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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순영 Dec 19. 2021

정상 개방에 맞춰 뒤늦게 만난
주상절리의 무등산

전라도의 산 10

억수장마처럼 쏟아낸 오열로 가슴 깨끗하게 비워내고 

밤하늘 우러른 적 어찌 없었던가. 

발버둥 치며 애태워야 할 것이

사사로운 욕구일 수는 없는 것이지 않은가.


                   

‘무등산 사랑 가을 범시민축제 및 무등산 정상(군부대) 개방’ 


오전 10시경 추월산에서 하산하여 세 번 버스를 갈아타고 광주 무등산으로 왔다. 무등산 증심사 입구 버스종점에 내리자 긴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간 한두 번의 정상 개방 시점에 맞춰 부리나케 무등산을 찾게 된 것이다.

광주는 먼저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하고, 무등산無等山은 민주주의 수호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광주시민들에게는 더더욱 눈길만 스쳐도 가슴 저린 실체일 것이다. 무등산 또한 현대사의 질곡을 직접 지켜보며 천추의 한을 곱씹는 중일지도 모를 일이다.

호남정맥의 중심 산줄기인 무등산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화순군, 담양군으로 이어져 있다. 북쪽의 나주평야와 남쪽 남령 산지의 경계에 있는 웅장한 산으로,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25년 만인 2013년에 스물한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질 생태학적으로, 또 관광 측면에서 경탄할만한 풍경과 신비로움이 깃든 천혜의 절경지 인지라 등급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높고 크고 고귀한 산이라는 의미에도 딱 부합하는 무등산이다.

두 번째 방문하면서 가슴이 울렁이는 건 지금이 가을이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 규봉에서 보았던 가을 풍광은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었다. 오늘은 코스가 틀리지만, 여기가 무등산이기에 바쁘게 서둘러 움직여도 보여줄 걸 다 보여줄 것으로 확신한다.  


         

비할 데 없이 높은 산이요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일세 

    

아웃도어 상설매장이 즐비하게 늘어선 등산진입로 분위기가 북한산 산성 입구를 떠올리게 한다. 무등산도 한껏 물들어 있다.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은 증심사는 광주지역의 대표적인 불교 도량으로 삼층석탑, 범종각, 오백전 등 많은 문화재가 있어 1986년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된 사찰이다.

증심사와 증심교를 지나 중머리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다시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인 약사암을 지나면서 본격 등산로가 시작된다. 약사암 위로 수직 절벽인 새인봉 마루가 보인다. 바윗덩어리 정상부가 임금의 옥새와 흡사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봉우리이다.

새인봉 삼거리에서 잠시 망설인다. 거쳐야 할 곳이 너무 많아 새인봉은 400m 지점에서 한 번 더 쳐다보는 것에 만족하고 중머리재로 좌회전을 튼다. 낙엽 수북하게 덮인 돌길과 잡목 숲길을 길게 올라 능선에 이르자 조금은 철 지난 억새가 그래도 힘차게 나부끼고 있다.

아래로 마당 널찍한 중머리재가 보이고 그 위로 통신소에 통신 철탑들이 늘어서 있다. 양지바른 드넓은 평야에 사방이 탁 트인 중머리재 공터에서 많은 등산객이 식사도 하고 휴식도 취하는 중이다. 

중머리재 약수터에서 물만 보충하고 내처 용추 삼거리를 거쳐 장불재(해발 990m)에 다다른다. 광주광역시와 화순군 경계 선상의 넓고 평평한 고원지대인 장불재에 이르자 과연 상대 비교를 하고자 등급을 매길 수 없다는 의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장불재에 이르자 왼편으로 서석대, 오른편으로 입석대가 보인다 


웅대한 산세이긴 하지만 대체로 경사가 완만하고 안정감 있는 흙산이라 마냥 푸근하다. 장불재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입석대(해발 1,017m)이다. 석축으로 된 단을 오르면 5각에서 6각 혹은 7각, 8 각형으로 된 돌기둥이 둘러서 있다. 꼿꼿하게 몸 일으켜 세운 바위들은 마치 한 곳을 응시하며 사열받는 군인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약 7000만 년 전 안산암에 형성된 주상절리로서 기둥 하나의 둘레가 보통 6~7m, 10m 내외의 높이로서 남한에서는 최대 규모의 주상절리이다.

주상절리柱狀節理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단면의 형태가 육각형 또는 다각형인 기둥 모양으로 화산암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뜨거운 용암이 냉각되어 부피가 감소하면서 그 수축 작용으로 형성된 지형으로 온도가 높고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용암이 빠르게 냉각될 때 잘 발달한다고 한다.

유네스코에서는 지질학적·생태적·역사적·고고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세계적으로 보호·관리하는 공원을 세계 지질공원으로 인증하여 등재하고 있다. 2018년에는 제주도와 청송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인증받음으로써 광주시민의 어머니 품으로 존재하던 무등산은 일약 국민의 산으로 거듭났고, 나아가 세계적 보존가치를 지닌 인류의 산으로 우뚝 섰다. 

