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숨> 후기 : 죽음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by 임태홍

다큐멘터리 영화 <숨>이 개봉했습니다. 2025년 3월 15일 토요일 오후, 윤재호 감독의 이 영화를 보고 왔지요. 관객들은 10명 정도로 많지 않았는데 나이 든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영화가 조용하면서도 슬프고, 뭔가 깊은 울림이 있어 정리해 봤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앞뒤가 바뀌고, 사람들의 이야기와 나레이션에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 주로 등장하여 말을 하는 사람은 폐지 줍는 할머니 문인산 님, 시신 염습을 하는 장례지도사 유재철 님, 그리고 죽은 사람이 남긴 물건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사 김새별 님, 이렇게 3 사람입니다. 시신 염습이란 시신을 정결하게 씻고(염) 수의를 입히는(습襲) 것입니다. 장례에서 입관하기 전에 행하는 절차입니다. 감독은 이들 세 사람과 인터뷰를 하거나 그들의 일상을 쫓아가면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영화가 시작하자 화면 가득히 물이 가득 찬 곳이 나오고 조용히 물결이 일렁입니다. 바다일까?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예술작품처럼 매우 아름답습니다.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양수의 움직임이 저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면이 바뀌어 무언가 태우는 장면입니다. 불꽃이 극장 가득히 피어오릅니다. 시신을 태우는 불꽃같습니다.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잠깐 보여주고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시신 수습실. 누군가 염을 하고 있습니다. 장례지도사가 말합니다.

"죽을 때는 보는 감각, 숨을 쉬는 감각, 미각 등 모든 것이 사라져도 듣는 귀는 마지막까지 열려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감각 중에 제일 마지막에 닫히는 게 귀라고 합니다. 망자가 좋은 데 가시라고 너무 울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대신 좋은 말씀을 해주세요."


"누군가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누군가는 좋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납니다. 시작점부터 우리는 불평등합니다." 나레이션이 흐르고 시신을 염하는 장면이 계속됩니다. 목탁소리가 들리고 조용한 음악이 연주됩니다. 타오르는 불꽃을 배경으로 다비식이 진행됩니다. 스님들이 보이고, 관을 넣고 태우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느린 화면이 슬프지만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장례지도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고속도로에서 접촉사고로 차가 뒤집어졌어요. 전복사고였지요. 다행히 살았지만 등 뒤에 다섯 바늘을 꿰맸어요." 옆에서 부인이 듣고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남편이 죽을 수도 있었어요. 남편이 죽으면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했어요. 나도 갑자기 죽을 수가 있기 때문에 항상 정리를 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남은 사람이 정신없이 당황하지 않도록."


장례지도사의 부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물어봐요. 다른 사람을 염하고 집에 들아온 신랑과 함께 밤에 손잡고 잘 수 있냐고." 남편이 옆에서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건데.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죽음이 아주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해요."


무연고 사망자의 합동 장례식장. 음식이 차려진 제사상 위에 여러 개의 술잔이 나란히 올려져 있습니다. 장례지도사 부인이 말합니다. "어떤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사회의 수준을 알 수 있답니다. 사람은 어떤 식으로 죽어야 되나 생각해 봅니다. 이런 곳에 올 때마다 깊은 생각에 빠집니다."


장례지도사가 병원에 왔습니다. 의사가 진단을 합니다. "퇴행성 변화입니다. 팔 부근의 근육이 저절로 끊어졌어요. 무리를 하셔서. 힘줄은 잘 복구되기가 힘들어요."

"시신을 염할 때 그쪽은 힘을 많이 쓰는 곳인데....... 일을 더 해야 하는데......"

"6개월 이후에 재활이 잘 되면 가능합니다. 힘줄이 상한 상태라서. 가벼운 일은 직접 하셔도 되지만, 조수를 쓰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장례지도사 부부가 함께 숲 길을 걸으며 말합니다.

"이렇게 여유 있게 살아봤으면....."

"바쁘게 일만 했으니 당신하고 좋은 추억이 별로 없네."

조그만 사찰. 부부가 108배를 합니다. 남자가 말합니다.

"이제 일은 그만하고 이렇게 조용히 절에도 다니고 쉬면서 살고 싶어요."


남자가 말합니다.

"부자들은, 가진 것이 너무 많으면, 떠나실 때 주먹을 쥐고 몸을 비틀며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아요. 마지막까지 자신을 놓지 못해서 시신이 일그러지기도 해요. 가난한 사람들은 오히려 극락에 가시는 것처럼 평온해요."

"어떤 분은 몸을 한쪽으로 비틀어서 두 주먹을 불끈 쥔 채로 돌아가셨어요. 그대로는 관에 넣을 수 없었어요. 염습을 하는데 힘이 많이 들었지요. 대개 보면 많이 가진 사람들이 이승을 떠나기 싫어해서 추한 모습으로 돌아가시는 것 같아요. 고생하고 없이 산 사람들은 오히려 편하게 저 세상으로 가지요."


부인이 말합니다. "추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요. 점점 세상이, 주변이 우리를 그렇게 추하게 죽도로 만드는 것 같아요.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보면. 우리는 죽음이 다가오는 그 순간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 순간이 왔다. 그 때다. 그 순간을 누가 알겠어요."


