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산 11
바다 뒤로 산, 그 뒤로 다시 바다.
내려다보니 바다와 산은 하나였다.
산은 바다로 그 몸집을 깊이 담그고 바다는 산을 깊이 흡인하니
형체만 다를 뿐 해산 일체海山一體에 다름 아니다
이른 새벽, 땅끝마을 해남에서도 약 45km를 더 내려가 다도해해상 국립공원 완도에 내리자 비릿한 바닷냄새가 스민다.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한 섬이자 완도군의 주도인 완도는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 큰 섬으로 달도를 사이에 두고 남창교와 완도대교를 통해 해남반도와 연결된다.
1981년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제1 종항으로 승격되어 제주도와 최단거리 해상항로를 확보함으로써 제주와 완도 간 쾌속 페리호가 운행되고 있으며, 1991년에는 국제항으로 승격되어 여객선 5천 톤, 화물선 2만 톤까지의 외국 선박 입출항이 자유로워졌다.
오늘 완도를 남서에서 북동으로 잇는 심봉, 상왕봉, 백운봉, 업진봉, 숙승봉의 다섯 봉우리를 가로지르려고 왔다.
잠들듯 누워 있는 섬들을 보며 바다 위 숲을 걷다
동틀 무렵 대구리 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양력 2월 중순 여긴 이미 봄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인지라 동백꽃이 빨갛게 몽우리 졌다. 잠깐만에 바다가 발아래로 펼쳐지고 잘 단장된 논밭이 바다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잔잔한 물결 위에 잠들듯 누워 있는 섬들이 평화롭기 한량없다. 바다 위 숲길, 아직 살지지 않은 나목들 사이로 노랗게 부서지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걷는 순간순간들이 마냥 감미롭다. 거제도 망산이나 노자산에서도 그랬고, 사량도 지리산에서도 그랬다.
바다를 보며 산을 오르노라면 같이 오고픈 이들이 눈앞을 스친다. 함께 오지 못해 아쉬움 그득 고이게 하는 친구가 떠오르고 험산 준령 넘으며 함께 땀을 쏟아낸 몇몇 산우들이 곁에 있는 듯하다.
거친 암벽의 심봉 정상(해발 598m)을 설치된 밧줄 잡고 올라서자 오른편으로 주봉인 상왕봉이 솟아있고 언덕 너머로 완주 대둔산이 보인다. 아직 해무가 채 걷히지 않았지만 너른 해상공원은 이 지역의 경관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겠다.
상록수림이 울창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완도항 앞바다의 주도珠島는 만조 시 섬 전체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만월 달빛이 천하절경이다. 완도읍 죽청리 해안 일대의 울창한 동백나무숲도 장관이며, 국민 관광지인 신지해수욕장은 백사장을 밟으면 우는 소리가 나고 이 모래밭이 거의 직선으로 동서 10리나 뻗어있어 명사십리 해수욕장이라 부른다.
산객 한 분이 일러준 방향을 유심히 살피는데 멀리 구름 위로 거무튀튀한 실루엣처럼 봉우리가 솟아있다. 한라산이다. 오봉산에서 육안으로 한라산을 볼 수 있다더니 사실이다. 카메라 렌즈를 갈아 끼우고 줌인하여 한라산 정상을 보다 선명하게 잡아당긴다.
상왕봉으로 가면서 해남으로 가는 완도대교를 내려다보고 그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상당한 거리를 두고 해상왕 장보고의 동상이 보인다. 청해진 유적공원이다. 신라 시대에는 지금의 완도읍 죽청리와 장좌리 일대에 청해진을 두어 장보고가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잡아 해적을 소탕하는 한편 동방무역의 패권을 잡은 중계무역항으로써 해로의 요충이었다. 장좌리 앞바다의 장도 청해진 유적은 사적 제308호로 지정된 바 있다.
오봉산 주봉이자 완도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상왕봉(해발 644m)도 바위 더미 봉우리다. 옆으로 봉수대 석비가 세워져 있고 다음 봉우리들인 백운봉과 숙승봉이 고개 들어 뭍에서 온 손님 맞을 채비를 한다.
