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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태홍 Nov 03. 2024

컴퓨터 이야기-당근마켓 출신 인텔 i5 11세대 PC

중고 제품이라면 빠질 수 없는 곳이 당근마켓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컴퓨터 본체'를 키워드로 등록해 두었습니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26만 원에 중고 부품으로 인텔 i5 10세대를 조립, 구매한 뒤, 며칠 있다가 당근마켓에서 문자가 왔습니다. 인텔 i5 11세대 PC를 25만 원에 판다는 정보였습니다. 


본체 케이스에 인텔 i5 11400 CPU, 마더보드, 램 16기가, 512기가 SSD가 설치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부붐을 용산에서 중고로 구입하여 조립하려면 최소 35만 원 정도는 필요합니다. CPU만 하더라도 중고로 15만 원 가까이합니다. 잠시 고민했으나 속도 빠른 컴퓨터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구매 협의를 했습니다. 


"조금 깎아 줄 수 있어요?"

"얼마나요?"

"2, 3만 원 정도요."

"와서 가져가시면 22만 원에 드릴게요."


그래서 22만 원에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제품은 괜찮을까? 문제는 없을까? 걱정을 했지만 믿고 거래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판매자를 만나서 현금을 주고 컴퓨터 본체(왼쪽 사진)를 받았습니다. 이 컴퓨터를 처음 본 인상은 마치 힘센 고릴라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사용했던 본체는 주로 작고 조그만 케이스였는데 이놈은 폭이 넓고 키도 크지만 앞에서 뒤까지의 거리는 짧아서 아주 딴딴한 모습이었습니다. 더구나 앞쪽에 팬을 3개나 달고 있어서 힘도 세고 다부진 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가져와 케이스를 열어봤습니다. 팬이 위에도 2개나 더 있었는데 샤시팬, CPU팬까지 합하면 모두 7개의 팬이 있었습니다. 전원을 켜니 여러 개의 팬에 일제히 불이 들어오면서 돌아가는데 정말 그 모습이 볼만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팬이 필요하지? 인텔 고사양 CPU는 발열이 심하다는데 그래서인가? 아니면 혹시 게임용으로 쓰던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저는 CPU만 정확히 11세대고 문제없다면 만족입니다. 


본체 내부에는 먼지가 많았습니다. 판매자 말로는 사무실에서 주로 사무용으로 쓴 것이라고 했는데, 혹시 먼지가 많이 나는 공장, 예를 들면 의류 공장의 사무실에서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팬이 많다면 일반 사무실에서도 케이스 내부로 먼지가 엄청 많이 빨려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사용할 때는 작동하는 팬의 수를 조금 줄여야겠습니다.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모든 부품을 다 해체하면서 하나씩 먼지를 털어냅니다. 도구는 못쓰는 칫솔과 조그만 붓입니다. 칫솔은 넓은 면의 먼지를 털어낼 때 쓰고, 붓은 끝이 조금 억센 것을 골랐습니다. 동양화를 그리는 붓은 너무 부드러워서 안됩니다. 조그만 틈새나 구멍은 이 붓으로 먼지를 털어냅니다. 먼지가 많은 부품은 화장실로 가지고 가서 털어냅니다. 


거의 2시간이 걸렸습니다. 팬이 7개나 되기 때문에 작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팬 아래에 붙어 있는 방열판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이 어려웠는데 이 부분의 먼지는 컴퓨터의 온도 상승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꼼꼼하게, 잘 제거해야합니다. 용산 전자상가에 쓰던 컴퓨터 본체를 가져가 청소를 부탁하면 2만 원이나 3만 원을 받는데, 이 컴퓨터는 5만 원 이상은 줘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컴퓨터는 구입비 22만 원에 청소비 5만 원을 더하고, 직접 가서 가져왔지만, 배달료 5만 원을 더하면 32만 원짜리입니다.     