사열 받는 군인들처럼 정연하게 도열한 입석대가 신비롭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입석대의 우람하고도 불가사의한 신비로움에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하다가 승천암이라 적힌 바위를 지나 서석대(해발 1100m)에 이른다. 저녁노을 물들 때면 햇빛에 반사되어 수정처럼 빛나기 때문에 수정 병풍이라 부르기도 했었다.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칭했던 것은 이 서석대의 돌 경치에서 연유한 것으로 서석대의 병풍바위는 맑은 날 광주 시내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무등산 3대 석경인 서석대, 입석대와 광석대의 무등산 주상절리대 10만 7800㎡는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이상한 모양이라 이름을 붙이기 어렵더니, 

올라와 보니 만상萬像이 공평하구나. 

돌 모양은 비단으로 감은 듯하고 

봉우리 형세는 옥을 다듬어 이룬 듯하다. 

명승을 밝으니 속세의 자취가 막히고, 

그윽한 곳에 사니 진리에 대한 정서가 더해지누나. 

    

조선 초 학자이자 문신인 지월당 김극기는 고려가 망한 뒤에 세상일을 잊고자 이름난 산수를 찾아 시를 지으며 소일했다. 그는 자신의 시 ‘규봉암’을 통해 무등산 규봉의 경이로움을 저처럼 표했다. 규봉을 가보지 않고는 무등산을 논하지 말라고도 한다. 장불재에서 서면 쪽으로 능선을 따라 약 1km를 돌아가면 지공 너덜과 규봉 주상절리(해발 950m)에 이른다. 

지공 너덜은 수많은 돌이 흩어져있는 비탈로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 때문에 깨어져 능선을 타고 모여진 산물이며, 인도 승려인 지공 대사가 석실을 만들고 좌선 수도라면서 그 법력으로 억 만개의 돌을 깔았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규봉은 광석대, 송하대, 풍혈대, 장추대, 청학대, 송광대, 능엄대, 법화대, 설법대, 은신대 등 열 개의 대에 이름을 붙였는데 무등산 주상절리 중 그 규모가 가장 크며, 하늘과 맞닿을 듯 깎아지른 100여 개 돌기둥 사이의 울창한 수림과 규봉암 사찰이 잘 어울린다. 특히 울긋불긋한 단풍이 수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가을이면 그 풍광에 눈을 떼지 못한다.

오늘은 개방한 군부대를 시찰하러 왔으니 규봉으로 가고픈 마음을 접는다. 지척의 군부대 앞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줄지어 부대 안으로 들어서는 중이다.

미사일 기지와 막사 등 군사시설물들 위로 솟은 봉우리 셋이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이라고 지칭되는 무등산 정상이다. 군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선심 쓰듯 정상 개방을 하고 군부대를 잠깐 구경시켜주기는 했는데 개방의 의미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군부대 내 정상에 미사일 기지가 있고 막사가 세워져있다


부대 울타리를 나와 다시 정상부에서 쭉 둘러보노라니 바위에 새긴 글처럼 광주의 기상이 무등산에서 발원된 건 공감할만하다.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을 비롯한 많은 의병장이 배출되었고 대한제국 때에도 의병활동의 거점이 되었었다. 무등산이 광주와 전남도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오고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나는 받아들일 수 없네.”


고려 말, 무등 산신은 찾아온 이성계와 무학대사를 차갑게 외면한다. 지리 산신, 천관 산신과 마찬가지로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반대한 것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장흥의 천관산을 귀양살이시켰던 것처럼 경상도에 있던 지리산을 전라도로 귀양 보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결국, 역성혁명을 불의로 간주한 호남지역의 역사의식으로 말미암아 조선 시대 중앙정부로부터 외면당하고 상대적으로 피해를 본 지역 정서가 반영된 설화라 하겠다. 

이러한 정서는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적으로 핍박을 당하거나 지역감정의 폐해로 이어져 무등산은 더더욱 불의에 대항하는 호남의 상징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무등산은 우리나라, 우리 국민의 산이야. 호남의 산이기 전에.” 


상대적 폐해를 입은 무등산에 마음 한구석 동정심이 일다가도 둘러보면 카리스마 넘치는 광활한 풍광에 여지없이 압도되고 만다. 그러면서도 하늘과 접한 공원처럼 푸근하다. 서석대 전망대에서 본 서석대 역시 강인한 위용을 뽐낸다. 잘 다듬어진 오솔길을 따라 편안한 걸음걸이로 중봉에 닿았다. 그리고 다시 용추봉에 이르렀다. 

돌아보면 선객들이 다녀간 거기엔 덩그러니 길만 남는다. 아직 내리막길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지도 않았는데 노을이 물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서두르고 싶지 않다. 올라올 때와 달리 사람들이 없는 석양 녘 장불재가 고즈넉하다.   


