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3. 14 00:29
제일 아끼는 볼펜을 잃어버렸다.
애지중지했던 물건이 보이지 않는다.
가방을 찾아봐도 주머니를 찾아봐도 없다.
상실감에 멍하니 서있었다.
21년도에 샀나, 20년도에 샀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최소 5년은 함께 했던 소중한 볼펜이었다.
속상하다.
더욱 속상한 건 나의 감정이 메말라버렸다는 것.
아무리 상실감이 느껴져도 미련 따위 느끼지 않는다는 것.
눈빛에 초점이 사라져버렸다는 것.
사소한 거에 행복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고 감정을 느꼈던
순간을 즐겼던
내가 이제 없다는 것.
아무리 붙잡아봐야 볼펜은 돌아오지 않는다.
똑같은 모델의 볼펜을 색깔만 다르게 해서 사려고 했다.
그 마음이 문제였나.
볼펜이 나의 마음을 알아챘나 보다.
사려고 마음만 먹고 아직 사지 않았는데
볼펜은 알고 있었나 보다.
내가 다른 볼펜에 관심을 가지려 한다는 것을.
그래서 나에게서 멀어졌나 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시간이든
유형물이든 무형물이든
사랑이든 미움이든
언젠가 필멸하리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애처롭지 않은가.
<잃어버릴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걸..>
하고 마음을 먹지만
어리석은 나는 그 순간뿐이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볼펜은
과거가 되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볼펜을 장만해
하루 이틀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 막 대하겠지.
그러다 다른 볼펜을 찾겠지.
이러니 내가 행복할 자격이 없지.
지금 가진 것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데
어떻게 행복할 자격이 있겠어.
나 따위가 어떻게 행복이란
무서운 감정을 누릴 수 있겠어.
참 어리석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그럼에도 감히 행복하고 싶다.
주제넘지만
나는 부디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언감히 진심을 다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