부품을 해체할 때 중요한 부품은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조립할 때 참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위 사진 중 맨 뒤, 세 번째 사진은 칩셋 아래에 있는 전원 스위치, 리셋 스위치 관련 부분 사진입니다. 여기는 조립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핀을 지탱하는 지지대 부분이 흰색이라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전원 (POWER supply, 전원공급장치)을 떼어 내고, 마지막으로 메인 보드를 분리했습니다. 본체에 붙은 팬들이 많고, 인텔 11세대 CPU가 작동하니 이놈 고릴라의 전원은 당연히 700W 정도는 되겠지 했는데 의외로 500W였습니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중고 전원을 산 적이 있었는데 그 상점 점원이 "웬만한 컴퓨터는 600W짜리 파워로 충분해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512기가 SSD라고 해서 흔히 보는 SSD를 생각했는데 M.2 SSD였습니다. 오른쪽 사진의 중앙 아래쪽에 바짝 누워있는, 붉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COLORFUL이라 써진 것이 그것입니다. 그 안에 NVM express라고 쓰여 있는데 바로 이것이 NVMe M.2 SSD입니다. (이 NVMe M.2 SSD 말고 유사품으로 SATA M.2 SSD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두 개는 서로 아주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전자는 단자 쪽에 홈이 하나 있고 후자는 홈이 2개 있습니다.) 하드디스크를 40여 년간 봐왔던 저에게는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보았으니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그러면 이 NVMe M.2 SSD를 뽑아서 다른 컴퓨터에 꽂으면 똑같이 작동할까? 그래서 기존에 쓰던 컴퓨터 케이스를 열고 마더보드 위에 NVMe M.2 SSD를 꼽을 수 있는 구멍(슬롯)을 찾았습니다. 기존의 오래된 마더보드에 그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용산 전자상가에 뛰어가서 기존의 마더보드에 이것을 끼워쓸 수 있는 뭐가 없냐고 했더니 M.2 SSD PCIe 어댑터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1만 원 정도 하는 이 어댑터를 사 와서 알려준 PCIe 슬롯에 끼웠습니다. 그리고 전원을 켰는데, 순간적으로 어댑터의 기판이 녹으면서 타기 시작했습니다. 아차! 전원을 곧바로 껐는데 이미 늦었습니다. 방안에 매캐한 냄새가 퍼지면서 NVMe M.2 SSD도 타버렸습니다. 


아아! 정품 윈도우 11이 깔려있고, 깔끔하게 정리된 512기가 M.2 SSD, 중고로 사도 5만 원 이상이 나가는 M.2 SSD가 순식간에 절단이 나버렸습니다. 이렇게 꼽아보고 저렇게 꼽아봐도, 여기 꼽아보고 저기 꼽아봐도 이제 작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댑터를 꼽은 컴퓨터의 CPU나 마더보드는 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저장장치 NVMe M.2의 매력에 홀려서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습니다. 할 수없이 250기가 NVMe를 새로 사서 윈도우 10을 다시 깔았습니다. 제가 잘못했던 것은 어댑터를 PCIe x1에 꼽아야 하는데, 크기가 비슷한 PCIe x4에 꼽아버렸습니다. 덕분에 PCIe(고속 데이터 전송 단자)라는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M.2 SSD를 태워버리는 큰 실수를 범한 뒤에 허전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청소 작업을 재개했습니다. 케이스 전면에 붙은 팬을 분리하기 위해서 전면의 커버를 열었습니다. 먼지 때문에 도저히 방 안에서 작업을 할 수 없어서 화장실로 들고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앞 커버를 통째로 분리하니 오른쪽 사진처럼  케이스만 남았습니다. 이 케이스는 보통 미들타워로 불리는 것으로 4-5만 원 정도 하는 것입니다. 게임용 컴퓨터에 많이 사용되는 종류입니다. CPU 사양이 높으니 케이스도 그 사양에 따라서 고급스럽습니다. 물론 이보다 더 고급스러운 케이스가 많겠지만 셀레론이나 팬티엄 컴퓨터를 써왔던 저에게는 이것도 대단한 물건입니다.



먼지를 잘 닦아서 본체 위에 올려놓고 본 메인보드입니다. 이 보드는 기가바이트 B560M DS3H plus로, 현재 중고로 9만 원 정도 하는데 사양은 다음과 같습니다.


- CPU : 인텔 10, 11세대 지원, B560 칩셋 지원

- 메모리 : DDR4 4개, 128GB까지 지원(32 GB 단일 메모리 지원)

- PCI 슬롯 : PCI Express x16 1개, PCI Express x1 2개

- 저장매체 지원 : SATA 6개, M.2 2개

- USB : 3.2 6개,  2.0/1.1 6개 지원


이 보드는 M.2 SSD 지원에 적극적이며, 게이머를 위해서 리얼텍(Realtek)의 게이밍 랜과 게임 부스트(Boost)를 지원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여기에 메모리 램 8G가 2개 꽂혀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임시로 전원선을 꼽고 컴퓨터를 켜봤습니다. 윈도우 화면이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화면 해상도가 매우 낮습니다. 디스플레이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서 디스플레이 설정화면으로 들어갔는데 해상도가 1024 x 768에 고정되어 있어 변경할 수가 없습니다. 오잉? 


