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8일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맞이하는 화창한 주말, 예산군 고덕면에 있는 사과 와이너리 은성농원 견학에 참가했습니다. 12시경에 예산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미리 준비된 대형 버스를 타고 사과 농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참가자들은 30명 정도로 꽤 많았습니다.
농원에 도착하여 내리니 왼쪽 사진처럼 넓은 사과밭이 나타났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넓은 길은 차량이 지나다니는 길이고 왼쪽으로 사과 밭입니다. 이 밭은 남북으로 약 1.5m 간격으로 사과나무가 촘촘히 심어져 있고 동서로는 수확하거나 관리하는 차량이 드나들 수 있는 간격(약 4m 정도)으로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은 약 1만 평 규모의 농장으로 연간 사과 생산량이 35~50톤이라고 합니다. 이곳 은성농원( 예산사과와인(주) )은 사과를 재배하고 판매하면서, 동시에 사과를 활용한 와인을 양조하는 곳입니다. 와인 생산에는 이곳에서 생산한 사과로는 부족해서 다른 농가 사과도 구매하는데 현재 약 300톤의 사과를 와인 제조에 사용한다고 합니다. 예산 전체 사과 생산량의 1/100에 해당하는 분량입니다. 앞으로는 약 3,000톤까지 사과 구매를 늘릴 계획을 하고 있다니 대단합니다.
이곳은 농장 안에 레스토랑, 세미나실, 숙박시설 등을 갖추고 있는 관광지이기도 합니다.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고 하니 소위 성공한 6차 산업 모델입니다. 참고로 1차 산업은 농업, 2차 산업은 와인 제조, 3차 산업은 관광과 체험인데 이 모든 것을 한 곳에서 체험하고 살펴볼 수 있는 곳입니다.
농원 건물 안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습니다. 술 익는 향기가 가득합니다. 진열된 술을 살펴보았습니다. 무엇 보다도 판매하는 술 종류와 가격이 궁금했습니다.
추사 백(알코올 도수 40도)은 32,000원.
추사백 25(숫자는 알코올 도수)는 13,000원.
추사백 오크 25(갈색 술)는 15,000원(350ml).
추사 40 작은 병은 30,000원, 큰 병은 67,000원.
추사 50은 89,000원.
'추사'라는 브랜드 명이 들어간 것이 생소했습니다. 그리고 판매대에서는 두 종류의 사과파이도 판매하는데 가격은 4,000원과 3,000원이었습니다.
이곳은 여러 가지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데 사과 수확 체험, 사과잼 만드기, 사과파이 만들기, 와인 양조장 투어 등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사과 수확 프로그램은 참가비 1만 원(사과 4개 따기, 기간은 10월-11월 중), 양조장 투어는 5천 원, 파이와 잼 만들기는 7천 원이었습니다.
우리 답사 팀은 먼저 사과 파이 만들기 실습을 했습니다. 설탕에 절인 사과를 밀가루 반죽에 집어넣는 실습입니다. 미리 동그랗게 만들어진 반죽 두 개를 하얀 봉으로 밀어서 납작하게 폅니다. 그리고 한 장은 은박 접시 아래에 펴서 넣고 절인 사과를 그 안에 넣은 뒤 나머지 반죽 한 장을 덮고 표면에 구멍을 몇 개 내주면 끝납니다. 역시 설명만 듣고 끝나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데, 직접 손을 사용해 만들어 보니 묘한 즐거움과 함께 직접 해봤다는 만족감이 솟아오릅니다. 이렇게 준비된 파이 작품은 오븐으로 굽게 되는데, 한 시간 정도 뒤에 돌려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와이너리 투어가 진행되었습니다.
사과 파이 만들기가 끝난 뒤에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습니다. 정제민 은성농원 대표가 직접 농원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정면 스크린에 다음과 같이 커다란 글씨가 쓰여있습니다.
"100년 후를 준비하는 예산 Apple Winery"
무슨 뜻이지? 궁금했는데, 설명을 들으니 와인 생산업이 그러한 장기적인 계획과 비전이 없으면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제원 대표는 대학 때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고 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가까운 곳에서 살았는데 놀러 오는 지인들을 위해서 폭포 관광을 도와주다가 현지 와이너리 관광지를 알게 되어 양조장 사업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이아가라 호수 주변 지역은 와이너리 투어가 활성화되어 있으며, 방문객들이 직접 아이스 와인의 제조 과정을 체험하고 시음할 수 있습니다.