부인이 또 이렇게 말합니다.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태어날 때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 무엇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살다 갑니다. 만약에 그 무엇을 알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면 죽는 순간에 편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식해 보면 잘 죽을 수 있다고 합니다. 죽는다는 것은 안 해본 것이니 몰라요. 저는 단식을 할 거예요. 80이 되면 단식을 해서 잘 죽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장례지도사의 집 식탁. 부부가 같이 술 한잔을 합니다. "여보, 우리 같은 날 같이 죽을까?" 부인이 남편에게 웃으면서 말합니다. "당신, 나 없는 세상에서 혼자 살아봐요. 나도 당신 없는 세상에서 혼자 살아보고 싶어요." 남편이 말합니다. "집을 나가시면 내가 알아서 잘 살 테니까." 부인이 말합니다. "여보, 우리 10년 동안 따로 살아보기 할까요? 10년 있다 다시 만나자고요. 우리 그동안 32년간 잘 살았으니. 이제 10년은 안식년으로." 남편도 부인도 슬픈 얼굴이 됩니다. 부부간의 사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슬픈 표정에 담겨있습니다.


장례지도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유명한 사람도 유명하지 않은 사람도 누구나 마지막은 죽은 뒤에 관속으로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그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조그만 아파트. 유품관리사가 밀폐된 문을 엽니다. 문 사이 틈새마다 곳곳이 비닐로 밀폐되어 있습니다. 안에서 나는 냄새를 막은 것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먹다 남은 음식이 바닥에 널려있고, 여러 개의 모니터와 잡다한 물건들이 책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중에는 먹다 만 라면 같은 음식물 쓰레기도 있습니다.


유품정리사는 방독면 같은 커다란 마스크를 썼습니다. "돌아가신 지 1달 정도 되셨습니다. 이곳은 시신이 있던 자리예요." 바닥에는 검붉은 액체가 흥건히 퍼져서 말라 있습니다. 시신의 몸에서 나온 액체입니다.


"1998년 장영실상을 타신 분이네. CDMA 개발자시고." 유품정리사가 무언가 서류를 보면서 말합니다. "과학기술자상까지 받으신 분인데. 왜 이렇게 좁은 방에서 사시다가....."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다 남은 음식이며 식품이 가득합니다. 김밥도 있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는 사람이 말합니다. "김밥 날짜를 보니 돌아가신 때를 우리가 잘못 알았네요." 방안 한쪽에는 드럼 세탁기도 있습니다. 방안의 모든 것을 치우고, 해체합니다. 싱크대도 아직 멀쩡하지만 전부 분해하고 해체합니다.


유품정리사가 말합니다. "흔적을 다 치우면, 이름 세 글자밖에는 남지 않아요. 현장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청소를 해야 또 누군가가 이곳에서 살 수 있지요. 깨끗이 청소해서 새로운 시작의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고인의 가족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집주인이 의뢰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번에는 따님이 의뢰를 하셨어요. 무서워서 정리하기 힘들다고. 언젠가는 유품을 다 정리하고 집 부근에 쓰레기로 배출하려고 하니 이웃 주민들이 항의해요. 왜 죽은 사람 물건을 거기에 버리냐고. 귀신 나온다고, 무섭다고 싫어해요."


폐지 줍는 할머니. 오늘도 작은 손수레를 밀고 다니며 물건을 찾습니다. 달걀 담은 종이 케이스, 종이 박스, 음료수 캔, 빈 병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폐지 수집장에서 믹스 커피를 마시며 말합니다. "하루에 1,200원 벌 때도 있어요. 많으면 1,500원이나 1,600원. 한번 갔다 오면 이렇게 벌어요. 오늘은 1,100원 벌었어요. 이렇게 벌어서는 전기세도 가스요금도 못 내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죽지 못해 사는 거지." 슬픈 음악이 흐릅니다. "찬란하게 해 놓고 살고 싶은데." 할머니가 말합니다. "원래 사업가였어요. 그러다 실패했지."


할머니 일과는 밥 해 먹고 빨래하고 그리고 폐지 줍기입니다. 의사가 묻습니다. "무슨 일 하세요?" "폐지 주으러 다녀요." 의사가 말합니다. "엑스레이를 봤는데, 어깨에 퇴행성 관절염이 왔습니다. 쉬시면서 잘 관리를 해야 합니다." 팔을 이리저리 살펴봅니다. "팔은 잘 돌아가네요. 주사에 약 드시면 좋아질 거예요. 주사를 맞으시면 더 좋은데.... 무릎도 관절염이 조금 있습니다. 주사를 놔드려요?" "아니요. 약만 주세요." "약 드셔 보시고 주사를 맞으면 좀 더 좋을 거예요."


폐지 줍는 할머니. 쓰레기 더미 위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대로 혼자 활동하다 혼자 밥 해 먹고 살다가 조용히 가고 싶어요."


교회 한쪽. 목사님이 폐지 줍는 할머니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곳에 잠깐 머물다 아버님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 우리가 있을 곳을 준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곳에 가시면 제일 좋은 맨션으로 들어가실 것입니다. 여기서는 아프고, 남의 집 지하에 사시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행복하게 사시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준비를 하였으니 근심 말라' 하십니다."


음악이 천천히 느리게 흐릅니다. 가락에 맞추어 가끔씩 종이 울립니다. 장송곡이 심장의 맥박 보다 훨씬 느린 이유를 알겠습니다. 한평생 바쁘게 뛰었던 심장이 이제는 천천히, 조용히 쉬면서 듣는 곡이기 때문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화 <미키17>후기 :폭주하는 이세상, 작아지는 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