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오 6-1. 삭발을 하다

이탁오의 생애와 사상

by 임태홍

이탁오는 1588년 나이 62세가 될 무렵 여름에 삭발을 하고 출가를 했습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심정을 「예약(豫約)」이라는 문장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가족을 고향으로 보내고, 여기에 혼자 남아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바로 그때 나는 죽은 것이다. 이미 가족들에게도 나를 죽은 사람으로 취급해 주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심부름꾼 한 사람도 집에 보내본 적이 없다. 죽은 사람이 집을 돌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그런데도 사위인 장순보(莊純甫)는 내 생각을 살펴보지 않고 여전히 세속적인 애정과 관습으로 대하여, 벌써 3번이나 이곳을 다녀갔다. 고향의 가족들도 가난하여 궁핍하기 때문에, 그가 이곳에 올 때는 다른 사람에게 노자 돈을 빌리고 자기 대신 일 해줄 사람도 구해야 된다. 그리고 40일 이상이나 걸려 이곳에 온다. 이곳에 오면 1개월 정도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40일 이상 걸려 고향으로 돌아간다. …… 그래서 나는 그가 여기에 올 때마다 기분이 언짢은 표정을 하곤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가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이별하고 이제 살아남은 부인과 큰딸 부부와도 이별을 하고 속세를 떠난 것입니다. 굳이 출가까지 하면서 가족과의 이별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입을 열면 이렇게 말한다. ‘출가를 하면 부처다. 그렇게 하면 재가(在家) 불자들을 뛰어넘는다.’ 나도 출가한 사람이지만, 어디에 사람들을 뛰어넘는 점이 있겠는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을 뿐이다. 출가가 좋은 것이기 때문에 출가한 것이 아니다. 또 출가하지 않으면 수행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출가한 것도 아니다. 집에서 수행을 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아서 이렇게 출가한 것도 아니다.”


보통 출가를 하는 사람들은 수행을 전념하고 도를 깨닫기 위해서 출가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탁오는 그것 때문에 출가를 한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단지, 내가 평소에 다른 사람의 속박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원래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속박을 받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는 말할 필요도 없고, 선생님에게 글을 배우러 학교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자라난 뒤, 더 높은 수준의 학교에 진학을 하더라도 선생님이나 지도자들의 속박을 받는다. 관직에 나가도 관리로서 속박을 받는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번에는 그 지방 관료들과의 관계에 묶이게 된다. 오는 사람들을 환영한다든지, 가는 사람을 환송한다든지, 혹은 술자리 준비부터 축하 인사까지……”

자신이 여러 가지 생활상의 속박을 받는 관직을 떠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면 다시 또 그 속박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은퇴한 관리로서 지역사회에 해야 할 일들이 또 많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우선 유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생각한 끝에 ‘류우객자(流寓客子)’라는 4글자를 생각하게 되어, 그것으로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 하지만 이미 ‘류우(流寓)’라고 쓴 뒤에 또 ‘객자(客子)’라는 단어를 덧붙인 것은 쓸모없는 혹이 아닌가? (중략) 생각해 보면, ‘류우(流寓)’, 즉 떠돌아다니다가 머무는 임시 거처라고 하더라도, 집을 짓고 그곳에 살거나 혹은 그 땅을 경작하여 수확에 의존하거나 한다면 싫든 좋은 그 토지와의 관계에 묶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함께 객자(客子, 손님)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곳이 여행 과정에서 임시로 머무는 거처이지 영원히 살아갈 거처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떠돌이 생활도 결국에는 속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점점 더 깊어지는 삭발, 출가의 마음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했다.”라고 고백합니다.


“아아, 내가 이렇게 삭발을 하게 된 것은 이렇게 저렇게 별 생각을 다해 보다가 결국 칼을 들어 머리에 댄 것이다. 어떤 친구는 나의 삭발을 보고 몹시 슬퍼하였다. 그의 어머니로부터 ‘삭발이야기를 듣고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제발 어떻게든 그런 생각을 거두기를 부탁한다.’는 말씀도 전해 들었다. 아아, 나의 삭발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나는 단지 세상과의 관계에 묶이고 싶지 않다고 하는 그러한 생각 하나로 삭발을 한 것이다.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붓이 여기에 도달하자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리다. 여러분은 부디 삭발을 좋은 일로 여기거나, 사람들이 주는 보시(普施)를 쉽게 받거나 하지 말도록 부탁한다.”


그가 삭발하기 전 떠돌아다닐 때 어떤 친구에게 쓴 편지가 있습니다. 「예약」이란 글을 쓰기 1년 전쯤에 쓴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나이도 고희(古稀, 70세)에 가깝다. 그런데도 홀로 이렇게 계속 떠돌아다니는 것은 단지 죽을 때가 다되어서 …… 도를 배우고자 하는 내 생각을 더욱더 막다른 곳으로 몰아가기 위해서이다. …… 도를 배우려고 한 이상, 먼저 깨달은 사람에게 배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하려면 사방을 떠돌아다니지 않을 수 없다. 사방을 떠돌아다니면 외로움과 고통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 내가 자신으로부터 가족의 보살핌을 싫어하고 혼자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도에 대한 갈망이 매일매일 쌓여서 외로움과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그가 말한 도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 “사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즉 삶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해서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탁오 3-1. ‘이탁오를 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