신지도, 청산도와 보길도가 둥둥 떠 있는 바다 뒤로 산, 그 뒤로 다시 바다. 내려다보니 바다와 산은 하나였다. 산은 바다로 그 몸집을 깊이 담그고 바다는 산을 깊이 흡인하니 형체만 다를 뿐 해산 일체海山一體에 다름 아니다.
대둔산 정상 오른쪽으로 두륜산의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시선에 가득 잡힌다.
“조만간 들르겠습니다.”
대둔산과 두륜산은 물론 달마산까지 이어 걷겠다고 마음 다지자 또 가슴이 뛴다. 그렇지만 오늘은 오늘의 산에 충실하다. 백운봉 가는 길에 간간이 암릉이 나오더니 깔끔하게 목조로 세운 전망대에 이른다. 업진봉이 등에 올라타라는 듯 구부려 허리를 낮춘 모습이다.
산 숲을 빠져나와 임도를 질러 다시 올라 백운봉 직벽의 꽤 날카로운 모습을 마주한다. 백운봉 정상(해발 605m)에서의 조망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오봉산의 광활함을 한눈에 느낄 수 있거니와 숲 사이로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 임도는 마을 어귀까지 닿아있다.
바다는 다시 하늘과도 구분 없이 하나라는 걸 보여준다. 여기서 보는 일출을 상상하자 언젠가 이곳에 다시 와서 보름달을 보며 야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고 만다.
호국의 고장에서 천혜의 풍광을 가슴에 담고
네 번째 업진봉(해발 544m)에서 이어갈 숙승봉은 북한산 백운대에서 인수봉을 바라보는 느낌이 스친다.
“많이 닮았어.”
그 아래로 보이는 바다색은 더욱 짙푸르고 두륜산은 더욱 가까이 보인다. 숙승봉 가는 길 음지 바위벽에는 아직 고드름이 얼어붙어 있다. 산 밑에서 바라보면 스님이 누워 잠을 자는 것 같은 형상이라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는 숙승봉을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암벽의 위용이 녹록지 않게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보석처럼 귀히 여긴 계절
아쉬움 고이고 아련한 미련
앙금처럼 남았지만
안타까움이든, 그리움이든,
고뇌의 후유증일지라도
하얗게 포장해서 어딘가에
훌훌 털어내야만 하나 보다.
인자요산이라 했으나 어질지 못해
산에 뿌리지 못하고
지자요수라 했으나 도통 슬기롭지 않아
바다에도 흘려보내지 못하니
둥둥 가슴 떠돌던 포장
매듭 풀어져 다시 굳어지려나.
해발 461m의 숙승봉 정상에서는 드라마 ‘해신’의 촬영 세트가 한눈에 잡힌다. 얼추 30여 가구는 됨직한 부락이다. 이 지방을 대표하는 역사 인물 장보고에 관한 것이 부지기수이지만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얽힌 전설도 많이 전해진다.
완도읍에서 동쪽으로 약 1.5㎞ 뻗은 산언저리에서 100여 m 앞의 바닷속에는 바위가 하나 있는데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이순신 장군이 이 바위에 쇠줄을 연결해 왜선을 무수히 침몰시켜 몰서바위라고 명명하였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이 고장 청산면 청계리 마을 사람들이 바닷가의 갯돌을 보적산 위에 쌓아놓고 왜군을 산정으로 유인한 다음 돌을 굴려 몰살시키면서 산 아래 시내의 이름을 피내리고랑이라 지었다고도 한다.
역사의 자취가 끈적끈적한 유적지이자 호국의 고장이며 천혜의 풍광을 지닌 관광지이다. 또 오게 될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 일지…….
날머리 불목 저수지까지 내려와 숙승봉을 올려다보며 완도와 또 오봉산과 짠한 작별인사를 한다.
때 / 늦겨울
곳 / 대구리 - 심봉 - 상황봉 - 전망대 - 백운봉 - 업진봉 - 숙승봉 – 원불교 수련원 - 불목리
조금 올라와 내려다 본 대구리마을
여긴 이미 봄, 따뜻한 남쪽나라인지라 벌써 동백꽃이 몽우리졌다
국립해상공원인 다도해의 정경
오봉산에서 가장 높은 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