이 인텔 i5-11400 CPU는 그래픽이 내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원래 그래픽 수준이 이렇게 낮은 것인가? 그럼 정상적인 해상도로 사용하려면 그래픽카드를 끼워야 될까? 본체 케이스를 살펴보니 그래픽 카드를 끼운 흔적이 보입니다. 케이스 뒤쪽에 그래픽카드 끼우는 쪽 브라켓이 하나 빠져있습니다. 아마도 여기에 그래픽카드를 끼워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텔 i5-11400 CPU 사양을 보면 HDMI 최대 해상도가 4096 x 2160까지 나온다고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저사양 해상도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혹시 이 CPU는 원래부터 하자가 있던 상품일까? 쓰다가 고장 난 것일까?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중고로 샀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정 안되면 그래픽 카드를 새로 사서 끼워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메인보드를 다시 케이스에 장착하고 팬들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켰습니다. 역시 11세대 컴퓨터답게 속도가 빠릅니다. 스위치를 누른 순간 순간의 반응이 셀레론이나 펜티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다만 화면은 해상도가 낮으니 기대 수준 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연결하고 몇 차례인가 컴퓨터를 켰다 껐다 했더니 해상도가 자동으로 높아져 아주 깨끗한 화면이 펑펑 터집니다. 해상도가 1920 x 1080까지 올라갔습니다. 아아! 그럼 그렇지. 이 비싼 고급 CPU가 그런 허접한 해상도를 가지고 내장그래픽 운운할 리는 없지. 괜히 제품을 의심하고 판매자를 의심하고 당근마켓을 의심했습니다.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모니터에 연결하니 드라이브가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인터넷을 연결하니 윈도우가 스스로 모니터에 맞는 드라이브를 찾아 인스톨하고 해상도를 모니터에 맞춰주었습니다. AI(인공지능)이 따로 없습니다. 모니터가 더 좋으면 얼마든지 더 높은 해상도로 표시할 수 있는 것이 해상도 내장 CPU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컴퓨터가 꺼져버립니다. 아니? 정말 이 컴퓨터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가? CPU나 마더보드에 뭔가 하자가 있을까? 괜히 당근마켓에 나온 컴퓨터 본체를 산 것은 아닐까? 온갖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다시 켜보니 조금 있다가 또 자동으로 꺼져버립니다. 그래서 컴퓨터 전원을 켜고 바로 DEL키를 눌러 바이오스 화면을 띄워봤습니다. Boot에 가서 Boot Option을 보니 Disabled로 되어 있습니다. 컴퓨터가 자동으로 부팅 금지를 해버린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리저리 생각해 보니 이 놈이 뭔가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해놓은 거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단 컴퓨터를 다시 모두 해체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한 가지 눈에 띈 것이 있습니다. CPU팬이 CPU에 완전히 밀착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 청소를 할 때, CPU팬을 떼어내는 과정에서 발 하나를 잘못 빼다 살짝 부러뜨렸는데, 조립하면서 그 부분을 억지로 끼워 넣었습니다. 잘 밀착된 것 같아서 안심했었는데 이 부분이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컴퓨터가 갑자기 꺼져버린다는 것은 과도한 발열이 원인일 수 있다고 합니다. 팬이 CPU에 완전히 밀착하지 않아서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을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가 갑자기 꺼졌을 때를 생각해 보니 동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한쪽 발이 고장 난 CPU 팬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갈아 끼웠습니다. 쿨러 구리스도 기존에 있던 것은 지우고 다시 발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컴퓨터를 키니 정상적으로 윈도우 화면이 뜨고 갑자기 꺼지던 현상은 사라졌습니다.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서 컴퓨터 발열을 체크해 주는 HWMonitor라는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하여 CPU온도를 체크해 봤습니다. 역시 문서작업을 할 때는 30도 정도인데 동영상을 보면 40도 정도입니다. 동영상을 여러개 띄워보니 60도까지 올라갑니다. 쿨러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80도, 90도가 넘겠지요. 그럼 CPU가, 아니면 마더보드가 자체적으로 컴퓨터를 꺼버리는 것 같습니다. 마치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정신을 잃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참 고맙기도 하고 기막힌 컴퓨터 방어기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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