        

노을 지는 가을 무등산에서 다시 시작하다     


노을빛에 젖어 더욱 붉어진 가을 모습을 보여주는 백운암 터를 지나고 토끼등을 지난다. 날머리 원효사까지 3.2km, 길은 평탄한 데다 노랑, 주홍 낙엽 밟으며 느긋하게 걷노라니 어두워지는 중이지만 막바지 가을을 타기에 부족하지 않다. 

창창하던 한낮 태양에 등 돌린 채 항명하듯 황혼은 속도 높여 새빨갛게 물들고 있다. 산악과 뜨락 전부가 붉게 지배당했고 땅 위엔 숱한 갈색 사연들이 화석의 제단을 마련한다. 흙빛 참상, 팽창된 외로움의 이유로 속으로 전해오는 쓰라림은 마침내 저리도 붉다 검은 피를 토하며 내일을 잃고 스러진다. 울긋불긋 찬란하게 시선 끌던 단풍들은 고엽 되어 이리저리 밟히며 계절을 인계하는 중이다.

곧 다가올 한파, 차디찬 허공과 드센 바람 몰아치는 백색 왕국의 퀭한 터전에서 세월의 파편들은 체념한 채 체온 잃은 흙을 끌어안을 것이다. 계절 변화에 수동적으로 따라붙는 막바지 단풍을 묵연히 바라보고 낙엽을 밟노라니 차라리 침엽수 늘 푸른 나무로 생겨나지 못한 게 큰 불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는 것이다. 그렇게 가을은 사내에게 감성을 일으키며 계절을 타게 한다.

바람재를 거쳐 공군부대 앞길을 지나자 낙엽도, 무등산도 그리고 광주도 어둠에 잠기고 말았다. 


“막힌 속이라도 뻥 뚫어보려 무작정 배낭 메고 떠나 산 셋을 유람하고 나니 지금 어떻던가?”


강천산을 가려고 고속버스를 탔던 엊그제를 떠올리며 자문하다가는 피식 웃고 만다. 날 갤 때까지 안개 자욱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시절 있지 않았던가. 봄 올 때까지 겨울에 깔렸던 낙엽처럼 죽음 같은 고요를 내 삶인 양 인내했던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억수장마처럼 쏟아낸 오열로 가슴 깨끗하게 비워내고 밤하늘 우러른 적 어찌 없었던가. 발버둥 치며 애태워야 할 것이 사사로운 욕구일 수는 없는 것이지 않은가. 우러러 부끄럼 없는 신념이 부족했음을 왜 여태 깨닫지 못했던가.

수줍어 살포시 미소 띠며 외지 나그네 맞아준 만추 단풍과 호방하게 펼쳐진 산정의 광활함이 삐죽 모나기까지 했던 지난 한주의 삶을 부끄럽게 만든다.

행이 있으면 불행도 있는 법. 어느 순간 평화에 금이 가고 위급이 행복으로 바뀔 수 있다는 면에서 산을 삶과 비견했었다. 변화가 있고 반복이 거듭하니 생의 소중한 가치를 망각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 한복판에서 머리에 담고 가슴에 지녀 무겁기만 했던 건 결국 현실과 동떨어진 걱정 부스러기요, 스트레스 조각에 불과했었다는 것이 정녕 깨우침이라면 산과 금맥을 동일시했던 친구의 말은 딱 들어맞는 거였다. 그렇게 자답하고 자책하고 자각하며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해 떨어져 어둑어둑 거무스레한 산비탈 흐릿하게라도 길 남겼다가 온전하게 내려주고 나서야 홀연 어둠에 몸 가리니 무등산 배려가 하염없이 살갑기만 하더라.

여기서 두 번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광주고속터미널로 가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귀경하게 된다. 결국, 스스로의 이기를 버리지 못하고 1박 3일 여정으로 강천산, 추월산, 무등산까지 호남의 명산들을 황급히 접하고 떠나는 행위가 크게 결례를 범한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가득하다.


                    

때 / 가을

곳 / 증심사 관리사무소 - 증심교 - 증심사 - 신림 - 약사사 – 새인봉 삼거리 - 서인봉 - 중머리재 – 용추 삼거리 - 장불재 - 입석대 - 서석대 - 개방 군부대(천, 지, 인 삼봉) - 서석대 전망대 - 중봉 - 용추봉 - 중머리재 - 봉황대 - 토끼등 - 바람재 - 늦재 - 원효사 공원관리사무소 - 원효사 버스종점


무등산 초입
무등산도 한껏 물들어 있었다
들머리 지나 증심사
가을을 밟고 오르게 된다
중머리재에 이르렀다
중머리재 표지석
장불재
장불재에서 입석대 오르는 길
입석대
승천암
서석대 정상석
군부대 개방 직전
군부대 미사일 기지
군부대 막사 위로 솟은 봉우리 셋이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서석대 전망대에서 본 서석대의 위용
중봉과 용추봉으로 가는 길
중봉
모두들 다녀가면 거기엔 길만 남게 된다
용추봉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지만 서두르고 싶지 않다
석양녘 하산길
절정의 가을, 바람재
하산했을 때는 어둑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yOi5iThnpk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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