장대표는 처갓집이 예산에서 사과밭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귀국하여 사과밭 경영을 이어받아 사과 와인 생산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대를 이을 아들도 해외유학을 하여 양조업을 전문적으로 배운다고 하니 벌써 3대가 사과 생산과 와인 양조 사업에 매진하는 셈입니다. 하나의 사업에 한 사람의 인생을 갈아 넣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한 가문이 이렇게 진심으로 노력한다는 것이 감탄스럽습니다. 과일 생산과 와인 사업 자체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과일은 처음 수확하려면 수년이 걸리고, 와인도 숙성시키는 과정이 기본적으로 빨라야 1년, 그렇지 않으면 수년, 혹은 수십 년 걸리니 100년 정도 시간을 길게 잡고 사업을 해야되는 모양입니다.
은성농원은 2008년에 예산 사과 와인을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와인 제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캐나다의 아이스 와인을 밴치마킹하여 달콤한 와인을 생산했습니다. 아이스 와인은 겨울 추위로 얼어버린 포도를 따서 압착하여 만든 와인입니다. 온타리오 주의 나이아가라 지역이 이러한 와인으로 유명합니다. 이니스킬린(Inniskillin) 와이너리가 대표적인 와인 양조장입니다. 포도 품종은 추위에 강한 비달(Vidal)과 리슬링(Riesling) 등의 품종을 사용합니다. 이보다 더 대중적이고 가격이 저렴한 호주산 아이스 와인도 있는데, 이 경우는 수확한 포도를 냉장고에 얼려서 와인을 생산합니다. 이런 와인은 'Vin de Glacier'라고 표기됩니다.
은성농원의 달콤한 사과 와인은 처음에 판매가 여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술 소비자들의 성향이 소주와 같은 강한 맛의 증류주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수가 높은 사과 증류주 개발로 방향을 바꿨다고 합니다. 현재는 와인, 증류주, 브랜디 등 다양한 술을 생산하며, 사과 외에 블루베리를 발효한 술도 판매합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와인 브랜드명은 '추사(가을 이야기, 또는 가을 사과)'입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이자 서예가인 추사(秋史) 김정희의 호와 같습니다. 김정희는 예산 출신이기 때문에 지역적인 어필도 겸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술은 우리나라 3대 주류 품평회에서 모두 대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추사 애플와인은 2024 대한민국주류대상과 2024 제11회 한국와인대상 등에서 수상했으며, 사과 증류주(추사 40)는 2025년 영국 런던의 더 월드 브랜디 어워즈에서 사과 증류주 부문 최고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처음 올 때는 그저 시골 한쪽에서 술 만드는, 평범한 양조장이겠거니 했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국내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큰 상을 받았으니 술맛으로는 최고라는 점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매년 가을(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에 이곳 은성농원에서 열리는 <예산사과와인 페스티벌>에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가 봅니다.
양조한 술을 증류하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왼쪽의 사진 중 커다란 증류기는 구리로 만든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가격이 보통이 아닙니다. 5,000만 원에서 1억 이상을 호가하는 상품입니다. 시골 아파트 한채 가격입니다. 이런 증류기가 여러 개 있었습니다. 양조장은 시설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야 최고 품질의 상품을 제조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커다란 오크통이 진열되어 있는 저장 창고로 이동했습니다. 정제민 대표의 설명으로는 이 오크통이 와인의 맛과 향을 좌우한다고 합니다. '오크(Oak)'는 참나무나 참나무 과에 속하는 나무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토리를 맺는 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등으로 불립니다. 이 참나무의 특징은 목재가 아주 단단하고 무겁고, 튼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형이 적어 가구, 바닥재, 건축재 등으로 사용되고, 와인을 숙성하는 술통으로도 사용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자기 굽는 기술이 발달하여 항아리를 만들어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 혹은 술이나 식초를 만드는 용기로 사용해 왔지만 서양인들은 그런 기술이 없어서 나무로 술통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무 술통이 좋은 점은 나무에 스며든 술향기를 이용해 다양한 맛이나 향기를 우려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무통 안쪽을 살짝 태우거나 강하게 태워서 탄 냄새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장 대표는 최근에 프랑스 와이너리를 돌아다니며 <사토 마고>를 양조한 중고 오크통을 구했다고 합니다. 사과 와인 증류주를 그곳에 보관하여 특별한 맛과 향을 우려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하기 어려운 오크통을 5개나 구입을 했다고 하는데 가격이 한 개에 3천만 원이랍니다. 5개면 1억 5천만 원입니다. 이런 오크통이 저장 창고에 아마도 수백 개는 넘게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또 비싼 술이 가득 들어 있을 것이니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현재 직원은 11명이고 연매출이 30억 정도이며 대만, 홍콩, 베트남, 호주 시장에도 이곳에서 생산된 술이 판매되고 있다고 하니, 알면 알수록 대단한 회사입니다.(이민선, 빚·투자 없이 사업하는데 30억 매출, 비결은?, <오마이뉴스>, 2025.4.26.)
