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24년)에 토종과일나무학교를 다닐 때,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주전자를 이용해 콩나물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주전자가 좋은 것은 위의 뚜껑을 덮으면 자연히 주전자 내부가 컴컴해져서 콩나물이 자라기 좋은 상태가 되고, 주전자 꼭지로 물을 쉽게 따라 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10년쯤 전에 콩나물을 제배해서 파는 사람들이 농약이나 성장 촉진제를 사용한다고 해서, 집에서 콩나물을 직접 키워먹어 보려고 자동급수 콩나물시루 세트를 사서 콩나물 제배를 시도해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몇 번 해봤는데 콩나물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방안에 두면 급수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꽤 시끄러웠고, 24시간 내내 전기를 꼽아 두어야 하며, 물이 급수과정에서 자주 오염되기 때문에 물 관리에 신경이 쓰였고, 무엇보다도 씨앗 받침대나 급수관, 시루통 등 모든 것들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환경 호르몬이 염려되었습니다. 그리고 급수 시루와 관련된 불필요한 부품들과 시루 세트가 차지하는 공간이 작지 않아 불편해서 2, 3년 사용하다 결국 다 버렸습니다.
주전자라면 차지하는 공간도 작고, 환경 호르몬 걱정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구석에서 할 일 없이 뒹굴고 있는 주전자를 찾아 당장 집에 보관하고 있던 콩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부어 2, 3일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싹이 나기 전에 콩 자체가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콩을 버리고 또 시도해 봤습니다. 역시 결과는 같았기 때문에 콩에 문제가 있는가 하고 새 콩을 사서 물을 붓고 지켜봤습니다. 당시 기온은 30도를 오르내렸기 때문에 집안은 20도에서 25도 정도 되었습니다.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로 발아는커녕 콩이 물러져서 두 개로 갈라졌습니다.
물을 매일 갈아줘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고 매일 물을 버리고 새 물로 바꿔줬습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면서 작년 여름 2개월 정도를 허비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되고 바람이 선선해지면서 주전자로 콩나물을 키워먹는 꿈은 버렸습니다.
금년에 날이 더워지면서 작년 생각이 났습니다. 아! 콩나물! 다시 주전자를 찾아 콩나물 키우기를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먼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새 콩을 샀습니다. 마트에 가서 5,000원 정도 하는 백태(매주콩)를 샀습니다.(인터넷으로 콩나물 콩을 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저는 또 실패할까봐 그렇게 못했습니다.) 그리고 콩이 싹트는 조건에 대해서 공부를 다시 했습니다.
콩이 발아하는데 가장 좋은 온도는 30도∼35도입니다. 그런데 2도 이상만 되면 발아할 수 있고, 44도까지 발아가 가능하다고 합니다.(주1) 요즘 실외는 25도에서 30도 정도, 실내는 20도에서 25도 정도 되니까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콩이 발아하는 데는 수분과 산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주1) <농사로>, 작물종자의 발아온도와 발아소요일수, 2015.01.23.
주전자에 물을 붓는 방법은 작년에 해봐서 실패했기 때문에 금년에는 방법을 다르게 합니다. 먼저 콩을 6시간 정도 불렸습니다. 그리고 주전자 밑에 그릇을 두고 그 위에 망을 깔고 그 위에 콩을 얹어 놓았습니다. 물기만 살짝 젖은 정도로 두고 뚜껑을 덮었습니다.
혹시 주전자는 금년에도 안될지 모르기 때문에 이번에는 큰 냄비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그릇을 하나 두고 그 위에 철망을 놓고 그 안에 물에 6시간 정도 불린 콩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뚜껑을 덮었습니다.
첫날은 2시간 정도 간격으로 물을 붓고 밑으로 흘러내린 물을 바깥으로 쏟아서 버렸습니다. 주전자에 넣은 콩도 마찬가지로 물끼만 조금 머금고 있도록 하고 바닥에 있는 물은 버렸습니다.
둘째 날은 일을 보러 외출했기 때문에 외출 전에 물을 끼얹었다가 바닥으로 흘러내린 물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물을 공급하여 물기가 축축하게 젖게 하고 밑으로 흘러내린 물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뚜껑을 덮어 두었습니다.
둘째 날 저녁 늦게 확인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콩나물 싹이 났습니다. 왼쪽은 냄비에 넣어둔 콩입니다. 주전자에 넣어둔 콩들도 일부가 싹을 틔웠습니다. 이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작년에는 전부 실패했는데 금년에는 왜 싹이 났을까? 그것은 물속에 담가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씨앗이 발아하는데 조건이 수분과 산소라고 하는데, 물속에 담가두면 씨앗이 산소를 호흡할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씨앗이 필요한 것은 수분, 즉 '물기'지 물이 아닙니다.
옛날에 시루로 콩나물을 키운 어머니는 시루 바닥으로 물이 흘러내리도록 하고, 수시로 자라나는 콩나물 위로 물을 부었습니다. 수분만 제공한 것입니다. 콩나물을 키우는 시루세트도 보면 대개가 수분만 제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모르고 물에 담가서 키우려다 작년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발아한 콩들 사이사이에 발아하지 못한 콩들이 썩고 있습니다.(이를 사전에 방지하려면 수확한지 1년이 안된 햇콩을 구하고, 그 중에서도 상태가 좋지 못한 콩은 미리 골라냅니다.) 그래서 큰 그릇에 모두 쏟아 놓고 발아하지 못한 콩들을 솎아냈습니다. 1/2 정도가 발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국에 넣어서 삶아 먹고, 발아한 콩들만 다시 주전자와 냄비에 넣고 키웠습니다. 나중에는 원리를 알았기 때문에, 냄비를 치우고 모두 주전자에 넣고 키웠습니다. 주전자에 물을 넣고 콩나물들이 습기를 머금게 하고, 뚜껑을 닫고 주전자 꼭지로 물을 버린 뒤 한쪽에 보관합니다.
4일째 된 날 찍은 사진입니다. 콩나물이 손가락 길이만큼 길어졌습니다. 콩을 더 많이 넣으면 콩나물이 빽빽이 자라 올라오겠지요. 이번에는 콩 싹을 틔운 것만으로도 대 성공입니다. 농사의 기본은 싹을 틔우는 일인데 금년 여름에 그 기본 중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주전자로 콩나물 기르기'에 대해서 많은 글들이 있었습니다. 다음은 대표적인 것들인데 저는 장영란 선생님 수업 때 들었는데 장선생님의 글도 있네요. 작년에는 이렇게 검색할 생각도 못하고 혼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각 글마다 좋은 정보가 많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장영란, ‘주전자 농사’로 싱싱한 콩나물, 2013.12.10.
2) 퀘럼, 콩나물 키우기 ~ 주전자에, 2016.2.5.
3) 김현자, 주전자 하나로 콩나물 기르기... 아주 쉬워요!, 2018.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