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선비가 일본 사무라이를 만날 때>
<조선의 선비가 일본 사무라이를 만날 때> 맺음말(203-205쪽)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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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사무라이를 만날 때, 선비는 가짜 칼이라도 한 자루 차고 나가야 한다. 아무것도 없이 붓만 한 자루 당랑 들고나가면 사무라이의 칼 앞에 선비는 공포에 떨면서 눈치만 보고 있어야 한다. 사무라이가 잠시 웃으면 선비는 따라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하지만 사무라이가 노려보면 선비는 손발을 떨면서 식은땀을 흘릴 것이다. 선비와 사무라이는 싸움 자체가 안 된다.
그래도 선비가 가짜 칼이라도 한 자루라도 들고나가면 사무라이가 멈칫할 것이고 그 순간에 선비는 말을 걸 수 있다. 말을 걸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선비는 현란한 말솜씨와 붓의 신공으로 사무라이를 설득하거나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의심이 많은 사무라이를 만나면 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싸구려라도 진짜 칼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글을 읽다가 가끔씩은 운동 대신 칼춤이라도 추면서 칼과 친해지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착하다’고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는 <맹자>만 읽을 것이 아니라 ‘인간 중에는 나쁜 것들도 있다'는 <순자(荀子)>도 읽어보고 나아가 <손자병법>을 한 번쯤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 만나야 할 사무라이가 날마다 <손자병법>을 읽으며 저 선비 녀석을 어떻게 하면 제압할 수 있을까 궁리하고, 궁리하고 또 궁리하면서 사는데, 그 상대되는 선비가 그 책을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한 번이라도 읽어봐야 사무라이하고 말이라도 붙여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말만 시작하면 선비는 자기의 무기인 붓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을 것이다.
선비를 한국으로 바꾸고 사무라이를 일본으로 바꾸면 현재 한국과 일본, 한국 사람들과 일본사람들의 모습이다. 심층심리에서 움직이는 두 나라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한국 사람들은 이러한 글을 읽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렇게 놀라는 것은 선비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선비들은 세상이 넓고 일본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모른다. 그들은 자기 생각대로 세상을 본다. 한국의 많은 지식인이나 학자들, 정치가, 군인들은 자신들이 선비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이 연구(<조선 선비가 일본 사무라이를 만날 때>)는 그것을 보여준다.
선비가 사무라이를 만날 때, 선비 자신이 갖춘 고상한 도덕과 품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사무라이 보다 더 많은 칼을 차고(사무라이들은 보통 칼 3자루를 차고 다닌다. 하나는 자살용, 다른 하나는 방어용, 나머지 하나는 살인용이다.) 무술도 두 배 정도 더 갖추고 나가는 것이다. 쉽지 않지만 이렇게만 되면 사무라이 하고는 싸울 필요도 없이 사이좋게 지내면서 제압할 수 있다. 현란한 붓의 신공을 보면서 사무라이는 금방 자신의 무기와 무술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국이 일본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일본보다 두 배 많은 군사력을 갖추고 월등히 강한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사람들도, 한국 사람들도 모두 전쟁을 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203∼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