마지막으로 레스토랑에서 시음 행사가 있었습니다. 금박이 들어 있는 사과 와인, 도수가 센 과일 증류주, 블루베리를 발효하여 만든 포트와인, 그리고 다양한 맛의 하이볼도 마셔봤습니다.
하이볼은 뭐지? '칵테일(Cocktail)'이라는 단어만 알고 있었던 저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입니다. 하이볼(Highball)의 뜻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증류주에 탄산수, 콜라, 토닉워터 등의 음료를 섞고 얼음을 넣어 만드는 칵테일'이라고 합니다. 레몬이나 라임 조각을 넣어 맛과 향을 더할 수도 있다고 하니 칵테일과 별로 다를 바는 없습니다. 굳이 하이볼과 칵테일의 차이를 말하자면, 하이볼은 탄산음료를 섞고 알코올 함량을 낮게 하여 가볍고 상쾌한 느낌의 음료이며, 칵테일은 알코올에 과일 원액, 혹은 주스나 시럽 등을 다양하고 복잡하게 섞은 것으로 도수가 비교적 높은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장제원 대표가 직접 만든 하이볼을 받아 마시면서 이것이 가볍고 맛있는 와인 못지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도수가 높은 서양의 브랜디나 위스키를 높은 도수 그대로 꿀컥 삼켜서 마시는 방법만 알았는데 이렇게 가볍고 달콤하게 만들어 먹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직접 체험도 해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술을 시음하면서 제가 가장 많이 유혹을 당한 술은 '블루베리 포트 와인'이었습니다. 술 도수는 20도나 되는데 너무도 달콤하고 부드러웠으며 향기가 매혹적이었습니다. 둥근 와인잔 바닥에 깔린 블루베리 술의 옅은 보랏빛 색깔도 정말 좋았습니다. 한잔 가득 들어있는 모습은 더욱 아름답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홀짝홀짝 마셨습니다.
'포트 와인'에 대해서 장 대표의 상세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와인을 발효하다 중간에 독한 증류주를 첨가해 발효를 중지시킨 술이라고 합니다. 독한 알코올 때문에 효모가 죽어버리면 남은 당분 때문에 단맛이 나는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소위 '주정강화(Fortification) 기법'이라고 하는데, 프랑스산 와인은 대개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Port Wine)이나 스페인의 셰리 와인(Sherry Wine)이 이런 방법으로 만든 와인입니다. 이곳 은성농원의 블루베리 포트 와인도 이렇게 만든다고 합니다.
참고로 포르투갈 사람들이 포트 와인을 만들게 된 것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이후에 영국이 프랑스 와인 수입을 금지하고 대신 포르투갈에서 와인을 수입하게 되었는데, 먼 거리의 장기 운송으로 와인이 변질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셰리 와인은 발효 과정 중에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를 첨가해 도수를 높입니다. 프랑스에도 '뱅 뒤 나뛰렐(Vin de Naturel)'이나 '뱅 드 페름(Vin de Pêche)' 같이 주정강화 와인이 있기는 하지만 이 술은 발효가 완료된 이후에 증류주를 첨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시음회가 끝나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블루베리 포트 와인과 사과 와인을 구입했습니다. 두 병 합해서 할인 가격으로 약 6만 원이었는데, 블루베리 포트 와인은 4만 원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술 구입에 정신이 팔려서 오븐에 구워서 나온 애플파이를 깜빡하고 받아오지 못했습니다. 맛을 보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웠습니다. 아마 다음에 애플파이 먹으러 또 오라고 사과농장의 요정들이 감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이것이 치매 초기일까? 아무튼 늦가을 오후 정말 즐거운 한 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