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오 3-1. ‘이탁오를 논함’

이탁오의 생애와 사상

by 임태홍

이탁오 친구 중에 공약곡(孔若谷)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탁오 생애 관련 기록은 매우 드문데 이 친구가 남긴 이탁오 이야기가 『분서』에 실려 있습니다. ‘탁오를 논한다(卓吾論略)’라는 문장인데 여기에서 간략히 소개합니다.


“거사(居士, 이탁오)의 별호는 하나가 아니다. 탁오(卓吾)는 그중의 하나일 뿐이다. ‘탁’(卓) 또한 쓰는 사람마다 일정하지 않다. 거사는 자칭 ‘탁’(卓)이라고 하고, 관청의 인명 기록에서는 ‘독’(篤)이라고 했다. 그의 고향 사람들도 어떤 사람은 ‘독’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탁’이라고 하여, 일정하지 않다.”


‘뛰어난 나’라는 뜻의 ‘탁오’라는 자호(自號)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 당시에도 이 단어가 문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탁오’라면 ‘뛰어난 나’라는 뜻인데 ‘독오(篤吾)’라면 ‘독실한 나’라는 뜻입니다. 관청 기록에는 ‘독오’라고 하였으니 아무래도 이 자호가 원래 이탁오가 사용했던 호인 듯합니다. 공약곡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탁오는 이 자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고향 방언에서는 ‘탁’과 ‘독’을 똑같이 발음한다네. 그래서 고향 사람들이 구분하지 못하고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지.”


그래서 공약곡이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잡는 건 쉬운 일이지. 명주실 5천 근을 직공들이 모여 사는 거리의 인쇄 기술자에게 갖다 주고 부탁하기만 하면 바르게 고칠 수 있다네.”


아마도 공약곡은 전단지를 인쇄해서 사람들에게 정확한 이름을 알리는 방법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이탁오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럴 수 있을까? 자네는 내가 쓸모가 많은 돈을 갖다 쓸모없는 것과 바꾸게 하려고 하는가? ‘탁’이 본래 나라면, ‘독’ 역시 나이다. 나를 ‘탁’이라고 한다 해도 나는 ‘탁’의 의미처럼 탁월하지 못하고, 나를 ‘독’이라고 한다 해도 나는 ‘독’의 의미처럼 독실하지 못하다. 어찌 내가 감당하지 못할 이름으로 역시 감당하지 못할 호칭과 바꾸겠는가?”


어느 쪽이나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이름인데 쓸데없이 소중한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탁오의 호를 ‘탁오’라고 하기도 하고 ‘독오’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공약곡은 이탁오의 호를 소개한 뒤에 이탁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줍니다.


“그는 명나라 가정(嘉靖) 정해년(丁亥年, 1527년) 10월 마지막 날에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모친 태의인(太宜人) 서씨(徐氏)가 세상을 떠나서, 어려서부터 고아가 되어 누구에게 의탁하여 자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7세 때 부친 백재공(白齋公)의 가르침으로 책을 읽고 시를 지었으며, 예의범절을 익혔다. 12세 때 ‘노농노포론(老農老圃論)’을 주제로 글을 써보게 했는데, 여기서 거사(이탁오)는 ‘나는 그때 이미 번지(樊遲)의 마음이 삼태기를 메고 가던 은자나 지팡이를 짚고 가던 은자의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공자 어르신은 이를 참지 못해 ‘소인이로다! 번지는’이라고 말했던 것이다.’라고 썼다. 이 글이 나오자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고, 사람들은 ‘백재공이 쓸 만한 자식을 두었구나.’라고 했다.”


‘노농노포론(老農老圃論)’은 『논어』(자로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제자 번지가 공자에게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니 공자는 자신은 경험 많은 농부보다 못하다고 사양합니다. 그래서 번지가 이번에는 원예를 배우고 싶다고 하니 공자는 또 자신은 경험 많은 원예사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번지가 나가니 공자는 번지가 소인이라고 한탄했다는 내용입니다.


