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순영 May 26. 2022

다 좋으려면 특히 끝이 좋아야 한다

남북조시대를 되새기다 6_ 화룡점정畵龍點睛 

남북조시대, 양나라에서 태수의 벼슬을 지낸 장승요는 사직 후 그림에 몰두하였다. 그가 붓질을 하면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이 넘쳐 육조 시대의 3대 화가로 꼽는다. 주로 불교나 도교의 인물화를 그렸던 그는 사찰의 벽화도 많이 그렸다.

금릉에 있는 사찰 안락사에서 용 한 쌍을 벽화로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장승요는 내키지 않았으나 주지 스님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붓을 들었다. 

장승요가 현란하게 붓을 움직이자 신비로운 용이 그려졌다. 두 마리 용은 금방이라도 하늘로 치솟아 승천할 것처럼 느껴졌다. 구름을 뚫고 나온 머리, 날카롭게 펼친 발톱과 등줄기의 비늘마다 기운이 넘쳤다. 


“훌륭한 용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눈동자가 없군요.”


그림을 본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었다.


“눈동자를 그리면 벽의 용이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오.”


장승요의 대답에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


“허허! 그림을 잘 그리는만큼 허풍도 뛰어나구려.”

“혹시 눈동자를 잘못 그려 그림을 망칠까 두려운 건 아닌가요?”


장승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붓을 잡고 눈동자를 그렸다. 눈동자가 그려지고 장승요가 붓을 놓는 순간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이었다. 그림을 그려 넣은 벽이 깨지더니 그림 속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은 사람들이 벽을 살펴보니 눈동자가 그려지지 않은 한 마리 용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용을 그리고 마지막 눈동자를 그려 넣는다는 뜻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이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하거나 마지막 손질을 끝내는 일을 비유하는 고사이다.

신라시대 유명한 화가인 솔거도 뛰어난 그림 솜씨로 비슷한 일화가 전해진다. 황룡사 벽에 그린 늙은 소나무 그림에 새들이 앉으려다 부딪쳐 죽었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화룡점정은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한다는 대미大尾를 장식한다는 말과 그 뜻을 같이 한다. 반면 쓸데없는 것을 덧붙여 일을 망친다는 사족足이나 흐지부지 일을 마무리한다는 용두사미龍頭蛇尾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라 하겠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진행하면서 처음의 열정을 끝까지 지니고 가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초심이 무너지거나 후반부에 지쳐버리면 깔끔한 마무리를 할 수 없게 된다.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평가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드라마나 소설도 재미있게 진행하다가 엔딩 장면이 어색하면 작품을 망칠 수 있다. 용이 승천하느냐 벽화로 남아있느냐는 결국 기승전결이 한결같이 매끄럽게 이어지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sC0hX1mMJg


https://www.bookk.co.kr/search?keyword=%EC%9E%A5%EC%88%9C%EC%98%8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쏟아진 물도 주워 담을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