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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태홍 Mar 31. 2024

10월 21일 <텃밭 관리>보고서

2023년 농부학교 경작일지

오늘은 수료식 날입니다. 

거의 1년간의 농부학교 수업이 오늘로 끝났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근대 들어와 세상은 상업과 공업이 흥성하게 되었지만 전통시대에는 농업이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천하의 근본'이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상의 모든 것은 온통 농사일로 귀결됩니다. 그 시대를 이해하려면 농사를 알아야 하니 저로서는 일생일대의 매우 중요한 공부를 한 셈입니다.  


저는 근대 역사를 공부하고 나중에 근대 사상을 전공으로 삼았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역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갑니다. 요즘은 특히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데 농사일을 배우고 나니 고대사가 먼 옛날의 뜬구름 잡은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농사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역사가 절실한 삶의 기록처럼 다가옵니다. 우리 삶의 근본적인 문제,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가 농사짓는 일 가운데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1년이었습니다.  


농부학교 수업은 끝났지만 텃밭관리는 계속됩니다. 수료식이 끝나고 실습장 텃밭으로 갔습니다. 오늘은 땅콩 수확을 계획했습니다. 텃밭에는 이미 땅콩을 수확한 곳도 있고 아직 수확하지 않은 곳도 있었습니다. 어떤 곳은 두더지가 지나갔는지, 아니면 작은 쥐가 파놓았는지 땅콩 밭이 엉망으로 파헤쳐진 곳도 있었습니다. 이미 땅콩을 수확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땅콩이 많이 열리지는 않았고 한 움큼정도 수확을 했다고 합니다. 6그루 정도 모종을  심어 그 정도 수확을 했다고 하니 정말 적은 양입니다. 


저는 개수로 30개 정도 수확을 한 것 같습니다. 시골 텃밭에도 땅콩을 심었는데 그곳에서는 더 적었습니다. 20개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땅콩 농사를 통해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땅콩 이파리가 무성히 잘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땅에 바짝 붙어서 자라니 잡초를 억제하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땅콩 이파리도 동골동골 이쁘게 퍼지니, 마치 클로버 잎처럼 관상용으로도  보기 좋았습니다. 내년에는 잡초가 많이 나는 곳에서 한번 키워봐야겠습니다. 그래서 먹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많이 남겨서 씨땅콩으로 싹을 틔울 계획입니다.  

제철을 맞이하여 무성히 자라고 있는 갓을 조금 채취했습니다. 요즘 기온은 서늘할 때는 10도, 더울 때는 20도를 왔다 갔다 하는데 갓이 참 잘 자랍니다. 쪽파는 터가 좋은 곳은 새끼손가락 굵기만큼 자란 것도 있는데 제 텃밭은 시원찮습니다. 햇빛을 충분히 많이 받지 못한 탓인 것 같습니다. 상추도 성장세가 더딥니다. 대신 상추는 두께가 도톰한 것이 먹음직스럽습니다.

  

가을 작물 텃밭으로 갔습니다. EM을 뿌려주고 유기농 살충제로 방제작업을 하는 등 관리를 잘한 배추들은 결구가 제법 잘 이루어져 보기 좋게 자라고 있습니다. 방제작업을 하지 않은 배추들은 진딧물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거나 한쪽이 썩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 텃밭은  배추를 이미 모두 제거해 버렸기 때문에 휑하니 비어있습니다. 빈 땅에 아직 덜 자란 무가 올라오고 있는데 영 시원찮습니다. 이제 겨우 손가락 굵기인데 저것이 언제 팔뚝만큼 자랄지 한심합니다. 이 텃밭의 갓도 잘 자랐는데 오늘 모두 수확했습니다. 당근은 여전히 울창하게 잎을 키워 올리고 있습니다. 뿌리를 보니 굵기가 볼펜 두께만 합니다. 중간에 너무 촘촘히 자란 것들은 솎아주었습니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한 때에 김장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니 무와 당근은 앞으로 한 달 반정도 더 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 선생님 말씀으로는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다고 하면 무는 바로 수확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럼 당근도 마찬가지겠지요. 오늘 아침에 풍무역에 내려서 실습장으로 걸어오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고 바람이 불어 겨울의 찬바람이 느껴졌습니다. 온도를 재니 10도였습니다. TV를 보니 오늘 전국 날씨는 5도에서 10도 안팎이라고 하더니 올 겨울은 추위가 더 빨리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료식 직전에 마지막 수업으로 하얀색 비단 손수건에 물들이는 실습을 하였습니다. 실로 묶은  순수건을 식물성의 파란색 염료에 담근 뒤 바람에 노출시키고 물로 씻어 둥그런 무늬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배웠습니다. 실습 선생님에게 염료 만드는 법을 물었는데 간단치 않았습니다. 식물로 염료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학생의 말로는 그것만 하나의 과정으로 배워야 한다고 하니 1시간도 안된 실습시간에 질문을 한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물론 질문을 한 것은 문제가 없지만 좀 더 알았다면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습으로 만든 파란색 비단 손수건은 선물로 받았습니다. 수료식날 좋은 기념이었습니다. 저는 집에 손수건이 많아서, 출석일수가 모자라 수료를 하지 못한 동기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는 수료식 내내 그것을 목에 스카프처럼 두르고 다녔는데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수료식을 마치고 그 자리에서 모두 모여 점심을 먹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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