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한 여름날의 여운이 아직도 이리 짙어
손끝이 시리면 더 선명해지는 더운 날의 기억. 수십 번의 여름을 지나왔으니 당연하게도 그 여름의 낮과 밤을 기억하게 하는 장면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특별한 추억도 있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장면들이 꼭 한 번씩 튀어나온다. 길게 이어지지 않았는데도 유난히 강렬했던 순간들. 이름도 흐릿한 누군가와 나눈 짧은 대화, 특정 날씨의 어느 오후, 무심하게 스친 풍경 같은 것들이 이상하게도 내 안에 오래 남는다.
이 낯선 감정을 향수에서도 느껴봤는데, 처음 아틀리에 코롱을 접했을 때 가장 낯설게 느꼈던 향의 균형감이 딱 그랬다. 분명 짙고 선명한데, 묘하게 가볍게 흘러갔다. 오래 남는 잔향인데,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감정도, 어떤 기억도, 때로는 그런 식으로 오래 머무르는 것들이 있다. 가벼웠지만 진했다는 거겠지.
혼자 떠났던 제주는 뜨거웠고 자유로웠다. 7월 초의 한낮을 피해 이른 아침 비행기로 내려가, 아직 체크인 전인 게스트 하우스에 짐만 맡겨 두고서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덥지도 않고 흐리지도 않은, 햇살이 기분 좋게 쏟아지던 오전이었다. 유난히 투명해 보이던 바닷물에 취할 즈음 인기척에 가벼운 눈인사를 나눴다.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른다는 그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도 묻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단지 해변을 오가며 들리는 수많은 소리와 겹치게 웃었을 뿐. 나란히 바라보던 제주의 바다처럼 가볍고 환한, 아주 짧고 강렬한 몰입. 그 여름의 며칠 동안, 우리는 각자의 이름 대신 웃음만 나눴다.
'포멜로 파라디'는 그런 감정을 떠오르게 한다. 자몽의 쨍한 첫인상이 입가를 맴돌고, 블랙커런트의 과즙이 쿨하게 흘러간다. 오렌지 블라썸은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맑음을 유지하며, 전체 향의 리듬을 느긋하게 만들어 준다. 여름의 과일처럼 상쾌하지만, 향의 결은 놀랍도록 단정하다. 그날의 공기, 햇살, 그 사람의 투명한 분위기까지 갓 따온 자몽 향은 가벼운 몸짓으로 한참 동안 내 주변을 맴돈다.
여름이 오려나 싶은 후덥지근한 봄날이 있다. 그맘때의 오후 네 시쯤이면 햇살은 여전히 밝지만, 바람에는 조금 느슨한 기운이 감돈다. 그런 날엔 봉은사를 찾아간다. 다원 앞 500년 된 라일락 나무 아래 앉아 강남 한복판을 종일 누비던 다리를 쉬게 한다.
봄이 가실 무렵이면 늘 함께 찾던 그와의 기억, 같은 자리에서 주고받은 말들이 불쑥 떠오르곤 한다. 두 손으로 감싸 쥔 자그마한 찻잔 속 우롱차처럼 뜨겁지도, 애틋하지도 않은 기억. 다만 그날의 공기처럼 조용하고 부드러운 감정이었다.
'울랑 앙피니'는 그렇게 문득 떠오른 한 사람을 닮았다. 잎 차와 자스민이 중심인 향은 포근하고 차분하며, 머스크의 잔향은 마치 감정을 정리해 주는 듯 무심하게 흘러간다. 스치듯 가벼운 시트러스 노트가 향에 신선함을 더하면서도, 전체적인 인상은 아주 고요하고 평화롭다. 지나갔지만 사라지지 않은 온기, 아직 따갑지 않은 여름 햇살 아래 잠시 마주한 회상의 형태다.
한여름의 공항은 늘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휴가와 방학이 맞물려 왁자지껄할 수밖에. 북적거리는 출국장을 지나 수속 검색대에 다다라서야 에어컨의 냉기가 느껴졌다. ‘ㄹ’ 모양으로 줄을 서던 중, 앞줄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줄이 줄어들면 마주 보는 방향으로 스치게 될 터. 잠시 후 그 사람도 나를 알아본 듯 잠시 돌아봤지만, 아무 말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애써 피하지도, 억지로 마주하지도 않은 그 거리감. 그게 지금 우리가 가장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걸, 동시에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세드르 아틀라'의 향은 그런 순간을 닮았다. 아틀라스 삼나무의 묵직함이 중심을 잡고 있지만, 레몬의 시원함이 고요하게 균형을 맞춘다.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이중적인 온도. 여름 아침 공기의 청량함이 스며 있고, 흙 내음 같은 베티버의 담백한 잔향은 요동치는 감정을 달래주는 듯 깊고 안정적이다. 여운은 길지만 무겁지 않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여백이 느껴진다. 강한 인상보다 오래된 감정, 그 여운이 향처럼 따라온다.
피할 길 없이 다가오는 여름을 마주하며 떠올린 이 세 가지 장면은 모두 아주 짧고 사소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남았다. 물론 그 여운의 무게는 내 일상을 뒤흔들지 않을 만큼 가볍다만. 아틀리에 코롱의 향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가볍게 스치지만, 돌아보면 짙게 남아 있다. 시작은 코롱처럼 상쾌하지만 퍼퓸처럼 깊고 풍부한 지속력을 지닌 ‘코롱 압솔뤼’*가 이들만의 강점이자 차별화된 특징이다.
그 잔향은 감정보다도 오래, 기억보다도 선명하게 머무른다. 또 만날 여름의 장면들 또한 아틀리에 코롱의 향처럼 내게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가볍고 진하게, 신선하고 맑게. 같은 감각을 나누는 이들에게도 무겁지 않게 오래 남는 계절을 기다리며.
*아틀리에 코롱만의 고유한 부향율 – 14.5%~20%의 원액 함유량으로 코롱의 상쾌함과 퍼퓸의 높은 지속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Editor. Sonior
향수 브랜드에 관한 글을 기록합니다. 글에 등장하는 향수는 퍼퓸그라피 공식몰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