를 평동 장군에 임명하여 왕경칙을 막게 했으나 패전 소식을 들어야 했다. 병석에 누운 명제를 대신하여 국정을 맡았던 태자 소보권은 피난을 준비했다.
“꼬랑지 내리고 도망치는 것도 병법 서른여섯 개의 계책에 있더군. 이제 너희 부자에게 남은 건 도망치는 길밖에 없느니라.”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왕경칙은 껄껄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삼십육계三十六計는 중국의 병법서 ‘병법 36계’에서 비롯한 용어이다. 전투에 임하는 서른여섯 가지 계책 중 상대방이 너무 강할 때는 후퇴하는 게 상책이라는 마지막 서른여섯 번째의 계책이다.
중국 병법서는 지은이가 알려지지 않은 병법 36계와 춘추시대 때 손무가 지은 손자병법이 있다. 병법 36계는 예부터 전해 오는 내용을 명나라 말기에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가 서른여섯 가지의 계책을 여섯 항목으로 정리하여 편찬했다.
승전계勝戰計인 제1계부터 6계는 아군의 승리가 유력할 때 쓰는 작전이며, 적전계敵戰計인 7계부터 12계까지는 피아의 세력이 엇비슷할 때 기묘한 계략으로 적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작전이다. 제13계에서 18계까지의 공전계攻戰計는 자신을 알고 적을 안 연후에 공격하는 작전이며, 19계에서 24계의 혼전계混戰計는 적이 혼란한 틈을 타 승기를 잡는 작전이다. 또 제25계에서 30계까지의 병전계竝戰計는 상황에 따라 적일 수 있는 다른 편을 이용하는 작전이고, 31계부터 36계까지의 패전계敗戰計는 상황이 불리해 패배할 가능성이 높을 때 쓰는 작전이다.
마지막 제36계가 ‘주위상走爲上’으로 강한 적과 싸울 때는 퇴각하여 다시 공격할 기회를 갖추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실제 후퇴 혹은 도주는 자주 사용되는 군사전략의 하나이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처럼 삼십육계가 비굴하게만 여길 계책은 아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모함보다는 일단 위험을 피했다가 힘을 기른 다음에 싸우는 게 합리적인 전략이다.
더러는 삶의 여러 분야에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경우를 접할 때가 있다. 물러서는 것과 포기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와신상담의 고사에서, 또 칠신탄탄의 고사에서 보듯 자신을 단련시켜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포기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의 결과를 도출해낸다는 걸 우리는 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