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터를 잡은 지는 10여 년, 틀을 잡고 살기 시작한 지 6년 정도 되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시골에 터를 잡으면 곧바로 과일나무부터 심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일나무는 열매를 맺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죠. 저도 그것을 어디에선가 듣고 묘목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심은 묘목이 100그루가 넘습니다. 사과나무, 배나무, 감나무, 포도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석류나무, 자두나무, 살구나무, 보리수, 체리, 뽕나무, 복숭아 등등등. 그런데 과일나무 키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제대로 자란 나무는 10여 그루가 안됩니다. 원하던 열매까지 잘 맺는 나무는 유일하게 보리수 한 종류뿐입니다.
보리수는 특별히 보살피지 않아도 잘 크고 잘 자라고 열매를 잘 맺습니다. 그래서 항상 고마운 나무입니다. 보리수만큼 잘 크는 나무는 뽕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이 뽕나무는 너무 잘 자라서 높이가 6미터에서 8미터까지 커졌습니다. 오디 열매가 고맙기는 하지만 순식간에 떨어져 버리고 너무 높게 열려서 감당이 안됩니다. 그래서 뽕나무는 가지치기에 바쁩니다.
작년에 사과나무를 7년 정도 키워서 사과 두 개를 얻었습니다. 사과 맛도 시중에서 파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게 맛이 없었고 퍽퍽했습니다. 그나마 올해는 한 개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는 5년 정도 키운 살구나무에서 살구가 20여 개 열렸습니다. 그런데 아끼고 아끼다, 잠깐 서울에 볼일 보러 갔다 왔더니 모두 땅바닥에 떨어져 썩어버렸습니다. 그런 살구나무를 보면서 한동안 시장에서 살구만 사다가 먹었습니다. 금년에는 역시 하나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5m쯤 자란 살구나무에 송충이만 한가득 차 있습니다.
3년 전에 백도 복숭아 결실주 묘목을 심었습니다. 2년 연속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는데 드디어 금년에 복숭아 한 알이 열렸습니다. 그거라도 감사히 먹어야겠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제 밭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복숭아가 어디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하고 풀 속을 뒤져보니 다행히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땅에 떨어진 지 며칠이 되었는지 벌써 안에는 벌레들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결국 벌레들이 2/3를 먹고 제가 1/3을 먹었습니다. 이로써 금년 과일농사는 종료했습니다.
과일나무 키우기가 너무 어려워서 작년에 1년간 토종과일나무 학교를 다녔습니다.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가르치는 선생님이 1년만 배워서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3년 정도는 배워야 한답니다. 제가 보기에는 3년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작년에 수업 중에 들은 말로 과일나무는 평균 잡아 10년을 한 주기로 키우는데, 5년간 키우고 5년간은 열매를 따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교체해 주고 또 그렇게 키우고 관리를 한답니다. 그러니 10년은 배워야 하는데 저는 1년만 배우고 그만뒀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무리 잘 배워도 한 해 운수가 나쁘고, 벌레들이 도와주지 않고, 그리고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사과나무를 키워서 바로 따먹고 싶어서 결실주를 산 적이 있습니다. 1년만 키우면 되는데 1년 뒤에 사과 2개가 열리더니 그 뒤에는 해마다 벌레들이 이파리들을 다 갉아먹어버린 바람에 3년 만에 죽어버렸습니다. 과일나무 키우는데 생계가 달려있다면 악착같이 온갖 농약이나 약품을 써서 키우겠지만, 물론 그렇게 해도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나,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복권을 사서 생계를 유지하는 편이 더 안전할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 난을 키우는 친구에게 들은 말이 있습니다. 제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이 난은 지난달에도, 지지난 달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대로 변함없이 똑같은데 이런 걸 키우는 것이 뭐가 재미있냐?" 그 친구가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말합니다. "얘가 뭘 모르네. 그렇게 변하지 않으니까 재미있는 거지. 네 말대로 잘 크는 난도 있지. 그런 난들은 싸구려야. 이것은 굉장히 비싼 난이고, 키우기가 굉장히 어려워. 아주 조금씩 자라고. 그러니까 사람 애를 태우지, 그래서 재미있다는 거야."
그래서 과일나무 키울 때,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난을 키우듯이 키워야겠다." 이것이 새롭게 다짐한 제 결심입니다. 성급하게 묘목을 심으면서 열매 맺기를 기대하는 것은 김칫국 마시는 일입니다. 그저 안 죽기를 바라고 제대로 크기만을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전략에 맞추어 새로운 과수원을 설계했습니다. 제 맘대로 만든 미니 과수원입니다. 대략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닐하우스 파이프를 이용하여 1m 간격으로 박고 3m 떨어져서 또 1m 간격으로 박습니다. 높이는 2m입니다. 그리고 위쪽에서 각 파이프를 연결하여 마치 포도나무 격자 그늘막처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아래 각 파이프마다 옆에 묘목을 심습니다. 모두 3개를 만들었는데 각각 대표적인 나무를 중심으로 1) 소나무 과수원, 2) 백일홍 과수원, 3) 등나무 과수원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기에 심는 나무는 말하자면 옆으로 1m 간격으로 심고, 폭은 3m로 하며 높이는 2m 이상 크지 못하게 조절합니다. 보통 과일나무는 좌우폭과 높이가 4m x 4m x 4m 정도 혹은 5m x 5m x 5m 이상인데 1m x 3m x 2m로 그 공간을 대폭 줄인 것입니다. 키우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나 일단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선은 전체 크기가 작고 묘목들이 밀집되어 있으니 관리하기가 편리하고 파이프가 바로 옆에 있으니 조그만 묘목을 낫이나 제초기로 잘라버릴 위험도 없습니다. 12그루 돌아보는데 5m만 움직이면 됩니다. 보통이라면 20m는 움직여야 합니다. 미니 과수원 3개니까 36그루 돌아보는데 15미터만 이동하면 됩니다. 한눈에 전체 상태를 감시할 수 있으니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생계가 걸린 일도 아니니 편하게, 즐기면서 키울 셈입니다.
