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조시대 진나라 혜제 때 양흠 지방에 사는 주처는 행실이 좋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그를 보면 눈을 흘기며 피하곤 했다.
본래 뼈대 있는 가문에서 태어난 주처였지만 어렸을 때 파양 태수를 지내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서 성격이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힘이 센 주처는 걸핏하면 사람들한테 시비를 걸어 두들겨 패기 일쑤였다.
- 내가 못된 짓을 많이 하니까 사람들이 나를 멀리하는구나. 약자를 괴롭히는 나야말로 진짜 약자가 아닌가.
다행히 철이 들면서 자신의 행실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주처는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앞으로는 바르게 살겠노라고 결심했다.
“지금 세상이 태평하여 근심이 없으실 텐데 우리 마을 분들은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둡습니까?”
저잣거리에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주처가 물었다. 주처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모두 머뭇거리며 대답을 꺼렸는데 한 사람이 나서서 대답했다.
“우리 마을 주변에 해로운 게 셋이나 있는데 어찌 태평하다고 얼굴을 펴고 살겠는가?” “세 가지 해로움이라뇨? 그게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주처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하나는 남산에 있는 사나운 호랑이고 또 하나는 다리 아래 사는 교룡이며, 마지막 하나는 바로 자네일세. 우리 마을에서는 이 셋 때문에 얼굴이 밝아지지 않는다네.”
“지켜봐 주십시오. 제가 그 세 가지 해로운 것들을 모두 제거하여 마을 분들을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 셋 중의 하나나 둘은 다칠 거라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주처는 남산에 올라가 호랑이를 잡아 없애더니 교룡을 잡으려고 다리 아래 물로 뛰어들었다. 사흘이 지나도록 주처가 돌아오지 않자 교룡에게 죽임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주처가 없으니 저절로 화색이 도는구먼.”
“어찌 안 그렇겠는가. 물속의 교룡보다 물 밖의 주처가 더 신경 쓰였지 않았는가.”
그러나 주처는 끝내 교룡을 없애고 살아 돌아왔다.
- 해로운 것 셋 중의 하나인 내가 남았으니 아직도 사람들 얼굴에 수심이 고였구나.
주처는 정든 고향을 등지고 당시 대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육기와 육운 형제를 찾아가서 배움을 자청했다.
“저는 그동안 수도 없이 나쁜 짓을 저질렀습니다. 이제 뜻을 세워 새사람이 되려 하는데 너무 늦은 듯해 두렵습니다.”
주처의 말에 형제는 이렇게 격려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걸세. 자넨 아직 젊으니 굳은 의지로 개과천선하면 앞길이 훤히 열릴 수 있을 걸세.”
이때부터 주처는 마음을 다잡고 10여 년 동안 학문을 갈고닦아 마침내 당대에 내로라하는 대학자가 되었다. 그런 주처의 소식을 접한 고향 사람들이 마침내 해로운 것들 세 가지가 모두 사라졌다면서 반가움을 표현했다.
지난 잘못을 고치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의 개과천선改過遷善이 주처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이기에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 잘못을 깨우치지 못하거나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지탄의 대상이 된다.
늘 올바르게 처신하던 사람이 어느 때부터 바르지 못한 행실을 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나빠지듯, 주처처럼 그 반대의 경우로 개과천선하는 사람의 인식도 급 반전하여 상향 조정되기 마련이다.
밝고 환한 모습이 어둡게 변하는 것보다는 그늘진 곳에 드리우는 밝은 빛이 훨씬 아름답고 감동적이지 않겠는가. 잘못을 뉘우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사람들은 환영을 받고 존경의 대상까지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