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일상
아날로그가 좋다. 왜 좋은지 물어본다면, 그저 좋아서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아날로그에 대한 사랑은 시대를 거스를 정도였었다. 종이책과 핸드메이드에 대한 애정이 지나쳤던 나는, 쇄국정책에 버금갈 정도로 스마트폰 기능과 4차 혁명 시대를 최대한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쇄국정책이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고 결국 어려운 시기를 가져온 것처럼, 최신 문물의 거부반응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왔었다. 모임에서 새로운 앱이 좋다는 대화에 어색한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고, SNS로 소통하는 세상에서 불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장족의 발전을 한 모습이다. 뭐든지 익숙해지기 전까지 어렵다. 호불호를 뛰어넘기는 더 어렵다. 어쩌면 그것은 스스로 만든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라는 확고한 경계선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유연한 생각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거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탄력 있던 생각은 점점 더 굳고 단단해진다. 찰흙처럼 자유로웠던 마음은 틀이 생겨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그 틀에서 안주하며 좀처럼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불편하지만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인 걸 어쩌겠어'라는 배짱 두둑한 마음이었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고집불통 인물 같았다.
그런 배짱에 배틀을 걸어온 건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배우는 기회를 통해 마주치게 된 사람들은 호불호에 대해 다시 정의해 보는 시간은 갖게 해 줬다. 내가 가진 호불호가 가장 좋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 계기였다. 아날로그가 좋지만 지나친 애정은 좋을 리 없었다.
한 번씩은 호불호의 경계선을 정비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만든 경계선이 새로운 배움의 기회나 발전을 막고 있는 건 아닐지 살펴보자. 넓고 유연해진 호불호의 경계선에서 멋진 인생 2 막을 맞이하길 바라본다.
사진: Unsplash의 Simaon Ber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