소나무 과수원은 과수원 앞에 작은 소나무가 서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3월 말경에 각 파이프 옆에 다음과 같은 묘목을 심었습니다. 각 파이프마다 번호를 부여하여 그것을 묘목 번호로 간주합니다.
① 머루 포도 ② 캠벨 포도 ③ 등나무 ④ 차량 감 ⑤ 사북 능금 ⑥ 캠벨 포도
⑦ 부암 능금 ⑧ 거봉 포도 ⑨ 꿀 자두 ⑩ 머루 포도 ⑪ 슈가 푸룬(서양자두) ⑫ 러시아 체리
그런데 4월, 5월, 6월 그리고 7월 중순을 거치면서, 즉 약 100일을 거치면서 이중에 4번 차량 감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11번 서양자두 푸룬 묘목과 12번 러시아 체리가 죽었습니다. 왜 죽었을까? 심을 때 잘못 심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습기가 충분해야 하는데 부족해서 말라죽었습니다. 푸룬과 체리는 그동안 여러 그루를 심은 적이 있는데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왼쪽은 2번 캠벨 포도, 오른쪽은 8번 거봉 포도입니다. 싱싱하게 잘 살아 있으나 최근 2주 가까이 비가 오지 않아 말랐습니다. 다행히 이틀 전부터 비가 조금씩 내려 이제 죽을 가능성은 낮아졌습니다.
① 노란오얏(녹리) ② 무화과 ③ 대왕 앵두 ④ 속리산 오얏 ⑤ 배롱 나무(백일홍) ⑥체리
⑦ 체리 ⑧ 무화과 ⑨ 프레지던트 푸룬 ⑩ 섬머뷰티 자두 ⑪ 라핀 체리 ⑫ 미홍 복숭아
1번과 4번의 오얏은 자두를 말합니다. 2번과 8번의 무화과는 심은지 2주일 정도 뒤부터 거의 죽은 상태였습니다. 묘목 자체가 좋지 않았는지 아니면 흙 성분이 맞지 않았는지 각기 다른 장소에 심었는데 같은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6번 체리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7번과 11번의 체리는 잘 살아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체리 크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즐겁습니다. 왜냐하면 잘 죽으니까요. 역시 외국에서 들어온 품종은 우리나라 기후나 풍토에 맞지 않아서 그런지 잘 죽습니다. 신경을 더 써야겠습니다.
① 조생 유명복숭아 ② 머루포도 ③ 사과대추 ④ 등나무 ⑤ 산머루 포도 ⑥ 꿀 복숭아
⑦ 대봉 감 ⑧ 포도 ⑨ 거봉 포도 ⑩ 홍로센 자두 ⑪ 포도 ⑫ 썬킹 딜리셔스 자두
이중에 11번의 포도는 죽었습니다.
심은지 3개월이 지난 대봉 감 묘목(7번)입니다. 감은 원래 이렇게 잘 안 자라는지 2개월 넘게 입눈만 몇 개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6월 어느 날 갑자기 싹을 보여주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자랐습니다. 왼쪽은 시들시들해 있던 모습이고 오른쪽은 물을 담뿍 주고 위에 잡초 매트를 덮어 준 모습입니다. 역시 정성을 쏟으니 이파리들이 싱싱해졌습니다.
왼쪽은 10번 홍로센 자두 묘목입니다. 싹이 조금 나왔다가 6월에 장마가 길지 않고 가뭄 상태가 되니 말라버렸습니다. 위쪽 단면을 잘라 보니 아직 푸른색이 남아 있어 죽지는 않았습니다. 뿌리는 아마도 아직 살아 있을 것 같아 물을 주고 매트를 덮어 주었습니다.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오른쪽 사진 산머루 포도(5번)는 등나무(4번) 가지들에 가려져 있던 묘목입니다. 등나무 가지를 쳐내면서 심은지 3개월 만에 발견했습니다. 죽은 줄 알고 뽑으려고 했는데 살아 있어서 물을 뿌려주고 잡초 매트를 덮어 주었습니다. 며칠 뒤 싱싱한 이파리를 내보이며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파리가 이렇게 이쁠 수가 없습니다.
한동안 계속 기온이 오르고 가물다가 요즘은 기온도 떨어지고 비도 자주 옵니다. 연약한 묘목들에게는 생명수와 같은 단비입니다. 미니 과수원을 만들고 묘목들을 관리하면서 죽어가는 묘목을 10그루 넘게 발견했습니다. 다행히 하늘이 도와주어 이번 고비를 넘겼지만 묘목들이 뿌리를 더 깊게 내릴 때까지는 저 자신도 정신 차리고 어린 묘목들을 잘 보살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