공자는 농사일이나 정원 꾸미는 일은 소인들이나 하는 일이지 큰 뜻을 가진 사람이 할 일은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이탁오는 이런 공자를 비웃었습니다. 공자라는 이름을 굳이 ‘공을기(孔乙己)’라는 이름으로 쓴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을기(乙己)’는 자(子)를 파자로 비꼬아 표현한 이름이지요. 이탁오는 12세 때 번지의 마음이 농사짓는 은자 쪽으로 기울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탁오는 두뇌가 아주 명석한 사람입니다. 그의 문장을 읽어보면 언뜻언뜻 천재성이 드러나 보입니다. 그가 쓴 문장을 읽으면서 그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그의 비상한 두뇌에 감탄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주위 사람들의 칭찬을 자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탁오는 이러한 칭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그때 비록 어렸지만 그런 억지 논의가 아직은 아버님께서 ‘쓸 만한 자식을 두었다’는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그들이 칭찬을 한 의도 역시 너무 천박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언변에 아주 뛰어난 것을 보고, 혹시 내가 장성하여 글 잘하는 것으로 세상의 부귀를 빼앗아와 빈천한 자기들을 구제해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우리 아버님께서 그런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몰랐다. 우리 아버님이 어떤 분이신가? 신장은 일곱 척에, 눈은 이것저것 구차하게 넘보지 않으셨다.”


이탁오의 부친은 경제관념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으로 집안은 항상 가난했습니다. 급한 일이 생기면 부친은 새로 얻은 부인의 비녀나 귀고리를 빼내서 메꿀 정도였습니다. 부친은 연로하고 남녀 동생들도 각각 장가가고 시집가야 할 때가 되어서 그는 벼슬길에 올라, 집안을 보살피려고 하였습니다.


이탁오가 과거시험에 합격한 이야기를 공약곡은 이렇게 전합니다.


“(이탁오는) 조금 더 자라서 주희(朱熹)가 주석을 단 『사서집주(四書集註)』를 읽었다. 그런데 어리벙벙하여 이해되는 것이 없어 주자의 깊은 마음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괴이하게 여겨, 더 이상 과거 시험에 전념하지 않고 그만두려고 했었다. 그러나 너무 한가로워 세월을 보낼 일이 없었다. 그리하여 탄식하며 ‘과거시험 보는 것은 단지 장난일 뿐이다. 그저 표절이라도 해서 남의 눈에 들기만 하면 충분할 뿐이다. 시험 담당관이 어찌 성인 공자의 심오한 정수에 일일이 통달한 사람이겠는가?’라고 생각하여, 당시 문장 중에서 참신하고 재미있는 것을 골라 날마다 몇 편씩 암송하여, 시험장에 들어갈 때에는 500여 편을 암송하게 되었다. 시험 문제가 나붙자 외웠던 것을 깨끗하게 잘 베껴 내니, 높은 점수로 합격하였다.”


은근히 주자를 비판하고 과거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500여 편의 예상문제를 준비하여 들어갔다가 그것이 정확히 맞아떨어져 합격한 것입니다. 아무튼 과거시험에 합격했으니 대단한 성과이지요. 어려서 주위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는 말이 근거 없는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이탁오는 과거에 합격한 뒤에 고향에서 가까운 곳으로 발령 나기를 기대했으나 집에서 만리나 떨어진 공성(共城, 현재의 하남성 휘현輝縣)이란 곳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직책은 교유(敎諭)였습니다. 그곳은 송나라 때 소강절(邵康節, 1011-1077)이 낙양에서 만리 길을 다니며 도를 배웠던 곳으로 이탁오도 “우리 부자(父子) 역시 혹시 이곳에서 도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면, 비록 만 리 길이라도 괜찮지 않을까?”생각하며 부임을 했습니다.


우리 부자란 아마도 둘째 아들과 자신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첫째 아들은 그가 공성에 부임하기 전해인 1555년에 물에 빠져 사망했었습니다. 아들이 죽은 곳을 멀리 떠나 부임하지만 그래도 작은 아들과 자신이 큰 도를 배울 수 있다는 위안을 삼으면서 그는 부임지로 향했습니다. 당시 그의 심정을 공약곡은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듣자 하니 소씨(소강절)는 각고 노력하여 학문에 힘써서, 만년에 성취한 바가 있어, 낙양으로 돌아온 이후에 혼인을 했다고 하는데, 이미 나이 40세였다고 한다. 만약 학문에 성취가 없었다면 그는 종신토록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29세 때 큰아들을 잃고 매우 슬퍼했다. 학문을 성취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슬퍼하지 않고 단지 죽은 아들을 향한 애틋한 정만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면 강절(康節)을 보기가 더욱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 말 가운데는 큰 학문을 성취함으로써 아들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결의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처음에 뜻했던, 훌륭한 스승을 만나 도를 배우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약 5년 뒤 남경(南京) 국자감(國子監)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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